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알려주셨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인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그분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한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말씀을 풀어서 전달하는 설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적용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회중은 참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설교자는 누구를 향하여 메시지를 던져야 할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 어떤 분이 봉사 유형에 따라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습니다.
1) 먹거리형- 일할때는 요리조리 빠지고 먹을때는 쏜살같이.
2) 충성파형- 끝까지 말없이 봉사하는 성도.
3) 자라목형- 집에서는 기고만장, 교회에서는 움추러드는 성도.
4) 소대장형- 언제나 선두에서 챙기는 성도.
5) 미꾸라지형- 핑계대고 잘 빠져나가는 성도.
6) 천진난만형- 순종하며 할일을 열심히 찾는 성도.
7) 주둥아리형- 입으로만 봉사하는 성도.
8) 재수좋은형- 빗자루 방금 잡았는데 막 도착한 목사님께 칭찬 받는 성도.
9) 가정파괴형- 봉사를 핑계로 가정에 소홀한 성도.
10) 사기진작형- 일꾼에게 줄 먹거리를 가져오는 성도.
11) 뒤로쳐져형- 뒤에 안주하려는 성도.
12) 시간망각형- 시작했다하면 불기둥의 인도가 필요한 성도.
13) 중도하차형- 중간에 말없이 사라지는 성도.
14) 눈먼붕어형- 현장에 생각없이 왔다가 항상 걸려드는 성도.
15) 마르다형- 간식과 식사를 준비하여 즐겁게 하는 성도.
16) 엔돌핀공급형- 일보다 옆에서 즐겁게 웃겨주는 성도.
17) 공구류상가형- 필요한자재, 공구를 챙겨주는 성도.
18) 먹을복없는형- 간식먹을때마다 본의아니게 항상 빠지게되는 성도.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 모든 사람들을 한 교회로 불러모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나가십니다. 할렐루야!
** 어떤 분이 신세대 성도를 몇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이승복 형’입니다.
“나는 죽어도 금요철야와 새벽기도회는 싫어요!”
둘째, ‘이순신 형’입니다.
“나의 퇴근 시간과 핸드폰 번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셋째, ‘나폴레옹 형’입니다.
“나의 사전에 오후 5시 이후 집회는 없다!”
넷째, ‘김구 형’입니다.
“나의 첫 번째 소원은 일요일 정상 휴무이다.”
우리교회는 이런 성도가 없어야 되겠지요. 물론 웃자고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만, 내용 속에 우리를 찌르는 요소가 없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이처럼 여러 부류의 청중에게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어떤 설교는 아직 회심하지 않은 잃어버린 영혼(the lost)을 위한 말씀입니다. 어떤 설교는 성도들을 교정하고 양육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은 우리 모두를 위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14절의 ‘육에 속한 사람’(the natural man), 15절의 ‘신령한 사람’(the spiritual man), 그리고 3장 1절의 ‘육신에 속한 사람’(the carnal man) 입니다.
오늘은 이들 세 종류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살펴보고, 주님께서 이 본문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함께 겸허히 경청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A. 육에 속한 사람
14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 먼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중의 본문의 문맥을 잠시 살펴 봅시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며 조속히 하나가 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복음이 아닌 세상 지혜를 내세우며 그에 근거하여 분열을 일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곧 십자가의 도인 복음은 오직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음을 사도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육에 속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은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으로 번역된 ‘프쉬키코스’는 새생명을 얻지 못한 자연인을 가리키는 말로써, 성령으로 거듭난 새생명의 사람을 의미하는 ‘프뉴마티코스’와 대조되는 말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기쁨과 감격의 대상이 되지만, 이들에게는 냉소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시각장애자가 태양을 보지 못하는 것은 태양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청각장애자가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음악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귀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일이란 그에게는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그는 성령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능력조차 없습니다.
이점에 대해 Hodge는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었습니다:
“자연인은 현재에 영적 진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미래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그런 사실조차도 알 수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인 성경은 육에 속한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일 뿐입니다. 이들의 종국은 결국 멸망일 뿐입니다.
