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스크랩] 오경 형성에 대한 연구

작은샘 큰물줄기 2017. 11. 23. 15:14

 오경 형성에 대한 연구

 


 

 

 모세오경은 구약 성경의 모든 내용이 있게 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에 있어서 정신적 모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에 있어서 오경은 가장 권위 있는 문서로 인정되어지고 있다. 

1. 오경연구와 함께 발전한 “문서가설”이란 무엇인가?
“문서가설”은 18-19세기 독일에서 시작하여 구체적으로 발전하였던 학문으로, 독일의 신학자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에 의해 처음 “문서가설”이 제안 되었으며, 그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오경 내에 있는 내용들을 문학적, 용어적, 차이점들을 분석하여 연구하던 중 모세오경의 내용 안에 시대적으로 각기 다른 시대에 유행하던 문학적 형태의 내용들이 편집되어 섞여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그의 추측에 의해 하나의 오경이 모세 한 사람에 의해 그의 한 생애의 어느 날 동안 쓰여진 것이 아닐 수 도 있다는 가설을 내 놓게 되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경전으로 굳어진 모세오경의 정형화된 내용들이 있기까지 여러 형태의 오경 내용의 기원이 되는 “의문의 문서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문서가설”을 이론화 하면서 그는 오경을 크게 네 개의 다른 형질의 문서( J>E>D>P )로 분류하였다.
이 후 다른 많은 학자들에 의해 이 외의 다른 가설들이 나오게 되었으며 현재도 연구되어지고 있다.

2. 오경연구의 기본이 되고 있는 J.E.D.P(자료층)문서는 무엇인가?
1) “J문서”는 “야훼(Jahweh)”라는 하나님의 이름(신명/神名)을 사용하는 내용을 오경 전체에서 분리해낸 부분으로 네 개의 문서 중 가장 오래된 주전 8세기의 문서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2) “E문서”는 “엘로힘(Elohim)"의 신명을 사용하는 내용을 분리해 낸 부분으로 J문서 다음으로 오래 된 주전 7세기의 것으로 추정 하였다.

3) “D문서”는 신명기(Deuteronomy/듀트로노미// D Siglum(디 시그룸))에서 “율법의 복사판”(신 17:18;헬라어로 “미쉬나 토라”)이라는 말을 희랍어로 번역(LXX. 70인역)하는 과정에서 “율법의 반복”(Deuteronomion/듀트로노미온)이라고 오역 되어진 단어 “듀트로노미온”( Deuteronomion )이라는 단어의 첫 자 “D"에서 나왔는데 이 자료층은 신명기 32장 그리고 신명기 31,33, 34장을 제외한 현재의 신명기 전체와 유월절, 무교병 축제, 초태생(初胎生)에 관한 규례(출 12:24-27; 출 13:3-16)를 포함한다. 이 자료층이 한 때 독립된 단위로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신명기의 일부분(전체 내용의 두 세절, 신 31-34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내용에서 창세기에서 민수기에 이르는 설화에서 발견된 다른 자료들과 연속성이 없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이 자료층은 한 때 독립된 단위의 문서로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하게 된 것이다. 이 D문서는 E문서 다음으로 오래된 주전 7세기의 것으로 추정 하였다.

4) “P문서”(P자료층/ P법전)는 제사문서(priestly document / Priesterschrift) 또는 제사법전(priestly code / Priesterkodex)이라는 말 영어와 독일어의 머리 글자에서 빌려온 것으로 P siglum이라고 한다. 이 자료층은 제사법과 제사의식과 그 제도를 기록한 제사문서를 분류하여 연구한 것으로 P자료층의 특징은 언어적 표현법이 딱딱하고 철저히 법전적 성격을 띄며, 교리적인 성향의 내용을 가진다. 이 P자료층은 그 안에서도 내용이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벨 하우젠은 P자료층을 세 종류로 더 세분화하여 분류하였다. 완성된 오경이 있기 이전에 다른 분리된 문서로 존재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P문서는 주전 5세기의 것으로 보았다.

3. J.E.D.P자료층 이외의 연구문서들(G자료, N자료층)
1) “G자료”-이 G자료층은 고대의 여러 전승들과 설화들을 구전의 형태로 편집한 것으로 오경형성을 위한 기초공사(Groundwork)의 G를 분류어로 사용하고 있다. G자료층은 J와E문서 모두에게 영향을 준 기초적 문서일 것으로 본다.

