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교회가 분열의 기운이 가득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 마디로 분석한다면, 하나님 중심으로 운영되지 않고 인간들의 생각 중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끼리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일 수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당을 지어 행동함으로 교회의 분열이 심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에 와서 하나님 중심으로 전도했으며 하나님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어떻게 하나님 중심으로 전도했습니까? 그 전도 방법을 배워서 우리도 2006년도에는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만 전하였습니다.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열심히 전도하기는 했지만, 인간적인 말솜씨나 인간적인 지혜 등을 전혀 동원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헬라 철학에 능통함에도 그런 지식을 하나도 동원하지 않고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이유를 행17:16-34에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에 오기 전에 바울은 아덴이라는 도시, 지금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전도 활동을 했습니다. 그곳은 과거 소크라테스, 풀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유명한 철학자들이 활동하던 곳이어서 내 노라 하는 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전도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던 철학적인 지식으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열변을 토하면서 그들과 철학적인 논쟁을 벌이었으나 그 결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으나 가장 큰 도시에서는 교회를 세우지 못하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바울은 왜 그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조용한 시간에 기도하면서 자기가 복음은 전하지 않고 철학적으로 기독교를 전한 결과요,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해도 인간의 말이나 지식으로는 사람을 전도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오직 복음만 전하리라.’고 결심한 줄 압니다.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기를, 전도는 지식이 많고 배운 것이 많고 말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일 수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결코 사람의 영을 감동시킬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전도할 때 너무 많이 아는 척하면, 교만함이 느껴져서 듣는 이의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특히 논쟁을 벌여서 지고나면 불쾌해짐으로 오히려 전도의 문을 막게 됩니다. 사람은 진심으로 자기를 위해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번 미식축구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안은 하인스 워드의 이야기요, 그 어머니 김영희 씨의 이야기 입니다.
저는 어제 밤에 KBS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여러 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어머니 김영희 씨는 흑인과 결혼한 후 미국에 가서 한달 만에 남편이 가출함으로 불행의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영희 씨는 새벽 4시에 시작하여 하루 세 가지 잡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새벽 4시에 직장에 나가면서도 한국식으로 아들의 식사를 반드시 해놓음으로 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하인스 워드가 오늘 미식축구의 영웅이 된 것도 감동적이지만, 오늘 미국인들이 그에게 매료되는 것은 운동은 물론, 공부도 잘 했고, 또 인격도 얼마나 반듯한지 운동장에서 넘어졌다가 일어나도 언제나 웃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합니다. 워드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나의 전부입니다. 이 세상 전부와도 못 바꾼다고 말하고 싶어요. 엄마가 나에게 베풀어 준 모든 것을 평생 되돌려 드릴 수 없을 거예요. 내가 풋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퍼볼에서 승리한 것은 나와 어머니가 함께 이긴 겁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하나의 영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내게 동기를 부여했고, 포기라는 것을 몰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 어머니는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들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 정부지원도 거절하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들을 억만 장자가 되었음에도 지금도 어머니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매일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희 씨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탓인지, 자녀 교육의 방법은 철저한 희생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1등이 되기보다 겸손하고 감사하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때로 아들이 잘못할 때는 매를 때리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자기를 위해주는 어머니 사랑 앞에 아이는 상처 받지 않고 그렇게 성공했고 모든 영광을 어머니께 돌리고 있을 정도로 효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미국 사회에서 한국 어머니들의 희생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미국 사회에 살고 있는 한국인 엄마들과 자녀들에게 큰 용기를 줄 것이요, 세계적으로 한국 엄마들에 대해 높은 점수를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모습을 보일 때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으로 자기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전도할 때 감동을 받는 것이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지식이 많은 사람만 전도할 수 있다면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람은 전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디 같은 분은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무디를 통해서 많은 전도가 이루어진 것은 죄인들을 위해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졌을 뿐 아니라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전도할 때에 정말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심으로 전도의 놀라운 열매를 맺는 한 해 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바울은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전도하였습니다.
3-5절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약 1년 6개월가량 머물러 있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전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머물러 있는 통안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바울은 두렵고 떨리게 만들었습니까? 바울은 본래 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어려운 일을 모면할 수 있는 로마 시민권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복음을 위하여, 주님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순교까지 각오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며 떨었을까요?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을 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자인가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 때는 모든 환경도 두렵고 사람도 두렵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였을 때는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도를 바라보고 두려워하였을 때는 물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둘째 이유는, 고린도 전도를 위해서 자신을 그만큼 낮추고 겸손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고린도 지역은 죄악이 관영하고 사람들은 거칠고 난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가장 낮아졌고 겸손하여서 그들을 섬기고 높였습니다. 그러한 바울을 처음에는 우습게 여겼지만 그러나 계속되는 그의 겸손한 모습 속에서 한 명씩 한 명씩 마음에 감동을 받고 주님께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고린도에는 지금도 사도 바울 기념 교회가 깨끗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기념 교회 정면 벽에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곧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기념하여 교회를 세우면서 그가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겸손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신의 능력을 의지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 즉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방법으로 어느 사람을 교회까지는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 구원만은 우리 힘으로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연약함을 아는 자라야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라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싫어하시지만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누가 교만한 모습으로 전도하는 말은 듣고 싶겠습니까?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는 겸손의 사람은 말솜씨가 뛰어나지 못해도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생각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이 전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전도할 때에 결코 ‘전도를 몇 명했다.’는 자기 과시나 구역 목표 달성을 위해서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교만으로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지만, 전도 받은 사람도 상처를 받기가 쉽습니다. 전도하실 때에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십시오. 특히 전도할 때에 진정 영혼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그 때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한 젊은 목사님이 나이가 연노하신 목사님을 찾아가 묻기를 “목사님, 설교를 잘 해야 되는 데, 잘 안 됩니다. 어떻게 설교를 잘 할 수 있습니까?”라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자네, 얼마나 목회를 했나?” “한 10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들고 제가 보기에도 교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설교를 잘 하고 싶은가?”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나 물어보겠네. 자네가 설교할 때에 ‘설교 잘 한다,’하는 평을 받고 싶은가?” “아, 그럼요.” “그러면 틀렸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하면 저들을 구원할까,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은혜를 줄까, 이런 생각만 해야 하네.”