4. 자연인이 가장 필요로하는 것은 구원입니다.
모든 사람은 원래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길잃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오늘 우리 영적인 성도 모두에게 주님의 지상명령은 바로 이들 육에 속한 사람의 구원인 것입니다.
B. 신령한 사람
15절,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 ‘신령한 자’로 번역된 ‘프뉴마티코스’는 ‘영적인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새생명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된 구원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자연인으로부터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게 됩니다.
전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였으나, 이제는 구원받은 자입니다.
전에는 길잃고 방황하던 자이었으나, 이제는 주님 안에서 길을 찾은 자입니다.
전에는 지옥을 향하여 가던 자였으나, 이제는 천국을 향하여 언약의 대열에 참여한 자입니다.
2. 하나님의 성령님은 영적인 성도를 가르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 결과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고 분별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에 역사하시는 손길을 보며 느낄 수 있습니다.
** 다음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갖는 증세입니다. ( YES가 몇 개인지 속으로 계산해 보세요!)
① 찬송을 부르면 마음이 뿌듯하고 기쁘다.
② 성경을 읽으면 시간이 금새 간다.
③ 기도를 안 하면 어쩐지 하루가 이상하다.
④ 예배하러 교회 나가는 것이 좋다.
⑤ 나를 위해서보다 남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한다.
⑥ 선한 목표가 있다.
⑦ 입을 열면 불평보다 감사할 때가 많다.
⑧ 가요보다는 찬양이 더 듣기 편하다.
⑨ 전도를 위해서 노력한다.
⑩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괜히 흥분되고 힘이 난다.
3. 신령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16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한 자는 ‘우리’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가졌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마음을 가졌고, 우리가 영적 진리와 지혜를 ‘알 수 있는 자들’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영적 진리를 폄하하지 않으며 그 어떤 세속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C.육신에 속한 사람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1. 세 번 째 부류의 사람으로 사도 바울은 본절에서 ‘육신에 속한 자’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 아이들’과 같은 말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그러므로,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로서, 구원은 받았으나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첫 번 째 부류인 육에 속한자는 아직 거듭나지 못하여 죄가운데 있는 자연인 임에 반하여, 본절의 육신에 속한자는 성령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단지 성숙하지 못한 신앙 때문에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연인의 본성에 더 지배받아 육신적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표현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이 복음을 받은 초창기와같이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2.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를 신령한 사람들로 자처했지만, 실상은 아직 육신에 속한 자들이었고, 스스로는 영적 성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영적 유아들에 불과했습니다.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본절의 ‘육신에 속한’으로 번역된 ‘사르키코이’는 1절의 ‘사르키노이스’보다 더욱 강한 표현입니다.
사도에게는 고린도 교인들의 넘치는 영적은사가 그들의 성숙도의 근거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안의 시기와 분쟁이 바로 영적 유아임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생각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척도는 은사나 그들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인격과 신앙의 성숙도에 있는 것입니다.
3.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혼돈된 상태에 있는 자입니다.
보십시오. 육에 속한 자연인은 순간의 삶을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자는 하늘에 보화를 쌓는 자입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사람은 양쪽을 모두 붙들고 있는 자입니다. 한 발은 세상에, 그리고 다른 발은 하나님 나라에 디디고 서서 동시에 두가지를 움켜쥐려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3.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갈등 가운데 살고 있는가는 과거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알면서도 이를 행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의 것들이 무가치한 것임을 알면서도 거기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소돔성을 떠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있는 롯과 같은 자입니다.
** 찰스 알렌 박사가 최근에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보고에 의하면,
20%의 교인이 예배에 불참하고 있고
25%의 교인이 기도를 안하고 있고
30%의 교인이 기도를 할줄 모르고
35%의 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고 있으며
40%의 교인이 헌금을 안하고 있으며
60%의 교인이 신앙 관계 서적을 읽지 않고 있으며
70%의 교인이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있으며
75%의 교인이 교회에서 책임진 일이 없고
85%의 교인이 한 사람의 불신자도 인도해 본 일이 없고
......
