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스크랩] 사후에 관한 고찰

작은샘 큰물줄기 2016. 3. 5. 13:26

사후에 관한 고찰

 


 1) 일반적 이해

    사후의 생명에 관한 믿음은 장례의식 및 원시종교의 사자(死者)숭배 이전에도 원시문화의 매장 절차들에 의해서 입증이 되고 있다.  사후의 관념에는 두 가지로 구별되고 있다. 

 

첫째는 재생관념(再生觀念)으로 죽은 후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개념인데 이 재생신앙이 발전해서 이생(異生) 즉 다른 동물로 태어난다는 것이 영혼윤회(靈魂輪廻) 관념이다. 

 

그러고 두번째의 관념은 타계신앙(他界信仰)으로 이것은 몇가지로 또 구분된다.  지상(地上), 지하(地下), 천상(天上) 등으로 나누며 셋 중 하나를 또는 복수로 체택하는 관념이다.  그리고 이 타계의 성질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현세와 연결된 세계이며, 이 세상과 같이 생활이 영위된다고 생각하는 계속이론과 보응의 세계로써 이 세상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다른세계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보응이론이다.1)

 

    내세관념은 생명의 연속을 갈망하는 인간의 강한 욕구에 근원을 둔 관념으로서 이러한 내세관념을 거의 모든 민족이 가지고 있다.2)

    그런데 최근에는 사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또 그 연구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팀 라하이(Tim Lahaye)는 그의 책 ?사후의 생명?이라는 저서에서 육체이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육체이탈 체험과 성경의 가르침과의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한다. 

① 임상학적으로 완전 사망선언 후에도 어떤 존재가 계속된다.  ② 몸을 떠난 후에도 정신 영혼은 안식과 고통을 느낀다.  ③ 사후에도 정신과 영혼이 살아있을 때와 똑 같음을 동의한다.  ④ 사랑하던 사람들과 친구들을 알아 볼 수 있다.  ⑤ 내세에서 정신, 영혼들 사이에 대화가 가능하다.  ⑥  육체이탈 후에도 정신,영혼은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⑦ 정신, 영혼은 다른 존재 상태를 기다리는 일시적인 상태이다.3) 

 

 

둘째로, 육체이탈 체험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점은 ① 육체이탈 체험은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모든 사람을 그의 왕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한 마 13:40-43과 모순이다.  ② 성경은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고 가르쳤다.4)  ? 육체이탈자들이 죄에 대한 최후심판은 없다고 한 점은 가장 위험하다.  ④ 기독교인이나 불신자들 모두가 내세에서 같은 체험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⑤ 육체이탈 체험자들은 다시 돌아와서 또 한번의 기회를 보장받는다고 했는데 성경의 근거가 없다.  ⑥  육체이탈 여행에서 돌아온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점이다.5)  ? 많은 귀환자들이 죽음을 즐거운 체험이라고 한다.6)

 

    이렇듯이 간단히 현대 의학에서 연구중인 육체이탈 현상에 대해 고찰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새로운 분야에 대하여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며, 성서에 의해서 보다 깊은 연구와 평가가 있어야 하리라 본다.

 

 


 2) 한국의 재래 종교에서 본 이해

 

  (1) 불교

    불교에서는 극락정토(極樂淨土)와 지옥의 두 가지 형태의 내세관 을 말하며, 망인(亡人)의 영혼이 일단 죽어서 명부(冥府)로 가서 명부의 십대왕(十大王 )앞을 차례로 거처가며 현세에서 행한 생전의 선악에 따라 심판을 받아 지선자(至善者)는 극락으로 보냄을 받아 왕생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고, 악행자는 지옥으로 보내어 영원히 온갖 형벌을 받게 된다고 믿는다.7)

 

 

    그리고 불교의 내세관에서는 윤회설(輪廻設)을 주장한다. 이것은 기원전 600년 경의 우파니샤드의 문헌아래 인도 일반에 설(設)해져 온 것인데 불교도 역시 이 영향을 입은 것이다.  윤회라는 말은 범어(梵語)인 삼사라(samsara)의 역어(譯語)로 전생(轉生), 재생(再生), 유전(流轉)이라고도 말한다.  윤회라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衆生)은 죽어도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또 바뀌어 태어나, 마치 수레바퀴가 회전하여 멎지 않는 것처럼 생(生)을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는 사상이다.  또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삼계(三界) 육도(六道)가 있다고 말한다.8) 

 

