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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 2300주야와 성소의 정결

작은샘 큰물줄기 2018. 5. 29. 17:15

6. 2300주야와 성소의 정결

 

# 비평 박영관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는 다니엘 8장 14절을 그릇 해석한 데서 온 것이다. 안식교는 본절의 예언을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으로 보고 1844년 10월 22일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로 말한 것이다.”33

 

# 해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1844녀 10월 22일을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로 정하거나 말한 역사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1860년 지금의 명칭을 채택하고, 1863년에 교단의 형태인 대총회(General Conference)를 조직한 사실을 감안할 때, 186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러한 역사부터 만들었겠는가?
  그것은 183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교파적 재림운동의 지도자였던 침례교인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 1782~1849)의 경험이었다. 그는 안식일을 지킨 적도 없는 평생 침례고인이었다. 성소에 관한 그의 깨달음 가운데 해석은 올바른 것이었지만 적용이 잘못된 것을 확인하게 된 초교파적인 재림신자들은 십자가로 실망했던 제자들이 주님이 친히 가르치신 성경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확신에 이른 것과 같은 경험을(눅 24:45) 한 후에 깨닫게 된 것이 오늘날의 조사심판에 대한 안식일교회의 이해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잘못된 부당한 편견을 버리고, 진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제 성경에 입각한 2300주야 예언의 진실을 탐구해 보자.

 

  다니엘 7장의 해설인 8장
  잘 알려진 대로, 다니엘서는 강조점은 달리하지만 내용이 평행을 이루는 사중(四重) 구조를 이루고 있어, 상세(詳細)와 강세(强勢)를 더해가는 한편, 동떨어진 예언 해석의 일탈(逸脫)을 방지하고 있다[다니엘서 예언의 사중 평행 구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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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보아도 일목요연한 사중(四重)의 평행(平行) 구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독자적이고 즉흥적인 예언 해석을 피하고 밝혀진 기준에 따라, 신중하게 성서해석 원칙을 따라야 한다. 즉 11장을 해석하려 할 때는 8장의 기초를 확인하고, 8장을 바로 해석하기 원하면 7장에서 일치를 찾아야 하고, 7장의 경우 2장의 개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8장 14절의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는 말씀의 올바른 해석도 이러한 맥락(脈絡)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원칙에서 8장은 7장의 해설임을 감안하면서 7장과 8장의 중심(中心)을 찾아야 한다.


  가. 앞에서의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다니엘서 7장(9~14)절의 심판이 중세기를 주도한 작은 뿔인 중세 교황권이 몰락된 18세기[1798년) 이후, 재림전에 있을 사건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계시록 11장(19절)의 하늘 성전의 지성소가 열리는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때(15절)와 연관되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동시에 그것은 틀림없이 하늘에 이르게 되는 초막절 전에 있는 대속죄일의 조사심판인 것도 확인했다. 다니엘서 7장의 중심은 바로 이 작은 뿔의 역할과 재림전 심판에 있음이 문학적 구조[交㕚對句法]에서도 확인되고 있다.34

  나. 그러므로 이러한 대속죄일 봉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재림 전 조사심판의 배경도 하나님의 보좌가 차려진 지성소이며(출 25:22; 단 7:9), 행사의 내용도 7월 10일 대속죄일의 봉사와 같은 것이 기대된다.


  다. 다니엘 7장에서 조사심판과(9~14절) 연관된 작은 뿔의 무자비한 활동을 보고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므로 내 낯빛이 변하였”(7:28)다고 기록한 후 끝을 맺었다.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계속된 8장의 계시 내용이 다니엘의 이러한 관심사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즉 다니엘서 7장의 중심부(8~14절)에 작은 뿔의 활동과 조사심판이 나와 있듯이, 8장의 중심부(9~14절)에도 작은 뿔의 활동과 성소의 정결이 나타나 있고, 8장의 끝에도 받은 계시의 내용 때문에 또 다시, “혼절하여 수일을 앓”(27절)게 되는 등 7장의 마지막(28절)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라. 제시된 평행 구조 도표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적 로마제국인 이교(異敎)로마에 이어서 등장한 종교적 로마제국인 교황 로마는 실제로 일맥(一脈)으로 상통된 세력임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리자”, “땅 위의 하나님”,35 “왕중 왕”36으로 자처함으로 하나님을 대적(對敵)하는 작은 뿔, 곧 중세 교황권의 신원이 7장과 8장은 물론 11장에도 확연히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7장의 작은 뿔과 8장의 작은 뿔의 신원이 같고, 7장의 조사심판(9~14절)과 8장의 성소정결(13, 14절)도 같은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마. 7장의 조사심판(9~14절)이 대속죄일의 봉사 내용이며 8장의 성소 정결(13, 14절)도 대속죄일의 봉사와 배경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대속죄일의 봉사내용이 기록된 레위기 16장의 배경과 다니엘 8장의 배경이 흡사하다. 다른 절기와 같이 대속죄일의 정규 제물로 드려지는 수양과 수염소(레 16: ; 민 29:7~11)가 다니엘 8장의 페르샤[수양]와 헬라[수염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연관이다. 또한 레위기 16장에 기록된 대속죄일 봉사의 목적이,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taher · 타헤르]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정결하게[타헤르]”(레 16:30)하고, 성소 자체를 더러움에서 “성결케[타헤르]”(레 16:30)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니엘 8장의 중심인 14절에서도 비록 히브리어[ṣadaq]로 똑같은 말은 아니지만 동의어로 쓰고 있으며(욥 4:17; 17:9), 헬라어[칠십인역]번역으로는 똑같은 “정결하게하다”[katharizō]는 말이 쓰여, 결국 대속죄일의 봉사와 목적과 일치하고 있다.

