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오늘 이곳에서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멘’은 광신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고 그 약속이 이루어 질 줄로 믿는 사람에게 아멘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남제일교회 성도들은 의식적으로라도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아멘’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 아들이 공부를 대개 안하니까 아버지가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너, 이번에 60점만 맞으면 100만원을 줄께” 시험을 보고 아들이 와서 하는 말이 “아버지 좋은 소식이 있어요.” “그게 뭔데?” “지난번 시험에서 60점 이상 맞으면 100만원을 주신다고 하셨죠? ..... 그 돈 그냥 아버지가 쓰세요.”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 축구가 4강에 들었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히딩크 감독이 강조한 것이 바로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는 것입니다. 축구경기는 골 넣는 경기입니다.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잡이’가 중요합니다. 황선홍이냐? 이동국이냐? 이것이 우리 보통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아니라는 겁니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5:0으로 졌을 때 사람들은 히딩크를 오대영(5:0)이라고 놀렸습니다. 오대영은 우리 아들 이름인데... 5:0으로 졌는데 히딩크는 지금 잘 되고 있습니다.
히딩크는 축구는 골을 많이 넣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넣기만 하면 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축구는 공격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수비도 잘해야 하고 미드필드도 잘해야 됩니다. 90분 동안 경기를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히딩크 사단의 황태자라고 하는 박지성 선수는 이 공격수와 수비를 넘나드는 체력을 가지고 영국에 가서 잘 하고 있잖아요.
공격자, 수비자가 따로 없이 함께 하는 의식... 지금은 수비 선수도 골을 넣잖아요. 공격팀이 1선, 미드필드가 2선, 수비가 3선인데 3선이 뛰어 들어가서 공을 넣는 겁니다. 홍명보선수가 골을 넣는 선수로 유명하잖아요. 제가 축구를 잘알죠?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는 겁니다. 그것이 ‘세계 4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수학문제를 푸는 것도 답만 맞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풀이도 맞아야 정답이 되는 거에요. 과정을 중시하는 겁니다. 과정이 좋아야 결과도 좋습니다. 지혜로운 사람, 성숙한 사람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번 우리나라 야구팀 4강에서 일본에 졌을 때, 신문에서는 이렇게 보도를 했습니다. “졌지만 잘했다.” 결과보다 최선을 다한 것을 칭찬하잖아요. 그만큼 우리국민들이 성숙해 졌다는 겁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승패만 따지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과정을 볼 줄 압니다.
지혜로운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과정을 칭찬합니다. “100점을 맞았구나!! 잘했다”가 아닙니다. 결과만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100점을 맞았구나. 잘했다.” 설령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어도 “열심히 하지 않았냐? 다음에 더 좋은 점수가 나올꺼야!”하면서 격려를 하는 겁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태복음25장의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결과를 보고 칭찬하시지 않으십니다. ‘5달란트, 2달란트 남겼는가?’ 가 아니라 숫자를 가지고 평가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를 남겼던지 착하고 충성된 종을 칭찬하셨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을 한 종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헌금은 누가 많이 냈느냐?” 제자들은 “부자가 많이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아니다. 가난한 과부다. 동전 두 잎을 드렸지만은 그 과부는 전 재산을 드렸다.” 어리석은 사람은 숫자를 보고 크다 작다 라고 말을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시고 과정을 보시고 최선을 다했는지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과정을 좋게 할 때 결과도 좋게 나와서 우리를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게 되면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나오는데 고린도 교회는 “누가 크냐? 누가 많이 공헌을 했느냐?” 를 두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전도하던 바울이냐? 선교하던 아볼로냐?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냐? 더 나아가 구원자 예수님이냐? 고 따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더 공헌을 많이 했다고 보십니까?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니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라는 겁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결과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심어야 합니다. 물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우리의 위치,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그것은 과정이지 결론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한대로 상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계신 것은 이것입니다.
