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부릉 부릉 부르릉! (로마서 9:1-5)
Launch the Rocket of Passion
‘샐러던트’(Saladent)
1. 전도의 열정 (Passion of Evangelism)
* 특이한 서론 (Special introduction)
* 특출한 열정 (Supreme passion)
* 특별한 혜택 (Spectacular benefits)
2. 전도의 방법 (Method of Evangelism)
* 빌 하이블즈(Bill Hybels), <하나님께 정직하십니까?>(Honest to God?)
1) 대결형 (Confrontation): “죄인은 예수 믿어야 구원받아요!” (행 2장의 베드로)
2) 지성형 (Intellectual):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행 17장의 바울)
3) 간증형 (Testimonial): “예수님이 나를 변화시켰어요.” (요 9장)
4) 관계형 (Relational): 바른 삶을 통한 전도 (막 5장의 귀신 들린 자)
5) 초청형 (Invitation): “와 보세요.” (요 4장의 사마리아 여인)
6) 봉사형 (Serving):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행 9장의 도르가)
3. 성공의 열정 (Passion for Success)
* “마음을 고용하라”(Hire the heart!)
* ‘돈 먼저’ (Money first)→ ‘열정 먼저’ (Passion first)
* 레오나드 스위트(Leonard Sweet). <영혼의 쓰나미>(SoulTsunami)
* 빛 (Light)= 미립자(particle) + 파장(wave)
* 성령의 불(Fire of the Holy Spirit) + 열정의 불(Fire of passion)
(빌 2:13; 롬 12:11)
* 진돗개의 열정 (Passion of a Jindo-dog)
열정: 부릉 부릉 부르릉! (로마서 9:1-5)
취업 인사포털 인크루트는 리서치 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를 통해서 직장인 1,26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대상 직장인의 57.2%가 현재 직장 일을 하면서 교육을 받거나 공부를 하는 ‘샐러던트족(族)’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샐러던트’(Saladent)는 직장인을 뜻하는 ‘샐러리맨(Salaryman)’과 학생을 뜻하는 ‘스튜던트’(Student)의 합성어입니다. 직장인들은 주로 전문자격증 취득이나 영어 학습을 위해서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를 할 정도로 자기 개발과 자기 발전을 위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로마서 9장 1-5절을 묵상하는데 “열정: 부릉 부릉 부르릉!”이란 제목이 번쩍 떠올랐습니다. 열정은 인생의 엔진입니다. 엔진에 발동이 걸려야 차가 달립니다. 열정에 발동이 걸려야 인생이 달립니다. 지금은 달리는 사람의 세상(runner's world)입니다. 팔짱 끼고 가만히 있는데 누가 도와줍니까.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는데 무슨 일이 이루어집니까. 뛰어들어야 합니다. 달려야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열정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열정에 발동이 걸려야 할 것을 교훈합니까? 바울 사도는 무엇에 대한 열정의 불이 있었습니까?
로마서 9-11장은 유대인들의 구원 문제를 다룹니다. 바울 사도가 1-8장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구원의 복음을 9-11장에서 유대인들의 구원 문제에 적용했습니다.
우선 본문의 서론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 ‘양심’이 그 점을 증언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성령’ 안에서 증언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왜 이런 서론을 써야 했을까요? 바울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오해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으려고 밤낮 성문을 지키기도 했습니다(행 9:20-25). 유대인들은 바울을 돌로 치기도 했습니다(행 14:19. 유대인 40여명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기도 했습니다(행 23:12-13).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렇게 ‘죽일 놈’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바울이 자기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할 때에 바울의 말을 믿겠습니까?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진심이 오해되지 않고 바로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 특이한 서론을 쓴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생각할 때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기 동족의 구원을 갈망한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실제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앞 장인 8장 38-39절을 보면 이미 구원받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것이 없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질지라도”라고 한 것은 그만큼 동족 구원의 열정이 뜨거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큰 근심”과 “그치지 않은 고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동족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기를 원하는 구령(救靈)의 열정입니다. 그것은 동족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려는 전도의 열정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랑의 불길에서 나온 불꽃”입니다.
