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성적 부도덕/고전1:1-8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20:42
바울은 1-4장에서 고린도 교회의 분쟁 문제를 취급한 후에 5-6장에 와서는 교회 내의 도덕 문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적 부도덕과 음란 문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언제도 말씀드린 대로 고린도 지역은 상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인구가 약 60만이 살 정도로 부요하고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와 음란이 만연된 도시였습니다.

그 곳에는 ‘아클로포리스’라는 야산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神殿)이 있어서 우상숭배가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전에는 1천여 명의 여사제(女司祭)들이 있었는데 그 여인들은 사실은 공창(公娼)들이었습니다. 그 종교의 교리는 그들이 믿고 있는 남신(男神)과 여신(女神)을 성적으로 자극하여 자주 관계를 가지게 함으로 풍년을 들게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이 여사제들은 밤이 되면 산에서 내려와 고린도 거리에서 몸을 팔므로 온 도시가 음란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실, 그런 부도덕한 일은 종교가 막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오히려 종교가 부추키는 식이 됨으로 모든 시민들은 음란한 삶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의 목회자나 지도급들이 가장 주력하는 것은 교인들의 순결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음란의 물결이 교회까지 침투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교회는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우려하던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였다 하는도다.” 어느 교인이 자기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친 어머니가 아니고 계모 혹은 첩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불륜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레18:8에 보면 “너는 계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이는 네 아비의 하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음란죄는 이방인들도 용납하지 못하는 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여전히 교회 안에서 교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뿐입니까? 학자들에 의하면 이 사람은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많은 헌금이나 헌물을 했을 것이요, 상당히 중요한 직분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많은 교인들을 포섭하여 자기파로 만든 다음, 자기를 율법적으로 비판하는 자들과 맞서서 힘겨루기를 함으로 교회 분쟁의 장본인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한심한 교회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런 교회 모습을 보면서 5장에서 교회 문제 해결에 대해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성적 부도덕한 문제에 대해서 교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1. 도덕불감증을 경계하라고 강조했습니다.
2절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방 사회에서도 용납하지 못할 성적 부도덕을 저질렀음에도 교인 누구 한 사람 통한히 여기는 자가 없을 뿐 아니라 교회가 분명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 강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더 나가서는 교회를 그 지경까지 만들어 놓고서도 서로 자기들이 잘 났다고 교만하고 있으니 너무나 한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3절에서 몸은 비록 떠나 있지만, 영으로 늘 고린도 교회에 함께 있음을 강조하고, 그런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는 자가 누구인지 바울은 벌써 판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좀처럼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음행에 대해서는 한 시라도 더 이상 방관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되는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지금 단호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죄라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죄도 생명력이 있어서 점점 자라서 마침내 사망의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홍수가 범람할 때 뚝 어디인가 물이 새기 시작하면 마침내 거대한 뚝이 무너져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인가,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뚝섬의 뚝이 찰락거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공무원들이 많이 동원되어 모래주머니로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임으로 위기를 넘기었습니다.

만약 그 때 둑 관리를 소홀히 했더라면 성수동 일대가 물바다가 될 뻔했습니다. 지금 고린도 지역은 음란의 홍수가 범람하여 이제 교회 벽을 뚫고 들어오고 있음에도 교회는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놓아두면 나중에는 교회 안에 성도덕이 무너지면서 교인들 세계에 음행이 만연될 것을 바울은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어릴 때부터 음란한 삶에 직간접으로 깊은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사실, 어느 사회든지 나름대로 결혼 풍습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동지방에 가면, 지금도 한 남자가 여자 넷을 부인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 어느 지방에는 한 여자가 남자 넷을 데리고 산다고 합니다. 심지어 여자 하나에 남자 27명인 집도 있다고 합니다. 여왕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들은 그것을 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와서 그러한 행위는 죄라고 하므로 처음에는 상당한 문화적 마찰이 일어납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가 그런 형국입니다. 그런데 만약 자기 계모와 음란을 저지른 사람을 적당히 용납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거에 음란에 맛 들였던 사람들이 ‘얼씨구 좋다.’면서 마구 음란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지금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음란합니까? 영화나 인터넷, CD를 통해서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음란한 장면들을 마구 개방되어 있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모두가 개탄하더니 이제는 별 경각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란의 물결이 교회 안으로 마구 밀려들어와, 심지어 기독교 도덕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는 목회자들의 성추행 사건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회자들도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됩니다. 가가와 도요히꼬의 <사선을 넘어서>라는 책을 보면, 자기에게 굉장히 위험한 시기가 있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가르친 학생이 창녀가 되어서, 돈을 주고 그녀를 사서 해방시키려던 때이었다고 합니다. 그 창녀 학생이 그가 있는 호텔로 찾아와서 여러 해 동안 남자를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 짐승 같은 사람이었다고 하면서 선생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며 유혹을 했습니다. 그때 가가와 도요히꼬는 “영혼! 영혼!”하고 소리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피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음란이 만연된 시대이므로 하나님이 그런 죄는 용납해 주실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보십시오. 남녀 간에 성문란을 물론이고 동성적인 성관계가 얼마나 극심해졌는지 롯의 가정을 방문한 천사에게까지 성관계를 맺겠다고 위협함으로 롯이 자기의 딸들을 주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더 나가서는 그런 음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불의 심판을 모면한 딸들을 보십시오. 나중에는 아버지에게 술을 먹인 후 교대로 동침함으로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됨으로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런 음란한 시대에서도 성경말씀대로 청년들은 결혼 전에 순결을 지키어야 하고 결혼한 후에 부부간에도 음란이 틈타지 않도록 순결을 지키도록 힘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교회 안에 누룩을 제거하라고 강조했습니다.
4-5절에 보십시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는 말은 교회 밖으로 쫓아냈다, 출교시켰다는 말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교회에서 쫓아낸다는 것은 너무한 일이 아닙니까?

