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치유사역은 하나님의 뜻이다 마4:23~24

작은샘 큰물줄기 2017. 8. 10. 17:54

 치유사역은 하나님의 뜻이다  마4:23~24    11.05.01.설교녹취, 축약


 

1.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치유’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healing ministry

여기서 말하는 치유란, 질병의 치유만 말하지 않고, 육신의 질병을 포함한, 영의 치유, 상한 감정의 치유,

귀신들림으로부터의 치유 등 전인적 치유를 뜻한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보면, 치유사역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인간들에게 가장 잘 계시해 주신 분이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시다.  요1:18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 인격, 속성, 사역을 가장 잘 대변해서 보여주셨다.

그 예수님이 지상의 공생애 동안에, 가장 집중하신 사역 가운데 하나는 ‘치유 사역’이었다.

그러므로 ‘치유 사역’은, 하나님의 관심이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4:23

위 본문만 봐도,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데,

본문 말고도, 4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지역교회가 치유사역을 하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뜻이 당연하다.

지역교회가 치유사역을 잘 하느냐/못하느냐는.. 은사와 능력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건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니까.


치유사역이..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전부이거나, 가장 최우선된 목적이란 뜻은 아니지만,                

  *십자가가 예수님 지상사역의 최우선된 목적

치유사역이..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중요한 한 부분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예수님이 당시에 모든 병자들을 다 고치신 것은 아니셨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병자가 누워있었는데,  요5장 그 연못가에도 수많은 병자들이 와서, 낫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고치신 것은 아니셨고, 오직 38년된 병자 한 사람만 고치셨다.

왜 꼭 한 사람만 고치셨을까? 다다익선, 더 많이 고쳐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그 해답은, 예수님은 무조건 병자라고 다 고쳐주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치유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고치신 것으로 본다.

그 증거는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5:17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일(사역)하시는 도구로서, 그 병자를 고치셨던 것이요,

자기 임의로 고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치유사역을 펼치셨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치유사역을 펼치셨다.


▲예수님은, 치유해 달라고 요청하고 나온 사람들은.. 다 고쳐주셨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 치유해 달라고 나온 사람들 가운데 고침 받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병든 자는.. 치유 사역을 요청해야 할 것이요,

약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지역교회는.. 그 요청을 받고서, 치유사역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치유사역에 무관심한 교회들도 꽤 있다...

우리는 ‘신학적인 교회’이기 이전에, ‘성경적인 교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치유사역을 요청하는 병자들에게 단 한 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으셨다. ‘무관심’한 적도 없으셨다.

그러므로 '말씀사역'만 강조하면서, 치유사역에 ‘무관심’한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예수님만 치유사역을 펼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치유사역을 명령하셨다.

제자들도 치유사역을 수행했다는 것은.. 성도들도 치유사역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뜻.

 

마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10:7~8,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눅10:1에는 70명의 제자를 똑같이 보내심.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치유사역은.. 명백한 하나님의 뜻이요,  ←설교 제목, 논지

치유사역에 무관심한 사역자는.. 명백한 불순종인 것이다.

     일부에서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치유사역은 인정하지만,

  *사도들뿐만 아니라, 70인의 제자들도 치유사역을 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 국한 된 사역이요, 오늘날에는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 모든 기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주장은, 성경에는 안 나온다.   *성경이 모든 진리의 기준이라는데..

     자기의 자유로운 생각일 뿐이다.


◑2. 현실적 문제.. 치유기도를 해도, 다 낫지는 않더라..


▲오늘날 치유사역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마 실제적 “현실” 때문일 것이다.

①아무리 기도를 해도, 불치병은 거의 낫지 않더라는 것이다.

작은 병은 낫더라도.. 불치병은 거의 낫지 않는다.

1백 명 중에 1명 정도 낫더라도.. 그것은 타종교에서도, 또는 우연히.. 그 정도는 나을 것이다.


②그런데 불치병 환자에게, 자꾸 ‘당신은 나을 수 있다’며 헛된 환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 나으면 ‘당신은 아직 회개 못한 죄가 있어서 그렇다’며 ‘종교적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③더 심한 경우는 ‘치유를 조작’할 수도 있다.

병이 낫지도 않았는데, ‘나은 줄로 믿으라’고 말한다거나,

실제로 불치병이 나았다고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면, 곧 재발해서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진짜 불치병이 낫는 경우도 있다.)


④더 심한 경우는 ‘치유 기적’을 이용해서, 교세 성장을 도모하는 경우다.