구약의 모세에게도 그런 열정이 있었습니다(출 32;32). 신약의 예수님에게도 애타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동족에 대한 바울의 울부짖음은 인간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가장 처절한 울부짖음입니다. 8장 마지막에서 “아 기쁘다!”(What joy!) 하던 바울이 9장 초두에서 “아 슬프다!”(What sorrow!)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기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족이 멸망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 슬퍼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동족 구원을 위해서 애타는 열정을 표현한 것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권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4-5절에 열거된 유대인들의 특권이 우리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아니고 한국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특권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실감이 좀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에 대해서 ‘한국은 내 아들 내 장자다!’(출 4:22-23)라고 하셨다면, 우리 한국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믿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의 강대국 군인들을 동해와 서해에 수장하시고 한국을 위기에서 구출해 주시는 방식으로 영광스럽게 나타나셨다면(출 3:21-22), 한국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거절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에 피로 맺은 언약의 도장을 여러 차례 찍어 주셨다면(창 15:17이하; 출 19:5; 신 29:1; 수 8:30이하, 삼하 7장), 한국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냉대하겠습니까?
모든 다른 민족들은 자연과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듬고 있는데, 하나님이 한민족에게 분명하게 기록된 성문법을 주셨다면(출 20장), 한국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믿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에게 세계 민족들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에게 제사를 바치는 특권(대하 7장)을 주셨다면, 한국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영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에게 시복(施福)의 약속을 여러 차례 하셨다면(창 12:7, 26:3이하; 28:13이하; 삼하 7장), 한국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믿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솔로몬 같은 위대한 선조들을 주셨다면, 한국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거절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에 아인슈타인과 에디슨과 링컨, 더 나아가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다 합쳐 놓은 인물보다 더 지혜로운 인물을 주셨다면, 한국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믿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역대의 위인들과 노벨상 수상자들을 다 합친 인물보다 더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다 가진 인물입니다(골 2:3).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생명을 주시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입니다.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한국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하셨다면, 한국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습니까? 우리 한민족은 그리스도를 당연히 믿고 영접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상의 8대 특권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구원자 메시아의 도래를 위해 교육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아가 오셨을 때 그들이 당연히 메시아를 영접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특권(privileges)을 편견(prejudices)으로 바꾸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속이 탔습니다. 바울은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바울은 동족 구원을 위한 열정이 끓어올랐습니다.
우리도 전도의 열정이 뜨거워야 합니다. 우리가 뜨거운 열정만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빌 하이블즈(Bill Hybels)는 <하나님께 정직하십니까?>(Honest to God?)라는 책에서 전도의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1) 대결형(confrontation): “죄인인 당신이 예수 믿어야 구원받아요!” (행 2장의 베드로)
(2) 지성형(intellectual):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행 17장의 바울)
(3) 간증형(testimonial): “예수님이 나를 변화시켰어요.” (요 9장)
(4) 관계형(relational): 바른 삶을 통한 전도 (막 5장의 귀신 들린 자)
(5) 초청형(invitation): “와 보세요.” (요 4장의 사마리아 여인)
(6) 봉사형(serving):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행 9장의 도르가)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전도하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 친척 친구 이웃과 잘 사귀면서 “한 번 와 보십시오.”라고 하면 됩니다. 우리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에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전도만이 아니라 어떤 일도 열정이 없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올바른 비전에 따른 열정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리더십 전문가 존 멕스웰(John Maxwell)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열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열정이 없는 인생은 단조롭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일을 억지로 합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없습니다.
열정은 남들이 다 포기해도 계속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열정은 전염병처럼 번집니다. 열정은 믿지 못할 것을 믿게 합니다. 열정은 느끼지 못할 것을 느끼게 합니다. 열정은 시도하지 못할 것을 시도하게 합니다. 열정은 성취하지 못할 것을 성취하게 합니다. 열정은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게 합니다. 열정은 움직이지 못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합니다. 열정은 성공의 비결입니다. 열정은 영향의 비결입니다. 열정은 성공의 파장을 일으킵니다.