교회 안에서 죄를 짓는 자마다 다 쫓아낸다면 남아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은 연약하여 죄를 짓지 않는 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향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으나 율법대로 살려고 애쓰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도 감히 돌을 던지지 못한 것은 인간은 다 죄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예수님도 이처럼 용서하셨는데 우리가 감히 어떻게 형제를 출교시킬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일은 그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그런 죄를 끊는다면 마땅히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혀 뉘우치는 자세도 없을 뿐 아니라, 여전히 그 죄를 행할 때는 과감히 책벌해야 합니다. 교회는 왜 그런 강경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교회 전체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사람이나 이단에 빠진 사람이 목회자나 당회가 불러다가 권유했음에도 전혀 회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잘 한 것처럼 과시한다면 결국 교회 나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밀가루를 반죽한 후에 적은 누룩을 넣어보십시오. 순식간에 퍼집니다. 이와 같이 때로 교회 안에는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음행자나 이단자들은 가만 놓아두면 누룩처럼 생명의 떡이 되는 교회 안에 죄가 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불러다가 충고하여 들으면 다행이지만, 안 들으면 과감히 제거해야 합니다. 만약, 몸의 어떤 부위가 썩어가는 데도 아프다고 그냥 감싸 두면 결국에는 온 몸이 썩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프지만 자를 것은 잘라야 삽니다.

우리 교회가 작년에 이단에 빠진 교우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습니까? 40일 동안 기도하면서 저들을 돌이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분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는 이유를 교회 앞에 광고했기 때문이라고 핑계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고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우리 교우들을 이단으로 끌고 가려는 누룩 같은 행동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공개적으로 선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아직도 저들이 돌아와서 옛날처럼 충성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2)책벌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함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음행하는 자를 출교시켜야 할 이유를 육신은 멸해도 영만이라도 구원시키기 위함입니다. 그 사람을 교회에서 쫓아내면 처음에는 무섭게 반발하고 싸우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나중에 말할 수 없는 창피 가운데 빠지면서 죄를 반성하고 회개하여 주님 앞에 바로 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 교단 헌법에도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고서도 종시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당회에서 재판을 시행한 후에 출교시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어도 교회의 권징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는 사람은 교회가 널리 용서하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과 헌법의 원리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교회는 어떠한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와서 십자가 사랑으로 녹아지고 변화 받는 교회, 어떠한 허물을 가진 자라도 서로 덮어주고 감싸주는 사랑의 교회가 될 뿐 아니라, 교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어서 죄를 짓게 하거나 이단에 빠지게 하는 누룩 같은 자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공의로운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범죄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교회를 누룩처럼 나쁜 영향을 주던 사람이 제거됨으로 교회가 새로워졌습니다. 그 다음부터 할 일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순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목욕하고 깨끗한 복장을 입은 사람은 그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9-13절에서 범죄자와 사귀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9절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 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쓰인 “사귄다”는 말은, ‘섞는다’, ‘혼합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신앙에 세속적인 다른 것들을 섞는 행위를 엄히 경계하십니다. 세상적인 것들이 혼합된 삶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갈팡질팡하고, 정신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바울은 고후2:17에서 "우리는 수다(數多)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했습니다. 음행은 당시 고린도 지방에서 성행하던 행위였습니다. 그런 행위가 교회까지 침투해 들어왔고, 영혼과 정신의 순결뿐 아니라 육체의 순결도 중요시하는 신앙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음행에 대하여 경계하지도 않게 되었고, 음행하는 자들이 버젓이 교회에서 큰소리치며 행세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런 사람과 한 패가 되어 자주 사귐으로 병이 드는 신자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와 사귀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좋은 친구, 좋은 교우들과 관계하면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때로 어느 교인을 보면 놀랄 때가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초등학교뿐이 못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머니도 유식한 말, 전문적인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그 만큼 아들에게서 좋은 영향, 높은 지식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우는 가까이 사귀는 분이 불평이 많은 분입니다.