  바. 또한 7장의 조사심판 장면에 “인자 같은 ”(13절), 곧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고, 8장의 성소 정결의 대화에서도 같은 분이 나타나셨으며(16, 17절), 동일한 배경을 반복하고 있는 11장 예언의 시종(始終)에도 대제사장의 특수 복장을 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심으로(10:5, 6; 12:6) 배경의 일치를 나타내고 있다(레 16:4).37

 

  작은 뿔과 2,300주야
  이처럼 일목요연한 역사적 배경과 예언의 조감(鳥瞰)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 8장의 작은 뿔을 7장이나 11장의 평행 구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동떨어진 존재로 분리시켜 적용함으로써 역사와 성경에 다 같이 어긋나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소개되고 있다.

 

# 비평 박영관
  “그것[작은 뿔]은 주전 175~164년 수리아를 통치했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를 말한다. 그는 유대인 성소를 헐어버리고 더럽혔으며(8: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8:11), 유대인들의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일을 금하고 대신에 이방인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했다.”38

 

# 해설
  이러한 해석은 루터, 멜란히톤, 불링거(Bullinger) 등 종교개혁자들이 다니엘서 7, 8장의 작은 뿔을 중세 교황권으로 적용하는 것을39 피하기 위해 스페인의 제수잇 학자인 알카자(Luis De Alcazar · 1554~1613)가 고안해낸 예언의 과거주의(Preterism) 해석 구조에 맞춘 것임을 밝힌다.40 한 마디로 반(反) 종교개혁적인 해석이다. 그것이 왜 성경에 일치하지 않는 인간적 고안인가?

 

# 변증
  가. 이러한 해석은 다니엘서의 확인된 기본 구조인 사중(四重)평행 구조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특별히 8장은 7장의 연속적인 해설임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사중의 예언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이 나라를 차지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으며, 8장에도 다른 장의 경우처럼(단 7:25, 11:35, 12:7) 마지막 시대를 가리키는 “정한 때 끝에 관한 일”(단 8:17, 19)이라고 거듭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8장의 작은 뿔은 마지막 때까지 이르지 못하고 겨우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분립(分立)한 네 장군 가운데 하나인 셀류쿠스(Seleucus)가 세운 시리아의 8대 왕 안티오쿠스 4세(Antiochus IV · 175~164 BC)에게41 적용되고 마는가?


  나. 뿐만 아니라, 8장을 더욱 상세하게 반복 해설하고 있는 11장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네 장군 가운데 셀류쿠스가 세운 시리아를 북방으로, 프톨레미(Ptolemy) 장군이 차지한 이집트를 남방왕으로(11:5~15) 나타내고 있다. 그런 후에 로마제국이 등장하고(11:16), “동맹[언약]한 왕”(11:22)이신 그리스도가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죽임당하실 것이 예언되었다. 그런 뒤에야 다니엘 8장의 작은 뿔이 행할 것으로 예언된 성소훼방과 제사를 폐하는 일, 하나님 백성을 핍박하는 일을 예언함으로써(11:31~39) 그것이 결코 기원전 2세기의 사건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평행 구조에 나타난 로마제국과(8:9, 10) 중세 로마교황권(8:11, 12) 외에 다른 것으로는 적용할 여지를 없게 한다.42

  다. 다니엘서에 나타나는 상징적인 뿔은 왕국을 상징하거나(7:24, 8:20, 22) 새로운 왕조를 시작할 왕을 상징했지(8:21), 한 대(代)로 끝날 개인을 지칭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작은 뿔이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8:10)졌다고 했는데, 에피파네스 4세는 오히려 남방왕 이집트를 쳐내려갔다가 로마제국의 철수 명령을 받고 황급히 물러섰고, 죽을 때도 쇠퇴한 중에 죽었다. 오히려 그의 부왕이었던 안티오쿠스 3세가 대왕으로 불릴 만큼 땅을 넓혔었다.43

  라. 이 작은 뿔이 일어날 때에 대하여, “이 네 나라[알렉산더 사후에 나뉘어진 네 왕국] 마지막 때”(8:23)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4세가 속한 시리아의 셀류쿠스 왕조(Seleucid dynasty)는 기원전 311년부터 존속하다가 기원전 65년 로마에게 멸망당했는데, 안티오쿠스 4세(175~164 BC)는 20여명의 왕들 가운데 마지막에 속하는 왕이 아니라 8번째에 속하는 전반기 왕이었다.44

  마. 더욱 심각한 잘못은,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박영관 씨의 비평처럼 성전을 헐어버리지는 않았다], 제사를 금한 기간을 2,300주야라고 적용하는데 있다. 그 때 당시의 공인된 역사적 기록인 마카비스(Maccalbees)에 의하면 안티오쿠스 4세가 실제로 번제단 위에 우상을 세운 것은 셀류쿠스 왕조 시작 145년 9월 15일이었으며(1 Macc 1:54, 49), 후에 이 모든 것을 제해버리고 다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3년 10일 후인 148년 9월 25일(1 Macc 4:52, 54) 이었다. 그리하여 다니엘서와 계시록 해설에서 예언상의 1일을 1년으로 해석해야 하는 원칙을 무시하고서 2,300주야[일]를 그대로 이 기간에 맞추려 해도 그것에 6년 4개월 20일이나 되므로 맞지 않게 되자, 박영관 씨가 의존하고 있는 과거주의자들은 다시 다음과 같은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다.