100%의 교인이 하나같이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 주일날 교회로 가야 할 집사가 등산을 좋아해서 산으로 갔습니다. 산을 거의 내려올 지경에는 캄캄한 밤이라 그만 잘못하여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순간적으로 \"이제 죽었구나. 집사가 주일을 빠뜨리고\" 하는 생각과 함께 소나무 하나를 간신히 잡게 되었습니다.
그는 절벽을 향하여 힘껏 소리질렀습니다. \"그 위에 아무도 없소? 사람 살리세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무서움이 엄습했습니다.
그 때 절벽 위에서 바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얘, 아무개 집사야.\"
생명 줄을 얻은 것 같은 기쁨으로 소리쳤습니다. \"예, 여깁니다. 살려 주세요.\" 그러다가 이상했습니다. 자기 이름을 이 밤중에 부르다니요.
그래서 \"누구십니까?\" 물었습니다.
그 때 언덕 위에서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이런 절벽에도 계셨군요. 하나님 빨리 올려 주세요. 팔이 아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때 다시 절벽 위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네가 진정 나를 믿느냐?\"
\"하나님 이럴 때 하나님 안 믿으면 어떻게 합니까? 비록 오늘 교회는 빠졌어도 제가 집사 아닙니까? 집사가 하나님 안 믿으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 때 위에서 다시 소리가 났습니다. \"진정 나를 믿는다면 먼저 네가 잡고 있는 손을 놓아라.\" 하였습니다. 그 소리에 그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 손을 놓으면 박살이 나는데... 하나님이시라 했고 올려 준다고는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이 실수하신다면 정말 박살날텐데....\"
한참 고민하던 집사는 결국 \"아이고 하나님, 이 손을 놓으면 죽는다니 까요.\" 하고는 더욱 큰 소리로 \"그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소? 살려 주시오.\" 라고 했습니다.
** 한 사람 더 이야기 할까요? 올해 처음으로 서리 집사에 임명된 김집사를 교인들은 \'김 잡사\'라고 불렀습니다. 온갖 세상의 잡스러운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데 아들 멀구가 소리쳤습니다.
\" 아빠, 밖에 누가 왔어요. \"
\" 니가 나가봐. 외판원이면 아무도 없다하고 야쿠르트 아줌마면 내일 오시라고 해. \"
잠시 후 밖에서 멀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 아빠, 목사님 같은데 어떡하죠? “
김집사는 허둥거리며 말했습니다.
\" 빨리 재떨이하고 담배 치우고 식탁 위에 소주병도 숨기고....\"
\" 그럼, 안방에 화투도 치울까요? \" \" 그래 그래. \"
하는데 목사님께서 화장실 문을 두두리며 김집사에게 물었습니다.
\" 응접실에 있는 \'젖소부인\' 테이프도 치울까요? \"
** 육신에 속한 사람의 예를 하나 더 생각합시다. 교회는 다니지만 술을 끊지 못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 교인이 어느 날 술집으로 전화를 한다는 것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마침 그 전화를 담임목사님이 받으셨는데 교인은 술집 주인으로 착각하고 “여기 누구 집인데 술1상자만 빨리 배달해 주세요.” 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그 교인이 자신을 알아보고 무안해 할까봐 모른척 전화를 끊으려는데 교인이 목사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하는말이, “아니 목사님께서 술집은 웬일이세요?” 라고 묻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가해옵니다. 여러분은 위의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어느쪽입니까?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을 세 부류로 규정했습니다.
행동하는 사람, 마음만 뜨거운 사람, 빈둥거리는 사람 ...
당신은 이들 부류 중에 어떤 사람입니까? 이미 세 종류의 사람을 알았다면, 신령한 사라이 되기 위해 즉시 행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 각자를 있는 그대로 만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나자신을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내 속에 와 계신 성령님께 모든 것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작은 음성에도 철저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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