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고전 13:8-13/사랑은 영원하다라는 말의 뜻 / 전병욱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18:19

고전 13:8-13/사랑은 영원하다라는 말의 뜻(31:34)

 

오늘 본문의 핵심은 '사랑은 영원하다' 입니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을 현재성과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것을 통하여 풀 수 있습니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현재를 사는 삶입니다. 또 한가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1. 사랑의 영원성은 현재를 사는 삶이다.

현재를 누리지 못하면 영원을 누릴 수 없습니다. 언제나 실체는 현재밖에 없습니다. 과거는 기억을 뿐이고 내일은 개념일 뿐입니다. 어떤 미장원을 갔더니 '내일은 공짜' 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다음날 찾아갔습니다. '오늘은 공짜죠'. 점원은 '아닙니다. 내일이 공짜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결코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그림자처럼 보여지는 것일 뿐입니다. 인생이 충만하다는 것은 오늘을 충만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현재의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미래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미래의 공포 때문에 현재가 휘둘리는 인생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야고보가 첫 번째 순교를 당했습니다. 당시 헤롯은 정권의 정통성이 없어서 민심을 얻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것을 대중이 좋아하니까 베드로도 잡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깊은 평안 가운데 잠을 잤습니다. 천사가 옆구리를 차서 깨울 정도였습니다. (행 12:7) 현재를 충만하게 사는 모습 아니겠습니다. 미래의 공포가 현재에 영향력을 전혀 미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사람의 삶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파수와 둘째 파수를 지나갈 때에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행 12:11)  20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정신이 들 정도로 깊이 잠을 잤던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영원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를 못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공포 때문에 ,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사랑이 그 사람 가운데 임하면 현재의 삶이 풍성해지고 뿌리내리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의 유라굴로 광풍이 불 때에 배 안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서 열나흘 동안 먹지를 못했습니다.

