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어드린 본문 고린도전서 8장 1절부터 13절 까지의 내용은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질문한 문제에 대한 사도바울의 답변입니다.
지금부터 약 1900년전 고린도교회가 세워진 고린도라는 도시는 우상숭배로 가득찬 도시였습니다.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시편 115:4-7절에 보시면 우상이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물건으로→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존재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존재,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존
재,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는 존재,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에 보시면 약 40여종의 우상의 명칭이 등장합니다.
불레셋이라는 나라에는 다곤(삼상 5:2)이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아람이라는 나라에는 드라빔(창 31:19)이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모압이라는 나라에는 그모스(민 21:29)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이라는 나라에는 담무스(겔 8:14)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암몬 이라는 나라에는 밀곰(왕상 11:5)이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시돈이라는 나라에는 아스다롯(왕상 11:5)이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이같은 하나의 물건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을 가리켜 우상
숭배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약 1900년전 고린도라는 도시에는 특별히 비너스,라는 여자 신을 섬기
는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여신. 방종스러운 정욕의 여신으로 알려지고 있음)
당시 고린도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전을 찾아가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
립니다. 제물을 바치면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 짐승의 일부는 제사를 집례한 제
사장에게 주었고, 또 일부분은 제단에서 불사르고, 일부분은 그 제물을 바친 사람
의 소윰불로 사용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주어진 물건은 일반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고린도라는 도시에서 예수를 나의 구세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온 신자들에게 있어서 우상 앞에 드려졌던
제물을 먹어도 되는가? 아니면 먹어서는 아니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실제적이
고 예민한 문제 였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문제를 쉽게 생각 해 볼 수있습니다.
제사 지낸 음식은 예수믿는 신자가 먹어도 되는가? 아니면 안 먹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사도바울 선생님의 결론은 한마디로<덕을 세우
는 성도>가 되라 입니다.
저는 오늘 <덕을 세우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덕을 세우는 성도라는 말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성도라는 뜻입니다.
동산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나 좋은대로만 살지 마시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덕스
러운 성도들로 성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덕을 세우는 성도>입니까?
1) 다른 형제를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
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우상의 제물에 대해 나름대로 지식을 갖고 있
었습니다. 우상 앞에 바쳐졌던 고기도 시장에 내어놓아 파는 고기는 먹는다 해
서 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상이 아무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또한 그 우상 숭배자들의 집에 차려진 상에있는 그 고기도 먹는다 해도 해 될 것
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이 아무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안에는 우상
앞에 드려졌던 고기는 먹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음식을 먹는 행위는 곧 우상숭배를 인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에게 문의했던 것입니다.
이에대해 바울은 대답했습니다.
1절 하반절에 보시면,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신앙이 없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사랑이 없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신앙없는 지식이나, 사랑없는 지식은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고, 나아가 남에게 상
처를 주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결핍되고 신앙이 없는 지식은 마귀의 도구가 되어 나쁜글을 써서 사람의
마음을 부패 시킵니다.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 사람들을 다치게하고 죽입니다.
불순한 사상, 부도덕한 사상은 사람의 마음에 심어주는 글을 써서 수많은 영혼들
을 지옥에 몰아 넣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지식은 언제나 건설적이어서 모
두의 행복을 증진 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동산의 성도님들은 무슨말이나 일이나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유익을 위
하여 하는 덕을 세우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슨 음식을 먹는 일에 있어서도 자기 지식대
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하게 행동합니다.
겸손의 반대가 무엇 입니까? 교만입니다.
무엇이 교만입니까? 2절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은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나는 다 안다. 내가 아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라는
뜻 입니다. 자만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무엇이 겸손입니까? 항상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겸손 입니
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사에 겸손합니다.
고린도전서 13:4절 이하에 보시면, -사랑은 오래 참고...-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다는 지식을 가진
사람과 먹을 수 없다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다툼이
있었습니다. 비방이 있었습니다. (서로 판단하고 남을 비방하는)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이런 교만에서 나오는 악을 교회안에서 제거하기 위해 덕을
세우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 하셨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이란 어떤 사
랑입니까? 겸손히 오래 참는 것입니다. 모욕을 당했을 때 오래 참는 것이 덕을
세우는 사랑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상처를 입었을 때 오래 참는 것이 덕을
세우는 사랑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도전을 받았을 때 오래 참는 것이 덕을 세우는 사랑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이란 또한 어떤 사랑입니까?
온유하며→온유란 가혹하거나 까다롭거나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도전과 화 나게 하는 상황에서는 사랑은 온유하고 부드럽습니다. 증오심은
가혹하게 만들고 말이나 행동을 거칠게 하고 노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친절하고 선을 행하고자
시도 합니다. 가혹하지 않고 온유할 것입니다. 남의 행복을 바라므로 친절하고
정중(Courteous) 할 것입니다.
예의 바르게 남의(다른사람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산의 성도님들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시기심을 내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즐거워하고 저들의 행복이 증가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 다른 사람의 지위, 명성, 부, 다른사람의 가정 화목 등이 증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이란 남이 불행 해 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들은 남들이 잘 되는 것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남들이 잘되고, 행복해지고 유명해 지는 것을 불안해 하
며 불만스럽게 여깁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에 투덜댑니다.
