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용어

[스크랩] 폐하여진 율법의 또다른 중요한 기능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9. 16:09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완전한 말씀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이 온전히 지킬수 없기에 그 율법은 사람의 행위에 따라 상벌을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말았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그 율법을 이제는 하나님 자신 스스로 아들을 통해 십자가의 희생을 치르심으로 율법을 폐하셨다.

 

하지만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지거나 무가치하게 여긴다는 말이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자체는 선하고 거룩하다.

 

다만 사람에게 지켜 행하라고 심판의 힘을 행사했던 율법이 천국복음인 새언약으로 인해 그 효력이 정지되어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가질수 없는것 뿐이다.

 

무슨말인가?

주님의 천국복음으로 인해 율법이 내용이 무가치하게 없어지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의롭게 살고자 행위에 따라 적용되는 율법이 행사할수 있는 모든 심판의 힘이 끝났다는 것이다.

 

즉 율법이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율법의 기준에따라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든것이 폐하여 진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서 예수그리스도 희생이후 율법은 마침을 이루고 대신 죄를 깨닫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율법의 원래특성은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질서와 평화를 위해 살아갈수 있는 필요한 거룩한 법을 내려서 그렇게 살았냐 살지못했느냐를 판단하고 그 기준에따라 상과벌을 정하는 정죄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는 거룩하지만 그 말씀을 듣고 온전히 지켜 순종할수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율법은  항상 판단과 정죄와 심판의 위치에서 사람이 행한 선악의 행위에 따라 그 기능을 행사하게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수 없었기에 모든사람은 더욱 죄로 신음하게 되었고 이러한 죄에 빠진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 율법의 힘이 가진 판단과 정죄와 심판은 모두 사람에게 행사하지 못하도록 못 박아 버린것이다.

 

한마디로 죄를 정하는 기준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주님의 그 희생적 사랑을 십자가로 하여금 못박아 죽여버린것이다.

그래서 폐하여진것이다.

 

주님이 오시기전만 하더라도 율법은 사람에게 엄청난 심판의 힘을 가졌지만 이제 그 율법은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희생의 댓가를 대신 담당하시자 율법에따라 정한 죄는 모두 그 힘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오직 날 대신하여 희생하신 그분의 사랑을 아는 그 믿음으로 하여금 마음의 할례를 이루고 주님의 의를 받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수와 허물로 넘어질수 밖에 없지만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셨다.

 

 그 믿음으로 연약한 자신의 몸이 주님이 거하실수 있는 성전이되어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께서 거룩한 영으로 내안에 오셔서 우리 옛자아가 깨어지고 굽이 갈라진 새 마음판이 생기자 새언약인 천국복음의 말씀을 우리마음판에 새겨 주의 영으로 하여금 우리안에서부터 밖으로 흘러나오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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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이 이후  효력이 정지되어 폐하여져 있으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학교 학문교사로 원래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모습으로 되었다.(신18:15-22)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까지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의와 열심으로는 연약한 인간으로서는 아무것도 이룰수 없고 죄만 늘어날수 밖에 없다는데 까지 깨달을수 있도록 율법의 조항들을 그대로 주님이 다시 오실때 까지 놓아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룰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통해서 자신속에 얼마나 죄가 넘실대로 있는지 알고 깨달아서 주님께로 나아와서 회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날 죄악세상에서 나와 광야와도 같은 이세상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동시에 가정과 사회에 있어서 평안과 질서를 지켜주는 기초적 연단과 훈련의 기준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유치원교사와도 같다.

 

처음 얼마동안은 세상광야에 서있는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성경을 통해 기쁨을 가지고 열심히 지키고 생활하겠지만 곧 자신의 행위로는 온전히 이룰수 없는 모습을 알고 은혜를 갈구하는데 까지만 이 율법은 쓰이게 될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넘어지기 쉽고 변하기 쉬운 자신의 부패된 마음으로는 지킬수 없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내가 노력하는것이 아니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온전히 이룰수 없는 자신의 무가치성을 빨리 알아서 그리스도의 사랑가운데 성령의 이끄심따라 행할수 있도록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이제 주님을 믿고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 되었으니 앞으로는 율법대로 살면 안됩니다." 라고 말하는 것도 곤란하다.

 

율법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말은 율법의 내용을 무시하라는게 아니라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줄 것 으로 알고 노력과 정성으로 열심히 지켜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또한 그 율법의 기준으로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가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롬3;19-22)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줄로 아느냐 폐하러온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하셨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없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내용인 천국복음으로 말미암아 이후 모든사람의 선악의 행위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 율법이 즉시로 판단하여 저주와 멸망에 이르게 하는 그 힘을 완전히 폐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죄의 힘은 주님이 이미 다 멸했기 때문이다.

