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방법과 교회가 시험이나 분열에 빠지지 않고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는 방법을 건축에서 배워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짓거나 교회를 건축할 때에 가장 기본적으로 알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반드시 명심해야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는 것입니다.
1. 좋은 터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10-11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 것이 되매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어떤 건축물을 세우든지 간에 좋은 터를 잡아야 하고 기초공사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공사 기간이 촉박하다고 해서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에는 나중에 가서 대형사고를 만나게 됨으로 건축이 더 지연되고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 중에 대조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태리의 토스카 지방에 있는 피사탑과 미국 뉴욕 맨하탄에 서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드 빌딩입니다. 이 두 건물을 비교해 보면 건물의 기초공사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은 배우게 됩니다. 엠파이어 스테이드 빌딩은 큰 바위를 기반으로 기초공사를 잘 했기 때문에 아무리 세찬 폭풍우가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사의 사탑은 기반이 약한 곳에 세웠기 때문에 1911년 이래로 매년 1인치씩 기울어져 지금은 17피트나 가울어진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축 기간이 좀 많이 걸리더라도 터를 완벽하게 잘 닦고 기초공사에 힘을 기우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 우리의 신앙생활이 마치 집을 건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때, 터를 잘 닦아야 하고 기초가 분명해야 합니다. 10-11절에서 우리는 사도들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가 믿음의 집을 세우는데 “그 터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불교에서는 사찰을 지을 때 다비식을 통해서 스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갖다가 묻은 후 그 위에다가 사찰을 세운다고 합니다. 만약 사리를 묻지 않고 사찰을 세우면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 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의 신앙이 어떤 기초 터 위에 서 있어야 합니까? 사도들이 닦아 놓은 터, 곧 예수그리스도위에 세워져야합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도들이 닦아 놓은 그 바른 믿음의 터 위에 우리의 신앙이 서 있음을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많은 것을 신앙의 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유일한 터가 아니라, 마리아도 신앙의 터로 인정합니다.
더 나가서는 교황도 신앙의 터로 인정하고, 수많은 성인들까지도 터로 인정을 하고 , 그들을 또 다른 중보자로 삼고, 그들을 의지하고, 그들 앞에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사도들이 닦아 놓은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신앙의 터가 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왜 시험이 들고 분열의 위기를 만나고 있습니까? 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를 자기들의 신앙의 터로 삼으려고 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영락교회 문제를 수습하면서 보면 모든 장로님들이 원하는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입니다. 한 목사님이 그렇게도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셨음에도 말입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분을 원하고 있으니 얼마나 문제가 됩니까? 그래서 제가 “아니, 한경직 목사님 같은 성자를 모시고 교회 생활, 장로 생활을 못할 분이 어디 있습니까? 좀 부족한 분이라도 잘 보필하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었다면 하나님 앞에 가서 상이라도 받지 않습니까?” 라고 단단히 나무란 적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어떠한 철학으로도, 어떠한 훌륭한 사람이라도, 어떠한 뛰어난 제도로도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고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 신앙생활, 교회의 유일한 기초가 되십니다. 갈1:8에서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순복음중앙교회 조용기 목사님도 만70세가 되었음에도 은퇴를 번복하고 73세까지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조 목사님 은퇴 후에 큰 시험이나 분열의 위기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은퇴한 후에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거나 후임자와 너무 비교하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자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홍익교회 지도급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주님은 저를 향해 “네가 어떻게 가르쳤기에 나보다 너를 더 내세우게 하는가?”라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안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도 오직 예수님, 우리 교회의 기초도 오직 예수님이 되셔야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은 사도들이 믿고 고백한 그 신앙고백 위에 여러분의 신앙이 서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2. 좋은 건축 자재를 사용해야 합니다.
12절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터 위에 건물을 지었다 할지라도 나쁜 건축 자재나 비품을 사용한다면 그 건물을 부실공사가 되어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금이나 은, 혹은 보석 같은 좋은 자재를 쓰면 건물은 대단히 튼튼할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부담이 따르고 고생이 되더라도 제대로 된 재료, 가치 있는 재료인 금, 은, 보석을 사용해서 믿음의 집을 지어야지, 우선 손쉽고 부담 이 없다고 해서 싸구려 재료인 나무, 풀, 짚을 사용해서 집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집은 영구적인 집입니다. 그러나 나무 , 풀 , 짚으로 짓는 집은 임시적인 집입니다.