2) “N자료층”(제 3의 초기 자료층)- N자료층은 J와E문서 이전의 제 3의 초기 자료층으로 초기 전승의 덩어리인 G자료층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유목 자료층(Nomadic statum)이며 이 N자료에 관한 가설은 스멘드(Smend)의 연구에 의해 용인 되어졌다.

4. 오경 구성 자료들
  우리는 오경을 구성하는 자료들로서 J-N-E-(C)-D-(H)-P자료층들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J-N-E-D-P 의 5개의 문서로 분류한다.

5. “문서가설”이라는 비평적인 연구가 끼친 영향
1) 부정적 영향
○ 성서로서 오경이 가지는 기본적 권위와 경전으로의 가치가 감소되었다.
- 성서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선택된 지도자 모세에게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기록된 이스라엘의 신앙지침서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문서가설”을 통해 오경이 각기 다른 시기에 존재했던 문서들이 편집되어 완성된 것일 수 도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모세의 1인 저작설이 부정되어지는 가설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오경의 본문은 불가불 학자들이 조종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학자들이 성서의 본문에 복종했으나, 이제는 본문이 학자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이것은 곧 연구자들에 의해 경전에서 일반적인 문서로 그 가치가 떨어지게 되어진 것이다.
  성서를 원칙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은 부정되거나, 다른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되었고 이에 따라 성서의 본문은 설명되는 증거 자료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게 되었다.

2) 긍정적 영향

① 의학이 발전하기 까지는 인체 해부가 허락되어진 때부터 급속히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학도 이러한 비평학적 연구에 의해 급속히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② 객관적인 성서연구는 성서의 상징적이고 미학적이고 종교적인 성격을 나누어 탐구하는 새로운 연구의 방법으로 전개 되었다.
③ 비평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성서를 분석의 차원을 넘어서 그 내용 안에서 전체성과 하나님의 신비의 차원을 함께 볼 수 있는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6. 오경 연구의 대표적 학자들과 오경 연구의 학문적 발전
1)율리우스 벨 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
- 벨 하우젠은 독일의 마르크 부르크 대학교와 할레 대학교의 교수였으며 그는 과학적인 방법론(비평학적 연구)을 통해 오경을 J.E.D.P로 분류하는 시도를 하였으며 그를 통해 “문서가설 이론”이 탄생하였다. 그는 역사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성서를 명백한 문학적 자료들을 근거로 역사를 기록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주로 역사적인 사실들만을 수집하는 데 관심이 있었으며 오경 중에서 역사적인 사실들만을 추구하였다.
○ 연구방법: 과학적 분석, 문학적 형태에 따른 오경 분류, 분류된 문서를 다른 고대 문학들의 형태와 비교하여 시대구분. 해부학적 성향.

※그의 업적: 벨하우젠의 연구 가설(“문서가설이론”)은 오늘날에도 구약성서를 연구하는데 통용되는 척도가 되고 있다.
○ 부정적 견해: 그는 오경을 해부할 수 있는 문서로 전락시켜 놓았으며 성서의 내용을 “그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러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오경을 권위 없는 문서로 전락 시키고 마는 과오를 범했다.
  그러나 그는 오경을 문자적으로 맹신해야하는 무지한 신앙의 입장에서 벗어나 객관적 입장에서 성서를 연구해 볼 수 있는 비평학적 신학연구의 길을 열어주었으므로 그 업적이 크다.

2)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
- 그는 베를린, 기센, 할레의 교수였으며 20세기 초 창세기 주석을 출판하였는데 이 주석은 고대의 설화 전승의 연구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벨하우젠의 “문서가설”의 범위를 더 깊이 들어가 전승의 초기형태의 구전(口傳/문자 이전부터 존재했던 구전된 이야기들)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 오경을 연구하는 그의 관점: 궁켈은 기록된 문서에서 구전의 전통으로 돌아감으로써 극히 주관적인 연구방법을 제한하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고도의 의미에서 볼 때에 성서의 주석은 과학(Wissenschaft)이라기보다는 예술(Kunst)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시적(詩的)인 형태의 신비에 대하여 민감하였고 성서의 해석에는 객관적면 만큼이나 주관적인 면이 요청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벨하우젠과의 차이점 

① 벨하우젠은 성서의 본문이 “그것”이라는 객관적 입장에서 말해 졌으나 궁켈은 성서 본문이 “너”(thou)라는 인격으로 대해졌다. 성서의 본문은 “너”처럼 살아있고, 해석자에게 말을 걸어오고 해석자가 자기와 대화하도록 이끌기도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② 벨 하우젠은 과학적(科學的)이고 분석적(分析的)이라면, 궁켈의 연구방법은 예술적(藝術的/미학적美學的)이면서 종합적(綜合的)이다.

