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이혼과 재혼/고전7:8-16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18:06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으면서, 특히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가슴이 아픈 것은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음으로 많은 어린 아이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가난할 때는 가정이라는 마지막 보루가 있어서 비록 배고팠지만, 마음으로는 배가 불렀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물질로는 풍부한 세상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피폐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 세계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2003년 1위에서 2004년 2위로 낮아졌다고는 하나 ‘교통사고 왕국’의 오명은 아직 벗지 못하고 있고, 한때 세계 최대 양주 수입국이라는 외국인의 조롱을 받았습니다.

특히 한국인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통계나 이혼율이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선진국형으로 가속화하는 현실도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자살과 이혼은 단지 본인의 불행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강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이처럼 큰 충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 어느 것보다 가정을 단단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7장에서 결혼과 가정에 대해서 많은 교훈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7장을 연구할 때는 반드시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결혼이나 좋은 가정을 꾸미는 것이 삶의 가장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은 결혼하여 가정을 잘 꾸미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결혼이나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기에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러나 가정 하나를 잘 꾸리는 것이 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어느 분은 일생 내 가정, 내 남편, 내 자식을 위해서만 헌신하다가 인생을 끝냅니다. 어느 엄마는 오직 자식 하나 잘 되는 것만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처럼 보입니다. 젊은 남편을 한국에 기러기 아빠로 여러 해를 둔 채, 어린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가서 조기유학을 시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고독을 이기기 못해 결국 술주정뱅이가 되게 합니다.

그러면 이다음에 아이가 커서 자기를 위해 희생한 어머니의 은혜를 알아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나중에는 아버지를 병들게 내버려 둔 어머니를 향해 원망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어떻게 자식 하나만을 위해서 세상을 살았느냐?”라는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 생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녀를 키우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가정을 꾸리는 것도 오직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고전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우선이요, 그 다음 결혼이나 가정이 차선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7장을 연구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7:1-7에서 결혼의 목적을 설명했다면, 9-16절에서는 결혼생활의 실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이혼 문제와 재혼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재혼과 이혼에 대해서 어떻게 교훈했습니까? 먼저, 재혼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8절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 했습니다.

결혼하면 여러 가지 일에 매이게 되고, 피차간에 매이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는 교훈입니다. 과부들도 굳이 재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에 매이고 삶의 구속을 받다 보면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게 되고, 주의 일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욕을 절제할 수 없을 때는 재혼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9절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혼자 깨끗이 살면서 주님을 위해서 온전히 섬기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지만, 그러나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마음으로 죄를 짓고 더 나가서는 음란죄를 지을 바에는 차라리 차선책으로 결혼이나 재혼함으로 부부가 함께 헌신하는 것이 낫겠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4월 초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어느 분은 독신의 은사가 있어서 얼마든지 성적 욕구를 절제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성적 욕구를 억제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나이가 먹어도 강약의 차이가 있을 뿐 성적 요구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좀 야한 이야기지만 이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분이 인간의 성욕을 나이별로 표현했는데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20대는 성냥불로, 비비기만 해도 불이 붙고, 30대는 장작불로, 붙었다 하면 끄기가 쉽지 않습니다. 40대는 연탄불로, 붙이기는 힘들어도 붙었다 하면 밤새 가고, 50대는 담뱃불로, 힘껏 빨아야 불이 붙습니다. 60대는 화롯불로, 죽은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살아있고, 70대는 반딧불로, 불도 아닌 것이 설치기는 밤새 설칩니다. 80대는 포스터불로,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이고, 90대는 도깨비불로, 있다고는 하는데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이가 들면 점점 성욕이 감퇴됩니다. 그러나 어느 분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강한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성적인 욕구가 있는 것이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그것 때문에 결혼이 이루어지고 자녀들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더 성적 욕구가 강하다고 해서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혼자 살므로 그 욕구를 감당하지 못하여 음란죄를 짓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신앙생활에 전념할 수는 없으나 결혼하거나 재혼하여 죄를 짓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나 이혼 문제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는 엄격합니다. 10-11절은 부부가 다 신자인 경우 이혼문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절대로 이혼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배우자가 간음한 경우에만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다 신자인 경우에는 어떤 경우라도 같이 살아야지 이혼하면 안 됩니다.