이후 죄를 범하는 모든 사람들은 천국복음을 알지못하여 아직도 죄의 종노릇하는 불쌍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긍휼의 대상으로서 바라볼뿐이다.

 

그래서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온전히 지켜 행할수 없고, 죄를 깨닫게 하는 흉악한 도구지만  새생명을 소유한 우리가 새언약인 천국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가운데서 온전히 영광 돌릴 수 있도록 하셨다.

 

즉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통해 ,그 분 자신 스스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내마음에 새긴 새 언약의 천국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가운데 완전케 하셔서 구원의 감격과 은혜안에서 참된 마음으로 온전히 감사함으로 행할수 있도록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율법의 내용과 새언약의 천국복음은 우리몸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그 실제적 삶의 지침 행동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서로 다르다

이것을 알려면 듣고 읽고 본 말씀을 통해 내가 행하는가 아니면 내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통해 말씀하셔서 그일을 하게 하시는가 이다.

 

내가 행한다는 것은 내의로 이룰려고 하기 때문에 어떤 말씀이 내 마음에 맞으면 잘 하게 된다.

하지만 부담되는 명령이나 하기싫은 요구를 받으면 그 매임으로 인해 구속을 당하는 것이 싫어서 대부분 곁길로 가거나 모른척을 하게된다.

 

육신적인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이 원치않을때는 철저히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새언약의 천국복음은 세상 모든죄는 이미 주님이 다 이루셨다고 약속하셨기에 이를 마음으로 받아드린 사람들은 자신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그 형편이 어떠하든 의로움과 거룩함만 남아있다.

 

그러므로 내안에 계신 주님이 우리를 통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다.

아직도 자신안에 말할수 없는 상처와 올무가 매순간 드러나고 있지만 우리하나님은 그런 나를 보지않으시고 우리안에 계신 주님만 보시고 너 참 의롭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그런가? 새언약의 법은 죄악에 빠진 사람을 위한 놀라운 은혜의 약속으로 이루어졌기에 그 약속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이후 사람의 육체로만 보지 않으시고 주의 사랑으로 가득찬 주님이 거처하신 거룩한 성전으로 즉 하나님의 집으로(교회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중 사단의 회를 받아서 그 마음이 주의 구속의 은혜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받아 멸망으로 떨어질수 있다. 

 

하지만 내안에 주님을 모시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주의 영광 안으로 이끌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거듭나서 천국백성되어 사는자들은 "그럼 앞으로는 무슨죄를 지어도 괜찮겠네" 라는 말을 할 수 가 없다. 

 

만약 주를 믿는 다고 하는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아직도 그는 구속의 은혜와 거듭남을 제대로 경험 하지 못한 자 이다.

 

왜냐하면 주안에 사는 자들은 진실로 그런 말들이 안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아직도 자기 옳음의 의가 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의 복음을 들을때마다 자신이 옳다고 여겨지는 의로 하여금 그렇다면? 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옳게 여겨지는 어떤 의문이(자기중심적 질문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율법은 그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너무도 거룩하고 선하다.

하지만 온전히 지킬 수 도 없고 말씀에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죄많은 사람들 에게는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은 그 정한 내용에 따라 너무도 많은 의문이 쏟아진다.

그래서 의문이 쌓일수록 죄가 더욱 많아지고 만다.

 

율법은 육체의 법이기때문에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신의 노력과 정성으로 지켜 행하면 율법 그자체의 거룩함으로 인해 율법을 지킨 사람들을 성자로 사람들이 추앙을 한다.

 

금식을 하던, 고행을 하던, 100일기도를 하던, 구제를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한다고 해서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실천하고 행하는 자들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면서 칭찬하고 흠모하고 부러워한다.

 

그리고 말씀대로 지켜 사는 자들은 복을주시는데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 약속대로 들어와도 복받고 나가도복을받을 뿐아니라 자손3.4대 이르기까지 축복을 받는다.(신28;1-14)

 

하지만 그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받을 저주는 왜 애써 사람들이 외면 하는지 모르겠다.

만일 말씀대로 온전히 살지못하면  자신은 들어와도 저주받고 나가도 저주받는 이 말씀은 아예 스스로 눈과 귀를 막아놓았다.(신28;15-19)

 

어떤가?

오늘날 말씀을 온전히 지켜 순종하는 사람이 많은가?

아니면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가?

미안하지만 아무도 온전히 지켜 행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멸망에 빠질 죄인이 되버린 것이다.(약2;10)

 

율법은 육체의 법이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기에 물론 오늘날에도 지켜 행하면 엄청난 복을 받는다.