 

# 비평 박영관
  “그리고 그 때를 2,300주야까지라고 했다. 이것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제사와 관계가 있다(8:14). 그러므로 두 제사를 매일 드렸으므로 이것은 1,150일을 의미한다.”45

 

# 변증
  참으로 무리하기가 이를 데 없는 시도이다. 우선 2,300주야에서, “주야(晝夜)”는 우리 말처럼 “밤낮”의 순서가 아니고, 히브리어 본문 성경에는 “저녁(‘ereb) 아침(boqer)”으로 거꾸로 되어 있다. 그래서 영어 성경도, “저녁들과 아침들”(evenigns and mornings)로 번역하고 있고, 헬라어 번역성경[LXX]에는, “저녁들과 아침들, 2,300날들(days)”로 번역했다.46 그런데 박영관 씨가 의존하는 과거주의 해석은 “2,300주야”를 안티오쿠스 4세가 제사를 폐하고 성전을 더럽힌 기간인 3년 10일과 맞추기 위해, 이 “주야” 곧 “저녁과 아침”을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常燔祭)로 해석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구분하여 2,300÷2=1,150일로 줄이는 인위적인 일을 했다.47 물론 그렇게 하고도 실제의 날짜는 여전히 맞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제사를 아침, 저녁으로 따로 독립시켜 구분하지 않고 “늘 드릴 번제”(‘olat tamid · 출 29:42)로 통일해 불렀다. 그리고 언제나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에 드리”(출 29:39)라고 했지, 순서를 바꾸어 저녁에 드리고 아침에 드리라고 명한 기록이 없다(레 6:12, 13; 민 28:4; 대상 16:40 등). 그리고 히브리 문법으로 주야를 나눌 때도 “40일[낮] 40야[밤]”, 곧 “40주야”(창 7:4, 12)로 표현했고, 그것은 20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40일 이었다. 왜 “아침―저녁”으로 하지 않고, “저녁―아침”으로 했는가? 그것이 곧 날 계산을 처음 시작한 창세기에서, “저녁(‘ereb)이 되며 아침(boqel)이 되니”(1:5, 8, 13, 19, 23)로 완전한 하루를 표현한 성경적 표현이다.48 이와 같이 2,300주야를 절반으로 잘라 1,150일을 만드는 일은 성경은 물론, 역사에도 전혀 맞지 않는 무리한 인간적 시도이다.

 

  2,300주야의 전후 관계


# 비평 탁명환
  “단 8:14는 다니엘이 본 환상으로서, ‘그가 내게 이르되,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기록됐고, 이 2,300주야에 대한 환상을 다니엘 9:25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말과 연결시켰으며, 그것을 다시 에스라 7:11~26에 나오는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와 연결시켰다.…단 8:14의 ‘2,300주야 후에 성전이 정결케 된다’는 예언과 단 9:25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과연 같은 것인가?”49

 

# 변증
  다니엘이 본 다니엘서 8장 14절에 관한 계시는 “환상”이 아니고, “이상”(異像 · mar’eh)이다. 이 두 말은 원어는 물론이고 국어상으로 뜻이 전혀 다른 말이다. 탁명환 씨는 다니엘서 8장과 9장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관계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인간적인 시도로 돌리면서, “연결시켰다”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이 두 사실이 본래 연결된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연결시킨 것인지 환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알아보자.