1) 전도는 과정입니다.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습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의 과정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결과만 가지고 얘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겠다는 겁니다. ‘몇 명이나 구원했냐?’하는 것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전도를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 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 다음에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하시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어제 조선일보에 보니까 중국기독교에 관한 내용을 특파원이 보고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어제 신문에 중국 기독교에 대한 내용이 특파원이 보고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최근 중국에서는 ‘DVD' 단속을 하는데 일명 지저스인 차이나 중국 안에서 기독교의 행적에 대한 영상기록문입니다. 1949년 공산혁명이 일어나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 핍박과 시련 속에서는 신앙을 지킨 이들의 간증이 실려 있는 DVD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은혜 받는데 단속대상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 안에는 올해 83세 된 ‘세모산’이라는 분은 1956년 5월 28일 밤에 공안원들에게 잡혀가서 1977년 21년 만에 풀려났습니다. 감옥에서 공안원의 심문이 ‘모택동 주석은 천국에 갈수 있냐?’라는 질문에 ‘천국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손목에는 쇠갈고리가 꽂혀 있는데도 지금 상해에서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94세의 ‘위안상’ 노인은 흑룡강성에서 21년 8개월 감옥에 갇혔다 풀려나서 지금은 북경에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이바루’ 노인은 당국이 “공산당이 안 된 것을 회개하라”고 했지만, “나는 회개 하지 않았다. 공산당이 되지 않았다.”는 간증들이 그 안에 실렸다는 겁니다. 그 DVD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사실은 1949년 중국의 기독교인 숫자는 70만으로 많은 공산당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은 100배로 불어난 7,000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겁니다.
누가 중국 땅에 이렇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길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람들의 판단,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망하는 것 같지만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노방전도 하다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분이 와서 하는 말이 “전도는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모범이 되면 됩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세요.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완벽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은 나를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그 예수님을, 하나님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전하는 것이 전도가 아닙니다. 전도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전하는 것입니다.
박영려 권사님께서 눈 수술을 하셨는데 이곳저곳에서 못한다고 한 것을 순천향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셨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권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의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치료는 의사가 해도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셨어요.” 맞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립니다. 그러나 자라내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겁니다.
몇 일전에 심방을 마치고 커피숍에서 누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교역자들이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교역자 가운데 한사람이 그 종업원에게 전도를 합니다. 그러면서 저를 쳐다보면서 “때를 얻든 못 얻든지 전해야지요.” 맞습니다.
여러분 다음주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총동원주일 전도주일로 지킵니다. 몇 명이 왔냐?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판단입니다. 최선을 다 했느냐? 는 것을 하나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전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전도대상자를 주시옵소서. 전도대상자의 마음을 열어주소서. 이 일을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전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앙적으로도 모범을 보이게 하옵소서. 성령의 역사와 능력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할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한대로 상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온 가족 이름 써서 가지고 오세요. 된다, 안 된다 지금 평가하지 말고 지금 기도하자는 겁니다. 구역식구들을 놓고 하시고 각 기관들, 교회학교, 찬양대 할 것 없이 대장, 임원들이 앞서서 다 챙기세요. 그러면 한사람을 놓고 여러 사람이 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만나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총동원전도주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도는 과정입니다.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습니다. 기도의 과정이 좋아야 응답의 결과도 있을 주로 믿습니다. 결과가 뭔지 묻지 마세요. 우리를 주님을 믿었느냐는 겁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얍복강 가에서 야곱이 기도했던 그 자리가 되게 해주시고 백이십 문도가 성령 충만을 사모했던 그 마가의 다락방이 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겁니다.
언젠가 노회 때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께서 자기 교회 한 여 집사님을 소개를 하시면서 감사해 하시더라구요. 내용인즉 남편을 전도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잘 안 따라옵니다. 이 집사님이 기도하러 나오는데 새벽에 남편이 벗어놓은 구두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 구두를 들고 예배당에 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내 남편 교회에 안나오는데 신발이 먼저 나왔습니다. 다음번에는 이 신발의 주인도 나올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니까 자기도 얼마나 웃기던지 우습잖아요. 그러더니 말씀이 생각이 나더랍니다. 창세기17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나타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네게 자녀를 주겠다.” 옆에서 엿듣던 사라가 웃었거든요. 하나님께서 네가 나로 웃게 하시겠다. 이삭이라는 이름이 ‘웃음’이라는 뜻이거든요. 하나님이 웃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 나에게 사라의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뭐 그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한주간이 지나고 주일아침이 됐는데 남편이 외출준비를 하더랍니다. “여보 아침에 어디가요?” “가긴 어디가 예배당가야지” 그리고 교회에 나왔다는 겁니다.