 

하지만 어느누구도 온전히 지킬수 없기에 구원은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율법을 지켜 행해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롬3;20)

 

 

하지만 천국복음인 새언약 은 다르다 

천국복음이 선포된 이후 구원의 조건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나님께서는 눈으로 보여지고 육체로 드러나는 행위가 아닌 속중심 즉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겉으로 아무리 열심을 내어 화려하게 아름답게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사람들이 말씀앞에 온전치 못한 자임을 알아 예수님앞으로 나아가서 마음의 할례를 입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그 무엇도 하나님을 위해 하지 않은것으로 여긴다.

 

우리 속 마음의 중심이 도대체 무엇인가?

마음의 중심안에는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거하고 계신 것을 말한다.

 

옛적 더럽고 추한 우리마음에 새생명을 받아 다시 태어나서  그 마음판이 새언약으로 인해 바뀜으로 이제는 그자리에 내가 아닌 예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닌 내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통해 하신것만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 오신이후 율법은 사람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열심히 정성과 노력을 통해 온전히 살수 있다는 착각을 깨뜨리기 위해 율법을 온전히 다 이루신 주님 앞으로 나갈수 있도록하셨다.

 

그래서 유치원 선생격인 몽학선생 자리에 서서 모든 사람이 죽음으로 걸어가는 인생길에 주님의 생명길로 이끌수 있도록 죄를 더욱 죄되게 할수 있도록 하셨다.

 

 자기 의와 자기 원함에 의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율법은 오늘날에도 주님앞으로 갈수있도록, 내 노력으로 할수 있다는 자들이 얼마나 무익한지를 알수있도록 하기위해  612가지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도 남은 한가지의 말씀을 못지켜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도록 하기위해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 노력과 정성이 모두 죄였음을 여길수 있도록 그대로 율법의 저주는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비스럽게도 사람마다 각자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아는 그 순간 은혜를 입히신다.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까지 사람들은 이 율법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의기준으로 살았지만 또 다른 한 의문으로 자신을 죄악으로 이끌어가는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은 자신의 의와 열심으로는 아무것도 이룰수 없도록 오히려 하면할수록 자신이 무가치한데까지 깨달을수 있도록 율법은 철저하게 죄를 깨닫는 도구로 세상광야에 서있는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청함을 받아 온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 율법은 효력정지 상태로 있기 때문에(내가 율법을 폐하려 온줄로 아느냐 완전케하러왔다......는 말씀처럼 ) 법적 구속력이 없어졌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이 필요 없는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발견하는데 까지 갈수 있도록 율법은 몽학선생으로 주님의 마음을 갖지못한 모든 사람에게 더 죄를 깊이 깨달을수 있도록 가치있게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는 순간 율법의 모든 굴레를 자연스럽게 벗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안에 살아갈때는 구속사적기준에 있어서는 무엇을 하던 죄의 아비인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그 누구라도 판단과 정죄 심판의 힘을 행사할수 없다.

 

우리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말씀 하실 때 하나님의 영광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가운데서 감사함으로 모든 은혜의 덕을 끼칠수 있도록 이끌림받아 행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내용은 신기하게도 율법의 내용과 같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 이 두계명안에 모든 연결이 되어있다.


이자체만 본다하더라도 율법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질서와 평화를 향한 거룩한 선의 기준에서 나온 것임을 알수 있다.

(계2장3장=아시아의 일곱교회를 향한 말씀)

 

우리가 죄악된 세상에서 맨처음 광야가운데 있는 예배당을(교회를)청함을 받아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할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살아있는 예배가 되며 나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이다.

 

이 천국복음(새언약)을 제대로 자세하게 알려주지 못하면 사람들은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각자 자기소견에 옳게 느껴지는 대로 행동하기 쉽다.

 

 어느누군가가 제대로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지켜행하며 살아갈 수 밖에없다.

 

하지만 오늘날 율법은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의 연단과 훈련을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무익한지를 교회안에서 말씀과 예배를 통해 깨닫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인것만을 알아야 한다.

 

내자아가 깨어지고 주 예수님이 내안에 오실때 이 율법을 통한 광야여정은 끝이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 영적인 충만함을 얻게된다.

 

혹 어느 누군가는 단 하루를 교회다니는 가운데 주님의 은혜로  회개하여 주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도 있다.

 

아니면 복음전도자에 의해서 어떤이들은 교회 오기도 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함과 새생명을 소유한 믿음을 가졌다면 이들은 곧바로 마음으로 주님의 이끄심따라 새언약의 천국복음을 사랑가운데서 이룰수가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곧바로 처음부터 주님의 장사지냄에 함게 동참되어 새생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전도로 청함받아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도 또한 자신이 스스로 교회에 나와 출석해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놀라운 새 언약의 천국복음의 비밀을 듣지 못하게되면 종이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자신이 살아있는 자기의를 접붙임하여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갖게된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자신이 하나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자부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의가 얼마나 무익한지 아는 자들은 진실로 나는 이대로 온전하게 살수없는 죄인입니다.라고만 자신의 한계를 느껴 울부짖을때 성령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할수 있도록 기록된 말씀과 실제의 경험을 통해 사용하신다. 