어느 날 보니 그 교우도 불평의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장로님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입만 열었다 하면 장로님들을 나쁘게 말합니다. 그런 말을 계속 듣다가 교회에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장로님들을 보니 ‘저 분도 그런 분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듭니다. 어느 사이 오염이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 목사님하고 그냥 인사만 할 뿐 깊은 이야기를 안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와 사귀느냐에 우리가 좋은 영향을 받기도 하고 나쁜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세상과 섞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사귀지 말라’는 말은 불신자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신자들에게 한 말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10절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기독교인이라도 세속 속에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죄악된 세상이지만 순결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썩은 세상 속에서 소금으로, 어둔 세상 속에서라도 빛으로서 살라고 하나님이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친구를 두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는 불신 친구들에 게 찾아가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불신앙 속에 살아가는 부모님들에게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타종교인들에게도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참으로 더럽구나, 너무나도 불결하구나”하고 세상을 저주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불쌍히 보고, 그들에게 주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자와 사귀지 말라는 말은 교인이면서도 여전히 세상 사람과 다름이 없는 죄를 짓는 사람들을 사귀지 말라는 말입니다. 11-12절입니다.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여러분, 교회 안에서 가장 안타까운 분들이 누구인 줄 압니까? 교회를 다닌지 오래 되었음에도 전혀 변화되지 못한 분들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다니면서 세상적인 방법으로 교회 안에까지 와서 죄를 짓는 분들입니다. 그 죄가 무엇입니까? 11절에 나옵니다. (1)음행입니다. 이는 각종 성범죄를 가리킵니다. (2)탐람입니다. 이는 탐욕을 일삼는 행위를 뜻합니다.

경제적인 사기죄를 가리킵니다. 교회로 치면, 헌금을 유용한다든지, 거짓 행위로 남의 것을 가로채는 죄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3)우상 숭배입니다. 예를 들어 교인들에게 점을 치러 가자고 한다든지, 궂을 좀 하자고 한다든지 하는 행위입니다. (4)후욕입니다. 이는 타인에게 욕설이나 비방을 하여 모욕을 주는 행위를 뜻합니다.

(5)술 취함입니다. 이는 술을 먹고 만취하여 주정을 부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6)토색입니다. 이는 ‘착취하고 강탈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교회 안에서 뻔뻔스럽게 그런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멀리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같이 병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부패 속에서 소금의 짠맛을 내야하고 어떠한 어둠 속에서도 빛의 밝음을 비취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손해가 예상되는 환경 가운데서도 성경이 가르치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하나님이 강하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자들이 조금 불리하다고 해서 세상적인 방법이나 거짓 수단을 부리면 하나님이 외면하심으로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지난 주간은 우리 한국인들이 대단히 신났던 기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보다 야구 역사가 깊고 방대한 선수층을 가진 일본 야구를 두 번 이기고 멕시코를 이겼을 뿐 아니라 야구의 종주국 미국마저 이김으로 6전 전승으로 축구처럼 4강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러한 쾌거를 이룬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 대견합니다. 오늘 일본과 다시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 반드시 이겨서 결승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묻기를 “아니, 일본을 두 번이나 이겼는데 왜 다시 일본하고 시합을 합니까? 아니, 세상에 이런 리그전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이 꼼수를 둔 것입니다.

자기 나라가 우승하기 위해서 중남미 국가들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만만한 아시아 국가들과 시합대상으로 삼기 위해 얄팍한 대진방식을 짜 내었고 또 우승하기 위해서 미국 심판들이 엉터리 판정을 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결국 자기들이 파놓은 올무에 걸리는 꼴이 되어 그러다가 결국 만만하게 보았던 아시아 선수들에게 의해 패함으로 4강에도 못 들어가고 탈락하는 수모를 겪게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여, 아무리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라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좁은 길의 정도를 따라만 사십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언제나 승리하는 성도들과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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