이 교회에 다니고 기도를 받으면

-불임이 임신되고

-불치병이 나으며

-각종 신비한 역사가 나타나니까..

사역자들이 직, 간접적으로 ‘치유 기적’을 과대 선전해서, 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해서,

오늘날 ‘치유 사역’은.. 성경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반대와 배척을 받고 있다.

그 외 치유사역이 외면되는 또 중요한 이유는


⑤사역자에게 성령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나 사역자에, 치유의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서, 그래서 ‘치유사역’ 자체를 반대하기도 한다.

‘치유사역’은, 마음만 먹는다고 단번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도 배워야 하고, 경험도 쌓아야 하는데.. 신학교에서 ‘말씀사역’만 배웠지, 거기에 대해 문외한이니까,

치유사역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⑥또한 '치유기도를 해도, 병이 낫지 않더라'

그래서 치유사역, 치유기도를 포기하고 만다. 기도해도 아무 소용없으니까.. 아예 안 해 버린다.

기도해서 병이 척척 낫기만 하면.. 치유기도를 계속 할 터인데.. 말이다.


▲그런데 치유되든지 안 되든지.. 치유기도, 치유사역을 해야 한다.

치유(기도)사역을 해서.. 치유가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지만,

치유(기도)사역을 해서.. 치유가 안 되더라도.. 그 사역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비록 지금 현실에서는 낫지 않는다 하더라도 물론 낫는 경우도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부활과 재림 때는, 다 나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 치유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지금 치유가 안 나타나더라도, 궁극적으로 치유될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꼭 나을 것 같으니까 치유기도를 하거나,기도해도 낫지 않을 것 같으니까,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고,

낫고 안 낫고는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고, 성도의 의무는.. 환자를 위해 치유를 간구하는 것이다.

 

치유기도를 해서, 지금 현실에서 병이 나으면 더 좋고,현실에서 안 나아도, 궁극적으로는 다 나을 것이기 때문에,

치유(신유)기도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지 않는다.

도리어, 아무리 기도해도, 불치병은 쉽게 안 낫기 때문에, 아예 치유기도를 드리지 않는 것은.. 불신앙이다.

또한 불치병이 깨끗이 치료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치료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병의 상태가 상당히 기도를 통해 호전되는 경우는 많으며,

기도를 통해 환자의 심리상태가 안정을 얻으면서, 그것이 병세에 도움이 되며,

또한 수술을 할 것인가/ 안 하고 지낼 것인가?

약을 쓰되, A약, B약, C약 등 많은 선택이 있다.

이때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물음으로써, 가장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주1)


▲(치유기도를 하더라도) 이 땅에서 모든 환자가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렇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①그 환자가 믿음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②또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12제자들이 기도했지만, 그들의 기도의 능력이 부족해서, 병자를 치료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막9:18

즉, 사역자의 능력부족인 이유도 있을 수 있고,

③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처럼, 하나님의 뜻에 의해 계속 아플 수도 있다. 요9:3

④모든 질병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질병은, 죄와 저주로 인해 생기는 질병도 있다고 본다.

이유야 어떻든지.. 낫든지/말든지, 신유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신유는 일반적인 general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냥 ‘아픈 것이 하나님의 뜻이야!’ 하면서 앉아 있지 말자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도바울의 은혜처럼)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병자의 치유가 하나님의 뜻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단락을 따로 떼서 살필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성도와 교회는, 개인적으로든 단체적으로든

병자와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환자가 병든 것을 뻔히 쳐다보고만 있는 것은.. 성도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비록 간절히 기도해도, 기적적으로 치료되지 못하는 경우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랄까.. 꼭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도할 때, 환자가 결코 낫지 않더라도,

왜 낫지 않는지.. 거기에 대한 주님의 섭리, 주님의 뜻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시므로.. 치유사역은 하나님의 뜻이다.


환자를 불쌍히 여기며, 치유사역을 하는 것은 명백한 하나님의 뜻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든 가련한 자,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긍휼이란..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인데,

배속, 창자, 자궁에서 끌어오르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긍휼이란, 여자가 자기 자궁속 태아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같다는 것이다.

그저 ‘불쌍하군’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쌍히 여김’이다.

거의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불쌍히 여김이다.


▲예수님은, 병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셨다.


마9:35~36,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스플*****이)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예수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다.

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스플***이)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이 구절에도, 예수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다.