죄수인 사도바울이 음식 먹기를 권하여 축사함으로 안심하며 받아 먹었습니다. 사랑의 영원성 가운데 오늘을 충실히 사는 사도바울만이 음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불안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오늘 평탄한 가운데 있어도 못 누리곤 합니다. 사랑의 영원성은 현재가 충만해진다는 것이며 이는 현재의 재미를 찾게 되며 ,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권태로움은 사랑 없음입니다. 어떤 이는 천국가면 매일 같은 사람을 보고 또 보니까 지루할 것 같다고 합니다. C.S 루이스는 '천국은 날마다 만나도 가슴 설레이는 첫 사랑의 향연이다' 라고 했습니다. 첫 사랑의 감격이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충만하게 사랑하게 될 때에 이 땅에서도 천국의 일부분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것이 사랑의 영원성입니다. 사랑 때문에 지금이 너무 기쁜 것입니다.  인간도 사랑의 영원성 가운데 있으면 다른 이들이 지루해 하고 힘들어 하는 것에 의미를 찾고, 재미를 찾아서 현실에 대하여 충실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재롱잔치를 볼 때에 다른 이들은 지루해 하지만 부모님들만은 더 없이 재미있어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에 수준 이하의 공연을 하더라도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연인의 대화를 보십시요.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할 찌라도 즐거워합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성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불성실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의 영원성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놓이면 부분에 반응하지 아니하고 전체를 바라봅니다. (12절) 비행기 타려는 사람은 비가 많이 올 때를 걱정합니다. 사실 비행기가 뜨는데 있어서는 비보다 안개유무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안 있어서 구름위로 올라가면 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땅에 있을 때에는 흐리고 맑은 날씨가 의미가 있지만 고도가 높아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것은 상황에 관계없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쉽게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삼십대 남자와 4살된 아이가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 아이는 떠들고, 교양없는 행동을 마구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꼬마녀석도 밉지만 가만히 있는 아버지에 대하여 더 화가 났습니다. 참난 못한 중년의 아저씨가 나서서 지적을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고개숙여 사죄를 하며 자초지정을 이야기 합니다. '이 아이의 엄마가 오랜 기간 암투병에 있었다가 죽게 되어 오늘 장례식을 치루고 왔습니다. 이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고민에 잠시 상념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며 아이의 무례함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 그 중년남자를 비롯한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숙연해졌습니다. 상황은 바뀐 것이 없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사랑은 부분에 반응하지 아니하고 전체를 바라보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재철 목사의 '내게 있는 것' 이라는 책을 보면 마귀가 던져주는 세상의 관점인 제국의 논리와 하나님 나라의 논리가 있다고 합니다. 제국주의는 세상을 힘으로 지배하겠다고 합니다. 돈을 좋아합니다. 돈은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까지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을 빙자해서 힘을 더 얻게다는 세태를 통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18장에서 이 땅의 어떻게 운영되고 망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국의 논리는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합니다. (계 6:2) 사람들은 지금의 소유에 만족하지 않고 더 소유하고자 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더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합니다. 돈 많던 카네기에게 '돈을 얼마나 벌어야겠습니까' 했더니 '조금만 더'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져도 조금 더, more more.. 이것이 제국의 논리입니다. 18장에 가서 바벨론이 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망하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교회는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논리인 사랑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상처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요구하며 부모가 힘으로 키우려 데에서 비롯됩니다. 목회가 힘들어지고,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힘으로 성도를 변화 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잡기 위해 온 로마군병과 대제사장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내리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 26:52). 천사군단을 보내어 멸하게 할 수 있음에도 제국의 논리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독교 무저항 주의는 패배주의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죄수에게 뇌물을 받아먹을려는 인간 말종 벨릭스의 총독이 나옵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물음에 정중히 대답해 줍니다. 소리지르며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는 것, 상대가 악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무저항 주의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1등하는 아들과 꼴찌하는 아들 중 누가 더 가치가 있습니까. 돈 많이 버는 남편과 돈 하나도 못 버는 남편 중 누가 더 가치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가운데는 다 똑같은 아들입니다. 뿌리는 사랑에 있습니다. 돈 많이 벌든 그렇지 아니 하든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시집 잘 못 가서 불행하다는 것은 제국의 논리입니다. 좋고, 싫을 수는 있고,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렇지만 남편으로서 가치는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 선을 행하는 자 중 누가 더 가치가 있습니까.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관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무저항 주의입니다. 마귀의 논리인 돈이 먹히지 않고, 폭력이 먹히지 않습니다.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폭력 앞에서 저항치 아니하고 십자가를 택했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공포에 떱니다. 세상에서 가치 없는 사람인데 계속 존중해 줍니다.  결국 상대방이 존중해 주는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몸부림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사랑의 논리는 모든 인간은 선하고 악함이나, 힘있고 없음이나, 돈 있고 없음이나 그 속에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영원성이고 기독교 무저항 주의 입니다. 그래서,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터 킹 쥬니어 같은 사람들이 승리한 것입니다. 세상의 힘이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미국의 정치 혁명인 오바마의 당선 또한 기독교 무저항주의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추구합니다. 리차드 포스터가 쓴 책 제목인 '돈, 섹스, 권력' 은 인간 3대 욕망입니다. 욕망과 싸울려고 하지 마십시요. 욕망이 있을 때는 싸우지 말고 바라 봐야 합니다. '돈, 돈' 하는 사람, '대학, 대학' 하는 사람, '권력, 권력' 하는 사람들은 상처이며, 열등의식입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권력'을 추구합니다. 나폴레옹도 형만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기 위하여 권력을 추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외로워서 몸부리치는 사람은 '섹스' 에 매달립니다. 욕망과 싸우지 말고 자신을 바라볼 때 불쌍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 분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미우라 아야꼬의 '양치는 언덕' 에 나오는 료이치 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나아가서 손 내미는 인생이 됩니다. 사랑은 십자가를 만나야 완성이 됩니다.

 

*기도

내안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기억에 메여 있지 않고, 미래의 두려움을 떨치고, 오늘 주신 감격 속에 살게 하시며, 하나님 관점으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 그 분께 당당히 나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