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1-6장에서는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문제점을 중심으로 말씀했지만, 7장부터는 고린도 교인들이 편지로 문의해 온 신앙의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7장에서는 결혼 문제(7:1,25), 8장에서는 우상 음식을 먹는 문제, 12장에서는 성령의 은사 문제, 15장에서는 죽은 자의 부활 문제, 16장에서는 유대인들을 위한 연보 문제 등을 취급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7장 1-16절에서는 독신 생활과 결혼 생활, 이혼과 재혼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생사 중에 참으로 중요한 문제는 결혼 문제입니다. 어느 분은 결혼 생활을 잘 함으로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지만, 어느 분은 결혼 생활이 원만치 못함으로 날마다 고통을 받는 삶을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러시아 속담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을 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결혼하는 것이 인생사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청년들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감정이 이끄는 대로 결혼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후회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결혼한 이상, 원만한 결혼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결혼 생활의 목적을 세 가지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1. 결혼의 목적은 음행을 막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2절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너무 연약하다는 말입니다. 인간에는 기본적인 몇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싶은 식욕, 피곤하면 자고 싶은 수면욕, 남녀 간에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고 싶은 성욕이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는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식욕이 있음으로 음식을 먹고 건강하고, 수면욕이 있으므로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고, 성욕이 있으므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가 한계를 넘어서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먹고 싶다고 해서 남의 것을 가져다 먹으면 도둑질이 되고 너무 잠만 자고 일하지 않으면 게으른 죄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일부일처제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의 목적이 없이 성적인 충동이 느껴지는 대로 이 남자, 저 여자와 육적 관계를 가지는 것은 음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남녀는 서로의 사이에 음행이 틈타지 않도록 성적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남편은 그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여기서 말하는 의무는 성적인 것을 말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잠자리를 요구할 때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어느 부부가 잠자리를 거부하고 자기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려고 하면 부부 간에 사랑과 신뢰가 무너지고, 거기에서부터 사탄이 틈을 타서 음행이 기운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느 아이가 어머니가 밥을 안 주어서 가게에서 빵을 훔쳐 먹었다면 아이의 잘못도 크지만, 그 엄마의 책임도 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나 아내들의 경우에 그 절반의 책임이 성적으로 충족해 주지 않은 상대방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부부들이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지 않고 순전히 외도한 남편이나 아내 탓만 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느 남편이 아내가 잠자리를 거절했다고 합시다.
그러므로 성욕을 참지 못해 거리에 나가 다른 여인과 성관계를 맺으므로 음행 죄를 저질렀다면 그 아내도 책임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시대를 보십시오, 얼마나 음란의 물결이 흘러넘치고 있습니까? 우리 나이 많은 분들도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음란 사진, 음란 비디오나 영화, 음란 사이트가 넘쳐나고 여인들도 점점 노골적인 복장을 하고 다닙니다.
그런 시대에서 부부가 성적으로 충족을 주지 못하므로 자기 배우자가 음행 죄를 저지르므로 구원의 커녕 타락의 길로 빠져든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고전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본문 5절에서 분명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5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 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부부간에도 잠자리를 따로 함으로 분방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작정해 놓고 기도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은 분방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부부가 서로 합의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작정 기도 기간도 며칠 정도라야지, 몇 십 일, 몇 달 씩 하면서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음으로 남편이 그 사이에 음행 죄를 저지른다면, 특별기도를 통해서 은혜와 복을 받으려는 노릇이 오히려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와서 특별집회를 인도했던 이희범 목사님은 그의 저서 「부부 행복학교 이야기」에서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는 부인들 중에 성생활을 더럽게 여기거나 유치한 것을 여기는 경향이 많다고 했습니다. 어느 남편과 상담했더니 자기 아내는 성생활을 추잡하고 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도 안타까워서 물어보기를 “그러면 왜 나와 결혼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아기만 가지면 돼요, 이런 일은 창녀들이나 하는 것으로 하나님도 싫어하실 거예요?”라고 한다고 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부부에게 복으로 준 것을 창녀들이나 하는 짓으로 믿고 있다니 아주 잘못된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어느 장로님은 믿음이 좋고 기도 많이 처녀와 결혼한 것은 좋았지만 결혼 생활은 전혀 재미가 없답니다.
