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수 목사(신반포교회)
성경에 보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여러분, 혹시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저는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뭐라고 대답하면 되죠?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품위 있게 살았던 사람이 누구일까요? 요즘 잘 쓰는 말로 표현하면, 가장 쿨(cool)~한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사무엘을 꼽고 싶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에게서 태어나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평생 동안 정말 신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사사 시대의 인물입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의 죽음(B.C. 1390) 이후 사울 왕의 등극(B.C. 1050) 직전까지 약 340년 동안입니다. 그 때는 왕이 없었고,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 직접 통치하는 신정정치의 시대였습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 B.C. 11세기 사람입니다. 그는 사사(Judge)일 뿐만 아니라, 선지자(Prophet)와 제사장(Priest)이기도 했습니다. 사사시대는 신정정치 시대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아주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흔히 영적인 암흑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죠.
사무엘이 이렇게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도 쿨~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사무엘의 퇴임 장면의 기록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자 그는 사사 직에서 퇴임합니다. 그 때 이렇게 고별사를 시작합니다.
3절(상).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in the presence of the LORD)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 ”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순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죠. 그의 평생 지켜온 인생의 원칙이요 신앙의 모토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데, 라틴어로 ‘코람 데오’(Coram Deo)입니다. ‘코람 데오’는 장로교의 창시자 쟝 깔뱅이 신앙의 모토로 삼은 말이기도 합니다. 한자어로는 신전의식(神前意識)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앞에서”라는 말입니다.혹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작품「모나리자」가 있습니다. 신비의 미소로 유명한 그림이죠. 미소도 미소지만, 특이한 화법(키아로스쿠로=명암대조법)으로 그려서 어느 방향에서 봐도 시선이 관람자와 마주칩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디로 가든지 모나리자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꼭 이와 그렇습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를 향해 보고 계십니다. 사무엘은 평생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았고, 그로 인해 승리했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오늘 말씀을 통해 사무엘 같이 ‘코람 데오’의 신앙을 배워 쿨~한 인생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세 가지로 말씀드립니다.
[1]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 평안한 삶
사무엘은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늘 사랑의 시선을 받으며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부모에게서 떨어졌습니다. 한나가 자식이 없을 때 아들 주시면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던 대로 실행한 겁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아주 일찍이 조기 유학을 보낸 겁니다.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진 사무엘은 제사장 수업을 받으며 잘 자랍니다. 그 때 그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삼상2:21 “ ...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사랑의 시선을 받으며 자랐다는 뜻입니다. 삼상2:26 보면, 그 의미를 잘 설명해 줍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어린 사무엘은 비록 부모를 멀리 떠나 있었지만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 잘 성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평생 그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늘 평안한 모습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향해 사랑의 시선을 놓지 않습니다. 시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하나님이 매 순간마다 나를 지켜보시니까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은 불안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이 그랬죠.
창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하나님 앞에서 떠났다는 것은 사랑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그가 간 곳이 놋 땅인데, ‘놋’이란 이름이 왜 붙여졌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놋’(d/n)은 히브리어로 ‘유리’ 혹은 ‘방황’(wandering)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불안한 마음을 암시합니다.
사람이 사랑의 시선을 받으면 정서가 안정되고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반대로 사랑 받지 못하면 불안해집니다. 미국의 뉴 호우프 커뮤니티 교회 부설 학교에 여교사 톰슨이 있었습니다.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테디라는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주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또 시험을 보면 죄다 틀렸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채점을 하다 이상한 생각 들어 생활기록부 자세히 들춰보았습니다. “1학년 : 착한 아이이고, 장래성이 있어 보입니다. 2학년 : 조용한 아이인데, 조금 폐쇄적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불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3학년 :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4학년 : 이 아이는 장래성이 없어 보입니다. 아버지는 가출했고, 이모가 양육하는데 학대를 받는 듯합니다.” 이런 기록을 보는 순간 선생님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고, 그 날부터 방과 후에 개인 지도를 해 줍니다. 사랑의 시선을 주자 아이는 조금씩 안정되었고 얼굴도 평안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그 아이는 선생님에게 선물 2개를 갖고 왔습니다. 가짜 다이아 목걸이와 쓰다 남은 향수였습니다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