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아멘.
예수께서 그의 산상설교에서 지혜로운 자는 집을 지을 때에 반석 위에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라"(마7:24-25)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바울 역시 '지혜로운 건축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전도자들을 마치 밭에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 농부로 비유하기도 하며(5-9절), 집을 짓는 건축자로 비유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의 본문의 주제가 바로 '지혜로운 건축자'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건축자가 짓는 집이 무엇인가를 먼저 밝혀야 겠습니다. 본문 10절에서 바울 자신은 집의 기초를 놓았고(완료형), 다른 사역자들은 그 기초위에 집을 세우고 있다(현재형)고 합니다. 바울을 위시한 이들 건축자들이 짓는 집은 바로 교회, 하나님의 집이라 하겠습니다.
건축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물을 짓는 '터'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의 터는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11절). 그 터 위에 교회의 사역자들은 건물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운 첫 번째 사역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역자들이 그 위에 건축을 한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교회 사역자의 활용을 건축에 사용되는 자재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건축자제는 먼저 값비싸고 불에 잘 견디는 것 세 가지와 값싸고 불에 소멸될 것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12-13절). 그 다음 그 사역의 결과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심판은 곧 교회의 사역자들에 대한 주님의 종말론적 심판입니다(14-15절). 이것이 본문의 짜임새와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복음을 들고 세계의 여러곳에 파송받아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이며, 특히 여러분들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집, 곧 교회를 세우는 건축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바울 선생께서 말씀하고 있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하나님의 집, 곧 교회를 짓되 마지막 심판의 날에 불에 타서 소멸될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종말론적 심판에서 끝까지 견디고 소멸되지 않는 참으로 든든하고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 자입니다. 이같은 든든하고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첫 째로, 교회의 터를 '예수그리스도'로 삼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우는데, 그 기초, 즉 '터'를 예수 그리스도로 삼았습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새삼스럽게 고린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 교회의 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후임자로 온 사역자들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지혜롭지 못한 일들을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롭지 못한 일이란 바로 파당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속상하게 한 일은 고린도교회가 분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고전1:10)"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이같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나는 바울편이다. 나는 오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고전1:12,3:4)라고 주장하는 , 중요한 인물들을 자기네의 지지 세력으로 끌어대는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같은 분쟁의 특징은 복음을 증거해 준 사람들의 이름에 따라 서로 갈라2져서 자기 자랑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교회 공동체가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될 때는 언제나 분열을 가져오기 마련임을 바울은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올바르고 든든하고 온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 '터'(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정인물, 즉 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 같은 사람들이 교회의 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해서 아볼로나 베드로 같은 교회의 사역자들, 즉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우는 건축자들은 모두가 같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는 것입니다(고전3:9).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자기 자신의 일을 올바르게 최선을 다해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같은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 우리의 선교와 목회에 있어서도 적절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의 해외 선교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은 '분열'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나역시 선교사로서 독일에서 선교와 목회활동을 한 바 있습니다만, 분열과 분파상은 심히 부끄러운 지경에까지 갔습니다. 그 당시 교포사회에서 떠도는 말 중에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는 서로 만나고 하나가 될 수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는 서로 갈라지고 하나가 될 수 없고 서로 만날 수 없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해외 교포들 속의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상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은 사역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역하지 아니하고 사람 중심으로 선교를 하고 목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전면에 나타나지 않고 사람이 전면에 나타나 사람의 주장과 생각과 뜻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선교와 이 땅의 교회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든든하고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건축자재를 좋은 것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은 주님의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전 위에 세우되, 불에 타서 소멸되지 않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것으로 든든하고 온전한 집으로 세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의 '만일 누구든지'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우선 건물을 짓는 자재를 두 종류씩 세 가지, 도합 여섯 가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값이 얼마나 나가는 것인지, 얼마나 튼튼한 것인지에 따른 관점에서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값지고 단단한 것으로는 금, 은, 보석을, 그리고 천하고 쉽게 불타 없어질 것으로는 나무, 풀, 짚을 들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건축자재가 지닌 가치는 종말론적인 심판의 자리, 즉 불의 심판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심판은 건물의 자재가 실한 것인지, 부실한 것인지 판명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불의 심판에도 타지 않고 값지고 단단한 (실한)금과 은과 보석이란 교회 건축자재입니다. 바울은 불의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고 살아남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들로 형성된 교회를 금과 은, 그리고 보석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의 건축자재로서 금과은, 그리고 보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밝히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금과 은과 보석과 같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며 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혜로운 건축자는 교회를 지을 때에 금과 은, 그리고 보석이란 자재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가 교회를 지을 때에 무엇으로 지어야 심판을 견딜 수 있고 살아 남을 수 있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다시 질문합니다. 