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감사와 확신/고전1:1-9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20:43

금년부터는 절기나 중요한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매주 고린도서를 중심으로 강해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는 담임목사 교체기에 흔히 생길 수 있는 교회의 시험을 미리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오랫동안 목회하던 나이 많은 담임목사님이 은퇴하고 젊은 후임 목사님이 부임하면 대부분의 교회는 새로운 분위기에 싸여 한 3년은 잔치기운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나 한 3년을 지나면 신임 목회자의 결함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시험에 드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특히 젊은 후임자는 하루라도 빨리 교회의 시스템을 자기중심의 체제로 변환시켜야 한다는 생각과 전임자보다 교회를 더 성장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너무 조급하게 서둘다가 실수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제가 제일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후임자를 모셔올 때에 가장 경계할 것은, 교회를 빨리 성장시켜 달라고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보다는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위에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일년 동안 집중적으로 설교할 내용은 고린도서를 통해서 설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고린도서입니까?

고린도 교회는 급성장한 교회인 동시에 은혜도 많이 체험한 교회였지만, 그러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의 문제점과 바울이 말하는 치유책을 배움으로 미리 말씀의 예방주사를 맞아 놓는 것은 우리 교회와 우리 교인들에게 유익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고린도라는 도시는 어떠한 도시이고 교린도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고린도는 로마의 시저 황제가 재건한 도시로 로마 총독이 주재하는 곳이고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동서가 바다로 되어 있어서 아시아와 로마를 연락하는 요충지요, 상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부요하고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인구는 약 60만인데 그 중에 노예가 40만이 정도로 잡다한 인종이 살았고, 특히 ‘아프로디테’라는 신전(神殿)이 있어서 우상숭배가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전에는 천여 명의 여사제(女司祭)들이 있었는데 그 여인들은 사실은 공창(公娼)들로 종교의식의 하나로 창녀들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믿고 있는 남신(男神)과 여신(女神)을 성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신전에서 공동연히 음란을 저지름으로 풍년을 들게 한다는 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온 도시가 사치와 음란이 만연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인 기원 50년경 이 도시에 왔습니다. 그리고 같이 천막업을 하고 있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집에서 교회를 창립한 것이 고린도 교회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1년 반 정도 목회하다가 유대인들의 반대로 수리아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고 후에 아볼로가 와서 목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워낙 우상과 음란, 사치와 방탕이 가득한 도시의 영향 탓인지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많이 받은 교회였으나 많은 문제가 일어남으로 당파가 생기어 교회가 분쟁이 일어났고, 근친상간 문제, 교인 간의 문제를 사회법정에 고소하는 문제, 이혼문제,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 성령의 은사 문제, 부활에 관한 논란들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린도서를 잘 연구하면 교회에서 발생할 수 없는 모든 문제와 치유책을 배울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예방주사를 맞는 마음으로 열심히 들으심으로 든든히 서가는 고인들과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바울은 자기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3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자기의 결심 때문도 아니요, 자기 실력도 아니요, 더더구나 자기 덕망이나 타인의 권고 때문도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철저한 자기 부인을 나타낸 태도이고 반면에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로부터 받는 직분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받는 것임을 믿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당회나 교역자들이 준 것이라 이 직책을 맡긴 것이라 생각하고 교회나 담당 교역자가 마음에 들면 순종하고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역자가 오면 충성을 멈추는 자세, 또한 그 교역자 때문에 충성하지 않는 것처럼 변명하거나 비난하는 자세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주의 일꾼들이나 교회의 자세는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충성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세는 자기 과시나 자기 자랑을 하려는 자세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느 장로님의 집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의 교회당도 그 장로님이 거의 전담하다 싶이 해서 건축한 것입니다.”

혹은 “우리 교회는 지금의 목사님이 부임하신 후에, 급성장했고 수천 평 건물로 초현대식으로 지어져서 음향시설도 너무나 잘 되어 있고 냉난방이 너무나 잘 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더 한심한 것은, 하나님의 뜻은커녕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교회에서 주장질하고 심지어는 목회자를 괴롭히고 더 나가서는 목회자를 몰아내는 데 앞장 서는 것입니다.

