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고전 14:1-19/ 분명한 언어로 정확히 말하라/ 전병욱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18:20

고전 14:1-19/ 분명한 언어로 정확히 말하라(27:03)

고린도전서 14장은 예언의 은사와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3가지 메시지를 붙들고자 합니다.

1. 비교의식을 버리라
은사는 사역을 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청소를 시킬 때에 청소도구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할 때 도구로 주시는 것이 은사입니다. 일이 다르기 때문에 은사가 다른 것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사에게는 근본적으로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더 나은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은사가 있을 뿐입니다.
사자는 독수리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서로 환경과 사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신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은사를 부러워하고 비교하다보면 스스로 불행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목회자들조차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성도를 품을 수 있습니다. 건강함이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명을 2가지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내용으로 들어가면 3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가 깡패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싸우기 전에 자신의 몸을 병으로 긋고 시작합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음에 공포를 느낍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몸을 함부로 다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이 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비로소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삼일교회 황교수님이 연변과기대 조선족 학생들의 어느 날 밤 엠티 광경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을 밤새 부르면서 눈물짓더라는 것입니다.
사랑받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움에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게 될 때 비로소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이 땅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를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절대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생각되는 사람은 백설공주 계모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며 묻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
그에게 있어 새벽묵상과 큐티는 거울에게 묻는 것입니다. 백설공주는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 일 것이고, 계모는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일 것입니다.
왕비였고, 백설공주와 비교할 정도면 기초적인 미모와 은사를 받았을 것입니다.
불행했던 이유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 나이임에도 비교를 하며 좌절했다는 것입니다.
그 나이가 되면 그 정도의 가짐에 감사하고 내면의 세계로 다른 것으로 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비교의식은 우리 자신의 받은바 은사를 망치게 만드는 독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의 자세가 우리의 자세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가지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고귀함을 깨닫고 내게 주신 은혜를 가지고 충성 다하는 믿음의 종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감정과잉을 조심하라

방언이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16개국어로 터져나오는 외국어 방언입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강남, 종로 외국어학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 공부해야 합니다. 본문의 방언은 이와 달리 방언기도입니다.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2절) 1960년8월15일 타임지 종교란 특집으로 방언을 다루면서 방언을 받아 적고 해석해 놓았는데 전혀 알 바가 없었습니다. 방언이란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2절)
방언기도의 유익은 개인적인 것이지 사회적인 것은 아닙니다. (4절,9절)
바울도 방언의 은사가 받았듯(18절) 은사이기에 금하는 태도는 있을 수 없지만 개인적이기 때문에
전체의 유익이 없는 곳에는 절제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회학적으로 방언은 응석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감정적인 언어입니다.
응석이란 언어자체에 의미가 없어도 부모는 알아 들을 수 있듯이
방언으로 오랫동안 이야기 하면 감정으로 토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를 보십시요(삼상 1:13). 방언은 이성의 언어가 아닌 감성의 언어입니다.
응석의 언어로 하나님께 드릴 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형제보다 자매 중에서 탁월성이 있음에도 5년,10년 동역하는 중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일을 그르칠 때가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감정과잉으로 인한 언어들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최근 '에덴의 동쪽' 을 보면 감정에 복 받친 인간들이 다 쏟아붓습니다. 진짜 에덴의 동쪽으로 보내버려야 합니다.
지지난주의 국회의원들을 보십시요. 전기톱과 해머 등을 들고 나오던 이성의 인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사회가 생각이 없어지고 참는 훈련을 하지 못합니다.

세계사적으로 민족의 특성을 보십시요. 동남아, 남미처럼 격정적인 민족과
영국, 중국, 유태인들처럼 냉철한 민족이 있습니다. 두 분류의 민족이 싸운 다면 여러분의 미래를 맡긴다면 어느 쪽에 걸고 싶습니까.
냉정한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도 , 믿음 생활도 감정과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이성이 올바로 서 있을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초월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목을 잘랐더니 흰 피가 나오고,
천주교에서 신상에 피가 흐른다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신앙체험들이 있습니다. 그 중 방언이 있는데
너무 크게 확대해석해서 문제가 됩니다. 감정을 통해서 말씀으로 가야는데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면서 타락이 오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베드로가 환상을 봅니다. 신비 체험후에 그 내용에 대한 떠듬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초월은 말씀으로 가라는 화살표입니다. 그럴 때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감정적으로 뜨거워질 때에 마지막에는 말씀이라는 냉철함 속에서 다독거릴 줄 알 때에 건강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3. 분명한 언어도 정확히 전달하라
예언이라는 것은 요즘 언어로 설교라고 하면 틀리지 않습니다.
로버슨, 풀리머 이라는 신학자는 예언의 은사를 전도의 은사로 해석했습니다.
교회가 건강해지고 부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정확히 전달하여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예언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설교가 쉬워야 하고, 선명하고, 구체적이 되어야합니다.  깨달은 말씀으로 다섯 마디 명확하게 증거할 때에 일만 마디 방언으로 하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19절)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십시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마 13:23) 가 열매를 거두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한 주간 뉴스토픽이었던 '미네르바' 구속사건이 있었습니다. 공고에 전문대를 나온 78년생 박대성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글에 온 사회가 들썩거리며 경제대통령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미네르바를 보면서 독서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피터드러커도 3년만 그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를 하면 프로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학학벌사회의 무능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공분야에 삼십여 학점을 듣고 마지못해 공부한 것이 남는 것이 있습니까. 의식을 가지고 3년 동안만 깊이 파면 이 정도의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수준으로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는 현장에서 독서를 하며 깊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회 경제전문가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했는데, '미네르바'는 구체적인 사안들을 책임 있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물론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이 몇개 맞으니까 흥분하며 동조했습니다. 미네르바현상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방언의 사회입니다.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고 흐릿하게 이야기 합니다.

스펄전 목사의 '설교노트' 라는 책을 보면 '세상 죄를 지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라는 5분정도 설교로 시험방송 중에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스펄전 설교의 강점은 우리에게 필요함에 명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 소리를 듣고 어떻게 사람들이 움직이겠습니까.

* 기도
오늘의 삶 속에서의 나 자신의 탁월함을 내세우며 비교의식을 버리고,
감정과잉이 아닌 감정적으로 뜨거워질 때에 말씀의 냉철함으로 무장하고 분명한 언어로 전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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