○ 궁켈의 오경 연구
① 그는 벨하우젠의 자료분석을 수용하여 취하였으나 벨 하우젠이 불법적이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겼던 질문들을 제기하게 되었다.
문서들의 연대에 관해 벨하우젠은 명확한 입장을 취하였는데 굳어진 문서의 변천적인 구전의 과거 연대에 대하여는 아무런 연구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궁켈은 이러한 문서 이전의 구전 형태들을 과감하게 연구함으로서 문서의 자료들 속에서 아주 오래된 자료의 고대성을 긍정하였다.
② 벨하우젠은 성서 문서들의 연대를 매우 후기로 보았던 반면, 궁켈은 구전 문서연구를 통해 성서의 연대가 아주 오래된 고대의 것으로 보게 되었다. 이것은 성서의 문서들에 대하여 의심하는 과학적인 회의주의에서 탈피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③ 궁켈은 과거에 시사된 헤르더(herder)와 드베테(dewette)의 견해를 따라 양식 비평의 방법론을 개발하게 되었다.
④ 그는 거시적 관점으로 성서의 사회학적인 배경을 연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무엇을 찾아내었다. ;그는 고대 근동의 문화적인 유산이 이스라엘 신앙과 삶, 언어의 표현, 사회적인 전반에 걸쳐 공유되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이런 그의 거시적 관점 주변 지역들의 문화 안에 전승되어져 내려오는 구약성서와 유사한 주제의 양식들과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연구하였다.

3) 올브라이트(Willam Foxwell Albright.1891. 美國人)
- 그는 미국의 가장 뛰어난 구약학자들 중 한 사람이며, 존스홉킨스 대학의 교수였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역사철학이었고, 그의 노력은 대부분 성서의 점진적인 종교 발전이라는 진화론적인 견해를 뒤집어엎는 것이었다. 이것은 헤겔과 벨하우젠에게 영향을 받은 견해였다.

○ 올브라이트의 오경 연구 관점: 과학적 분석, 고고학적 영역에서의 연구 및 해석, 보수적 관점,

○ 올브라이트의 오경연구
① 올브라이트는 진화론적 사상을 공박하면서, 역사를 유기체적(有機體的)인 것으로 이해해야한다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② 그는 오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고고학적 영역을 의지하였으며,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과학적인 통제 방법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고고학과 함께 언어학과 문헌학을 연구하면서 연대결정의 목표를 위해 고대 문서들을 통제(비교, 연대분류작업)하였다.
③ 그는 궁켈 보다 훨씬 더 고대 근동의 모든 문화적인 자료들을 진지하게 취급하였고, 성서의 이해를 위한 자료로 삼았다. 올브라이트의 이론들은 역사적인 문제에 대하여 매우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성서의 모든 역사적인 주장들은 그대로 지지되었다.
④ 학문적 역사에서 볼 때에 올브라이트는 독일 학자들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으며, 그는 궁켈의 입장을 선호하였으며, 벨하우젠과는 종교이념에 있어서는 대립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으로는 궁켈과 벨하우젠의 장점들을 다 갖고 있었다. 그는 전통의 고대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성서 이외의 증거 자료와 평행된 문서수집에 있어 보다 오래된 고고학적 방법의 연구를 취하였는데 이러한 점에서 궁켈의 연구와 비슷하며 이러한 연구를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켰음 과 동시에, 벨하우젠의 특성도 이어받았는데 그의 작품에서 나오는 음성과 성격은 예술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이며, 자유로운 상상보다는 훈련을 쌓고 과학적인 증거 자료를 더 귀중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 올브라이트의 중요한 공헌: 그는 오경 전통들을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그의 확신 있는 주장과 그것을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검증하는 연구를 한 것이다. 바로 성서를 이해하려면 그것이 처음 나타나게 된 사정과 전승된 사정을 그 본문의 사정에 비추어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그와 그의 제자들이 수집하여 놓은 증거 자료들은 성서의 본문들이 나타난 환경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4) 폰라트(Gerhard von rad, 1901-1971)
- 폰라트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하의 교수였는데 그는 오경의 네 문서들에 대한 벨하우젠의 견해를 모두 받아들이고, 문학적인 분석에서는 궁켈의 미학적인 기풍과 의도를 계승하여 궁켈이 남겨 놓은 과제들을 착수 하여 연구하였다.

