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스크랩]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체(펌)

작은샘 큰물줄기 2017. 9. 18. 17:19

WCC의 드러난 음모 (1)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체
W.C.C가 발족되기 전, 소련의 스탈린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1947년 9월에 "평화연맹"을 조직한다. 이 단체는 주로 소련동산당 지도자들과 위성국의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었는데, 기독교회 침투를 위한 세계적화 사령부격이었다. 
 스탈린은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생이었다.
그는 러시아 교회의 타락상을 보고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는 마귀적인 감화아래 레닌과 힘을 합쳐

노동자 농민을 선동함으로 공산주의 피의 혁명을 이루어 낸 자이다. 이렇듯 하나님을 따르던 자가 타락하면 무신론자가 되고,

자본주의가 부패하면 공산주의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러시아는 혁명하는 동안(1917-1957) 자민족 약 5천만명을 희생시켰다.  
이러한 살인집단이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 때(1958년 3월 18일) 갑자기 색깔을 바꾸어 [평화공존, 핵무기제한, 핵실험금지]등의

소위 평화공존 정책을 들고 나와 이용한 것이 바로 W.C.C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전략과 전술이 있는데,
전략은 요동치 않는 거시목표이며,
전술은 그것을 이루어내는 다양한 방법들이다.
아직까지 변치 않고 있는 저들의 목표는 바로 "세계정화"이며 그 성취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바로 "교회 속으로 침투하자"는 착상이다. 세계적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ㅐ 선택된 뛰어난 기만전술의 장! 그 무대가 소위 "세계교회협의회(W.C.C)인 것이다. 여기 가담한 교단은 기독교장로회(기장, 한신대학측), 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광나루 장신대학측), 기독교감리회(기감), 성공회, 구세군, 복음교회, 정교회, 기하성(순복음재단) 등이다.
 
W.C.C 제1차 총회
1948년 8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44개국 147교회가 모였다.
스탈린이 1947년 9월 바르샤바에서 <서방교회 침투전략>을 세우고 "평화연맹"을 조직하여 1948년 8월 W.C.C 1차총회에 약 60-70 여명의 동유럽 공산국가 정보요원들을 위장 침투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체코 출신의 "흐루막카"와 폴란드 출신의 "나즐로 패트"가 중앙위원에 임명되었다. 스탈린이 죽기 3년 전(1950년 4월), 바르샤바에서는 "세계평화회의(W.P.C)라는 공산권 교회기구가 조직되었는데, 여기에 전 세계 68개교단 98명이 참가하여 W.C.C 2차총회 잠식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W.C.C 제2차 총회
1954년 8월,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렸으며 "현대으 정치적 정의는 공존"이라는 모토를 내세웠고, 그리스정교회가 인정됨으로써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터키의 정교회가 정식회원으로 가입되었다. 이 총회에서는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라는 신앙고백을 선언함으로써 스탈린의 평화공존 결의안을 지지하였고, 우리나라도 이 2차총회 때 가입신청을 냈다. 한국교회의 보수-진보가 갈라지기 시작한 분기점이었고 쓰라린 6.25 전쟁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또다른 사상전(색깔론)의 시작이었다. W.C.C. 찬반론을 놓고 교회가 갈라지기 시작햇는데, 당시 보수교단들은 반대연설을 하고 퇴장하였으나 기장, 기감, 예장(통합), 즉은 K.N.C.C(National Council of Church, Korea)의 이름으로 W.C.C.에 가입함으로써 사탄의 마수(魔手)가 동방 땅 끝에까지 뻗어 오게 된 것이다.  붉은 짐승들이 이처럼 양의 탈을 쓰고 W.C.C와 그 산하 단체인 "아시아교회협의회(C.C.A),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산업선교회(U.I.M.), 기독학생총연맹(S.C.F)" 등으로 영향혁을 확대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섭고도 놀랄 만한 사실이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고후 11:14)로 가장하므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무지하다. 바꿔말하면 이는 기독교가 눈이 가리워진 채 깊은 잠에 취해 있다는 뜻이다.

스탈린을 격하시키며 서방세계를 속이고 나온 소련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쵸프는 제3차 총회에 대비하여 체코 프라하에서 "세계기독교평화회의"를 조직했고(1958년 11월), 여기에 서방교회 600 여명이 참가하였는데 "동서공존"이라는 흐루시쵸프의 위장정책이 먹혀든 결과이다.

