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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배의 부름

작은샘 큰물줄기 2017. 8. 16. 14:16

예배의 부름 - 안재경



 예배부름’은 누가 누구를 부른다는 것입니까?

예배의 시작 순서인 ‘예배부름’에 대한 해석이 혼란스러운데요. 누가 누구를 부르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회중을 부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회중이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까? 예배의 시작이라면 하나님께서 회중을 부르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직접 부르시지는 않을테니 예배인도자인 목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회중을 예배에로 부르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배부름의 다양한 문구를 보면 목사와 회중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목사가 예배의 개회를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데요. 다양하게 하는 것이 좋은가요? 역사적으로 이 순서가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지 궁금합니다.

고대교회로부터 예배시작순서로 정착한 것이 소위 말하는 ‘예배부름’(Call to worship)입니다. 명칭에 드러나 있듯이 이 순서는 예배하자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배하자고 부르는 시편의 다양한 구절들이 예배부름의 말로 사용하기에 적절합니다. 레이븐(Robert G. Rayburn)이라는 예배학자는 15개의 대표적인 시편구절을 소개합니다. 34:1-3; 84:1-4; 92:1,2; 95:1-3; 95:6,7a; 96:1-4a; 100편; 103:1-5; 105:1-4; 113:1-3; 117편; 145:1-4; 145:8-11; 145:17-21; 150:1,2,6이 그것들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서에서도 예배부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고대교회에서 ‘예배부름’은 사제와 회중이 인사말을 주고 받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로마천주교회에서는 이 인사말을 주고 받습니다. 사제가 회중을 향해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면 신자들이 사제를 향해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화답합니다. 수르숨 코르다(sursum Corda)라는 인사말도 있습니다. 이 인사말은 예레미야 애가 3:41에서 기원한 것인데 사제가 ‘마음을 드높이’라고 외치면 회중은 ‘주님께 올립니다’라고 응답합니다. 또한 사제가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합시다’라고 하면 회중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라고 하는 인사말도 있습니다. 안수받은 사제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보증하기 때문에 이런 인사말이 중요해졌습니다.

사제와 회중이 주고받은 이 인사말은 사제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되어갔습니다. 사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 예배부름의 문구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124편 8절을 사제와 부제가 주고 받았습니다. 사제가 부제들을 향해 ‘우리의 도움은 하나님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하면 부제들은 사제를 향해 ‘그 분은 천지를 지으신 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회중을 배제한 것은 미사가 그만큼 엄중한 의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부름에서 회중의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회중은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제단에서 사제들이 이렇게 읖조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사제가 이 소리를 너무나 작게 웅얼거려서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신자들은 사제가 하는 기도와 말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미사에 대해 더더욱 신비하게 생각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사제가 자기 죄를 고백하면서 읊은 이 ‘예배부름’의 문구를 그대로 이어받되 온 회중 앞에서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개혁자 칼빈은 수많은 문구 중에 시편 124:8의 문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대륙의 개혁교회에 자리 잡았습니다. 예배인도자인 목사가 이 예배부름의 문구를 외쳤는데, 이것은 목사가 회중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목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회중을 부른 것이 아니라 회중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개혁된 교회의 ‘예배부름’의 의미였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회중이 같이 이 예배부름의 문구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개혁은 예배부름의 문구를 온 회중에게 돌려준 셈입니다.

대륙의 개혁교회는 이 ‘예배부름’을 명확하게 규정지우기 위해 보툼(Votum)이라는 용어를 끌어와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용어는 군대 등에서 충성을 맹세할 때 사용하는 라틴어였습니다. 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예배부름’이 불러주신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하는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개혁자들은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공예배의 시작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예배부름은 목사의 개회사 정도가 아닙니다. 예배부름은 목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배하라고 명령(?)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부름은 목사가 회중에게 서로 인사하자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부름은 목사가 회중을 대신하여, 회중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응답하시고, 말을 마치기 전에 들으시는 분이기에(사 65:24) 우리는 허공을 향해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큰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시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자기를 섬기라고 위협해대는 세상 모든 세력들과 우상들을 떨쳐버리고 유일한 도움이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작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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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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