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교회가 하나 되는 길/고전1:10-17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20:43

금년부터는 절기나 중요한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매주 고린도서를 중심으로 강해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말씀이 충만했으며, 은사가 충만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으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를 언급한 후 곧 바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을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제일 먼저 언급한 문제는 교회의 분쟁이었습니다. 11절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글로에란 사람은 누구입니까? 주석가들에 의하면 고린도에 거주하는 부유한 여성 실업가로, 별 설명이 없는 것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서 잘 알려진 여신도로 보고 있습니다.

아마, 바울의 선교를 열심히 돕는 유력자로 종들을 통해 선교비나 필요한 물품을 보내는 자였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 여인이 보낸 분들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 형편을 들어보니 교회 내에 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분쟁이 생겼습니까? 12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린도 교회 안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 즉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서 서로 다툰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분쟁’이란 말은 헬라어로 ‘에릭스’인데 이는 10절에 말하는 ‘분쟁’의 헬라어 ‘스키스마’와 다른 단어입니다. 10절에서 말하는 분쟁이라는 말은 완전히 분열된 상태이고 12절에 말하는 분쟁이라는 말은 서로 울근불근 다투는 상태이기는 하나 완전히 갈라진 상태는 아닌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파벌 간의 다툼으로 인해서 갈라지기 직전의 위기를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작년 한 해 동안 영락교회의 분쟁을 수습하노라고 갖은 고생을 다 해보았습니다. 한참 분쟁이 심할 때에는 앞장 선 분들의 눈과 말과 행동이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당회실에 와서 마구 고함을 지르기 일 수고, 제가 조금만 누구 편에 서는 느낌을 들면 저한테 달려들어 싸우자고 할 것 같은 태세입니다.

조금만 삐긋했다가는 광성교회 같은 큰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보여서 얼마나 마음으로 조바심을 쳤는지 모릅니다. 고린도 교회도 그런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한 나머지 글로에가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종을 보내서 이 사실을 전갈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 실상과 바울이 권면하는 교회가 하나 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1. 고린도 교회의 분쟁 실상과 원인은 무엇입니까?
좀 전에 언급한 대로 고린도 교회는 네 파벌로 나누었는데 분석해 보면 철저히 인간적인 생각들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네 파벌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1)바울파는 이방인들 중심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바울은 한번도 이들에게 자기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음에도 이방인들이 바울에게 속한 자라고 끼리끼리 뭉쳐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소위 구원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도 폐하고 할례도 받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2)아볼로파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유대인이었는데, 그는 상당히 지식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웅변가였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그 곳은 지적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는 학자들이 많았는데 아볼로도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성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를 좋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볼로파는 기독교를 철학적인 종교로 믿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3)게바파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게바란 유대인의 이름입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하고 부르지 않고 구지 게바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게바파, 즉 유대인들은 율법과 할례를 존중히 하는 자들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나 할례를 지키지 않아도 되고 다만 믿음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울을 싫어했습니다.