신자끼리 결혼식을 올릴 때 주례자는 신랑과 신부로부터 혼인 서약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이제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 되었음을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공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세상의 법 위에 있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만약에 신자끼리 결혼했다가 간음한 경우 외에 다른 이유로 이혼을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이상, 문제가 발생해도 거기에서 길을 찾아야지 다른 길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결혼하고 나서 “내가 정신이 나갔지, 어떻게 이 사람과 결혼을 했나?”라고 후회를 합니다. 더 나가서는 중매쟁이를 원망하고 주례해준 목사님까지 원망을 합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부부들에게 엄숙히 강조하기를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고 못을 박으셨습니다. 신자끼리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짝을 찾아서 한 몸으로 맺어 주신 것입니다. 부부는 이상하지요? 좋은 때는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지만,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원수가 따로 없습니다.

부부가 살다보면 항상 밝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폭풍이 부는 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한 일은, 때로 성격이 맞지 않아 싸우고 어느 때는 당분간 별거한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기다리라는 것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11절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 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어치든지 하나님이 짝 지워 주셨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면서라도 다시 합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너무 빨리 이혼을 결정합니다. 처음에는 부부가 아주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하면서 자기 자존심을 너무 높이려고 하다 보니, 부부 싸움이 크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국민일보 이지현 기자가 쓴 「가정행복 자수를 높아는 66가지 지혜」라는 책에는 목동에 사는 어느 주부의 고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노끈을 버리지 않고 모으는 자기를 보더니 남편이 노끈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겠다며 궁상을 그만 떨라고 비난조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이 상해서 ‘이 집에는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모으는 사람 따로 있나?’라고 응수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당신이란 여자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신경질 부릴 것을 부려야지. 평소에 잔병이 많은 것도 그 놈의 성질 때문이야.’라는 것입니다. 그 날 우리 부부는 노끈 모으는 것에서 시작해 서로의 성격과 건강까지 언급하며 싸움을 했고 그 상처는 오래 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문제전문가들은 공정한 부부싸움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삼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능력 없는 남자” “집에서 놀면서 그것도 못해.” “아무래도 우리는 잘못 결혼한 것 같애.” “돈 돈 돈… 그 놈의 돈 때문에” “당신 집안은 왜 그 모양이야.” “이제 지긋지긋해요. 이혼합시다.” 등등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부싸움도 당면한 문제의 링 안에서 해야지, 다른 문제까지 거론해서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젊은 부부들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가 나중에는 서로의 성격이나 신체적 결함, 혹은 과거의 실수를 들쳐 내어 공격하고 더 나가서는 시댁이나 친정까지 들먹거리며 닥치는 대로 떠들어 댐으로, 결국 서로가 만신창이가 되게 합니다. 결국 누구인가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차라리 이혼하자.”라고 소리치고 다른 한 쪽에서도 “좋다. 이제 나도 지쳤다.”라고 맞장구침으로 그 날 밤으로 짐을 싸고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 누구인가 조금만 참아도 그런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젊은 부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믿는 부모라고 하면서 한 수 더 뜨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네 처를 반대하지 않았는가? 당장 갈라서라. 이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이 여자가 아니냐?”라고 부추킵니다. 얼마나 잘못된 신앙적인 태도입니까?

누구보다도 부부가 이혼함으로 어린 자녀나 사춘기에 있는 자녀들은 어떻게 됩니까? 일생 상처를 안고 삽니다. 무엇보다도 믿는 부모들이 서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성격 차나 자존심 때문에 이혼한 것을 보고 그 자녀들이 신앙의 길을 떠남으로 영적으로 실족하게 만든 죄는 어떻게 받겠습니까? 아니 됩니다.