  다니엘 8장 13절에서, 지금까지 배도의 총체적인 세력인 작은 뿔에 의하여 저질러진 모든 죄(11, 12절), 곧 성소가 짓밟힘을 당하고, 성소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과 구속의 계획을 훼방하고 거역하는 일에 관한 계시가 “언제까지”(until when?) 이르게 되는 것인지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이 14절의 “2,300주야까지니(until), 그 때에(then)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는 것이다. 작은 뿔이 얼마 동안(how long) 활동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7장 25절에서 3년 반 곧 1260일[년]이라고 대답 되었고, 12장 7절에서 그것을 재확인했다. 계시록에서는 같은 내용을 그대로 반복한 뒤에, “마흔 두달[42×30=1260] 일할 권세”(13:5)를 받았다고 확인 하였고, 또 실제로 중세기 1260년을 통하여 그 예언이 낱낱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의 성소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작은 뿔에 대한 심판은 직접 또는 간접적인 경로로 더럽혀진 성소를 회복하고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참 백성을 옹호하는 조사심판의 내용이 된다. 실제로 8장에서 정결이 요청된 조목 중에 포함된 “망하게 하는 죄악”(13절)인 이 “죄악”(페솨  · pesha)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뜻하는 말로서, 대속죄일 봉사가 기록된 레위기 16장에서 정결하게 해야 하는 하나님 백성의 “그 범한 모든 죄”(16절)와 같은 용어로 표현되어 있다.50 전술한 대로, 회개함으로써 희생제물의 피를 통하여 성소로 옮겨진 죄악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되고, 그 근본적인 책임은 사단에게 돌려져 책벌됨으로써 영원히 정결하게 되지만(레 16:16, 19), 회개하지 아니한 배도, 성소 모독, 우상숭배, 무죄한 피를 흘린 죄인들은(단 7;25, 8:11, 12, 11:31; 계 17:5, 6) 대속죄일의 조사심판의 결과로 “그 백성 중에서 끊쳐”(cut off)지게 된다(레 16:29; 단 7:26, 8:25).
  이러한 성소의 정결은 작은 뿔의 심판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성소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계획된 구속을 마칠 수 있도록, 짓밟혔던 하늘 성소의 기능이 회복되고(restoration),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속죄함을 받은 백성은 물론 그들에게 구속을 베푸신 하나님의 공의도 옹호되며(vindication), 거짓으로 참소되고 왜곡되었던 하나님의 속성과 참 백성의 신분이 정당화되고(justification), 죄의 모든 책임이 장본인인 사단에게 있음을 밝히는 심판(judgment)의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드디어 구속(atonement)이 완성되는 것이다.51 이러한 과정이 곧,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게 되는 의미인데, 그것이 히브리어 “차다크”(ṣadaq)의 수동태인 “니츠다크”(niṣdaq)라는 말로 표현된 “정결하게 되다”의 폭넓은 뜻이다.
  이러한 대속죄일의 내용이 이루어질 이상[계시]의 끝을 묻는 질문에 대해, “2,300주야까지니(until) 그 때에(then)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8:14)고 대답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는 논리적 순서는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작은 뿔의 활동이 소개된 후에(7:8, 25) 조사심판이 열리는 것과 일치하고(7:9, 10, 26), 다니엘 12장에서 마지막으로 8장 13, 14절의 진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5~7절) 재확인되고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니엘 8장 9장의 관계
  다니엘서 8장의 계시를 받고 난 다니엘의 반응은, “혼절(魂絶)하여 수일을 앓”기까지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7:27)였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것이 9장의 계시이다. 8장 끝에서 깨닫지 못한(27절) “[2,300] 주야에 대한 이상(異像 · mar’eh)”(26절)을 깨닫게 하려고, 일찍이 다니엘 8장의 “이상”(mar’eh)을 설명한 바 있는 가브리엘 천사가(8:16) 다시 보내진 것이다(9:21). 가브리엘 천사는 그 해석을 시작하면서,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mar’eh)을 깨달을 지니라”(9:23)는 말로 8장의 2,300주야 문제를 다시 설명하고 있다. 누가 보아도 확실한 배경이요 연관이다.
  8장 14절에 “2,300주야까지”(until when)만 제시되었지, 시작인 “부터”(from)는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 “부터”를 9장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重建)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에서 찾게 된다. 그런데 이 “부터”는, 그 당시 다니엘이 금식하며 기도 드려 온 황폐한 예루살렘의 재건과 포로로 잡혀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동시에 시작됨을 깨닫게 되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주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9:24). “정하였다”는 말은 “하타크”(chathak)의 수동태인데 본 뜻은 “분리하다”, “잘라내다”(cut off)의 뜻으로, 보다 큰 것에서 일부를 잘라내는 것을 뜻한다.52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성을 위한 마지막 은혜의 기간으로 할애(割愛)하신 70주일[70×7=490]은 보다 긴 예언 기간인 2,300주야의 일부임을 지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바벨론에 의하여 기원전 586년에 파괴된 예루살렘이 재건된 것은 페르샤 시대인데, 성소의 짓밟힘과 정결이 주제인(8:9~14) 다니엘서 8장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도 수양으로 표상된 페르샤임을 천사가 확인한 사실은 (8:20) 직접 관련이 있다. 8장과 9장의 사건이 모두 페르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다니엘 7, 8장과 9장에서 일반적인 “계시”(啓示 · vision)을 뜻하는 “하존”(chazon)이란 말이 자주 쓰이는데, 이러한 계시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늘의 거룩한 존재들이 나타나서 전달하는 계시는, “나타남”(appearance), 혹은 “이상”(異像)을 뜻하는 “마레”(mar’eh)를 썼다.53 [우리말 번역에는 구분 없이 모두 “이상”으로 번역됨.] 다니엘이 8장에서 깨닫지 못한 것은 모든 계시가 아니라 하늘의 두 존재가 나타나 제시한(8:13, 16) 2,300주야에 관한 이상(마레) 뿐이었다.
  9장에서도 이전 계시(하존) 중에 본 가브리엘이 설명해 준 것도 일반 계시가 아니라, 2,300주야에 관한 “이상”(마레)임을 가브리엘 자신이 친히 지적하여 확인하고 있어, 2,300주야와 70주일이 같은 배경을 가진 예언적 기간임을 특수 용어로 재확인하고 있다.54 무엇보다도 9장 24절의 내용이 8장 13, 14절의 내용과 상관된 것임은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2,300주야의 시작[기산점]
# 비평 탁명환
  “다시 말하면, 왜 안식교에서는 2,300년의 기점을 성전 건축령이 내려진 BC536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닥사스다 20년도 아닌, 단지 조서가 내려졌다는 아닥사스다 7년을 기점으로 잡게 되었는가 말이다. 안식교 측에서는 에스라 7:11~26의 연대는 B.C. 356년이 아닌 B.C. 457년으로 잡게 됨으로 연대계산에 있어서 자가당착적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이다.”55

 

# 변증
  다시 밝혀 말하지만, 이러한 예언이 연구되던 1800년대에 안식일교회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초교파적인 재림신자들과 당대의 여러 학자들이 확인한 것을, 1844년 이후 재확인한 일단의 초교파 신자들이 곧 지금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 것이다.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먼저 기산점이 제시된 25절의 내용을 확인해 보자.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重建)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이레[주일]오 62이레[주일]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난한 동안에 성(城)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단 9:25)

 

  기억할 것은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령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城)과 거리 등을 포함한 예루살렘 성읍의 재건령임을 본문에서 확인해야 한다. 이사야도 예루살렘과 성전의 중건을 구분하여 예언했다(사 44:28, 45:13). 성경에 나타난 네 차례의 페르샤 왕의 조서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합당한지 살펴보자(다음의 연대는 한 해의 시작과 끝이 지금과 다른 역서를 쓴 당시연대를 지금의 역서에 맞춰 표기한 것인데, ※표는 실제로 조서가 집행된 해임).