교회를 짓는데 가장 좋은 건축자재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불심판이 내린다 해도 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견고하고 영원한 건축자재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 있을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어떤 교회공동체이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집, 교회를 짓는 일에 좋은 건축자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다"(마7:24)고 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든든하고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자재입니다. 말씀의 봉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그 말씀을 따라 실천할 때, 주님의 교회는 온전하게 든든히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은 무엇보다도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저열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도 올바르게 선포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고, 교회가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전달되지 않고 교회가 말씀을 떠난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부폐하고 타락한 것은 말씀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 선생께서 종교개혁운동을 시작할 때 먼저 말씀을 새롭게 밝히는 일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종교개혁사상에서 '오로지 말씀'이라는 것을 우선 앞세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한국 교회가 급성장하여 세계 방방곡곡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한국 교회와 우리 선교사들이 '오로지 말씀'을 우선하여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가?라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그 옛날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부패하고 타락되어 있고, 또한 한국교회가 예수님 당시의 성전이 세속화되고,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을 떠난 삶을 살았고, 바리세주의와 율법주의로 굳어지고 생명이 없는 종교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하나님의 불심판에도 끝까지 살아 남는 든든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말씀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말씀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새롭게 하고, 우리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든든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금과은, 그리고 보석과 같은 건축자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로지 말씀'으로 여러분들의 선교사역을 든든하게 온전히 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집 교회를 세우는데 참으로 좋은 건축 자재는 '믿음'입니다. '오로지 믿음'입니다.
'오로지 믿음!'이것 역시 종교개혁자들이 내건 슬로건입니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로마카톨릭 교회가 믿음을 뒤로하고 인간의 공로를 앞세우는 것을 비판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을 감히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업적이나 공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그 같은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하나님의 '칭의'로만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나 업적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확실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는 좋은 건축자재인 '말씀'과 '믿음'으로 건축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같은 말씀과 믿음으로 교회를 세워야 어떤 경우에도, 특별히 종말론적인 심판의 날에 든든히 서 있고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명상하면서, 여러분께 종종 말씀드린바 있는, '남은 자'(The Remnant)가 또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희망을 걸었던 남은 자들, 그 남은 자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걸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자 여호와를 의뢰하고 여호와께 돌아와 구원을 받을 것이라"(사10:20-23)고 하였으며, 선지자 스바냐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고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는 남은 자들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과 보호를 받고 구원을 얻으리라"(습2:3, 3:12)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선교사역과 목회사역이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보호를 받고 든든하게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 남은자들과 같이 오로지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과 여호와의 '규례와 말씀'을 우선으로 하는 선교사역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구원받음'과 '상 받음'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 14절과 15절의 말씀,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는 것 같으리라"고 합니다.
14절과 15절의 말씀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건축자로서 복음 전파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상급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14절은 불 시험을 이겨낸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서, 그리고 15절은 불 시험을 견디지 못한 부정적인 상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보상'이란 우리들의 '공적'에 대한 '삯'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14절). 그리고 15절에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공적이 불타게 되는 해를 입는다고해도 구원은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업적(공로)이 없을 때는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업적(공적)에 의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상을 받는 것'은 업적(공적)에 의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긴 하지만, 공로(업적)가 없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신학적으로 '칭의'와 '성화'문제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여 주신 '칭의'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거룩하게 되도록 '성화'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상급을 위해 공적을 쌓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불의 심판에서 구원을 얻긴 하지만, 겨우 얻은 구원이고, 심히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구원을 얻고, 또한 많은 상급을 얻기 위해서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서 은과금, 그리고 보석과 같은 말씀과 믿음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 하나님의 집을 든든하게 온전하게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기초/고전3:10-15 (0) | 2017.07.11 |
---|---|
[스크랩] 하나님의 성전/고전3:16-23 (0) | 2017.07.11 |
[스크랩] 미성숙한 신자의 모습/고전3:1-7 (0) | 2017.07.11 |
[스크랩] 우리의 것/고전3:21-23 (0) | 2017.07.11 |
[스크랩] 모범을 보여라 /고전4:16 (0) | 2017.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