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크리스천입니까?/고전2:14-3:3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20:41
여러분이 보시기에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우선 제가 사람으로 보입니까? 사람 말을 하니까 분명 짐승은 아니겠지요? 저는 외계인도 아닙니다. 저는 분명 사람이 맞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얼마나 많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한결같이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다운 행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 한 번만이라도 짐승 같은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감옥에 갇힌 이들은 대부분 한 순간 그런 어긋난 행동을 한 이들입니다. 그 중에는 정말 짐승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짐승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지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수한 사람이 있고, 불량한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고상하고 우수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저는 크리스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기독교 역사가 이천년이 넘었습니다. 인류 역사는 아주 느리지만 발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옛날에 비하면 나아진 것들이 많습니다. 문명이 발달했고, 사회 제도가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미개하고 인권이 무시당하는 곳도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발전에 크리스천들의 공이 많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왔습니다. 기독교가 전파된 땅은 한결같이 선진국으로 변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땅은 복을 받았습니다. 유럽이 일찍이 선진국이 된 것은 기독교가 서방으로 퍼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갔습니다. 그 복음은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함께 개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병원과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스포츠와 예술이 들어 왔습니다. 전쟁 후 원조가 들어오고 고아원이 세워졌습니다. 복음은 문명을 함께 전해 주었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백성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문명의 혜택은 기독교를 통해 얻은 것들이 많습니다.

크리스천 하면 뭐가 생각납니까? 정직하고 양심이 바른 사람이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크리스천은 정직합니다. 도덕적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 그런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이룩한 것입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 올 때 세계에 유래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를 낳았습니다. 과연 순교의 희생으로 이 땅이 지금 이런 풍요와 선교의 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크리스천들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크리스천을 정직하고 양심이 바르다고 생각해 줄까요? 제가 느끼기는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일부 믿어주지만 다 믿지는 않습니다.
크리스천의 이름으로 욕되게 한 몇 사람들이 물을 흐려놓았습니다. 요즘은 크리스천들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수난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잊지 못할 수난은 음주운전 단속을 당할 때였습니다. 음주 측정기를 대면서 불라고 하기에 “저는 목사입니다.” 했더니, 경찰관이 “네 부세요. 요즘 목사님들도 술 잘 드십니다.” 하더군요. 너무 창피해서 얼른 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두말하지 않고 붑니다.

여러분! 제 정체는 크리스천입니다. 목사이기 이전에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이라고 해놓고 생각해 보니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진짜 크리스천입니까?

호주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일에 교회를 갔더니 큰 예배당 좌석이 비었습니다. 앞자리에 7-8명의 노인들이 앉아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는 분도 백발이셨습니다. 다만 목사님만 젊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데리고 온 손주들 4-5명이 칭얼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강단 위에 계시지 못하고 앞자리 바로 앞까지 나와서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 어린이를 위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예배는 어른보다도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주일 낮 예배가 이런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기독교의 몰락을 본 것입니다. 멜번시의 어떤 교회는 이미 팔려서 장의사 건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관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호주의 크리스천은 70%가 넘는 것입니다. 가톨릭과 성공회 교인들이 많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 엠 크리스천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일에 교회를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종교는 기독교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불교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절에 갈까 말까 한 이들도 종교를 물어보면 불교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안 다니고, 기도도 안 하고, 성경도 안 읽는 사람이 나는 크리스천이라고 한다면 인정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크리스천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때문에 기독교가 욕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란 말은 안디옥교회에서부터 생겼습니다. 사도행전 11:26을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 밖에서 생긴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안디옥교회의 교인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우리나라 크리스천들이 선교 초창기 때 잘 듣던 말이 있습니다. “예수쟁이”라는 말입니다. 크리스천이란 단어가 한국적으로 번역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쟁이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낮은 계층사람들을 일컬었습니다. 그러니 예수쟁이란 예수 믿는 전문 기술자란 뜻입니다. 예수쟁이란 말에는 약간 천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존경하기보다 비호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지만 안디옥교회의 크리스천은 호감 있는 호칭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를 인도한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으로 많은 제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런 모습은 지역사회에 힘 있게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지역에서 그만큼 교회가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을 정직하게 살다간 큰 코 다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요령 있게 약삭빠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돈도 모으고 실속을 챙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산다면 그 사회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을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 요령을 피우며 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는 정직한 사람들 덕에 숨통이 트이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들 덕에 사회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정직하고 때로 미련한 이들입니다. 제 욕심을 챙기기보다 남을 우선 챙겨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그럼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교회를 다니면 다 크리스천입니까?

오늘 본문에 세 종류의 교인들이 나옵니다.

첫째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변함이니라.”

성령의 일은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약삭빠르게 계산합니다. 자기에게 손해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육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분변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눈이 없습니다. 육적으로만 봅니다.

