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던 유행어가 있습니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무명의 이 개그맨은 이 유행어로 일약 인기 개그맨으로 부상했습니다.
이 말이 유행한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흔히 하는 말이고 또 누구라도 다 할 수 있는 말인데 왜 이 말이 유행하게 됐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답은 간단해 보였습니다. 오늘 우리시대의 남성상이 왜곡되고 있고, 이런 시대 흐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이 말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요사이 과거기준에서 볼 때 남자 같지 않은 남자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시대 흐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여자처럼 작고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남자들이 인기입니다. 소위 “꽃미남”이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미용실을 드나들며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고 피부 관리를 받고 얼굴 성형수술까지 합니다. 게다가 패션에 민감하고 디자인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입니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심슨(Mark Simpson)이라는 사람이 이런 문화적 트렌드를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라 부른바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우리나라 영화배우 이준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여느 남성들은 이런 문화적 트렌드가 마땅치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이 개그맨은 우락부락하게 생겼습니다. 전혀 메트로섹슈얼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래서 기분 나빠서 외칩니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다른 하나 우리시대 흐름 가운데 남성이 여성에게 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최근 외무고시 합격자 31명 중 21명이 여자이고, 신규 임용 판사 90명 중 58명이 여성이랍니다. 중앙일보 수습기자 9명을 뽑았는데 그 중에 6명이 여자랍니다. 그야 말로 강력한 여풍(女風)이 불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자 댄 킨들러란 사람이 이런 흐름을 설명해 주는 책을 썼는데, 그 책 제목이 [새로운 여자의 탄생 - 알파걸(α-girl)]입니다. 여기서 알파걸이란 “학업·운동·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보다 뛰어난 엘리트 소녀”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알파걸의 등장으로 남자들은 2류인 베타보이(β-boy)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알파걸의 등장에 남성들이 속이 편할 리 없습니다. 더욱이 여성과 경쟁해서 이길 것 같지 않은 남성들은 속이 쓰립니다. 이 개그맨은 이런 베타 보이들의 대표들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 외칩니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결국 저는 이 개그맨의 유행어 속에서 남자다운 남자상의 혼란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고정관념처럼 떠받들어오던 남자다운 남자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남자다운 남자상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의 남자다운 남자상을 지켜가려는 몸부림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남자다운 남자상에 하나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켜온 남자다운 남자상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신체적으로 건장해야 합니다. 키도 크고 체격도 당당하고 근육질 몸매에 한 주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정신적으로 강인해야 합니다. 어떤 고난도 잘 참고 견뎌야 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삶의 태도가 박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없이 행동해야 하며 의리를 지켜야 하고 야성적인 카리스마를 갖춰야 합니다.
이런 남자다운 남자상을 한 마디로 “사나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런 사나이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이런 사나이들이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과거의 남자다운 남자상에 사로잡혀있는 남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기가 죽어가고 있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정말 이처럼 남자들이 불쌍해 보인 시대가 없었습니다.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교회 안에서도 남자들의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교회 사역의 대부분이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여성 목사들이 나타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유능한 여성 장로들이 나타나 점차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역시 남성들이 과거와 달리 초라해 보입니다.
남성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남성들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남성들이 다시 자기 자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기가 살아나야 합니다. 당당함을 회복해야 하고 활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남자다운 남자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과거의 사나이 상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시대에 걸맞은 남자다운 남자상을 새롭게 정립해 가야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여기에 남자답게라는 말이 나옵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안드리제스테’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남성이라는 뜻의 ‘아네르’에서 왔습니다. 그 뜻은 ‘남자임을 과시하라’, ‘남자다움을 보이라’입니다.
여기서 남자답다는 말은 ‘강건하다’는 말과 연관되어있습니다. 이 강건하다는 말은 한 마디로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답다는 것은 힘을 갖고 그 힘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물론 여기서 힘이란 완력이나 박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도 때도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조폭처럼 전신에 용 문신을 하고 어기적거리며 박력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영적인 Power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답다는 것은 믿음의 힘을 가지고 그 믿음의 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남자다운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영적인 힘을 갖춘 남자
역시 남자다운 남자는 힘이 있는 남자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남자들은 이 힘을 갖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남자들은 정력을 키우려고 애써왔습니다. 정력이 좋은 남자가 남자다운 남자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먹으려 애써왔습니다. 유난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력에 좋다는 음식들을 밝혀왔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보신탕, 녹용, 웅담에 갖가지 야생동물들까지 잡아먹습니다. 국내에 동이 났다고 해외까지 나가서 밝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남자들은 근육의 힘을 키우려고 애써왔습니다. 주먹의 힘이 있는 남자가 남자다운 남자다로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태권도, 유도, 각종 무예를 익히려 해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남자다운 남자의 힘은 영적인 힘입니다. 특히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을 갖춘 남자들이 진정한 남자다운 남자인 것입니다.