  • 고레스(Cyrus II) 원년(538/※537 B.C.) ― 유대인 포로의 귀환과 성전 건축을 허용하는 조서를 내림(스 1:1~4).
  • 다리우스 1세(Darius I) 제 2년(※520/519 B.C.) ― 고레스대왕의 조서에 따라 착공한 성전 재건은 주변 민족들의 반대와 참소로 17년간 중단되었다가, 다리우스 제 2년에 후속(後續) 조서가 내려져(스 6:8~12), 재위 6년째인 515 B.C.에 준공됨(스 4:24, 6:15).
  • 아닥사스다 1세(Artaxerxes I) 제 7년(458/※457 B.C.) ― 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귀환령과 성전 미화 및 최초로 예루살렘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조서를 내림(스 7:7~26).
  • 아닥사스다 1세 제 20년(445/※444 B.C.) ―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성의 보수(補修)를 허락하는 조서를 내림(느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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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유대인 포로 석방 및 예루살렘 성전 중건령을 내린 페르샤의 국부 고레스 대왕의 원통 기념비.

대영 제국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이 기념비에는 그가 어떻게 바벨론 성을 저항 없이 정복한 것과 에스라 1장에 나와 있는 조서의 내용을 반영하는 기록이 쐐기문자로 쓰여 있다.

 

그러므로, 처음 두 조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중건령이었으므로 다니엘서 9장의 기산점이 될 수 없다. 예루살렘 성(城)이 아니라, 성전 건축령이 내려진 고레스 원년은(스 1:1~4) 바벨론 · 페르샤 역서(曆書)와 유대 민력(民曆)에 맞출 때, 기원전 538년 가을부터 537년 가을에 해당하고 있어, 정확하게는 538/537 B.C.로 표현하고 있다.56 여하튼 기원전 538/537년은 포로 석방 및 성전 건축령이 내린 해이므로,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언급한 다니엘 9장 25절과는 일단 관계가 없다. 이와 같은 사실(史實)을 왜곡하고 사실(史實)이 아닌 것으로 비평하면 참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닥사스다(Artaxerxes I) 왕 제 7년인 기원전 457년이나 제 20년인 444년 가운데 한 해가 유대인을 위한 70주일 및 성소 정결이 있게 되는 2,300주야의 기산점(其算點)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해인가? 아닥사스다 왕 제 7년인 기원전 457년이다. 왜 그런가?


  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은 소화되었다”(느 1:3)는 소식을 페르샤의 궁전에서 듣고 충격을 받아,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여…금식하며 기도”(느 1:4)했다는 사실은 그 때 파괴된 성벽이나 성문이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 군사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어떻게 150년 전에 파괴된 예루살렘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이제 처음 듣는 것처럼 그런 극적인 충격을 받았겠는가? 또한 그 당시 바벨론 군사들은 “예루살렘 모든 집을 불살랐으며,…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왕하 25:9, 10)다고 했는데 느헤미야가 왕의 조서를 받아가지고 급히 귀국하여 “성 役事가 52일만에…끝나”(느 6:15)게 되었다는 말은, 그것이 이미 재건되고 있던 것인데 사마리아인들과 같은 주변의 대적들이 훼파한 것을 수리한데 불과함을 드러내고 있다(스 4:23). 70주 예언에 암시된 예루살렘 재건기간은 7주, 곧 49년이다. 그쯤은 걸려야 폐허가 된 성이 재건되는 것이다. 즉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의 조서는 다니엘서 9장의 내용에 전혀 맞지 않는다.

  나. 더욱이 느헤미야의 귀환은, 앞서 있는 고레스 대왕 당시나(537 B.C.) 아닥사스다왕 제 7년(457 B.C.)의 경우와는 달리 집단적이 아니라, 신변 안전에 역점을 둔 개인적인 것이었으며(느 2:7~9) 비밀리에 진행된 것이었다(느 2:12).

  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기원전 457년에 내린 아닥사스다 오아 제 7년의 조서이다. 지금가지의 조서 가운데 가장 긴 내용의 조서(7:11~26)가 주어졌는데, 이 때 상당수의 유대인의 귀환이 허락되었으며(7:13) 이미 재건된 성전봉사에 필요한 자재 공급과 함께 예루살렘 자치권이 부여되는 특별한 내용이었다(7:25, 26).
  그런데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단 9:25)에서 “중건”(重建)이라는 한 마디로 번역된 우리 말 성경은 히브리어 원문의 뜻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원문에는 “슈브”(shub와 “바나”(banah)라는 두 동사의 부정형(不定形)이 쓰였는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이러한 원문의 뜻을 살려,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새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는 영이 날때부터”로 번역하고 있다. 둘째 동사인 “바나”는 “세우다”, “짓다”(build)는 뜻으로 주로 쓰이지만, 첫째 동사인 “슈브”는 “돌아서다”(turn back), “회복하다”(restore), “회개하다”(convert)는 뜻으로 주로 쓰여,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하여 다니엘 9장 25절의 내용을 만족시키는 조서는 예루살렘 성전뿐만 아니라 성읍의 재건은 물론 제사 제도 등 종교의식과 함께 이에 관계된 행정과 사법권의 회복 등도 폭 넓게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슈브”와 “바나”에 함축된 뜻이 충분히 포함된 내용은 에스라 7장의 조서임을 쉽사리 알게 된다.
 