조제은 목사님이 쓰신「한국교회 예화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지방 교회를 열심히 섬기던 전도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년간을 한결같이 열심히 봉사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교인의 수는 부임할 때와 크게 차이가 없었음으로 대단히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교회 제직들까지 전도사님이 무능해서 부홍 되지 않으니 내보내자고 결의하고 당회장님을 찾아갔습니다. 당회장 목사님은 교회로 와서 제직들을 전부 모이게 하고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제직들에게 물어봅시다. 전도사님이 심방을 하지 않던가요?” “아닙니다. 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전도하라고 가르치지 않던가요?” “아닙니다. 가르쳤습니다.”

“전도사님이 전도는 않고 잠만 자던가요?” “아닙니다.” “성경에 교역자가 혼자서 전도해서 교회를 부흥 시켜야 한다고 써 있던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다시 물어봅시다. 금년에 전도해서 한 사람이라도 열매를 거둔 사람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는 전도를 못하니까, 전도하는 사람을 도와주고자 특별 헌금을 한 사람은 있습니까?”

대부분이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당회장 목사님은 책망하기를 “여러분들은 빚은 안 갚고 얻어먹기만 하고 살았군요. 그래 놓고는 교회부흥이 안된다고요? 교역자가 전도 하청 받은 사람입니까? 교역자는 전도를 위하여 성도들을 교육시키는 사람입니다. 전도를 하여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은 성도의 몫입니다.”

“전도의 하청은 여러분들이 맡아 놓고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때부터 교인들이 정신 차리고 돌아가 열심을 다함으로 교회가 새로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주님의 일을 할 때마다 가장 경계할 것은 자기 자랑이나 자기의 뜻을 너무 내세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신년 새해에는 자신이 아무리 수고하고 애씀으로 많은 열매를 맺었다 하더라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뿐입니다. 나는 오직 무익한 종에 불과합니다.”라는 겸손의 자세를 지키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고린도교회와 교인들이 말씀으로 견고케 되었다고 확신하고 감사하였습니다.
4-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구변’이란 말은 예언하고 가르치고 방언하는 것을 포함하는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복음 증거와 교리 변호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이라는 말은 영적인 진리와 교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을 갖게 되는 영적인 은사를 가르칩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이러한 영적인 은사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으로 그렇게 음란과 사치와 방탕으로 가득한 분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들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그 교회를 떠날 때에는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고린도 교인들이 지금은 말씀과 체험으로 견고하게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목회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기쁜 것은, 화려한 당회장실이나 좋은 사택, 많은 사례금이나 고급승용차가 아닙니다. 어린 교인들이 잘 자라는 것입니다. 주일 날 오후예배나 무슨 연합집회에서 누가 기도할 때에 너무나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신앙적으로 그렇게 어려만 보이던 얼마나 뜨거운 깊은 기도를 하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가정에 큰 어려움을 당해서 신앙적으로 낙심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심방을 갔다가 오히려 은혜를 받고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분은 그런 어려운 속에서 신앙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나름대로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면 오히려 “목사님, 이번에 제가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런 속에서 강하게 붙들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교인들은 성령이 친히 다스린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목회가 어려울 때에 항상 해결하는 방법은 새벽이나 밤중에 강대상에 올라가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이 교회 담임목사와 당회장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우리 교인들을 친히 다스리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친히 교회의 어려움이나 교인들의 무수한 문제들을 친히 다스려 가시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가정의 일이나 교회에서 맡은 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마다 이렇게 해보십시오.

“하나님, 우리 가정이나 교회에서 맡기실 일은 하나님이 친히 다스려 주옵소서. 저는 다만 종으로 순종하겠나이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2006년도에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 모든 일을 강하고 견고하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박금출 목사님이 쓰신「실화사전」에는 이런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떤 여성도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집에 들어오지를 않더랍니다.

