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육체의 싸움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과 맞서 싸웁니다.
그래서 언제나 담대했습니다. 하지만 형제들을 대할 때의 그의 모습은 항상 겸
비하고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권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1. 영적 싸움의 실체는 생각과 사상 전쟁입니다.
영적 싸움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싸움과 달리 물리적이지 않
습니다. (3절, 우리가 세상에 있으나 세상이 행하는 식으로 싸움을 벌이지 않는
다). 만약 그랬더라면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세상을 물리적으로 정복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고 살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설령 눈에 드러나는 싸움이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세상이 인정하는 기준을 따라 살려 했을 것입니다(2절, '이 세
상의 기준들로 말미암아, 육신에 따라, 육체대로'라고 번역함).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바울을 그러한 기준에서 판단하는 자들이 있었습
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바울의 삶이 맘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훌
륭해 보이는 지혜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당당하게 지혜를 뽐내는 자들
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그런데 바울을 보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하는
모습은 영 시원치 않았고,(10절) 당당하기는커녕 사람들에게 내 몰리고 핍박을
당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외모를 보고 그가 전하는 복음
마저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하나님의 말씀이 웅변을 잘한다고 사람들 마음에 파고들 성격의
것입니까? 포장을 잘해서 전달하면 할수록 복음의 진수는 가려지는 것이 아닙
니까? 미사여구가 많고 인용문이 많고 제스처가 많을수록 복음은 진실에서 멀
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 당시 스토아 철학자들은 지혜를 팔고 다녔으며 지혜는 그들의 생계 수단이
었기 때문에 어떡하든 사람들의 귀에 솔깃한 말들로 미끼를 던져야 했고 그들
의 필요에 합당하게 논리를 전개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것은 사단이 쓰는 무
기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다. 사람들의 사상을 훔치는 것이 사단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견고한 무기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물리적인 싸움은 사단에게
사상을 빼앗겼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 영적 싸움의 실체는 '사상'에 있
습니다.
하나님의 힘은 바로 그 사단의 견고한 터전을 무너뜨리는 데에서 나타납니다(4
절). 곧 그 힘은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사상을 무너뜨리는 힘인 것입니다. 그래
서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
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5
절). 여기에 바로 영적 싸움의 실체가 있습니다. 곧 영적 싸움의 실체는 '물리
적인 세계'에 있지 않고 '생각'에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알기에 힘쓰십시오.
이 영적 싸움의 실체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에게 가장 본질적인 무기가 무
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사단의 제 일의 공격
목표는 '하나님을 전하는 모든 사역'입니다. 사단은 교회 건축에 별 관심이 없
으며 사단은 성도들의 비즈니스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며 복음을 복음대로 전하려는 자에겐 초
미의 관심을 둡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사상들을
무너뜨릴 유일한 도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단이 쓰는 무기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을
어렵고 귀찮은 일로 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멸망했는가를 보면 오늘날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사단의
무기를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습니다(호 4:6, 참조 사 1:3; 5:13; 렘 4:22; 8:7). 그들에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일은(5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깨닫고 그들 통해 하나님을 알아 복음을 가감 없이 명확하게 전하며 하
나님의 말씀의 메시지를 성경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3. 외모로 자랑하지 말고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자랑'이라고 하면 우리 문화에서는 부정적인 인상을 줍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은 자기를 나타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
로 우리네 사람들만큼 자기를 뽐내려고 하는 자들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한 자
랑은 남의 잘난 것을 사정없이 판단하고 비판하며 인정하려 하지 않고 쉽게 멸
시해 버리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한국 문화를 웬만큼 아는 나라들은 자국 내에
서 커 가는 한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다른 한국 기업과
경쟁을 하게 만듭니다. 한국 사람들은 같이 붙여 놓으면 서로 죽이지 못해 안
달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문화에 생겨난 현상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외모를 갖추는
것입니다. 적어도 첫 인상에서나마 남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심정에서 나
타난 결과입니다. 속 빈 강정이란 말은 이래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런 문화에 들어온 복음은 100년이 조금 지난 지금 외모 문화에 편승하여 변질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우리문화와 다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은 외모를 중시했습니다(7절).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했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
럴 수 있는 것을 생각지 않고 상대를 판단할 때는 '진실함'보다 외모로 판단하
는 태도를 가진 것입니다. 그러하니 그들이 외적인 자기 자랑 일색인 자들에게
혹하여 넘어간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12절).
고린도교회에서 자기를 자랑하며 사람들의 존경을 훔쳤던 자들은 복음에 대해
서는 아는 것이 없고 말에만 능숙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역설이 또 어디 있겠
는가? 교회에 정작 있어야 할 복음은 없고, 굳이 교회에 오지 않아도 어디에서
나 들어볼 수 있는 웅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그러니 바울이 직접
나타나 말로 자신을 나타내었을 때에 그의 말주변 없음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무시한 것도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10절).
신앙보다는 재능이, 물질의 적고 많음이, 언변의 능력이 있고 없음이 신앙과 믿
음보다 우선이 되는 아이러니가 한국교회에서는 통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와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을 모함하는 대적 자들에게
분노에 찬 말을 던지고 있습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선생들은 자신들만이
그리스도에 속한 참 일꾼임을 내세웠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높은
인사의 추천서도 받았으며 그들의 언변과 지식과 엄장한 외모를 가지고 자랑하
면서 자기들만이 고린도 교회에 파송된 진실한 일꾼임을 믿어 달라고 말했습니
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이런 얄팍한 간교에 넘어가 한 때 바울을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7절에서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고 책망하
고 있는 것입니다.
4. 주께서 주신 권세는 세우는 능력입니다.
롬1: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 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을 가지고 몰
래 들어와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을 손상시키며 하나님의 교회를 뒤흔드는 이들
거짓 선생들에 대해 바울은 단호한 태도를 가지고 맞섰던 것입니다. 바울은 8
절에서 이르기를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
려고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자신에게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
니다.
그의 권세는 말의 권위로 나타나 그의 말에는 엄위함이 있었고 사람들로 두려
워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권세는 복음으로 나타났습니다. 복음으로 나타내
는 권세는 바울을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그의 복음은 주님으로부터 친히 받은
계시에 의한 것이며 성령의 능력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권세는
그의 행하는 이적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많은 이적을 행하지는 아니했지만 그
의 손과 말에서 나오는 이적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그가 하나님의 진실한
일꾼임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세우려고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이런 주님
의 권위를 가지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님의 권위로써 고린도 교회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
다. 그는 그의 권위로 오히려 고린도 교회를 믿음과 성령으로 바로 세워는 능
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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