 

이들이 자신의 묵은 옛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말씀인 율법대로 지키어 살아가는 훈련을 어느 순간까지는 받게 된다.

그런가운데 하나님의 거룩성과 인간의 부패성을 동시에 경험할수가 있게된다.

 

잘 지켜지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기도 하고 복을 누리는 은혜도 받지만

자기마음은 지켜지는 것보다 지켜지지 않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안다.

 

그 보이지 않는 비밀한 허물로 인해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더욱 양심의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본능의 선한 양심에 따라 비밀한 가운데 남아있는 자신의 모습중 절대 드러내놓을 수 없는 달콤한 죄악의 덩어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흘리며 몸부림친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지켜 행해서 은혜와 축복도 받는데 자신의 양심속에 찌르는 이길수도 없는 율법이 죄라고 정한 그것때문에 날마다 가슴졸이며 위선과 외식으로 살아간다.

 

이럴때 주님의 은혜를 입은자라면 나는 이런자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유혹에 도저히 벗어날수 없습니다. 어렵고 힘들어서 나는 할수 없는 자입니다 라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앞에서 고백하는 그때가 바로 주님을 만나고 내안에 주님을 모셔드릴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것이다.

 

 이런고백으로 하여금 자신도 주와함께 장사지내는 죄사함의 은혜를 새언약의 복음을 통해 입을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청함받아 교회안에 들어온 성도들중 말씀대로 어느정도 살다가 더이상 우리는 우리 육체의 연약함으로 더이상 육체의 요구를 이룰수 없는 무익함과 연약함에 직면하게 되면 비로서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주님만을 갈구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교회를 다녀 신앙생활할때 십자가의 은혜를 입을 이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죄를 죄로 여길수 있는 몽학선생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제 자신의 죄인됨을 알아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게 될때 우리마음에 할례 즉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입게되어 거룩하고 의롭게 되어지는데 이때 우리의 육신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우리안에 들어오시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은 그리스도의 실체가 되어 내안에서 행할수 있는 능력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끊임없이 그 음성을 듣고 이끌림을 받아 행해지게 된다.

 

또한 거듭난자에게도 이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은 주님오실때 까지 법적 구속력이 아닌(구원과 정죄 판단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과 가정과 이웃과 사회에 평안을 끼치고 질서를 잡아줄수 있도록 사랑가운데서 행하게된다.

 

또한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을가지고 자유함속에서 연약한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발견할수 있도록 성령안에서 말씀의 덕을 끼치는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것은 율법의 내용이 아니라 무엇을 행하든 우리의 행위로 우리를 죄로 정죄하는 것이 폐하여 졌다는 것이다.(믿는자에게는 심판이 사라짐)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위하여 율법을 가지고 내가 이룰려고 하는 행위로 나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의하여 얻어지는 구원과 죄의 정죄에서 벗어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안에 계신 주님으로 하여금 나를 통해 더욱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 안의 주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이룰수 있도록 천국복음을 마음판에 새겨 매순간 마음으로 말씀 하신다.

그러나 청함받은 자들은 아직도 폐하여진 의문의 묵은증서에 따라 보여진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기에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들은 반드시 십자가의 장사지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자가 교회에 나와서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자기 의로 이룰려고 하는 불법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마7장23)

이들은 율법의 행위아래서 머물러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의 돌이킴과 회개와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고 부활의 기쁨을 내안에서 실제로 갖게될때 비로서 우리는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어 내안에 주님이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내안에 성령으로 말씀(율법)하시는 것이다.

 

즉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왕이되셔서 우리를 도구로 하여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새언약으로(율법으로) 새롭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우리는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하는 자가 아니다.

나는 더럽고 부패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것은 다 더럽고 추하다

 

하지만 이제 내안에서 살아계신 주님이 나를 도구로 사용하여 주님이 내 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신다.

 

여기에 맡김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순종이 있어야 하는것이며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하시기때문에 겸손한 가운데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새롭게 산 내안에서 역사하시는 들려주시는 그리스도의 율법(말씀)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되는게 주 목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율법을 내 노력과 정성으로 하나하나 행해왔다.

잘하면 은혜와 기쁨이 되고 못하거나 어기면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결심을 한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은 말씀의 실체의 형상이신 예수그리스도 그분께서 밖에서가 아닌 내안에서 그분 자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나를 통해 성취하시기 원하신다.

 

실지로 그분께서 내안에서 말하시고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순종하며 살아가는게 우리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 이끄심이다.

출처 : 예수그리스도 복음 선교회
글쓴이 : 산울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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