  라. 그런데 에스라 4장 7~23절에는 고레스 대왕(537 B.C.) 이래 아닥사스다 1세(465~423 B.C) 기간 동안 귀환한 유대인들이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 동안에 당한 핍박과 곤난을 회상한 것이 연대순이 아닌 이야기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1~5절까지는 고레스와 다리우스 1세 때까지의 사건을 기술하고, 6절에서는 아하수에로(Xerxes I · 486~465 B.C.) 때의 사건, 그리고 7~23절까지는 그 아들인 아닥사스다 1세 때의 사건을 기록하고, 24절 부터는 다시 5절에서 끊어진 다리우스 1세 때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57
  이러한 배경을 기억하며, 기원전 457년에 돌아온 에스라와 그 일행이 겪은 경험이 적힌 4장 7~23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자. 돌아온 에스라가 벌이고 있는 재건사업에 위협을 느낀 “사마리아 성과 강 서편 다른 땅에”(4:10) 있던 지방 관리들이 아닥사스다왕에게 올린 고소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대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城邑)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집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스 4:12, 13).

  이 고소문에서, “왕에게서 올라온 유대 사람들”(4:12)은 틀림없이 왕의 조서에 따라 기원전 457년에 귀환한 에스라의 일행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후 13년이 지난 기원전 444년에 귀환한 느헤미야는 일행 없이 홀로 왔기 때문이다.

  마.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 성읍이 바벨론에 의하여 훼파된 후 실제로 재건된 최초의 분명한 기록은 에스라 4장 12절이며, 그것은 기원전 457년에 내린 조서의 결과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대공사가 왕의 허락 없이 진행될 수 없었으며, 이미 조서로써 자치권(自治權)을 부여받은 에스라가 국가의 행정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재거한 것은 조서 내용에 일치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스 7:25, 26). 또한 고소문이나 왕의 반응에서도 성읍(城邑)을 중건하는 자체를 불법이라고 하지 않았고, 단지 준공한 후에는 반역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일치하게 지적했다(4:15, 19).
  이러한 고소문의 내용에 공감한 왕은,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4:21)는 명령을 내렸고, 결과로 성읍 재건이 중단되었다(4:23). 이 일로 말미암은 불상사가 느헤미야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느 1:3).

  바. 살펴본 대로, 다니엘서 9장 25절에 기록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의 조건을 만족시킨 조서는 기원전 457년에 내린 페르샤왕 아닥사스다 1세 때의 조서 밖에 없음이 불문가지(不問可知)로 확실해 졌다. 아닥사스다왕 7년이(스 7:7) 어떻게 기원전 457년이 되는지는 일찍이 수학자요 천문학자요 신학자인 뉴톤경(Sir Isaac Newton)에 의해서도 확인되었고,58 근년에 발견된 고대 페르샤의 파피루스 문서에서도 거듭 확인되는 등 여러 자료에 의하여 확고히 뒷받침되고 있어59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70주에 관한 예언
  이처럼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에 대해 아래와 같은 막연하고 애매한 비평은 참으로 삼가야 한다.

 

# 비평 탁명환
  “안식교 측에서 말하는 대로, 성전 건축령이 B.C. 536년에 내려져(고레스 왕 원년 · 스 1:1), 완공된 것이 B.C. 516년(다리오왕 6년 · 스 6:15~18)이란 주장을 인정한다면, 왜 성 건축령에 대해 그 기점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아닥사스다왕 20년(B.C. 445)에 느헤미야에게 영을 내린 때는 잡지 않고(느 2;1), 성전 건축령인지 아닌지 분명치도 않은 아닥사스다왕 7년으로 잡는 것이 문제가 된다.”60

 

# 변증
  구속의 역사 일정에서 그토록 중요한 예루살렘 중건에 관한 에언과 그 성취는, “안식교 측에서 말하는” 견해가 아니고, 이미 밝힌 대로 구구절절(句句節節)이 모두 성경에 기록된 사실 그대로임을 양식(良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원전 457년을 기산점으로 확인한 경우는, 안식일교회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이래 불링거(Bullinger), 뉴통경(Isaac Newton), 벵겔(Bengel), 페트리(Petri) 외에도 다수의 저명한 신학자자들이 열거돼 있다.61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으로 우주시대의 기틀을 놓은 수학자요, 천문학자인 뉴톤경(Sir Isaac Newton · 1642~1727)은 동시에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연구에도 못지 않은 공헌을 했는데 그는 70주일이 490년을 의미하며 그 시작이 아닥사스다왕 제 7년의 조서 때부터 시작함을 이렇게 확인하고 있다.