스필버그 영화 제작 회사는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마음의 열정을 본다고 합니다. 사람을 고용할 때 “마음을 고용하라”(Hire the heart!)는 것입니다. 그 회사는 두 가지 기준으로 직원을 뽑습니다. 열정과 창조적 모험입니다. 열정이 있으면 창조적인 모험까지도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공군 조종사들을 선발하는 데니스 크렘블(Dennis Kremble)은 조종사의 자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열정이라고 했습니다. 동일한 재능이 있다면 열정이 강한 사람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남이 일할 때 일하고 남이 쉴 때는 연장을 갈고 남이 놀 때도 일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성공을 원하십니까? 성공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개발해서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공하시기를 원하신다면 반드시 한 가지 테스트에 통과해야 합니다. 그것은 “열정 테스트”(zest test)입니다. 열정 테스트에 불합격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열정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1960-1980년 경영학과 졸업생 1,500명을 두고 조사를 했습니다. 두 부류로 조사했습니다. 한 부류는 ‘돈을 먼저’ 벌면 결국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부류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열정(하고 싶은 것)을 먼저’ 추구하면 결국 돈을 벌게 된다는 부류입니다. ‘돈 먼저’ 부류가 83%, ‘열정 먼저’ 부류가 17%였습니다.
20년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101명의 억만장자가 나왔습니다. ‘열정 먼저’ 부류에서 100명이 나왔고, ‘돈 먼저’ 부류에서 1명이 나왔습니다. ‘돈을 먼저’ 벌겠다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은 ‘열정을 먼저’ 추구하겠다는 사람에 비해 10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미국 드류 대학교에서 전도학을 가르치는 레오나드 스위트(Leonard Sweet) 교수는 <영혼의 쓰나미>(SoulTsunami)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불이 붙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불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뜨거운 가슴’(hot center)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상품(goods), 사탕(goodies), 하나님 중에 무엇을 위해 갈망의 엔진이 가동됩니까? 후현대인들은 불로 불과 싸웁니다.”
여러분에게 불타는 열정이 있습니까? 불타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 이깁니다. 누구 가슴에 타오르는 불이 더 뜨겁습니까? 이것이 승리를 판가름합니다. 미지근한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불이 없는 사람은 아예 일을 벌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과 예수님처럼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킨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시 69:9). 우리는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과 확신이 있으면 대구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너끈히 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물 위로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소년과 한 소녀가 첫 데이트를 마칠 무렵입니다. 소년이 소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소년이 현관 불 빛 아래서 소녀를 보고 “키스해도 돼?” 하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새침을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다시 정색하고 “키스해도 돼?” 하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너 벙어리야?” 하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너 중풍이야?” 하고 대꾸했습니다. 중풍이 아니라면 키스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레오나드 스위트 교수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교회에 이런 도전을 던졌습니다.
“교회야, 너 중풍이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왜 세상에 보여주지 못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왜 세상과 키스하지 못해?”
빛은 극히 작은 입자(particle)이면서 동시에 파장(wave)입니다. 우리 신자는 각자 작은 입자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역사상 새벽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킨 인물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올바른 비전을 추진하는 열정이 있으면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천국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합니다. 우리가 생명사역의 열정에 발동을 건다고 할 때 어떻게 걸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발동을 걸지 않아도 성령께서 이미 발동을 걸어주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빌 2:13). 성령께서 우리 속에 열정을 주시고 추진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열정의 불을 붙이시고 생명사역의 로켓을 쏘아 올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팔짱을 끼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다지고 팔을 걷어붙이고 발로 뛰어 다녀야 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성령은 열정의 불을 붙여주시고 우리는 열정을 불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금요일 전도의 진돗개 박병선 집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의미에서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전도의 진돗개, 기도의 진돗개, 학업의 진돗개, 사업의 진돗개가 되어야 합니다. 박병선 집사님은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열정만 있으면 전도 못 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정하면 끝까지 찾아가서 교회에 등록시키고야 말겠다는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 명을 전도하느냐 하는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박병선 집사님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당시 로마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했던 것은 그에게 전도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가슴에 세계 선교와 민족 복음화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이 주신 복음의 불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불길을 지피면 됩니다.
풍로를 돌려 불을 괄괄 타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계속 기도하고 전도하면 우리의 마음에도 복음의 불이 점점 더 뜨겁게 타오릅니다. 자꾸 발동을 걸면 부릉 부릉 부르릉! 전도 열정에 발동이 걸립니다. 복음 열정에 발동이 걸려 가장 보람된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권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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