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분당에서 화합으로/고전1:10-17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20:44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세계로 만들어 주셨으므로,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에도 아무런 벽이나 허물이 없었다.
그러나 마귀의 미혹이 사람으로 하여금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말았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분리시킴으로써 이익을 챙긴 쪽은 마귀였으며, 피해는 하나님과 사람이 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신학자들은 원시복음이라고도 하고, 최초의 메시야예언이라고도 한다.
비록, 마귀가 지금은 승리자인듯 보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으며, 그 사랑하는 인류를 마귀의 종노릇하는데 내어버려 둘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마귀의 종에서 해방되는 것 뿐 아니라, 해방된 우리에게 약속하시기를,
히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요모양 요꼴이냐 하시는 분들은 히6:15의 말씀을 주목하시라.
히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받은 약속을 25년이 지나서야 이루어 주셨다.
그 나마도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신다.
그 때가 대략 아브라함의 나이 115세 가량이었을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게 하신 후에라도 내게 다시 아들을 주실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만큼의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요, 내 후손을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시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 아브라함을 두고 히브리 기자는 말하기를,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참을 수 있는 것은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인이 반드시 약속장소에 나올 것을 믿는 사람은 한 시간, 두 시간도 참을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으시는가. 그렇다면, 인내하시기를 권면한다. 인내하는데 무턱대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온갖 꽃단장을 하고 기다리듯이 신앙의 준비, 신앙의 단장을 잘 하고 인내 중에 믿음을 가지고 참고 기다릴 때에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줄로 믿으시기 바란다. 미련한 다섯처녀와 같은 기다림은 도리어 헛수고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바울이 고전15:19에서 말하는 더욱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오늘의 삶의 현장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훈련하는 자리이며, 훈련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더욱 돈독해 질 수 있는 기회의 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우리의 훈련이 아직 완성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의 큰 사랑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고,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써 하나님은 사람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다.
그 결과 마치 이쪽과 저쪽의 사이에 외나무다리가 놓이듯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닥다리가 놓이게 되어 갈라지고 나뉘었던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를 향한 지극한 사랑의 결과이다.
이렇게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마땅할 고린도교회가 도리어 그 순수함을 잃고 네 파로 나뉘어져 있음을 바울은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분당의 모습이 우리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씀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오늘 나의 신앙생활, 오늘 내가 속해 있는 교회 내에서의 영적인 흐름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

첫째, 분당은 인간의 욕심의 결과물이다.
소꼬리보다는 닭머리가 낫다는 말이 있다. 자기의 욕심,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의 표현이 분당이다.

민12: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민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민16: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민16: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고전10장에서 우리는 저희와 같이 하지 말자.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둘째, 분당은 마귀의 궤계이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서로 미워하게 하고,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게 만들어서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미움과 증오의 마음이 가득하게 만듦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고자 하는 마귀의 속임수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마귀의 궤계는 이미 앞에서 생각했듯, 에덴동산에서도 있었고, 욥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멀쩡히 신앙생활 잘 하는 욥을 두고 마귀는 험담을 하고, 술수를 써서 기어코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저주하도록 획책하는 마귀의 궤계.

계12: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계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교회는 하나님의 거하시는 전이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곳이다.
아무리 게릴라들하고 싸워봐야 게릴라 본부가 건재하다면 무수히 많은 게릴라들은 다시 공격해 올 것이다.
마귀도 이러한 전술을 잘 알고 있기에 한 편으로는 부지런히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시키면서 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획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의 전술을 알면 싸우기가 훨씬 쉽다.
교회를 해코지 하고자 하는 마귀의 궤계를 안다면 뻔한 수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다.
교회를 분리시키고 파당을 만들어서 싸우게 만드는 것은 마귀의 궤계임을 잊지 말자.
알면서도 당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겠는가. 이깁시다.
마귀의 공격방법을 알고 있다면, 적군이 쳐들어 올 곳에 미리 가서 숨어 있다가 급습을 하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마귀의 궤계는 이미 훤히 드려다 보이는 수법이다. 넘어가지 말자.

셋째,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 모든 욕심과 미혹에서 벗어나 오직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랑으로 화합하는 공동체, 하나되는 공동체를 명하고 계심을 잊지 말자.
이제 나로 하여금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고백하던 프란시스코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하나님의 종, 도구로 쓰임받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란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찬송가 347장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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