? 윤회사상(輪廻思想)에 의하면 현재 우리 앞에 있는 짐승들이 전세(前世)에서 사람이었던 것이 바뀌어 태어 났을 수도 있고, 미래세(未來世)에 인간이 짐승으로 태어나는 일도 있을 것으로 본다.  육도의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가 하는 것은 행위의 총체인 업(業)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선한 행위를 한 선업(善業)에 의하여 선의 세계에,악한 행위를  한 악업(惡業)에 의하여 악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한다.9)

 

 


  (2) 도가

    도가사상에 있어서는 ‘도’를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였고 이 ‘도’를 영구불변의 우주의 본체로 보고 만물이 여기서 나왔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도’는 인격성 없는 추상적인 자연 법칙을 의미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도가사상가(道家思想家)들은 자연의 위대한 법칙을 발견하고 이에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될것을 생각했지만 이러한 자연법칙을 주관하는 그 이상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도가사상에 있어서는 생을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을 가짐과 동시에 죽음에 대하여는 상당히 초연하고 담담한 태도를 취한다. 

 

 자연에 춘하추동이 있듯이 죽음도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도래(到來)하는 것처럼 사는 것과 죽는 것도 일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가사상에는  사후세계(死後世界)에 대하여 구체적인 확신도 없고, 소망도 볼 수 없다.  다만 조상숭배 의식과 깊이 관련된 신앙에서 내세관에 언급된 것을 보면, 사람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세력과 화합을 이루어야 하며, 죽은 자의 무덤도 산세(山勢)의 흐름이 음양의 이치와 잘 맞아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조화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고인의 운명이 불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풍수설(風水說)이다.  이와 같은 신앙사상으로  모든 사물을 정통한 사람은 지관(地官)으로서 무덤의 방향과 위치에 대하여 자문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비 성경적이다.  왜냐하면 고인(故人)의 운명은 무덤의 위치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도교(道敎)의 우주론은 성경의 창조 교리와는 반대되기 때문이다.10)

 


  (3) 유교

    본래 공자는 영혼 불멸에 대해서나 사후 세계에 대하여 별로 가르친 바가 없다.  그런데 시간이 감에 따라 유교 전통이 일반 토속신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점 하나의 종교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된 것이다.11)  ?가의 내세관 다시 말하면 사자의 세계관은 송대(宋代)이후의 신유학(新儒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송대의 대유학인 주자철학(朱子哲學)은 소위 성리학(性理學).도학(道學).송학(宋學)으로서, 특히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정이의 이기설(理氣說)을 종합한 것인데, 이기(理氣), 심성(心性)을 탐구함으로써 세계와 인생을 해명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는 고려말경에 안유(安裕)가 연경(燕京)에 갔다가 수입해 온 후로 점차로 진흥하여 이조 국가 건설의 지도적 이념이 되었으며,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원용(援用)그리고 가묘(家廟)의 설립 등으로 점차 민중생활 속에까지 깊이 뿌리를 박으면서 이조 사회에 공과(功過)양면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12)  ?리하여 조선시대에서는 음양설에 의한 귀신론과 사후 세계관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유가의 음양설에 의하면 천지간에 만물에는 기(氣)가 있는데 기는 정령을 의미하며, 양기의 정령을 혼기(魂氣)로, 음기의 정령을 형백(形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이 죽으면, 음의 정령인 형백은 처음부터 지하에 묻히지만, 양의 정령인 혼기는 승천하여 신명(神明)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생전에 원한이 맺혔거나 현세에 대한 미련을 남기는 경우라든가 죽음의 형태가 비참하다든가 또는 객사(客死)하였을 적에는 양의 기가 승천되지 못하고 강하(降下)하여 귀신이 되어 공간에 부유(浮遊)하며 떠돌아 다니는데 이것이 소위 귀신이며, 생존한 가족에게 나타나 괴롭히며 조화(造化)를 부린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유학계의 대학자인 이율곡(李栗谷)도 이러한 종교적 신앙을 근거로 조상숭배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13)  ?선후기 실학의14) 거?인 성호 이익(李瀷)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귀는 음의 영이고 신은 양의 영(鬼也者陰之靈, 神也者陽之靈)”이라 했고15)성현?成峴)의 ?용재총화?(傭齋叢話)에도 음양설에 의한 신과  귀신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16) 

 

 

?이렇게 귀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사후에 인간의 생명이 변형된 형태로 연속하는 것임을 믿는 사생관(死生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교. 불교. 유교. 및 도교의 원리를 통일한 동학(東學)도 역시 “사람에게 혼과 백(넋)이 있는데, 혼은 하늘에 올라가서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귀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17)  그런데, 한국 유학(儒學)의 한편에서는 결국 신후담(愼後聃)의 말대로 “혼이란 형체에 의지하여 있다가 형체가 없어지면 소산(消散)하여 무(無)로 돌아가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18) 

