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교회에 대한 기대와 역할/고전1:1-9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20:41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의 서론입니다 이 서론을 통해서 문제를 넘어서는 교회에 대한 기대와 그 역할에 대한 힌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오늘의 교회 상황을 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고린도전서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천년 전 존재했던 이 초대교회 고린도 교회가 오늘의 현대교회와 너무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이 고린도 교회는 세속화의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나 혹은 고린도 도시의 상황에서 볼 때 어떤 사람에 대하여 마치 고린도인과 같다! 이렇게 말을 하면 그건 매우 저주스런 말입니다. 아주 부도덕하여 교회를 세속화하는 시키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로마서 1:18 이하에서도 그 죄에 대한 리스트를 공개하면서 언급을 하였습니다. 그 리스트가 바로 그 당시 고린도에 넘쳐나고 있었던 죄들의 모습이었고 또 당시의 로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라는 생각이 바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 현대교회의 모습, 오늘의 교인들의 상태는 정말 괜찮은가? 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문제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문제없는 교회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도 없습니다. 문제가 없는 곳은 공동묘지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죽음이 있는 곳에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치러야 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유명한 그 얘기 가운데 스펄전 목사님께 어떤 날 어느 젊은이가 찾아온 이야기입니다. “ 목사님 저는 교회 생활에 늘 시험을 받고 늘 지쳐 있는데 목사님, 좀 문제없는 완전한 교회 하나 소개해 주세요.” 스펄전 목사님이 청년을 향해서 빙그레 웃으면서 이런 유명한 얘기를 했습니다. “자네가 혹시 그런 교회를 찾으면 나에게 꼭 알려주게 나도 그 교회 가서 그 교회 교인이 되고 싶네. 그러나 자네는 말이야 그런 교회를 찾거든 자네만은 절대로 그 교회에 속하지 말게” “왜요?” 그러니까 “자네가 끼면 그 날부터 그 교회의 완전은 깨질 테니까 말이야 바로 자네 때문에 말이야”



불완전한 인간이 모인 공동체는 언제나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것은 허구적 이상주의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있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있을 수 있는 문제, 혹은 자기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 이런 레슨을 받으려면 고린도전서를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번째 건강한 교회, 이상적인 교회는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소극적인 것입니다.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지만 문제만 극복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넘어서서 어떻게 교회가 교회다운 구실을 하느냐? 역할을 하느냐? 기능을 감당하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가 되느냐? 하나님이 정말 쓰시는 성도가 될 수 있느냐? 이것이 우리의 관심입니다. 자 그러면 이 고린도전서라는 책의 성격을 좀 더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책은 왜 기록 되었느냐 그 기록의 목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을 요약해보자면 이렇습니다. 한마디로 고린도 교회가 직면해 있었던 문제를 극복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는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이 이 편지를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본문 1장1-2절 같이 읽겠습니다.

(고전 1:1-2)“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것은 편지를 쓴 발신자 편지를 받는 수신자가 누군가를 밝힌 것입니다. 소스데네라는 사람의 이름이 첨부되지만 그건 문안 인사의 대열의 사람을 참여시킨 것뿐이고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그는 에베소라는 곳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본문 뒤에 연결되는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자 첫째 문제는 분쟁의 문제이고, 그 다음이 음행의 문제, 법정소송의 문제, 성적인 범죄, 결혼문제, 그리스도인의 자유 즉 제사음식의 문제, 예배의 질서 즉 참예배의 문제, 영적은사의 문제, 부활의 문제, 헌금생활의 문제 등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전서는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가 문제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기대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3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증거를 견고케 하라! 세 번째는 성령의 은사들을 헛되이 하지 말라!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은혜 받은 자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여기서 성도란 우리들입니다. 이거 자신 없으면 큰일 납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누구에게요? 주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입니다.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이 하나님의 은혜 입은 자들은 은혜 받은 자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삶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이 말 표현은 우리가 흔히 쓰는 도덕적인 거룩의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성도란 다른 말로 하면 구별된 존재다 이런 뜻입니다. 구별된 존재.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순간 우리는 구별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달라졌고 행동하는 것도 달라진 것입니다. 사람이 옛날과 달라진 것입니다.

@.거지와 왕자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왕이 아들이 없었는데 어느 날 시찰을 하는 가운데 다리 밑에 있던 똑똑하게 생긴 거지 소년을 보고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 그 거지 소년을 데리고 와서 만조 백관들 앞에서 선포를 했습니다. “이 소년은 오늘부터 나의 양자로 삼겠노라” 그러면 그 날부터 그 소년은 거지입니까? 왕자입니까?



우리는 거지처럼 살면 안 됩니다. 왕자처럼 공주처럼 살아야 합니다. 왕자처럼 말하고 왕자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성도 삼아 주시고 내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주의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삶을 사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두 번째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증거를 견고케 해야 합니다.

[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에 이미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능력을 주셨습니다.

▶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하나님은 이미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구변을 주시고 지식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잘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없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러한 말씀을 증거 하는 이유는 너희들의 삶이 거룩해져야 이 증거가 더 견고해질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입술의 증거이전에 삶을 말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삶, 성도다운 삶이 그리스도의 증거를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 성령의 은사를 헛되이 하지 말라!나중에 고린도 후서 6장 1절에 가면 이 말이 문자 그대로 나옵니다. 이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사를 받았습니다. 많은 은사를 받았어요. 죄 많은 도시에 있었던 죄 많은 교회이지만 이상하게도 은혜가 있는 곳에 마귀도 역사하고, 또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함께 역사한다는 말과 같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많은 은사들을 체험하고 그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은사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여 주님이 오실 때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8절의 말씀입니다.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9절을 읽겠습니다.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미쁘다는 말씀은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너희를 불러 예수님과 더불어 교제케 하신 이상 주님의 은혜로 마침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 산재한 문제들을 넘어서서 견고한 성도, 온전한 성도로 세워질 것을 바울은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문제를 넘어 섰을까요? 다행히 그들은 문제를 극복합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고린도 후서 7장 8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바울은 지난번의 편지로 책망을 너무 강하게 해서 좀 미안했는지 내가 너희들을 근심하게 해서 좀 후회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를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 내가 안다는 말입니다. 9절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고 도리어 너희가 근심하게 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0절 이하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린도 성도들은 마침내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문제를 넘어섰습니다. 할렐루야!



이들은 마침내 바울의 충고를 잘 받았습니다. 바울이 설교할 때, 충고할 때 편지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했습니다. 고쳤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문제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 고린도교회와 같이 제자교회도,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도, 하시는 모든 일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기대에 합당하여 그 각자의 역할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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