사정없이 폭력을 휘두른다든지, 바람을 피우는 경우 외에는, 대부분의 이혼한 부부들은 대단히 후회한다고 합니다. 오래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나온 기사에 의하면 이혼한 사람은 또다시 이혼하기가 쉽고 두 번째 이혼할 때는 처음의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처음 결혼한 사람이 가장 자기한테 맞는 것을 깨닫고 이혼을 대단히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서든지 내 편에서 이혼함으로 남편이나 아내를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또한 12-13절 말씀은 불신자와 사는 경우에 이혼 문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12절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13절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자들 중에는 남편은 예수님을 믿는데 아내는 믿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아내는 예수님을 믿는데 남편은 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불신자 남편이 예수님을 믿는 아내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헤어지지 말고 함께 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불신자인 아내가 예수님을 믿는 남편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헤어지지 말고 함께 살아야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결혼할 때는 둘 다 불신자였는데 결혼한 후에 한 편이 먼저 예수님을 믿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절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신앙 문제 때문에 먼저 헤어지자고 요구할 때는 헤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15절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이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의 신앙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헤어지자고 요구할 경우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가장 우선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한 번 불신자인 아내나 남편과 화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결혼한 후에 한 편이 먼저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믿지 않는 편을 구원하는 일에 최대한 노력하여서 같이 믿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헤어질 수는 있지만 그러나 전도하여서 같이 믿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 좋은 모습입니다.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을 믿도록 만들기 위해서 모든 희생과 수고를 각오하셔야 합니다. 그 심령을 악한 원수 사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혼을 사탄의 권세에서 돌이키게 만든다는 것은 실로 힘든 일입니다.

그런 만큼 눈물의 기도가 필요하고, 모든 수고와 희생이 필요 합니다. 그러는 중에 믿지 않던 배우자가 믿게 됨으로 거룩해진다면 이처럼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14절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16절에서도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라 했습니다. 믿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아내가 구원을 받게 되고, 믿는 아내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남편이 구원받아 거룩하게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는 쪽에서 헤어지자고 요구하더라도 성급하게 이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다 내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말하기를 “아내가 믿는 것을 반대 안 하고 같이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그 남편은 50% 교인이 아니겠는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교회 어느 집사님의 남편 이야기를 합니다. 한번은 그 남편에게 교회에 나오라고 하니까,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목사님, 저는 죽어서 분명히 천당갈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는 안 나가지만, 내가 주일날 집을 봐주지 않습니까? 토요일 날 술을 많이 먹고 주일날은 몸이 피곤해서 집을 봐주고, 내가 헌금할 돈도 주고 교회 봉사하라고 시간도 주고 이만하면 집 사람 치마꼬리 붙들고 천당 가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랍니다.

그런 사람은 절반은 교인이 되었으니 조금만 더 정성을 나타내십시오. 무엇보다도 이혼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자녀들 때문입니다. 14절 하반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헤어지고 이혼을 하면 그 자녀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결손 가정에서 자란 자녀라는 아픈 기억이 평생 따라 다닙니다.

깨끗한 자녀, 경건한 자녀를 위해서라도 이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를 구원할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한번 부부가 된 이상은 끝까지 참고 상대방을 구원시키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남편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참고 인내한 결과 남편을 전도하여서 주의 종이 되게 하고 훌륭한 장로, 집사 되게 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소망교회 어느 여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자기 남편은 다 좋은데 술 먹는 것과 교회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남편 좋게 하느라고 얼굴 찌푸리지 않고 정성껏 술상을 차려주곤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남편이 친구들을 데리고 왔기에 술살을 봐주고 부엌에 나가 들으니까, 남편이 열심히 아내 칭찬을 하더랍니다. “아내로는 그저 예수 믿는 사람이 좋아. 내 마누라 보라구.”라면서 칭찬을 늘어놓더랍니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말하기를 “너는 교회 안 다니지만, 네 각시는 꼭 예수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너무나 고마워서 더 잘 해주었더니 결국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다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자녀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아 마음이 상한 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그 가정의 선교사라고 생각하십시오. 남편과 자녀들도 다 구원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 가정을 구원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 부부들이나 가정들이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최우선을 둔다면 하나님은 그 부부와 가정들을 책임져 주시고 강하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가정들이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서 밀알로서 썩어지십시오. 그러면 마침내 30배, 60배, 100배의 구원과 복의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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