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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을 읽다가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작은샘 큰물줄기 2016. 10. 5. 08:24

성경을 읽다가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성경을 읽다가 보면 사실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설화처럼 접근되기도 하고 아니면 하나의 추상적인 내용으로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어도 하늘의 책이라는 이유 때문에 질문이나 의문을 갖기는커녕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부정적인 의도 아래 의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차원에서 심도 있게 파 헤쳐야 할 것이다. 성경을 읽다가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짐승들, 지명, 그 외에 모든 사물들이 우리와 어떤 관계이기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등장하고 우리에게 무슨 비유로 나타내는지 검토해야 한다.

 

창세기 7장 21절을 읽으면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23절에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지 않는 물고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살았을까?

 

성경을 읽으면서 의문을 갖지 않은 것은 아마 설화처럼 여겨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나 경건한 책이라서 이러한 질문을 교인들이 하지 않는다. 의문하는 것 자체가 불신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파헤쳐 깨닫는 것이 바로 원어성경공부의 기초이다.

 

방주 속에 들어갔던 짐승들은 다 살아남았다. 그러나 방주 밖에 있었던 모든 생물, 즉 새와 짐승, 땅에 기는 것, 사람까지 다 죽었다. 그런데 물고기는 죽었다고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살았다고 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살아났다. 어찌하여 물고기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살아날 수가 있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더듬어 보자.

물이 무엇이길래 물 속에 있는 존재들은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일까?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라고 되어있다."라는 근거해 보더라도 "물 속은 구원받을 수 있는 장소이다. 특히 물고기들은 물 밖에서는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물 속에 있으면 안심이다.

 

물론 자연 환경적인 요소를 따진다면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한다면 물 속을 지나가거나 살게 되면 구원받을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세례라는 것을 안다면(고전 10:1-2) 기독교에서 행하는 세례는 예수 믿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 물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요, 결단이 되어야 한다.

 

모태 안에서 양수로 쌓여 있듯이 인간의 구성요소 중에 70-80%가 물이다. 그래서 사람은 흙으로 창조된 것이지만 원래 고향을 따진다면 물이다. 방주에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물고기는 즉 하나님의 존재들은 물 속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날 수가 있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어떻게 물고기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 기독교인들만이 가졌던 사인들이 있었다. 영화 쿼바디스를 보더라도 서로 기독교인들을 알기 위해 땅바닥에 아니면 손바닥이나 어떤 사물에다 물고기 모양을 그렸다.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차량 꽁무니에 물고기 모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 믿는 자라는 표식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너희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셨다. 그러면 제자들이 어부라면 사람들은 바로 물고기라고 확정해도 된다. 성경은 나를 가리켜 하는 말씀이라면(시 40:7)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자들은 그리고 그 분의 은혜 가운데 있는 자들은 다 물 속에 있는 자들이다.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는 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도 홍수 시대이다. 교통차량, 인구, 정보, 지식의 홍수를 이루고 있는 이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안에서, 물 속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구원방주에 들어가는 은혜도 못 받고 물 속에 있는 축복마저 없다면 우리는 죽게 된다. 그런데 아까 봤던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바로 세례요, 구원받는 표요, 물 속에 거하는 것이다."

 

에스겔 47장 9절에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 물이 즉 하나님의 속성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삶의 정신을 가진다면 환경오염은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적 오염도 없을 것이다. 이보문 목사/창골산칼럼니스트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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