 

# 증언 뉴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cut out)’ …. 여기에서 1주일을 7년으로 놓고,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다시 한 백성과 거룩한 도성을 이룬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까지 490년이 계산되었다.62 …이제 흩어졌던 유대인은 최초로 행정 체제를 다시 갖추게 됨으로써 한 백성과 도성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 일은 에스라가 일단의 유대인들과 함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아닥사스다 제 7년의 일이다.”63


  뉴톤경이 아닥사스다 제 7년을 기원전 457년으로 확인한 것은, 20개 이상의 일식(日蝕) 기록으로 정확함이 입증된 고대 프톨레미(Ptolemy) 역서(曆書)에 근거한 천문학적 확증이었다.64 19세기의 프리도(Prideaux), 스코트(T. Scott), 클라크(A. Clarke), 커닝함(Cuninghame), 케이트(Keith), 리버모어(Rivermore), 휠러(Wheeler)를 포함하여, 현대에도 잘 알려진 주석학자들인 제미슨(Jameison), 포세트(Fausset), 브라운(Brown), 태너(Tanner), 블랙스톤(Blackstone), 푸시(Pusey)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는 대 학자인 제임스 스트롱(James Strong)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 증언 스트롱
  “[다니엘 9장] 25절의 내용에 대답이 되고 있는 명령은, 아닥사스다 제 7년에 내려지고, 에스라 7장에 기록돼 있는 것인데, 프리도(Prideaux)가 충분히 제시했고 많은 비평자들이 동의한 바와 같다.”65

  70주일에 관한 예언이 쓰여진 다니엘서 9장 24~27절은, 비평학자 코흐(K. Koch)의 말대로,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 사건에 관한 구약 성경의 메시야 예언의 독특하고도 절대적으로 정확한 수학적 성취는, 처음 세기들 동안 성경의 진실함에 대한 증거로서 크나큰 역할을 해왔다.”66 다음은 기원전 457년을 기산점으로 했을 때, 참으로 메시야에 관한 수학적 예언인 9장 24~27절이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어떻게 “정확한 수학적 성취”를 가져왔는지 먼저 성경 본문에 나타난 조항을 열거한 후 도표로 표시해 본다.

 

  다니엘 9장 24~27절
※ 내용과 구분:

  •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위해 70주[70×7=490]가 할당됨(24절).
  • 70주의 시작은 예루살렘 성읍을 재건하라는 조서가 내릴 때부터임(25절).
  •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가 출현하기까지 7주[7×7=49]와 62주[62×7=434]가 지남(25절).
  • 이 기간[7+62=69×7=483]이 지난 후에는 메시야가 갑자기 죽임을 당함 (26절).
  • 70번째가 되는 마지막 1주[70-69=1] 동안에 메시야는 언약을 굳게 하는 일을 행할 것인데, 그것은 마지막 1주[1×7=7]의 중간[7÷2=3과 1/2]에, 지금까지 드려온 옛 언약의 희생제물을 대신하여 메시야 자신이 죽임을 당하심으로 새 언약에 비준됨(27절).

70주의 내용과 역사적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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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기원전 457년, 곧 페르샤왕 아닥사스다 7년에 예루살렘 성읍 중건령이 내림.
  • 처음 7주인 49년은 주로 성전과 성읍 및 각종 제도 복귀에 소요된 후, 다시 62주인 434년이 지난 서기 27년에는, “요한이 그 세례[침례]를 반포한 후에…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행 10:38)신 침례를 받으심으로(눅 3:21~23) “기름 부음을 받은 자”(단 9:25)를 뜻하는 “메시야”[히브리어], 혹은 “그리스도”[헬라어]의 사명을 시작하심.
  • 서기 27년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야로서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신지 꼭 3년 반(3½)만인 서기 31년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지금까지 옛 언약의 방편으로 짐승을 드려온 제사제도는 폐지되고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이 비준됨(마 26:27; 히 10:5~10).
  • 서기34년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것을 계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은혜의 시기는 끝났으며(행 7:51~60), 이 때 일어난 핍박으로 “유다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행 8:1)진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어서 바울이 개종함으로써 이방인 시대가 시작됨.

  참으로 신약성경과 역사에서 입증되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성취이다. 만약 탁명환 씨가 소개한 비성서적일 비역사적인 논거대로, 13년 후가 되는 아닥사스다왕 제 20년인 기원전 444년을 70주일의 시작으로 한다면, 예수님이 서기 44년[31×14=44]경에야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되는 당치않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457 B.C.] 기름부음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이레[7×7=49년]와 62이레[62×7=434년]가 지날 것이요”(단 9:25)라는 말씀대로, 기원전 457년에서 69주일[69×7=483년]이 지난 서기 27년에 예수께서는 정확하게 성령의 기름부음받으심인(행 10:38) 침례를 받으신 것이다9막 1:10, 11). 곧 이어 “때가 찾”(막 1:14)다고 선언하시고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심으로 다니엘서 70주의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시킴으로 탁명환 씨가 비평한 “안식교 측에서 말하는” 사실이 진실임을 확인하셨다.
  또한 70주에 관한 다니엘서의 예언이, 기원전 2세기 시리아왕이었다 안티오쿠스 4세 당시 이루어진 사건이 아님을 확증할 수 있는 것도, 메시야이신 당신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이 장차 당할 재난을 다니엘서 9장의 70주의 예언에서(9:26) 직접 인용하신(마 24:15)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확증하신 것을 끝까지 불신하고 비평한다면 그 이상의 변증이 무슨 필요나 효과가 있겠는가?

