데살로니가 후서 강해

[스크랩] 계시된 굳건의 비밀 (살후 2:16-17)

작은샘 큰물줄기 2017. 8. 22. 17:51

계시된 굳건의 비밀 (살후 2:16-17)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시간에 “계시된 굳건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믿음이 더욱 굳건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얼마를 자라든지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나무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는 키가 무려 약 369피트, 미터로 환산하면 112.5미터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세콰이어라는 미국삼나무라고 합니다. 웬만한 산보다 더 큰 나무입니다.


세콰이어 나무는 보통 2,3천년정도 살며 뿌리가 5천 평방까지 뻗어나가 다른 나무뿌리와 서로서로 엉켜 있기 때문에 허리케인이 불어도 지진이 나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것도 뿌리가 좋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뿌리도 깊이 내려야겠습니다. 그래서 골2:6-7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도도 그런 기도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더욱 굳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만큼 그들은 시련 가운데 있었고 또 그만큼 재림을 비롯하여 교리적으로 혼란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5절에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15절) 했습니다.


굳건한 믿음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알 때입니다.


16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이 말씀 이대로 예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주”는 우리 주인, “예수”는 구원,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니까 왕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보내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 말고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석가를 연구해도 실망뿐이요, 마호메트을 연구해도 인간 냄새만 날뿐입니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다 죽었습니다. 공자는 73세에, 석가는 80세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소크라테스는 70세에 독배를 마셨습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 죽은 것도 아닙니다.


충남 보은에 조진우 목사님은 본래는 지리산에서 큰절의 주지승이었습니다. 돈도 많았는데 불경을 더 공부하여 진리를 발견하려고 불교의 본산인 인도를 방문했다가 어느 한 책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책에 석가모니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나를 믿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내가 가르치는 모든 내용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 부분을 읽고 충격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핍박했던 예수님을 믿게 되고 신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세운 절을 비싼 값에 사겠다는 제안을 물리치고 하나님 마음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불도저로 밀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세상종교의 경전이 쌓여있어도 연구하면 할수록 절망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연구하면 할수록 더 감동되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는 점에서 놀라울 뿐입니다. 정말 예수를 만나고 복음을 만난 사람은 누가 뭐래도 기독교 신앙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기 “우리”라는 대명사입니다. 이것은 대명사이면서도 문맥으로 보면 소유의 의미도 강합니다. 주기도문에 “우리”라는 말이 많은데 우리 빼면 예수님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우리와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 있고 그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골1:13-14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했고, 21-22에는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그러면서 23절에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깊이 아시기 바랍니다.


2. 은혜를 체험할 때 옵니다.


16절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기 여러 은혜가 나타나는데 여기 3가지 은혜는 한 번만이라도 체험하면 영원히 잊지 못하는 체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첫사랑을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아1:2-3에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이것이 첫 사랑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무슨 일로 그 은혜를 유지 못하고 잃어버리지만 그 은혜가 얼마나 좋던지 평생 잊지 못하고 사모하면서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리 영적 수준이 어느 궤도에 오르게 되면 다시 회복시키셔서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영원한 위로도 한 번 체험하면 잊지 못하는 체험입니다.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성령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심령을 어루만져 주실 때 감격스러워 한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고후1:3-5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했습니다.


천국의 소망도 체험하면 잊지 못합니다. 천국을 체험했으니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도 빌1:22-24에서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진정 안다면 떠날 수 없고, 그 은혜를 체험했다면 그 은혜를 잊을 수 없고 그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복음을 진정 안다면 이방종교에서 힌트 얻으려고 기웃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구원을 얻는데 침묵의 관상기도나 수도원운동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겠습니다. 숭배의 대상만 하나님이지 내용은 이방종교 교리로 가버리는 그게 뭡니까?


진리에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사49:15-16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느니라.” 하셨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못하시지만 우리 역시 그 사랑의 품안을 체험하면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니 증험하는 체험이라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참 믿음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릅니다. 그 체험은 해야 합니다. 생명 체험해야 합니다. 은혜 체험해야 합니다. 승리 체험해야 합니다. 위로의 체험도 하시기 바랍니다. 거기다 천국 소망까지 체험했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붙드실 때 굳건해집니다.


16-17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굳게 붙들어주십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도 견인의 은혜인데 택하신 백성은 어떤 은혜를 주시든지 버리지 않고 붙들어 주십니다.


시37:23-24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한 말씀대로입니다. 잠24:16에도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나는 칠전팔기의 은혜도 하나님께서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뒤를 따라가다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크게 자기에게 실망하여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지만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위해 기도해주신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어려운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주님을 버리지 않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믿을 수 있었음은 아버지께서 붙드신 은혜였습니다.


다윗도 왕자 압살롬이 난을 일으켜 신하들 대부분이 압살롬의 편에 서서 다윗을 대적할 때 남은 것은 죽을 일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의 약속을 떠올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며 마음에 뭔가 든든히 받쳐주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 때 지은 시편이 시편 제3편입니다. 4절부터 보면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시3:5-8)

 

여기 누워 자고 깨었다는 것은 누워 잘 수도 없었는데 누워 잘 수 있었고, 두려워 정신 차릴 수도 없었는데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 있을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만인이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굳세라고 말씀합니다. 고전15:57-58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어려운 가운데 있을지라도 더욱 성경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천국을 경험하게 해주시고 더욱 강하게 붙들어 주시는 은혜를 받아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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