자기가 성적으로 요구하면 장로가 기도는 안 하고 밝히기만 한다면서 그럴 시간이 있으면 말씀 읽고 기도나 열심히 하라고 윽박지르므로 무안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남편이 중직이어서 탈선을 하지 않겠지만, 믿음이 없는 남편이 그런 식으로 무안을 당하면 탈선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결혼을 하지 말든지, 공연히 한 남자만 일생동안 골탕을 먹이는 꼴입니다.
사랑하시는 부부 여러분들이여, 결혼 제도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부부 간의 성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 줄 알고 부부 간에 서로 의무를 잘 감당하셔서 사랑이 넘치는 부부와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결혼의 목적은 부부 간에 서로 돕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짝 지워주시면서 창2:18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신 후에,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든 다음 짝 지워 주시면서 창2:24에서 “이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결혼은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로 자녀가 부모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되고, 둘째로 부부가 연합하고, 셋째로는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영과 혼의 결합도 뜻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육체적인 결합, 즉 성관계를 뜻합니다. 고전6:16에 보면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라 했습니다.
창녀와 성관계를 맺으면 창기와 한 몸이 된 것과 같다고 한 것을 보아,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성적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결혼하는 순간부터 이제는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전히 두 사람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혼자 행동했으나,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같이 의논하고 같이 행동하여야 됩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이 어렵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결혼하는 순간부터 행복이 넝쿨째 열릴 줄 알지만, 아닙니다. 결혼하는 순간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매이게 됩니다. 부부 간에 누리는 행복도 많지만, 동시에 부부 간에 서로 해야 될 의무도 많아지는 것이 결혼입니다. 부부는 서로 돕기 위해 짝 지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젊은 부부들의 잘못은 도움만 받으려 하고 여전히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 마찰을 일으키다가 결국 견디지 못 하고 파탄을 만나기도 합니다. 최근에 가수 이승환 씨와 탈랜트 채림 씨가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했다고 합니다. 최고급의 호텔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릴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러워했습니까?
사실, 성격의 차 때문에 이혼했다고 하지만, 한 마디로 자기 자존심을 상대방을 위해 양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부부들은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합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실, 남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이희범 목사님의 책에서 보면 남녀는 근복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남자는 자존심으로 삽니다. 남자는 자존심만 높여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합니다. 반면에 여자는 말하는 재미로 산다고 합니다. 남성은 하루에 1만 2천 단어를 사용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두 배인 하루에 2만 5천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때로 여성들이 자기 친구와 전화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 학교 선생님, 남편, 교회 목회자, 강아지, 심지어 수퍼에 갔다가 넘어진 이야기, 백화점 세일 이야기 등 등 입니다.
너무나 시시한 이야기를 가지고 한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을 때 하는 말이 “얘, 우리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한답니다. 그처럼 여성은 말하는 재미로 삽니다. 그러므로 좋은 남편이 되려면 아내의 말들을 들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남자들은 결과 지향적인 반면, 여성들은 과정 지향적이라고 합니다.
백화점에 갔을 때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나타납니다. 남성들은 물건을 구입할 때 고르는 과정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합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척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저만치 서서 물어봅니다. “거, 좋네. 얼마요?” 상품을 팔려고 점원이 열심히 설명할라치면 다 듣지도 않고 “그거 하나 싸주시오.”하고 돈을 지불하고 삽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성들은 결과보다도 고르는 과정을 즐깁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첫 눈에 사는 법이 없습니다. 만져보고, 뒤집어 보고, 입어보고, 옆 사람에 어떠냐고 물어보고, 그런 뒤에는 슬며시 물건을 놓고 다른 상점으로 갑니다.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보며 시간을 보낸 뒤에 다시 와서 그 물건을 삽니다.
이러한 남녀의 특성의 차이 때문에 부부가 기분 좋게 쇼핑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말다툼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남편은 “나 원 참, 도대체 물건을 사러 간 거야. 값을 물어보러 간 거야. 이것저것 얼마냐고 물어보고 입어보고 해서 사는가 했더니 그냥 두고 다른 데로 가다니, 창피해서 혼났네. 다시 당신하고 쇼핑하러 가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에 아내가 저줍니까? 아닙니다.