흐루시쵸프는 <기독교와의 평화공존을 강령화>했으며, 제3차 총회에 대하여 숙의했다. "평화전술"은 꿀바른 독약이었다. 
 <구 소련의 흐루시쵸프는 "소련의 모든 기독교인들을 다 없이하고 마지막 한 사람을 전국 모든 사람이 TV로 볼 수 있게끔 한 다음에 죽여버려 소련 땅에서 교인 씨를 완전히 말려 버리겠다">고 했는데 이 일을 시행하기 전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W.C.C 제3차총회
1961년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다.
대회 대표들은 "세계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란 표어 아래서 "타 종교들도 세계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발족된 지 13년 만에 마귀적 본질을 대놓고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요원이면서 동시에 "세계기독교평화회의" 의장인 "니코딤"은 3차 총회에 소련교회 대표 자격으로 16명을 인솔하여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와 더불어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이때 그는 WCC 중앙위원에 이명됨과 동시에 WCC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이 일의 배후에는 흐루시쵸프의 세계적화야욕이 숨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니코딤은 이 대회에서 예수만이 세계의 유일한 구세주(행 4:12)이심은 전혀 말못하고 흐루시쵸프의 공산당노선을 선전했으며, "마르크스주의(Marxism)는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위한 필수이념"이라고 하는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대한민국이 정식회원국이 된 것도 이 3차 대회 때이다.  WCC는 창설 당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를 다같이 지적하면서 대화로써 평화공존을 모색하자는 그럴 듯한 뜻을 품고 시작됐지만, 실은 공산권 병폐보다 서방세계의 병폐를 지적하는데 치중했다. 이러한 때 니코딤이 회장에 당선됨으로써 그 성격이 더욱 공산주의의 선전기관 및 침두기구로 변하였던 것이고, 그들은 또한 "산업선교"라는 미명하에 공산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했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뿐만 아니라 당시 국내에서도 이로 인해 큰 소용돌이가 일어났던 바가 있다. 1966년 제네바에서는 "혁명을 위한 개혁"이란 주제 아래 산하교회와 사회분과 위원회가 개최되어 "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파괴원리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공개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WCC 제4차 총회
1968년 7월(필자가 육군 만기 제대하던 해), 스웨덴 웁살라에서 개최되었으며 "만물을 새롭게 하라"는 주제하에 "그리스도 외에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인정한 완전히 적그리스도적인 총회요, 비성경적인 대회였다. 거짓 선지자가 이처럼 득실대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안에 현재 한국의 8개 교단이 가입하고 있는 실정은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1. 기독교장로회(기장)
2. 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3. 기독교감리회(기감)
4. 성공회
5. 구세군
6. 복음교회
7. 정교회
8. 기하성(순복음재단)
 
4차 총회 때부터는 이방 종교에 대하여 "다른 신앙들"(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니 거기서 나오지 않는 한,

저들의 가증한 신앙고백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필립 포터 총무는 1969년 5월 25일자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지에 "WCC는 만일 폭력이 정치적 경제적 독재를 전복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면

그 폭력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기고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마 26:52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과 정 반대되는 사상을 선포했고,

또 [기독교 사상] 1972년 11월호에서는 "폭력혁명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기독교의 봉사를 말할 수 없는 시기가 왔다"라고 발표하면서

 이러한 공산혁명 과업을 교회가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에큐메니칼 리뷰]지에는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군사 원조를 끊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WCC 총무의 발언들은 하나같이 사회주의, 맑스주의,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이었다.
 
WCC는 1971년부터 회교, 불교, 흰두교, 유대교 회의를 지원했다. 이제 "다른 신앙"이라는 용어를 변화시켜 아예 "살아있는 신앙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와같이 WCC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나 조용기 목사가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 것을 보면 그들 교단이 WCC에 왜 가입하였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소련은 제5차 총횡 대비하여 1975년 1월 인도 곧다암에서 "아세아 기독교 평화회의"를 설립하게 된다.

이때 북한까지도 "조선 인민공화국 기독교연맹"이라는 거짓 이름올 참석하였으니,

현재 북한교회를 돕겠다는 대한민국 교단들의 어리석음이 어지 사단에게 속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4차총회에서는
1. 남한으로부터 미군철수
2. 미-일의 남한군사원조 반대

3. 남한 기독교(진보파)인 중심의 "민중옹호투쟁" 지지 및 "투옥자 석방" 등의 내용이 결의되었다.

출처 : ohnyou2001
글쓴이 : 목사 김 온 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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