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현충일 설교 - 이름없는 선지자의 충성처럼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9. 17:47

 

이름없는 선지자의 충성처럼 

왕상13:1-10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북 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벧엘이라는 곳에 우상의 단을 세운 후 왕이 친히 제사를 드리는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이름 없는 선지자를 명하여 벧엘로 가서 왕의 잘못을 지적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도 어려운 일인데 금식하고 누구의 대접도 받지 말고 갔던 길로 돌아오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대로 행하여 벧엘에 가서 여로보암의 죄악을 힘차게 책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한 늙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지역의 선지자가 와서 대신 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 선지자를 뒤쫓아 가서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당신을 초대하여 감사의 대접을 하라고 했다고 하며 그를 초대하였습니다. 젊은 선지자는 그 사이에 하나님의 명령이 바뀐 줄로 생각하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대접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이어서 가는 길에 그 실수로 하나님이 징계로 사자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그를 자신의 묘실에 장사하였고 그는 이름 없는 무덤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이름 없는 선지자의 충성이 아름답습니다.

금년도 벌써 6월이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벌써 6월이라 생각하니 하나님께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6월은 현충일과 6,25전쟁 기념일이 있는 달입니다. 새삼 그때 헌신하고 나라를 위하여 충성한 이들에 의하여 우리가 평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감사가 마음에 솟아납니다. 그래서 그때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이들을 생각하며 우리도 이런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본문의 이름 없는 선지자의 충성된 자세를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충성된 일꾼의 자리에 모두 들어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충성된 일꾼은 겸손히 순종해야합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여로보암 왕의 우상숭배를 신랄히 지적하는 큰일을 행하였습니다.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왕하13:2-3)

왕에게 심한 책망의 말을 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진노를 사서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함께 나타나서 여로보암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선지자를 잡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팔을 들었다가 그 손이 굳어버려서 왕이 자신의 손을 회복시켜주기를 애원하니 젊은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왕의 굳은 손을 풀어 주기까지 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이 놀라운 일에 감동하여 선지자에게 왕궁에 가서 대접을 받고 선물을 주겠다고 제안을 할 정도로 젊은 선지자는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충성된 일꾼의 사명을 잘 감당한 그 선지자의 이름이 성경에 없습니다. 발람 같은 엉터리 선지자도 그 이름이 있는데 이런 큰일을 이루고도 성경에 그의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충성된 일꾼은 겸손해야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이름이 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수고한 일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충성된 일꾼은 자신은 감추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는 겸손한 사람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그 나귀를 제공 한 사람이나,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들 때에 그 방을 제공한 이들의 이름이나 자세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아 겸손하게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07년도에 우리나라에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10년에 한일 합방이 되자 우리 크리스천들이 눈물로 회개하며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구국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해에 승동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이재형이라는 분이 참석했는데 이분은 철종 왕의 사촌인 경평군의 장남으로 존귀한 왕손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배를 드리는 중에 앞을 보니 아주 낮 익은 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충주로 성묘를 갈 때 자기의 말고삐를 잡고 인도해 준 마부꾼 엄가라는 사람입니다. 더욱 반가운 것은 그가 바로 자기를 복음으로 인도해 준 전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재형씨는 너무도 반가워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예배시간이어서 참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예배를 마치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상놈인 엄 씨의 손을 덥석 잡고 “형님 여기서 만나니 너무도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때는 하인이 주인집의 어린 자녀들에게 ‘도련님, 아씨’ 하던 시대였고 양반 상놈의 차별이 심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양반이 상놈에게 ‘형님’ 하고 불러도 파격적인데 그보다 더 존귀한 왕손이 마부꾼 엄씨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일은 정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재형씨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 주님의 겸손을 배워 자신을 낮추며 겸손을 행하는 삶을 이루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늘같은 왕손이 상놈인 마부꾼 엄씨에게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겸손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결국 그 겸손한 이재형씨는 나중에 왕손의 지체로 하나님의 종의 부름을 받아 목사가 되는 충성된 일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겸손히 낮아지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오늘 본문의 선지자처럼 우리 모두 겸손히 주안에 서서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충성된 일꾼은 고난을 감당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의 선지자가 하는 사명은 크고 중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한 일도 어깨에 짐이 되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아주 어려운 길을 함께 주문하셨습니다.
1) 금식하고 물도 마시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벧엘까지는 며칠이 걸리는 길에 금식하는 것도 어려운데 물도 마시지 않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이 이름 없는 선지자는 그 일을 잘 이루었습니다.
2) 간 길로 되돌아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갔던 길은 돌아 올 때에는 눈에 익어서 쉽게 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은 올 때도 다른 길로 돌아와서 가던 길처럼 힘들고 어렵게 감당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왕상13:9)
왕에게 가서 책망하는 일은 생명을 거는 일이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당하기가 어려운데 하나님은 이 젊은 선지자에게 굶주리는 고난과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가라는 고난을 함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하다가 조금만 어렵거나 조금만 섭섭한 일이 생기면 주신 사명을 팽개쳐 버릴 때가 많습니다. 아름다운 결단을 하고도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이런데도 내가 이렇게 충성할 필요가 있느냐 하며 하루아침에 사명을 버리고 불충성자로, 일꾼이 아닌 불평꾼으로 변해 버릴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본문을 통하여 젊은 선지자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우리들에게 고난은 충성된 일꾼이 당연히 감당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내 물질, 내 시간, 내 땀을 드려 충성하는 일보다 자신의 지식이나 재능을 남에게 보이는 일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잘못을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과는 전혀 다르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우리에게 어려운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자랑스러운 능력과 재능을 부인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골고다를 향하여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주님의 일꾼이고 십자가의 종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는 꽃이나 열매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고래의 기름에서 추출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보통 고래가 아니라 병든 고래에서 추출된다고 합니다. 병들어 고통 받는 고래! 그 아픔에서 바로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가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그 향료의 이름이 엠비기스 라고 한답니다.
록키 산 정상부근에 가면 수목성장 한계선이라는 곳이 있어서 그 한계선 위쪽은 나무가 자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수목 한계선 부근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모진 비바람과 눈으로 잘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추위에 웅크리듯이 웅크리고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바로 모진 비바람과 눈을 맞으며 어렵게 자란 나무가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북실교회 성도 여러분! 주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가슴이 아파오고 육체의 아픔까지 오는 고통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그래야 충성된 일꾼 일 수가 있습니다. 나는 고난을 경험하지도 않고 남에게만 아픔을 주는 존재가 되면서 일꾼이라고 자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도 어려운 사명을 힘들게 감당하시는 북실교회 일꾼여러분!
오늘 우리가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 고난을 지고 본문의 젊은 선지자처럼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했다고 남이 알아주지 아니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들이 진행되지 아니해도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갈 수 있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충성된 일꾼은 작은 실수도 크게 보는 자라야합니다.