마20:34,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스플***이) 저희 눈을 만지시니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같은 내용이라서 설명 생략.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만 병자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오늘날에는 냉담하시거나, 무관심하실까?

그렇지 않다.

오늘날은, 그 ‘불쌍히 여김’과 ‘치유사역’을 그 제자들에게, 우리 성도들에게 맡기셨다.

오늘날, 질병으로 신음하는 환자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낫든지/안 낫든지..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어떤 공동체들은, 마치 이 세상에 환자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환자를 위해 전혀 기도에 관심 기울이지 않는 것은.. 긍휼함(스플***이)이 없기 때문이다.


◑4. 구약에도 ‘여호와께서 치료하신다’는 말씀이 종종 나온다.


‘치료한다’는 히브리어로 ‘라파’이다.

이 ‘치료’(라파)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도 두루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구절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야웨 라파)’ 출15:26절이다.

그 외에도,

(엘리사가 말하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라파)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찌니라..   왕하2:21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라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왕하20:8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파). 사53:5


‘구약에도 하나님이 치료하셨다’는 말은,

‘신유사역’이 신구약에 두루 걸쳐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란 말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별스럽게 신유사역을 새로이 들고 나오신 게 아니고,

구약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치유사역을 예수님이 이어받아서 펼치셨고,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사역을 이어받아 펼쳐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 원리다. 

 

◑5. 예수님의 구원에는 영혼 구원과 아울러 ‘치유’까지 포함한다.


▲구원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소조(동사) 소테리아(명사)’인데,

그 말은 아주 포괄적인 의미로 성경에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 ‘구원’이란 단어가    *헬, 소조 ‘치유’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16번이나 나온다.

한 예를 들면, 12년을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치신 후에,

눅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소조)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 여기서 ‘구원’이란 말은, 영혼구원을 의미하기 이전에, 육신의 치유를 뜻한다.

  네 병이 고침 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구절들에 의거, 성경적 개념의 ‘구원’에는.. 치유가 반드시 포함된다.

영혼구원만 ‘구원’이 아닌 것이다.


구원(소조, 소테리아)의 개념에는

-‘영혼의 구원, 영원한 구원’과 아울러

-‘질병의 치유’말고도

-‘위험과 파멸로부터의 구원’ 등의 포괄적인 의미가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영혼 구원과 아울러 질병의 치유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 치유가 꼭 구원 받은 시점에 동시에 나타난다는 뜻은 아님. 궁극적인 치료를 뜻함)


◑6.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본 ‘질병’


그래서 환자를 불쌍히 여기며, 치유사역을 하는 것은 명백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already not yet

예수님의 초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했으나 - inauguration 즉위

예수님의 재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아직은 완성 안 되었다.   - consummation 완성은 재림 때.

*(이미, 아직 already not yet 이란 표현이 널리 쓰이지만

inauguration 즉위,  consummation 완성 이란 표현도 쓸 수 있다. 같은 맥락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으로 볼 때, 마귀와 질병의 권세를, 예수께서 이미 쫓아내셨으나

그들이 아직 완전히 쫓겨난 것은 아니다.

뱀의 머리를 잘라내면, 꼬리가 아직 살아서 퍼덕거리는 것과 같다 하겠다.

‘아직’ 뱀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머리가 잘린 뱀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셨지만 재림 때까지 ‘아직’ 최후승리를 남겨놓고 있다.


사망과 마귀와 질병의 권세는, ‘이미’ 십자가에서 정복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다 정복된 것은 아니다.


정리하면, 그래서 아직 이 세상에, 재림 때가지 질병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질병은.. 이미 십자가에서 패배한 ‘질병’이므로 성도들이 기도해서 질병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 원리로는.. 이렇다.

다만, 아직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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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예를 들면, 어떤 암 환자가, 어느 날 혈변을 한 바가지씩 쏟아냈다.

매일 검붉은 혈변을 한 바가지씩 쏟아내니, 모두가 이제 죽을 때가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 집사는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그 혈변은, 오히려 몸속의 노폐물이 빠져나온 것이다’는 ‘지혜의 말씀’이 떠올랐다.

정말 그런 것인지/아닌지.. 의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갑 집사의 판단은 절망한 환자에게 큰 정신적 위로를 주었고, 그 가족에게도, 판단에 큰 도움을 주었다.

큰 수술을 피하면서도,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도했기 때문에.. 얻어진 지혜였다. (물론 과학적으로 진위의 규명은 불가능하다.)      

출처...Joyful 의 뜰 글..Joyful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등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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