우리는 영구적인 집을 지어야지 눈가림식으로 임시적인 집을 짓는 어리석은 신앙인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서 금이나 은이란 자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헌금을 많이 내는 것이 좋은 자재를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바로 금이나 은, 보석 같은 자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7:24에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 그러한 믿음이 바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좋은 건축 자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 짚은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기 생각, 자기 주견대로 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 중심으로 치우치는 신앙, 정성과 수고를 드리지 않는 이기적인 신앙, 작은 핍박이나 고난 앞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낙심하는 신앙, 뜨겁지 못하고 미지근하여 세상 풍조와 유행 따라 흘러가는 신앙을 의미 합니다. 요즈음 어느 교회나 금, 은, 보석으로 믿음의 집을 지으려고 하는 신자들이 드뭅니다.
그저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쉽게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이 분명히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좋으면 그만이고 자기가 싫으면 그만 이라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을 고집하려고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귀한 피 값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사용하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바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고, 주님의 뜻보다 내 뜻대로 살아가려고만 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사람들이 볼 때는 제법 신자 같은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어리석은 신앙일 뿐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아무리 불리한 환경 가운데서라도 말씀대로 순종합시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좋은 믿음의 자재로 인정하셔서 아름다운 믿음의 집을 지어가시고 그 집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C.C.C의 회지「Challenge」에서 총재 빌 브라잇 박사의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번은, 그가 소속되어 있는 대표자 회의에서 굉장한 의견 충돌로 3시간이나 회의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일치단결해서 빌 브라잇 박사의 의견을 반대했습니다. 빌 브라잇 박사는 백 번을 생각해도 자기의 뜻이 옳고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3시간을 주장하다 휴회를 하고 조용히 물러나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 속에서 무엇이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내신즉 잘못된 결정이라도 권세에 순종하라는 것을 깨닫고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시 모였을 때 그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권위에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통해서 결정하신 대로 내가 따르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길입니다. 나의 생각과 여러분들의 생각은 다르지만 결정권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나는 성경의 원칙대로 주님의 음성에 따라서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부딪치고 긴장되고 서로 잡아당기고 하던 분위기가 풀어지고 잠시 기도를 한 후에 10퍼센트만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90퍼센트는 브라잇 박사의 의견대로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아무리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말씀대로 따르면 이런 축복이 돌아온다고 간증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 시간 여러분의 신앙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심으로 금, 은, 보석으로 믿음의 집을 짓는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공력이 인정받도록 해야 합니다.
13-15절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일반 건축물은 공사가 다 끝난 다음에 관청에서 나와서 설계대로 공사가 되었는지, 부실 공사를 하지나 않았는지 일일이 준공 검사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의 집을 짓는 것도 장차 때가 되면 심판자 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공력을 시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준공 검사를 하실 때 불로 그 공력을 시험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금과 은, 보석으로 지은 집은 불에 타지 않고 강합니다. 그 모습, 그 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 짚으로 지은 집은 불에 타서 없어집니다. 하나도 공력을 나타내 주지 못합니다. 만약 불로 시험하시는 그 날에 우리의 믿음의 집이 그대로 있으면 칭찬과 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타 없어지면 마치 불 가운데서 구원 받은 것처럼 상급이 없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은 누가 알곡 신자인지, 쭉정이 신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13절에 보면 어느 날인가 시험 받는 날이 옵니다. 언제 주님이 우리의 믿음의 집에 대해서 시험하십니까?
세 가지가 경우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큰 환난의 바람이 불 때 알 수가 있습니다.
신자가 믿음이 있는가, 아닌가를 판가름해 볼 수 있는 때가 큰 환난의 바람이 불 때 알 수가 있습니다. 작년에 미국 동부에 허리케인이라는 폭풍이 부니까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던 집도 성냥갑처럼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어느 집은 볼품이 없어 보이는 집이지만, 그 거대한 폭풍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목회를 해 보면 평소에는 신앙이 있어 보이던 분이 가정의 풍파가 일어나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나오니 마니’하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어느 신자는 평소에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몰랐는데 가정의 풍랑이 일 때 보니까 담대하게 믿음으로 이기고 나갑니다. 교역자들이 오히려 위로받고 은혜를 받습니다. 알곡 신자의 모습입니다.