그리고 남편이 한 번이나 집에 들어오면 욕을 하면서 때립니다. 나중에는 이혼장을 가지고 와서 이혼장에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합니다. 그래서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지독하게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은 “도장을 찍어주기는 찍어 줄 것이니 기한부로 합시다. 100일 후에 생각해보고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이 말에 남편도 "그러하자"고 합니다.

여성도는 남편의 문제로 목사님과 상의했더니 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일러주기를 “이제부터는 막연히 기도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바라보는 기도를 하십시오. 이제부터는 남편이 완전히 집에 들어오셔서 자리에 누워계신 것이나 자리에 앉아 계신 모습을 그리면서 기도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믿음으로 바라보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남편이 들어와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보신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했습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어쩌다 남편이 한 번 집에 오면 좋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후엔 완전히 들어오게 됐다. 100일 지난 다음에 부인이 “여보, 우리가 이혼장에 도장 찍기로 한 날짜가 지났는데요. 이혼장을 가져오십시오.”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별 소리를 다 한다"고 하면서 그 후론 재미있게 잘 살았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과 우리 교회를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라도 말씀을 붙잡고 견고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 때 친히 여러분들을 강하게 붙들어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재림의 날까지 책망할 것이 없도록 붙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했습니다.
7-8절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지금 현재에만 견고케 붙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믿음으로 기다리게 하시다가 재림하신 주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해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가장 기다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 그 날이만이 이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왕국이 이루지기 때문입니다.

그 날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심으로 온 세상에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며, 그 때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거나 원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성경의 예언대로 반드시 재림하셔서 모든 자를 심판하시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무서운 저주와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칭찬과 상급의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우리가 제1차 부활에 참여하여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를 받은 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 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의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주 앞에 서는 것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다.’라는 뜻은 ‘주님의 눈으로 볼 때 꾸짖을 것이 없고 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불꽃같은 눈앞에 깨끗한 자, 죄 없는 자가 과연 있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바르게 산다고 하지만, 끝없이 죄를 짓고 삽니다.

세상이 점점 혼탁하여 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죄로 얼룩질 가능성이 크면 컸지 피할 길이 없습니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나 다름없는 고린도 같은 도시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바울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 해답은 9절에 나옵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귀한 단어가 나옵니다. ‘교제’란 말과 ‘미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친히 부르셔서 성령을 통해서 교제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교제’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인데 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통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이 우리와 연합하시고 교통하시기 위하심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살면서 모든 것을 다 해주기를 기뻐합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더러울 때 목욕을 시켜 주고 병들었을 때 돌봐 주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그렇게 합니까? 장성하여 스스로 자립할 때까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허물과 죄가 많은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통해서 구원시켜 주시고 자기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고 성령을 통해서 친히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때로 범죄 할 때라도 그리스도 보혈을 통해서 회개함으로 정결케 하십니다.

어느 때까지 그렇게 하십니까? 장성한 신앙을 가질 때만이 아니라,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그렇게 함께 동거하시면서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부모들은 부족함이 많습니다. 중간에 자녀를 버리는 부모도 있고,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키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자녀들을 범죄 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9절에 보면 하나님은 ‘미쁘시다’고 표현했습니다. ‘미쁘다’는 말은 헬라어로 ‘피스토스’인데 ‘신실하다’ ‘믿을 만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변하는 날이 오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때로 어려움을 만나 시험에 들 때라도 고전10:13 말씀대로 역사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고, 데살전5:23-24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의 약속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영원토록 그 약속대로 행하시는 참으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리를 불러서 교제하시는 하나님 안에 사십시오. 그리고 미쁘신 그 분만 의지하십시오. 그 때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와 친히 교제하시면서 특별히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만들어 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리빙스턴은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에 가서 일생동안 복음을 전한 선교사입니다. 그는 백인으로 혼자 흑인 사이에서 개척 전도할 때에 종종 위험한 일을 만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위험한 일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면서 그 말씀대로 될 줄 굳게 믿을 때마다 수많은 도우심의 기적을 만났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금 시대는 고린도 지역처럼 우상과 음란, 사치와 방탕으로 가득한 환경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라도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충성할 때에 신앙적으로 견고케 하실 뿐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붙들어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