 

 

그러므로 민간의식(民間意識)에 크게 영향을 끼친 음양설에 의한 유교의 내세 형태에 대한 관념은 사실상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데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천당 지옥설을 비판하여 이르기를 “중국에 한(漢)나라 이전에 죽었다가 도로 살아난 사람이 천당 지옥을 증거할 수 있었던 자가 없는데, 이제 윤회설만은 잘못이고 천당 지옥은 옳다 하겠느냐?19) 하?고 그의 문인(門人)인 신후담도 또한 ”천당 지옥설은, 사람이 죽어서 혼유백강(魂遊魄降)하여 산변(散變)하면 혼이 없어지므로 의미가 없는 것이며, 복선화엄설(福善禍淫說) 즉 유교에서는 순리(順理)하면당연히 복을 받고 역리(逆理)하면 화를 당하는 것이므로 천당 지옥의 존재가 필요 없다.”20)고 ?주장하였다. 

 

또 신후담은 “서학(西學=천주교)의 영혼불멸설도 탐내는 마음에 호응하는 것이며, 또 이것은 이단(異端)의 공통적 극원인 이심(利心)에서 나오는 것이라”20) 고?비난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가풍속(儒家風俗)은 결국 무속의 정령숭배와 불교적 내세관과 및 도교의 자연주의가 결합된 그러한 혼합상태라고 보아야 하겠다.

 

    이런 혼합상태는 현실적으로 한국인의 의식(意識)속에 있다는 것을 상례와 제례 의식(儀式)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광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을 떠나 영원히 가버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삼혼칠백(三魂七魄)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두 귀, 두 눈, 두 콧구멍, 입, 이렇게 일곱 군데에 일곱 가지 정령(精靈) 즉 칠백이 남는다고 생각하며, 또 이 칠백에서 떨어진 삼혼 중의 하나는 저승으로 가고 하나는 육신 특히 뼈 속에 남아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자유로이 방황한다는 것이며, 지상을 방황하는 혼은 주기적인 대접을 받으면 편안하나 그렇지 못하면 잡귀가 되어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이다.21)

 


  (4)무속

    무속신앙에서 보는 영혼이 가서 영주(永住)한다는 내세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민간에서 상정(想定)되는 순수한 내세의 형태는 현세를 ‘이승’이라고 하는 한편 내세를 ‘저승’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으면 응당 ‘저승’으로 가는 것이고 거기서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고 상정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낙원적 성격이 강조되지는 않는다.22)  ?강대(西江大)에서 개최된 종교학회,즉<종교별 사후세계>학술발표에서, 이수자(李秀子)는 <한국 무속에 나타난 죽음관>을 통하여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이르기를, “무속신앙에서는 죽음의 세계를 맑고 깨끗한 것으로 인식했는데 이는 삶의 세계인 이승을 상대적으로 부정(不淨)한 곳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23) 

 

그러므로 민간의 관념속에 이와같이 순수한 내세(저승)형태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기 전, 원시 무속의 내세 형태가 바로 이와 같은 ‘저승’ 형태였던 것으로 생각한다.24)  ?러므로 무속에서 극락과 지옥을 말하는 것은 불교의 전래 이후에 불교의 극락과 지옥의 내세 형태의 영향을 받아서 변질을 가져온 후래적(後來的)인 형태로 볼 수밖에 없다.

 


 3) 성서적 이해

    성서적인 이해를 통해서 앞의 잘못된 이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중간상태와 부활에 대해서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원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그 사실을 중심한 신앙이 전면에 나오기 때문에 사후문제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친 것은 없다.25)

 


  (1) 중간상태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와 오리겐(Origen)은 순교자는 곧 낙원으로 가지만 그 밖의 영혼들은 음부에서 부활 때까지 기다린다고 주장한다.  이 설은 암브로시우스, 어거스틴을 거쳐 그레고리 1세(Grehory 1) 때 연옥설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이를 전적으로 부인하였다.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기 위한 정화(淨化)와 순화(純化)는 철저하게 비성서적이다.  그것은 유일한 정화와 순화의 길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헛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도울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도, 천사라도 우리를 옹호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삶과 죽음에 있어서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지해야 한다.26)  ?라서 연옥을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

 

 