※ 폰라드의 연구가 있기까지; 오경의 세 가지 발전과정:
ⓐ 최초의 오경은 구전형태이었을 것이라는 것
ⓑ 그 독립적인 단위들이 통일성을 지닌 전체로 결합되어 오경의 자료층들이 되었으며, 이 단계는 보통 서기관들이 이룩한 것으로 여겨지고, 이 과정 중에는 물론 구전의 차원도 포함되어있다.
ⓒ 그러한 자료층들이 결합되어 통일성을 이룬 것이 바로 오늘의 오경이라는 결론.

○폰라트의 오경연구:
① 궁켈은 문학사 전체를 연구할 계획을 세웠으나 결국 최초의 단계인 구전 자료만을 연구하는데 그쳐서 결국 다른 연구의 분야로 발전하지 못한 것 처럼, 폰라트도 궁켈처럼 오경 문학의 과정 전체에 집중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도 자료 층들의 완성이라는 한 단계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② 사담(saga)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벨하우젠과 올브라이트가 옹호하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담들은 그보다 더 상상적인 취급을 요구하였는데 폰라트는 그것을 잘 소화해 내었다. 궁켈은 단순히 설화로 이루어진 단위들만을 취급한 반면에, 폰라트는 그보다 더 넓은 단위를 위하여 미학적인 방법과 양식 비평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③ 폰라드는 오경에는 “재형성된” 설화들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재형성된 설화들은 해석자가 본문에 첨가한 것으로 보았다. 폰라드의 관심은 궁켈이 찾아낸 원시적인 짧은 자료들이 어떻게 신앙의 표현으로 재형성되고 통일되었느냐는 것이었다.
④ 폰라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통적으로 신앙고백처럼 암기해 왔던 세 종류의 요절( 신6장 20-25; 26장 5-9, 수24:2-13)들이 지정된 어느 시기(주전 10세기경)에 사담들이 신앙고백의 영향 하에 “재형성 되었다”라는 가설을 내 놓았다. 그는 “이스라엘이 야웨와 함께 사는 자신의 역사에서 체험한 근본적인 역사에서 체험한 근본적인 요소들을” 이러한 사담이라는 그릇들 속에 “부어” 넣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정확한 문학적인 과정들은 회복시킬 수 없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설화들이 변형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그는 말한다.
⑤ 폰라트는 성서의 본문에서 벨하우젠과 ,궁켈과 올브라이트가 보지 못하였던 성서의 메시지적인 요소들, 곧 성서의 공통체가 사담을 보존하고 전수하면서 표현한 신앙의 선포에 관심을 기울였다. 성서의 주인공들이 설화들을 전수한 이유는 그것들이 흥미있는 민담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삶과 동질성에 관련된 메시지를 증언하기 때문이었다.
⑥ 그는 성서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는 전제를 두고 연구하였다. 이와 같이 그의 견해는 강력한 복음주의적인 신앙노선을 따르고 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세속적인 삶을 이용하시듯이. 신앙고백도 자체의 메시지를 위하여 세속적인 설화들을 이용하고 있다.
⑦ 폰라트는 성서의 설화가 공동체로부터 신앙을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었다고 보았다. 이제는 설화가 분석 할 수 있는 저 밖의 내용이 아니라, 신앙의 관점에서 신앙의 공동체에게 말을 하는 내용으로 바뀐 것이다.

※ 폰라트를 통해 얻게된 해석학적 가설; 폰라트로부터 구약성서(오경)연구는 가장 중요한 해석학적 가설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오경이 어느 공백 상태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신앙고백과 상응하는 고유한 전통을 형성하기 위하여 세심하게 학문적으로 작업을 한 신앙의 공동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W.브루지만, H.W. 볼프 공저, 『구약성서 중심사상』, 문희석 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77년. 제1장,“오경 연구 문제”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