 

  70주와 2,300주야의 시작
  이처럼 기원전 457년이 70주일을 시작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연대임이 확증되었다면, 70주일과 시작을 함께 하는 2,300주야[년] 시작의 정확함도 이미 수학상의 검산(檢算)을 통하여 학인된 것이다. 시작이 정확하면 동시에 끝도 정확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긴 예언인 2,300주야[년]기간 속에 다니엘서 7장과 8장의 작은 뿔의 활동기간이 선후(先後)관계로(단 7:8~10, 8:9~14) 연결돼 있음은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조감(鳥瞰)을 다음의 도표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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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과 같은 사건과 연대 배열이 성경에 일치한 것임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주야와 성소 정결에 관한 이상(異像 · 마레)은 주어질 때부터 “정한 때 끝에 관한 것”98:17, 19)이라는 통고와 함께, “이미 말한 바, [2,300]주야에 대한 이상[마레]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 [하존]을 간수[shut up]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이니라”(8:26)는 단서가 붙여졌다.
  그런데 이 명령은 마지막 장인 12장에서 다시 한번 같은 동사 “사탐”(satham)을 써서, “다니엘아 이 말을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사탐 · shut up] 이 글을 봉함(封緘)하라”(12:4)고 반복된 후에, 그 예언이 이해되고 성취되는 시대는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4절)고 부연한다. 그리고 다시, 8장에서 2,300주야에 관한 이상[마레]이 주어질 때처럼(8:13, 15~17) 또 다시 그리스도와 가브리엘 천사로 생각되는(8:16) 하늘의 거룩한 두 존재가 나타나 대화하는 가운데, “이 기사[2,300주야]의 끝이 어디 때가지냐?”(12:6)는 8장 13절의 질문이 반복되고 그 대답으로,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3년 반=1260일]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12:7)는 말씀이 하나님께 대한 서약 형식을 취하여 확증되어다(12:7).
  분명해진 것은, 2,300주야[년]의 끝이 이르게 되고, 그에 관계된 내용이 이해되는 것은, 작은 뿔의 활동기간인 중세기 1260년이 지난 후의 일임이 명시된 것이다.67 이 얼마나 세심하고도 분명한 하나님의 배려(配慮)이신가?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게 될 대속죄일의 행사 내용이며(레 23:26~32), 그것을 다니엘이 계시로 확인한 조사심판이며(단 7:9~14), 요한이 마지막 때의 사건으로(계 11:15) 거듭 목격한 하늘 지성소의 봉사 시작인 것이다(계 11:19). 그리고 그 때가 기원전 457년에서 시작되어 2,300년 후가 되는 1844년이었으며, 그 해의 유대 성력(聖曆) 7월 10일이 태양력 10월 22일임을 역사적 확인을 거쳐 확증된 것이다.

 

  2,300주야 해석의 역사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단 12:4)는 마지막 때가 되어야 깨닫게 되리라는 단서가 붙은 이토록 중요한 2,300주야에 관한 계시가, 183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재림운동을 주도한 침례교 지도자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해된 것은 아니다.
  서기 200년경의 교회 사가(史家)인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는 다니엘 9장의 70주가 “아닥사스다 왕 때로부터…그리스도의 시대까지 이르는”69 490년간으로 정확히 이해했다. 또한 서기 1200년 경에는 가톨릭 수도사 요아킴(Joachim of Flora)이 다니엘 7장의 삼년 반은 1260년을 가리킨다는 이해에 이르렀고,70 16세기의 루터는 다니엘서의 작은 뿔은 중세 교황권이며 1260년 기간은 중세 로마교황권의 활동기간으로 단정하였는데, 그 해석이 종교개혁의 주류를 이루었다.71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이 10년간 계속된 후, 1798년에 완전히 몰락하게 된 중세 교황권의 전말을 보면서, 커닝함(W. Cunningham), 메이트런드(Charles maitland), 케이트(Alexander keith), 어빙(Edward Erving), 하버슨(M. Harvershon), 울프(Joseph Wolff) 등 수 많은 주석학자들은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1260년 기간이 끝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72
  1260년을 넘어가는 2,300주야 예언은 일찍이 9세기의 유대 학자인 나하웬디(Nahawendi)에 의해 2300년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저명한 유대 랍비들이 이를 지지해왔다.73 13세기의 신학자 아놀드(Arnold)도 이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러다가 독일 개혁교회의 목사 페트리(John Petri)는 1769년 2300주야의 시작이 70주의 시작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끝이 1840년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74 70주의 시작을 기원전 457년으로 확인한 뉴톤(Isaac Newton · d. 1727)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으며, 독자적인 연구의 결과로, 1787년 한스 우드(Hans Wood)도 페트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75 1810년 스코틀랜드의 학자 브라운(Aguila Brown)은 2300주야는 기원전 457년으로부터 서기 1843년 혹은 1844년에 이르는 기간이라고 가르쳤다.76
  바로 이러한 맥락을 좇아 1830년대의 침례교인 윌리암 밀러도 2,300주야가 기원전 457년에 시작되어 1844년에 마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탁명환 씨의 표현처럼 그것이 “안식교 측”의 돌발적인 발상이 아니라 연원(淵源)이 샘처럼 깊은 진리의 유산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다니엘서에 나타난 평행(平行) 구조에 입각하여 살펴본 70주일과 2300주야에 관한 예언, 그리고 1260일에 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도해로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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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ible Expl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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