    구약에서 죽은자가 갈 곳을 ‘스올’이라고 공통적으로  표현했다.  우리 말로는 ‘무덤’, ‘음부’, ‘구멍’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 스올은 죽은자가 공통으로 가는 곳으로서 음부나 지옥의 관념이 있지만, ‘스올’에 해당하는 신약의 ‘하데스’는 ‘지옥’과 혼돈됨이 없이 또한 결정적으로 형벌의 곳으로 되어 있다.27)  ?렇게 살펴 볼 때 스올은 엄격히 형벌의 곳이 아니라 죽은 자의 가는 곳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데스는 스올의 일부라 할 수 있다.28)  ?데스는 낙원과 구별되고, 또한 영원한 형벌의 곳인 지옥과도 구별된다.  음부란 관념이 중간지대적인데는 구약과 신약이 공통된다.  구약의 스올은 선악의 구별을 초월한 죽음 또는 무덤을 가리켰다.29)

 

    예수님은 죽은 자가 갈 두 세계를 가리키셨는데, 선한 자의 세계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묘사하셨고30), ?자가 위에서 친히 낙원에 가실 것을 밝히셨다.31)  ?울은 낙원과 셋째 하늘을 동일시 하고 있다.32)  ?리고 예수님은 믿음의 승리자에게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약속하셨다.33)  ?국 낙원은 음부와 대치되는 죽은 자의 중간세계인 것을 밝힐 수 있다.  그 곳에서 신자들이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사람이 죽으면 의인의 영은 낙원으로, 악인의 영은 음부로 가서 부활을 기다린다.  부활 후에는 의인의 영은 영화된 육과 합하여 천국으로 옮겨지고, 음부의 영은 부활하여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낙원은 천국의 일부요, 음부는 지옥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34)

 


  (2) 부활

    기독교의 여러가지 교리 중에서도 부활의 교리는 대단히 중요하다.  성도에게 있어서 부활은 신체의 영화와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완전한 행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35)  ?수님도 자신의 교훈 중에서 부활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셨고, 자신이 죽으시고 장사한지 3일 만에 영과 육을 가지시고 살아나셨다.  그 부활은 단순한 소생이 아니라 영생(永生)으로 일어나셨고, 영원한 영광으로 부활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육체와 영혼이 유기체로서 연합되는 동시에 현저하게 변화를 입으셨다.36)  ?는 부활을 통하여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다.37)  ?러므로 영화롭고, 불멸하며, 권능에 찬 그리고 육신으로 된 영체로 부활한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에게 그들도 장차 그와 같은 몸으로 부활할 것을 보증해 준다.38)  ?러한 부활의 신앙은 한 개인이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에서 그 증거를 ?아 낼 수 있다.

 

 

   ① 구약의 증거

    부활에 대한 생각은 족장시대에도 있었던 것이 확실한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때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39)라고?하였다.  “열조와 함께 잔다”40)는 ?현도 부활의 신앙을 내포하는 것으로 잔다는 것은 후에 깨어날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② 신약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구약보다 훨씬 더 많이 말하고 있다.  그 절정은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요 약속이라는 것은 신약의 의심할 수 없는 교훈이다.41)  ?도 바울은 부활의 진리를 극히 중요하게 보고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길게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 바울은 부활에 대해 논증하되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 임을 증명하였다(1-12절).  그리고 거기서부터 추론하여 부활의 가능성과 확실성을 말하였다(13-34절).  다음에 바울은 부활체의 성질을 논하여 반대성의 무용함을 폭로하였다(35-58절).

 

 


  (3)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이란 세상 끝날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을 심사하시고 판단하셔서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시는 일이다.  믿는 자는 이미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42)  ?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믿는자나 불신자에 대해서 세상의 마지막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최후의 심판에 대한 신앙은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생에 대하여 엄숙하게 만든다.  무서운 심판에 대한 생각은 죄인을 회개하도록 만든다.  심판대 저편에는 천당과 지옥이 준비되어 있다.  즉, 이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택하신 자의 영원한 구원을 통하여 자기의 자비에 관한 영공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43)  ?째는, 사악하고 불복종하여 버림받은 자들을 통하여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다.44)

 

 

    심판의 근거는 사람이 현세에 가진 성격, 사상, 언사, 행위이다.45)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롬 2:6)는 것은 그의 심판에 대한 일반적인 근거이다.  이 근거를 좀더 자세히 ?아보면 성격은 마태복음 7:15-23에, 사상은 마태복음 5:28,29; 요한계시록 2:23에, 언사는 마태복음 12:36에, 행위는 고린도후서 5:10에 나와 있다.46)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