“그렇지 않고 설교를 잘 한다 하는 소리를 들으려 하는 순간에 이미 설교는 죽 쑨 것이 되네.”라고 하더랍니다. 이는 비단, 설교 뿐 아니라, 전도나 충성, 구제나 봉사를 하는데도 대단히 교훈이 되는 말입니다. 자기 자랑이나 자기의 능력으로 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면서 진정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자세로 해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는 자세로 복음을 담대히 전하면서 늘 낮아지는 겸손의 자세를 잊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전도했습니다.
6-9절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의 지혜’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지혜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이 지혜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음의 지혜를 말합니다. 이 복음의 지혜는 7절 말씀대로 수 천원 세월 비밀히 감추어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장 귀한 지혜를 나타내셨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의 지혜입니다.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리게 하심으로 모든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는 길을 열어주셨을 뿐 아니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려는 복음의 지혜입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지혜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았다면 8절 말씀대로 이 세상의 관원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원’이란 예수님 당시의 정치가나 권력가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못 박을 때에 정치나 종교 지도자가 누구입니까?
총독 빌라도와 대제사장 가야바입니다. 빌라도가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을 깨달았다면 어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살렸을 것입니다. 역사상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구절이 있다면 요11:49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자는 이야기를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공회에서 큰 소리 치기를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민족이 편하다면 그를 죽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지혜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피 혁명을 일으킬 때도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 사건 때 특전사들을 투입하여 총칼로 진압할 때도 자기들 딴에는 뛰어난 정치적인 지혜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가야바의 주장이 과연 옳았습니까? 자기 지혜대로 행함으로 과연 온 백성들이 편하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2천년동안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모든 나라에서 추방, 학살당하는 끔직한 참상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공산혁명과 광주 시민들을 총칼로 제압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비참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교만하게 되면 어리석어집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성경 박사들임에도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짐으로, 성경에 그렇게 많이 예언되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음에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앞장 서는 천추의 대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왜 그런 실수를 저질렀습니까?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율법으로만 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를 만세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여 주신 후에 감추었던 비밀인 복음의 지혜를 나타내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게 하시니 너무나 감사 감격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어떠한 고등 교육도 하나님의 깊은 비밀스런 계획과 섭리를 능히 깨달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본문 10절 말씀처럼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사정을 잘 아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지혜의 선물인 복음을 통해서 모두가 구원 받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복된 영생의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만이 이런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되지 마시고 아직도 구원 받지 못한 우리 식구들과 친척,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듣는 이들의 영안이 열리고 영적 귀가 열림으로 저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성령께 충분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전하는 사람이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말이 어눌할지라도 하나님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 저들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바울은 아름다운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지혜로운 말로 전도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오직 복음을 전하기에만 힘쓸 때 전도의 문이 열리고는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매를 실컷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빌립보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일입니다.
갑자기 성령 충만하면서 입으로 찬송이 터집니다. 그러자 감옥 터가 흔들리고 매인 사슬이 풀리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간수가 놀라서 외치기를 “형제들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합니다. 그 때 바울이 전하는 말씀은 간단합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간단한 말씀에도 성령 충만한 가운데 외치니까 즉시 회개하고 온 가정이 세례를 받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과거 한국교회 안에 기이한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본 최봉석 목사님, 일명 최권능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은 신학교 다닐 때도 밤에는 밤새도록 기도하고 낮에는 틈만 나면 전도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세 번이나 낙제를 하여 졸업을 못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평양 거리를 다니면서 전도할 때에 처음에는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간단하게 줄여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외쳤습니다. 새벽이고 밤중이고 닥치는 대로 소리침으로 사람들이 눈살을 찌프릴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방앗간 앞을 지나가는데, 주인이 당나귀를 이용해 연자방아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최봉석 목사님은 그 큰 목소리로 벽력같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당나귀가 놀라 벌떡 뛰는 바람에 방아가 엎어져 난리가 났습니다. 주인은 너무나 화가 나서 최 목사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쳤습니다. 그런 식으로 전도하면 누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오히려 교회에 대한 반감만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밤새도록 기도하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전도한 탓인지, 그 방앗간 주인이 회개하고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전도 받는 다음부터 계속 귀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말이 들리므로 결국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금년도에 믿지 않는 우리 식구와 친척, 이웃을 전도하기 위해, 오직 예수님만 전합시다. 오직 겸손하게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고 전합시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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