삼상 17장을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가 나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골리앗은 키가 작게 잡아도 2미터 70이상입니다.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입니다. 최신예 무기로 완전무장을 했습니다. 정말 힘으로는 상대할 자가 없는 대단한 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직 군대에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가진 무기라고 해야 고작 물맷돌과 나무 지팡이가 전부입니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보기 좋게 이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골리앗이 나타나자 이스라엘 병사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거대한 자를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크니 절대 빗맞을 일은 없겠군."
그렇습니다. 다윗은 남들이 가지지 않은 믿음의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골리앗을 보니 두렵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남자의 힘은 바로 이 믿음의 힘에서 나옵니다. 사랑하는 남성 여러분! 이 믿음의 힘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남자
남자다운 남자는 이 믿음의 힘을 잘 발휘하는 남자입니다. 이 믿음의 힘으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남자입니다.
창 3:6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었고, 자기도 모자라 아담에게도 먹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와가 영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느냐 마느냐 이 중대한 문제를 하와가 자기 혼자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아담에게 자기가 먹은 것처럼 먹으라고 말했고 아담은 그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저 아담은 하와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와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결정하면 아담도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에덴동산 저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남성들은 리더십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을 잃어버린 남자, 고개숙인 남자의 원조는 저 에덴동산의 아담이었던 것입니다.
공처가로 소문난 왕이 신하들과 모임에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경들 중에 마누라 눈치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당당하게 남자답게 큰 소리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리고 확인 차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경들 중에 마누라 눈치보고 사는 사람들은 저 왼쪽 깃발 아래로 모이고, 당당하게 마누라에게 큰소리치며 사는 사람들은 저 오른쪽 깃발 아래로 모이라“
신하들 모두가 왼쪽 깃발 아래로 모였는데 한 사람만 오른쪽 깃발 아래로 모였습니다. 왕이 너무도 기쁘고 자랑스러워 물었습니다. “경은 우리의 자랑이요 또 소망이다.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비결을 말하라!” 이 신하가 두려움에 떨며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왕이여 사실은 오늘 아침이 마누라가 이르기를 당신은 절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가지 말라 해서 사람들이 없는 이곳에 서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믿음의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힘으로 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아담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 2:17절 말씀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지 말라 따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는 말씀은 아담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담이 하와의 이름도 지어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아담이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에 휘둘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침묵했습니다. 하와가 자기에게 선악과를 주어 먹게 했을 때 먹지 않겠다고 거절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침묵하고 따랐습니다.
아담에게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들은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사명입니다. 믿음의 힘으로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사명입니다. 그래서 침묵하면 안됩니다. 말해야 할 때 입을 열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남자다운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자다운 남자는 영적 리더십을 회복한 남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가정을 일터를 교회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남자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남성 여러분! 영적 리더십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힘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입을 열고 말해야 할 때 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성 여러분! 남성들이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기다려주고 경청해 주어야 합니다.
남을 돌아볼 줄 아는 남자
많은 남자들이 가진 힘을 잘못 발휘할 때가 많습니다. 남자답지 못한 비겁한 남자들입니다.
우선 남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고 합니다. 특히 대화를 통제하려고 합니다.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자기 의견에 반대하면 윽박지르고 화를 냅니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폭력도 쉽게 행사하려고 합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말보다 주먹을 앞세웁니다. 쉽게 화를 내면서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폭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너무도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감정만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 행동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 남자다운 남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힘을 올바로 행사합니다. 그 믿음의 힘 때문에 늘 평안합니다. 늘 여유가 있습니다. 잔이 넘쳐서 흐릅니다. 그 여유와 그 넘치는 잠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남들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일본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자가 벌써 40%나 된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까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서구사회에서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양변기 경웁니다만 도대체 남자가 왜 앉아서 소변을 볼까요? 일전에 터브가이로 소문난 탈렌트 최민수씨가 인터뷰하는 도중 자기가 앉아서 소변을 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실 서서 소변을 보면 양변기 주변에 일부가 튀어서 묻게 됩니다. 여자 분들이 일을 보려고 할 때 여기저기 튄 것이 남아있어서 불쾌하기가 그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힘이 있는 남자가 힘을 약자를 돌아보기 위해 쓸 때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힘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힘을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배려하고 섬기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남자다운 남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남성의 위기 시대입니다. 기존의 남자다운 남자상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남자상이 세워져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다운 남자다운 남자상에 정립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믿음의 힘으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힘으로 약자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성 여러분!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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