여러분 간절한 소망의 기도가 우리에게 있을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기도를 안 해도 된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된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겁니다. 말씀이 약속으로 오는 겁니다. ‘이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라는 겁니다. 2003년 듀크 대학에는 65세 4000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기도하지 않는 사람보다 기도하는 사람이 46%이상 건강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과정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실 줄로 믿습니다.
디모데전서 2:1절을 보게 되면 기도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① 간구 ② 기도 ③ 도고 ④ 감사입니다. 어려울 때 간구하고 약할 때 기도하고 그리고 주실 줄로 믿고 감사하고 도고는 무엇입니까? 중보기도입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어려울 때 간구하고 약할 때 기도하고 주실 줄로 믿고 감사하면 되지 왜? 도고를 합니까? 중보기도를 합니까? 그것은 남이 잘돼야 자기가 잘되는 겁니다. 남편이 잘돼야 내가 잘되는 것이고, 자식들이 잘돼야 부모다 잘 되는 것이고 부모가 잘되어야 자식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고의 기도 나라가 잘돼야 나도 잘되는 겁니다. 교회가 잘돼야 내가 잘되고 내 친구들이 잘돼야 내가 잘 되고 목사님이 잘돼야 내가 은혜 받고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도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번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에 우리가 모여서 기도할 때 나의 기도응답뿐 아니라 가족이 잘되고 교회가 잘되고 나라가 잘되고 민족이 잘 돼서 내가 복 받는 그런 기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성찬도 과정이다.
여러분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습니다. 성찬의 과정이 좋아야 하나님의 은혜도 크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성찬은 얼마나 많이 먹었냐가 아닙니다. 지난번에 성찬이 끝나고 나니까 어떤 분이 오셔서 카스테라가 좀 작은데 지금 보다 조금 더 크게 해서 주시면 안 될까요?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서 그래서 목사님께 “카스테라 좀 크게 썰어야 해보시죠..”라고 했더니 “목사님. 이미 밀전병 사다 놓았습니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여러분 성찬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먹었냐가 아닙니다. 이 성찬을 통해서 내가 주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찬의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6:25절을 보게 되면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내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눌 때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감사할 때 영적으로 주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깜깜한 이방에 빛이 비취면 어두움은 사라지잖아요. 주님이 내 안에 임재하실 때에 내안의 어두움의 세력들, 두려움이 물러가고 아멘도 하면 좋은데... 죄악세력 무너지고 사탄의 세력은 쫓겨나고 질병의 세력은 없어지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이 올 때에 두려움이 물러나고 죄악세력도 무너지고 사탄의 세력이 쫓겨나고 질병의 세력이 없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빛이 내안에 빛으로 오실 때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소망이 있고 우리에게는 내일을 향한 노력이 있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라고 했습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지만 가지가 잘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줄기가 가지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지는 줄기에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39장2절을 보게 되면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형통했습니다. 사무엘상5장10절을 보게 되면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하니까 점점 강해졌습니다. 창세기5:24을 보게 되면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하니까 하늘로 들림을 받았습니다. 가지는 붙어있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하나님과 함께 했느냐는 겁니다. 우리도 얼마나 주님 안에 있었느냐는 겁니다. 돈이 얼마냐? 수명이 얼마냐? 숫자가 얼마냐? 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는 복이다. 시편기자가 말한 것처럼 주님과 함께 할 때 이것이 기쁨이고 이것이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전도로 주님께 붙어 있으면 기도로 붙어 있어야 합니다. 성찬으로 붙어있기를 바랍니다. 전도와 기도와 성찬으로 주님께 붙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결과도 책임져주시고 승리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내주와 맺은 언약을 영불변하시니
그 나라가기 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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