이 젊은 선지자가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그 곳에 있는 선배 선지자의 초청을 받습니다. 자기가 할 일을 대신해 준 젊은 선지자가 너무도 고마워서 그는 하나님이 지금 너를 초청해서 대접하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왕상13:18) 그래서 본문의 주인공 선지자는 그 동안에 하나님의 명령이 바뀐 줄로 생각하고 같은 선지자인 선배가 자신을 속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돌아가는 길에 사자의 공격을 받아서 죽임을 당합니다.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임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그 사자가 그의 시체도 먹지 않고 타고 간 나귀도 상하지 않게 하시고 옆에 있게 하셨습니다.

저가 가서 본즉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섰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왕상13:28)

사랑하는 북실교회 성도여러분 !
이 선지자의 잘못은 아주 작습니다. 99%완수하고 마지막 1%를 잘못하였습니다. 거짓말한 늙은 선지자의 잘못이 더 큽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작은 잘못 때문에 결국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큰일을 했는데 왜 하나님은 그 일에 비하여 너무도 작은 실수를 용서하지 않으신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깊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충성된 일꾼은 아무리 작은 잘못도 간과하고 지나가서는 안 되며 자신의 작은 잘못도 바로 보고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북실교회의 성도여러분!
작은 잘못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삶에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완성된 후에, 성취된 후에 만족감에서 오는 소홀함도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고 우리 하나님은 경고하고 계십니다.

노아는 홍수재앙을 잘 지나고 포도 농사가 풍년이 되었을 때에 축복의 만족감에 과음을 하고 실수를 했습니다.
모세는 긴긴 광야 여정을 잘 지나고 거의 마지막 반석에서 물을 낼 때에 하나님의 뜻을 간과하고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과 백성들에게 보인 분노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모세에게는 작은 실수였지만 하나님은 그 잘못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고 누구보다도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과 열망을 갖춘 모세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참된 일꾼은 작은 잘못을 크게 보라는 하나님의 깊은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인천 교회에 최 집사님이라는 분은 충성된 일꾼입니다.
그때 교회는 나무를 때는 난로가 있었는데 자주 그을음에 연통이 막혀서 연기 때문에 추운 날에 창문을 열고 예배를 드리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다가 자기가 온풍기를 헌물하려고 2년 계획을 세우고 1년가량 적금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을 듣다보니 모르고 지은 죄도 죄이고 그것을 회개하고 고쳐야 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초신자 시절에 모르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이 죄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고민하다가 온풍기를 헌물하려고 그동안 들었던 적금을 해약하여 50만원을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온풍기 헌물 하는 일은 틀렸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송도 갯벌이 매립이 되면서 거기서 조개를 캐던 송도 지역 주민들에게 보상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 보상을 받을 사람들의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자 옛날에 해변에 군에서 철조망을 치고 그곳을 통과하는 표를 주었는데 그 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조개를 캐던 안 캐던 보상을 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최 집사님은 송도의 원주민이므로 옛날에 그 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개를 캐는 일을 하면 주일을 성수 할 수 없어서 조개 캐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표가 있으므로 보상금이 오백만원이 나왔습니다.

집사님은 목사님께 오셔서 “목사님! 우리 하나님은 참 정확하시네요, 50만원 십일조 했더니 하나님이 오백만원을 주시네요!” 하면서 남편 집사님과 상의하여 십일조와 감사헌금과 그리고 자신이 작정한 온풍기까지 헌물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00 교회 성도여러분 !
이 희생의 의미가 담긴 6월에 믿음의 옷깃을 여미고 왕을 책망하는 어려운 사명을 감당한 이름 없는 선지자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선지자처럼 겸손히 순종하고 어려움을 감당하며 작은 잘못도 크게 여기는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6월에 나라를 위하여 희생한 우리의 선배들을 생각하며 우리도 이름 없는 선지자처럼 아름답게 나라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는 좋은 일꾼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운영자 예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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