남들이 우월한데 대하여 화를 냅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 남들이 건강하면 시기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무시를 당할 때 남들이 존중을 받으면 시기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실망할 때 남들이 행복하면 시기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미천할 때 남들이 성공하면 우리가 시기하기 쉽습니다.
남이 나보다 더 좋은 집을 가졌을 때 우리는 시기하기 쉽습니다.
다른사람이 나보다 좋은 집이나 학식을 가졌다면 그것은 저들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남들이 가진 것이 저들의 근면과 노력과 성실 때문이라면 우리는 저들을 더
욱 존중해 주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그런 이웃들을 불행하게 만들고자 해서는 아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서 저들을 축복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겸손히 배워야 합니
다. 무엇을 배워야합니까? 그들의 근면과 노력과 성실을 배워야 합니다. 믿습니
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축복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덕을 세우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경솔한 행
동은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존중합니다. 사랑은 남을 사랑으로 관심을 기울여 생각합니
다. 사랑은 자기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일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자 합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바로 존대하고 저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사랑은
삶의 모든 관계에서 바로 행하도록 만듭니다.
사랑은 더러운말, 불결한말, 외식, 상스러운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런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상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기적이 아닙니다. 사랑
은 남을 희생 시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참 사랑은 자기부인과 자기
희생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덕을 세우는 참사랑은 타인의 행복을 원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은 성내지 아니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은 성급하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은 차분하고 진지하며 인내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갑자기 감정을 폭발
시키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찬찬히 살피고 남의 동기를
좋은 방면으로 해석하고 그 모든 일이 분명하게 밝혀지기까지 인내로 참고 기다
릴 것입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동기를 최대로 좋게 해석 하고자 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남들에게서 악한 동기를 찾지 아니하고, 남을 비난하거나 중
상하지 아니합니다.
사랑은 쉽사리 성내지 아니할 뿐더러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경우들에서 조차도
악한 의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내가 상처를 입은 말이나 행동에서
도 좋은 방향으로 우리는 해석하고자 할 것입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은 그의 동
기나 행동 의견들을 가장 확실한 증거가 나타 나기까지는 가장 좋게 해석 하고자
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은 관대하게 평가하고, 관대하게 판단하게 합니다.
동산의 성도님들은 좋게 생각하고 관대하게 평가(판단)할 줄 아는 성도님들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타인의 악을 보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타인이 잘 되는 때에 기뻐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남의 악을 기뻐하지 않고 남의 미덕을 기뻐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저들이)다른사람이 잘 될 때 기뻐합니다.
만일 우리 동산교회 성도님들 부터라도 덕을 세우는 사랑으로 행한다면 우리 가
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가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덕을 세우는 사랑의 성도님들로 변화되는 이시간 되시기를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충만 하면 덕을 세우는 사랑의 성도 될 수 있습
니다. 성령 하나님을 순간 순간 사모하여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사람
을 사랑하는 덕을 세우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을 참는다는 말의 뜻은 모든 것을 덮는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다른 이들의 허물을 숨긴다는 뜻입니다.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실수와 잘못은 숨길 때 오히려 재인이나 공중에 덕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
다. 동시에 모든 것을 참는다는 말은 견딘다(관용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덕을 세
우는 사랑은 타인의 허물이나 실수에 대해 알리거나 보복하고자 아니한다는 뜻입
니다. 숨기고 인내하고 참고사시는 동산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 합니다. 또한 덕을 세우는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말은 타인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방면으로 본다는 뜻입니
다. 덕을 세우는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모든 것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뜻
입니다. 덕을 세우는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람들의 핍박을 견디고, 비
방을 견딥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견딥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
랑하는 성도 되어 덕을 세우는 동산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덕을 세우는 성도란,
2)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는 성도 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사실 우상이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헛된 물건
에 불과 합니다. 온 우주만물은 유일하신 하나님이 민드셨으며 주관하고 계십니
다. 만물이 그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내신 것입니다. 또
한 우상이란 이세상에 아무 것도 아닌데 어떤 음식을 우상의 제물이었다고하여
먹지 못할 것입니까?
대답은 너무 분명합니다. 그 음식을 먹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음식은 하
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3-5절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
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
그러나 이런 지식을 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v7)
그러므로 이런 진리의 지식이 없는 약한 형제들이 양심에 꺼리끼면서 제물을 먹
게 될 때 그 약한 양심이 더러워지고 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음식물
때문에 형제를 실족케 한다면 그런 식물은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v13)
9절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 모든 식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먹어도 된다는 지
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그런지식이 없는 사람들에
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있고 믿음이 강한 성도라도 지식 없고 믿음 약한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도록 먹을 권리와 자유를 포기할 줄 아는 덕을 세우는 성도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지식과 믿음이 있는 사람이 우상의 집에 앉아 제물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지식도 믿음도 약한 사람이 그런 것을 보고 양심에 담력을 얻어서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지식있는 자가 지식을 앞세우다가 그 지식으로 약한자를 넘어지게 만드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나는 먹어도 될 만한 지식과 믿음이 있지만 약한 형제들을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덕을 세우기 위해 나의 먹을 권리를 영원히 포기하겠다.
얼마나 덕스러운 믿음 입니까?
지식이나 믿음 약한 형제들을 실족 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바울의 모습이 곧 우리 동산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될 수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덕을 세우는 동산의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동산의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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