(4)그리스도파는 은혜 체험자들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 마디로 자기들만이 참다운 기독교인들이요, 참 은혜를 받은 자들이라고 믿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체험을 상당히 중요시 여기는 파였습니다. 그들은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와 봉사도 많이 하는 자들로 교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영적 교만과 독선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나 교회 지도부가 자기들을 등한히 하는 느낌이 들면 자기들끼리 가정집회나 기도원 같은 곳으로 몰려다닙니다. 그러다 보면 이단같은 잘못된 곳으로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파벌이 생긴 원인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시험이 들어서 그렇게 되었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적 생각들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분쟁이 있는 교회들을 찾아가 이 파나 저 파를 만나보면 열심히 성경이나 법을 갖고 말하지만, 대부분 인간들의 생각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교회는 지연 중심으로 이북파, 영남파, 호남파로 나누기도 하고, 어느 교회는 학연 중심, 혹은 혈연중심으로 파벌이 조성되기도 합니다. 경북 어느 큰 교회는 목회자가 자주 바뀝니다. 장로님들의 3분지 1이 강씨인데 당회를 하기 전에 먼저 문중회의를 하고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담임목사가 자기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으면 계속 목회를 방해함으로 아무리 능력 있는 목회자가 부임해도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너무나 한심한 교회입니다. 또 목회자가 자주 바꾸는 교회는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사실, 처음 교회 나와서 은혜 받는데 도움을 준 목회자, 담당 교구 목회자로서 특별히 돌봄을 받았을 때, 혹은 성경공부 반에서 구원의 체험을 받았을 때, 그 분을 일생 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좋아했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어떤 그룹이 형성되기도 하고 은혜를 받았던 어느 기도원이나 어느 부흥 강사 목사님을 중심해서 어떤 아류가 형성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가 홍익교회에서 30년 목회하는 동안 70%이상의 성도들이 저를 통해서 세례를 받고 제직이 되거나 중직이 되었고 집사람을 통해서 병 고침 받은 분들이 상당수 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은 후임자가 부임한 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우리의 이름과 받은 은혜를 들먹거리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런 분들은 후임 목회자에게 미운 톨이 박힙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 것은 세례를 주었거나 주례나 장례식을 집례했거나, 제직이나 중직이 된 것, 혹은 병 고침을 받은 것도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이 하신 일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만 기억하고 인간은 잊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면 우리도 인간인지라 섭섭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덕이 됩니다. 여하튼 어떤 이유든 간에 교회 안에 분파가 있고 분쟁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 받을 일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이단 문제를 제외하고는 어치든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러면 어떻게 해야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한 마디로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 온전히 합하는 것입니다.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온전히 합해야 할 이유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한 몸이 된 이상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온전히 합하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절에는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 가정이나 교회나 어떤 기관이든 말 때문에 시험이 생기고 분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남편은 이렇게 말하는 데 부인은 저렇게 말합니다. 남편은 이렇게 하자는데 부인은 저렇게 하자고 합니다.

의견이 달라도 둘이 잘 타협해서 하나의 말, 하나의 길로 가야 하는데 끝까지 고집하거나 둘이 결정하고서도 계속 불만을 말하면 결국 둘은 깨지고 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고 장로님들은 다른 말을 합니다. 결국 교인들은 갈라지고 시험이 들거나 깨지고 맙니다. 물론, 인간이 모인 곳이라 의견이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서로 의논하여 결정한 다음에는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면 됩니다.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까 다른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마음이 하나가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정신 분열증에 걸리고 미친 행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까?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 됩니다.

빌2:2-5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뜻을 가질 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게 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다툼이 생기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은 증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나 당회원이나 제직, 기관의 임원들은 교회의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제일 조심할 것은 말입니다. 어느 분은 교회에 와서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입으로만 충성합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말로 온갖 잔소리하고 앞장 서 일하는 사람을 마구 비판함으로 심한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험담은 물론이고 이간질하는 사람입니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로 나라도 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구려 보장 왕 25년 당대 영웅인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맏아들 남생이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남생은 이 귀한 벼슬을 얻어 정사를 맡은 다음 여러 성을 순찰하면서 국민의 여론을 듣기 위하여 정사를 자기 동생 남건과 남산에게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어느 날 남건과 남산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당신의 형 남생이가 당신들을 미워하여 장차 없애고자 하는 생각을 품고 있으니 그의 대책을 모색하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혹시나 하고 의심이 되며 염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남생이 민가를 순방하고 있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와서 당신의 동생 남건과 남산이 당신의 자리를 탐하고 있으니 그 대책을 세우라고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남생도 믿지 않았으나, 혹시나 해서 동생들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비밀사절을 보냈습니다. 동생들이 이 사실을 알아내고 그 사절을 잡아들이고 형을 왕의 이름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남생은 자기가 보낸 신하는 오지 않고 자기를 불러들인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들이 음모를 꾸미는구나 생각하고, 동생들도 형님이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낯선 사람의 말을 믿고, 군대를 동원하여 남생을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남생은 당나라로 피신하였습니다. 당나라 고종은 고구려를 치기 위하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남생에게 현도군공에 봉하고 장군을 명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였습니다. 전쟁 2년 만에 신라까지 합병하여 평양성을 에워싸니 한 달 만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구려 28대 705년간 천년 시작이 하루아침에 끝마치고 말았습니다.