“당신보고 쇼핑가자고 한 내가 미친년이지. 이건 물건을 고르게 하나, 값을 물어보게나 하나. 그냥 아무 거나 빨리 사가자고 하니 도대체 말이나 되요? 그러니 항상 속아서 사오지.”라고 쏘아댑니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많습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주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벧전3:7에서는 “남편들아 아내와 동거하기를 지식을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남편이나 아내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사정없이 비판하지 말고 도와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 속에서 부부는 점점 원숙한 관계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부로 짝 지어주신 목적은 서로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을 비판하고 고쳐주기 위함이 아니라 도와주게 하기 위함인 줄 믿어야 합니다.
이런 귀한 일화가 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세계적인 팝가수 셀린 디온이 가수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녀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맑은 음색을 지닌 ‘세계 최고의 여가수’로 불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고 가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인기정상을 달리던 그녀가 돌연 ‘부’와 ‘명예’를 거절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인 셀린 디온이 가수가 된 것은 열두 살 때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들고 한 음반회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지금의 남편인 안젤린이 빚을 얻어 음반을 만들어 주었고 셀린 디온의 매니저로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임으로 오늘의 자리까지 이른 것입니다. 셀린 디온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남편이 지금 후두암에 걸려 투병중입니다. 지금은 남편에게 내가 가장 필요한 시간입니다. 남편 곁에서 병간호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가수가 결코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제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내가 갚을 차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부의 모습이 아닙니까? 사랑하시는 부부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부부끼리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줌으로 아름다운 가정 천국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결혼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사명이 있습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고, 고전6:20에서도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소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나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고린도 교인 중 몇몇이 바울에게 서신으로 “신자들이 반드시 결혼해야 합니까?”라는 질의한 것에 대한 답변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함이 좋으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남자나 여자나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또한 7절에서도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할 수만 있으면 자기처럼 독신으로 사는 편이 낫다고 한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결혼했더라면 그처럼 많은 곳을 다니면서 선교할 수가 없었을 것이요, 순교 당할 때도 주저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결혼하면 가정에 매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매이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이나 자식에게 매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독신으로 살면 매일 것이 없기에 주님을 위해서 온전히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아무나 못 합니다. 독신으로 헌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신의 은사를 받아야 가능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혼자 살면서 너무나 성적 유혹을 많이 받음으로 큰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흔히 천주교회의 신부들은 참으로 혼자 살면서 가정에 매이지 않고 모든 시간을 하나님만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결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강요하다 시피해서 신부가 된 분들 중에는 고독과 성적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밤마다 너무 술을 많이 마심으로 알콜 중독에 빠진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밤마다 고민하면서 제대로 기도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결혼하라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혼하여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처럼 부부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동역자로서 헌신한다면 너무나 아름다운 일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독신으로 살든지, 결혼하여 살든지, 우리 성도들의 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아무리 부부 관계가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특별히 기도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분방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부에게도 결혼생활이 최우선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편에 따라 독신으로 지내든지, 결혼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을 우리 생의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사 우리가 모든 일에 주님의 강하신 도우심과 역사하심이 강하게 나타날 줄 믿어야 합니다. 미국 시카고에는 휘튼 칼리지라고 하는 명문 기독교 대학이 있습니다. 그 대학에는 브랭카드 홀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 2층에는 그 학교가 배출한 선교사들의 명단과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몇 사람의 사진에는 십자가가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의 삶을 살다가 순교를 하였다는 표시입니다. 학교 출신으로 선교지에서 순교한 선교사 중에 제임스 윌리어트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남미 에콰도르의 이오카 인디언 부족에게 선교하다가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한 기독교 잡지사 기자가 엘리어트 선교사의 부인에게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때 부인은 “말씀을 삼가해 주십시오. 비극이라니요? 제 남편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그 곳에 갔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 위하여 그 땅에 갔던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면서 남편이 휘튼 대학을 다닐 때 썼던 큐티 노트 한 부분을 공개했습니다. “결국은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결코 놓칠 수 없는 것도 있다.”
“결코 놓칠 수 없는 일을 위하여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 결코 놓칠 수 없는 그 무엇을 위하여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을 바치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젊음은 지나가는 것이다. 명성도, 자기만족과 쾌락도, 그리고 물질도 결국은 붙들고 있을 수 없다. 그것을 버리고 포기하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오 하나님! 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주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제 삶이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나를 불태워 주옵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위대한 선교사의 모습입니다. 또한 그러한 남편을 향해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선교사 부인도 너무나 위대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부부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주신 부부, 그리고 가정을 우리는 말씀대로 잘 가꾸어 감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식구들과 이웃들에게 향기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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