(2)죽음이 임할 때에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많은 신자들의 임종을 목격하게 됩니다. 어느 신자는 죽음 앞에서 벌벌 떱니다. 그러나 어느 신자는 자녀들에게 울지 말고 찬송을 불러달라고 합니다. 오히려 어느 분은 이 세상을 빨리 떠나 저 천국에 가기를 원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수십 년 전에 전주기독교 병원에 중병환자 둘이 입원했습니다.
한 분은 20세 청년으로 폐병환자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40년간 불교의 법사로 있었던 70세 되는 심장병 환자였습니다. 하루는 의사가 두 사람에게 말하기를 “오늘부터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두 환자는 사형선고로 알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의 어머니는 어찌나 슬피 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사자인 청년은 태연자약할 뿐 아니라 어머니에게 “찬송이나 불러 주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법사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청년에게 묻기를 “청년은 죽으면 천당 갈 수 있다고 믿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물론이지요. 내 공로는 못 가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갑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사는 자기는 그 동안 헛된 믿음을 가지고 살았음을 탄식하더랍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죽음의 날이 온다 할지라도 그런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24장에서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다음, 마25장에서 하나님이 세 가지 심판에 따라 알곡과 쭉정이 신자들을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25:1-13에 보면 등에 불이 밝혀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을 구분하십니다.
마25:14-30에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칭찬과 상급을 받는 청지기들과 책망 받는 청지기로 구분하십니다. 또한 마25:31-46에 사랑의 삶을 살았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양들과 염소들로 구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심판대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심은 대로, 행한 대로 다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산다 할지라도, 믿음의 공력을 많이 쌓아서 심판의 날에 칭찬과 많은 상급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살고 부요하고 넉넉하게 살아도 그 날에 신앙의 공력을 하나도 인정받지 못하고 상급을 받지 못하고 책망을 받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인생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판 날에 공력을 인정받고 상급을 받으려면 오늘 나의 삶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말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 힘썼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 당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부귀영화, 왕권을 누리는 것보다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날을 더 귀하고 값지게 여겼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 마디로 금, 은, 보석으로 신앙의 집 을 지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의 공력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 하는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판결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다음에 주님 앞에 서는 날 판결이 납니다. 그 날에 우리의 신앙의 공력이 인정을 받으면 성공적인 인생을 산 자요, 그 날의 신앙의 공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실패 인생, 쭉정이 신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밴 다이크 라는 분은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로마의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가서 천사의 안내를 받아 가며 천국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한곳에 와보니 참 아름다운 집이 있었습니다. 아주 근사하고 멋있는 집이었습니다. 이 부자가 깜짝 놀라면서 “도대체 이집이 누구 집입니까?” “그 집은 당신이 거느리고 있었던 당신 종의 집이오.”라고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천국에서 이런 훌륭한 집을 소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자가 이렇게 말하자 천사가 대답합니다. “천국에는 실수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그가 보낸 자료로 이 집을 지었습니다.” 한참을 더 가다 보니 무척이나 낡고 허술한 집이 한 채 보였습니다. 이 집 앞에서 깜짝 놀라며 부자가 “도대체 이집은 누구 집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당신 집이오.”라고 천사가 대답하자 부자는 반문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 집이 내 집일 수 있습니까?” 천사가 다시 대답합니다. "천국은 오류도, 실수도, 착각도 없습니다. 이집은 당신이 세상에서 보낸 그 자료로 지어진 집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잘못 계산할 수도 있고, 잘못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요즈음 이태리 토리노에서 벌어지는 동계 올림픽에서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이 쇼트 트랙에서 상을 휩쓸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신납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여자 1,000미터와 남자 5,0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땀으로 모두 6개가 되어 전체 6위가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1,500미터에서 여자 선수들이 1, 2, 3 등을 휩쓸었습니다.
그런데 심판이 변천사 선수가 몸싸움을 했다고 동메달을 탈락시켰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고생하며 연습했다는데 너무나 억울합니다. 이처럼 심판들도 잘못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있는 컴퓨터는 절대로 오류나 실수, 착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지도급에 계신 모든 분들은 물론, 모든 성도들이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신앙의 집을 짓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심으로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더욱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시려거든 그저 되는 대로 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 은, 보석으로 일생 다 가도록 값진 신앙의 집을 지어서 마지막 여러분의 공력이 인정을 받을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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