육에 속했다는 말은 불신자에 가깝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십자가 같은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까지 살아 온대로 세상적으로 판단합니다. 세상 가치관의 지배를 받습니다.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둘째는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3:1부터 보면 육신에 속한 자는 어린아이 같다고 했습니다. 젖먹이입니다. 밥을 먹이면 소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밥을 주면 감당을 못합니다. 걸핏하면 시기와 분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여러 가지 규범이 있습니다. 어떤 규칙들은 부담스럽습니다. 사실 손해보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원수는 망하도록 저주하고 싶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사랑하면 원수를 저주할 수 없습니다. 망하면 안 되기 때문에 도와 줘야 합니다.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건 본심이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원수 사랑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수를 저주하는 것과 원수를 축복하는 것 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주했는데 원수가 망하면 고소합니다. 저주했는데 원수가 도리어 잘 되면 내 배가 아픕니다. 저주는 이래저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원수와 문제가 무엇입니까? 원수 같은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해결 방법은 오직 축복 밖에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원수를 축복했을 때 원수가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그걸 이용해서 나를 더 망하게 복수하고 제 잇속을 챙기는 경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분한데 원수에게 빈틈을 보여 얕잡히니 문제는 더 악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쓸데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면, 원수를 축복하면 그 원수의 굳은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결국 손해 볼 것 같았는데 실제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답을 육신에 속한 자는 알 수 없습니다.
원수 때문에 속상해 하면 옆에 가서 같이 욕하고 맞장구 쳐주는 것은 젖을 먹이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고, 원수를 축복하라고 하는 것은 밥을 먹이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믿음이 연약한 이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하면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홀리는 것은 아닌가 경계합니다. 벌은 돈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십일조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양입니다. 세금으로 치면 폭탄 수준입니다.

십일조는 배짱으로 드리는 헌금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오직 믿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보다 하나님은 내게 더 큰 복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큰 믿음을 보여드리는 척도가 됩니다. 하나님께 쩨쩨하지 않으면 큰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밥을 소화시킬 수 없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양다리 교인입니다. 교회에서는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합니다. 교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다 따라합니다. 그렇지만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세상 기준과 상식에 따라 삽니다. 자기 생각이 옳고 성경 말씀이나 설교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립니다. 교회를 다녀도 성장하지 못하고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신앙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교회가 나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내게 어떤 은혜가 있을지, 이 교회가 내게 어떤 유익을 줄지를 따집니다. 채워지지 않으면 나에게 더 잘해주는 곳을 찾아 떠납니다. 나를 알아주는 곳을 찾습니다.


셋째로 신령한 자입니다. 신령한 자는 말 그대로 육이나 육신을 보지 않습니다. 영적인 것을 봅니다. 영적인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주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을 자졌습니다.

본문 15-16절을 봅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교회 표어는 예수닮기입니다. 이 표어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먼저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 정답이 있습니다. 내 판단, 내 뜻, 내 가치관으로 말고, 예수님 마음을 품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틀리는 적이 없습니다. 주님이 정답입니다.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서, 승리하기 위해서 신령한 자가 되려는 것입니다.

이 신령한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크리스천이 됩니다. 크리스천이 되려면 먼저 기본이 갖춰져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우선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은 모두 내 입장을 먼저 생각하다가 짓는 죄입니다. 내 잘못과 실수와 부족을 숨기기 위해서 거짓이 만들어집니다.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고 위장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거짓은 탄로 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은 진실로 예수님을 욕되게 합니다. 또 이 땅의 교회를 욕되게 합니다. 진실한 다른 크리스천들을 난처하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에게 정직을 요구합니다. 그러니 정직은 크리스천의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은 더러운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정한 것만 취하고 더러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되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내쳐야 합니다.

입이 어떻게 더러워집니까? 욕하고 흉보면 더러워집니다. 거칠게 말하지 마십시오. 고상한 말을 쓰십시오. 크리스천은 말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진지하게 말하는 법을 훈련하셔야 합니다.
발이 어떻게 더러워집니까? 가지 말아야 곳을 삼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죄를 짓게 만드는 장소가 많습니다. 그런 곳에 가지 마십시오. 거룩한 곳을 찾아 가야 합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면 됩니다.
손이 어떻게 더러워집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손에 복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손이 있기 때문에 풍요로운 문명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이 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 손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손은 잘못하면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경계하십시오. 손을 주님이 마음껏 쓰시도록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이 당연히 거룩하리라 기대합니다. 자기들과 똑같이 술 마시고 음행하고 욕하고 흥청거리면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여러분! 발을 거룩하게 하려면 교회에 가세요. 손을 거룩하게 하려면 두 손을 모아 가슴까지 올리세요. 입을 거룩하게 하려면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하세요. 눈을 거룩하게 하려면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목사님을 주목하세요. 마음을 거룩하게 하세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마음이 거룩해 집니다. 내 힘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상초월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은 정직하고 거룩한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은 하루에 적어도 15분 이상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루에 세 장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그것도 못하면 나는 크리스천이 되기 어렵습니다. 15분 기도, 성경 세 장은 크리스천이 되는 가이드라인입니다. 이 기본을 꼭 지키십시오.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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