나라도 말에 의해 무너진다면 작은 교회 정도는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말을 옮기는 사람들, 특별히 그 말에다가 나쁜 의도를 보태서 옮기는 사람을 교회는 제일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므로 같은 마음과 같은 말, 같은 뜻을 나타내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교회가 되게 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어떻게 하나가 되었습니까?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십자가 안에서 나란 존재가 목 박혀 죽고 부활 안에서 주님의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다 다르지만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세례를 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으로 변화 받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이지만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으므로 한 몸이 되었고 예수님의 피로 영적으로 교통하게 된 것입니다.

13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뇨”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뉨이 없는데 어찌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나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도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렇게 사도가 되었고 세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풀고 있는데 어떻게 나를 교회 분쟁의 도구로 이용하는가 라고 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는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로,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다른 이의 허물과 죄를 용납하고 대신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교회는 십자가 사랑으로 용납함이 없이는 무너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자신이 허물과 죄가 많다고 느끼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칭 의인은 교회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서로 율법의 눈으로 판단하기만 한다면 모두가 정죄 받을 사람들뿐이므로 한 사람도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 서서 설교하는 저도 여러분들이 율법의 눈으로 본다면 몇 개월도 못 되어 온갖 허물과 잘못 때문에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가정을 좋아합니까?

가정은 어린 자녀들이 허물 많고 실수 많을지라도 부모님이 사랑으로 덮어주고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실수했을 때 부모님들이 가서 대신 용서를 빌고 대신 그 값을 치러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는, 법정처럼 너나없이 서로의 잘못을 따지고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교회는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참석하고 싶은 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가 교회에 온다고 하더라도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의 부족이나 허물을 용납하고 덮어주는 교회, 때로 교회의 큰 어려움이 있을 때라도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교회 지도자들이 부모처럼 큰 가슴을 가지고 “이 모든 풍랑은 나의 연고입니다.”라는 고백할 수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제가 영락교회의 문제를 수습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서로의 잘못을 들추기는 잘하지, 누구 하나 교회의 문제를 끌어안고 “나의 연고로 이런 풍랑을 만났습니다.”라고 하는 분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 영락교회는 한경직 목사님 같은 위대한 목회자도 계셨지만, 최창근 장로님 같은 큰 그릇의 동역자가 있었기에 은혜가 넘쳤던 것입니다.

최창근 장로님은 신의주에서 월남하신 후, 1948년 12월, 주문진어업조합 이사로 있던 친구의 도움으로 수산업을 시작 했습니다.한 번은 동태를 잔뜩 실은 17t 자리 배에 선원 5명과 함께 승선해 부산을 향했는데, 기상변화로 거대한 폭풍을 만나 죽음의 위기를 만났습니다.그 때 최 장로님은 동해에 빠져 인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니 너무나 가슴이 터질 듯싶어 불타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태어나 그렇게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는 처음일 정도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먼저, 지금까지 물질욕에만 매여 살던 죄를 회개하면서 “살려만 주시면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비바람과 싸우면서 3시간 만에 통통배가 새벽 6시경에 기적적으로 울진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특별히 지난 50여 년간 한 목사님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며 가장 큰 물질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기드온협회, 군선교연합회, 세진회, 기독공보 사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76년 영락고등학교 건축을 위해 4억원의 토지를 매각해 기증, 보성여고 강당건축을 위해 2억원의 토지를 매각해 헌납,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 8만평의 현 부지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그처럼 최선을 다해 사업을 하고 그 수익을 하나님 사업에 쓰는 것이 사명이라고 여기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써도 써도 계속 채워지는 샘물’과 같이 물질을 채워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번에 영락교회 문제 수습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90세가 넘은 최창근 장로님은 문제를 일으킨 장로님들을 만난 후에도 야단을 치기보다는 손을 붙들고 우시면서 “다 선배들이 부족한 탓이다.”고 하심으로 너무나 부끄러웠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바로 교회는 이런 큰 가슴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남의 잘못이나 부족은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십자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교회이기에 허물과 죄를 덮어주고 대신 그 짐을 질 때에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어치든지 우리 교회는 45년 동안 화목 가운데 하나가 되어 온 것처럼 앞으로 주님이 오실 때까지 분쟁이나 분규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시는 홍익교회의 중직들과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그리스도 마음을 품으am로 같은 말, 같은 마음과 뜻을 나타내며, 십자가 사랑으로 서로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며 대신 짐을 짐으로, 어떠한 문제 앞에서라도 하나된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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