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고전4:1-5

작은샘 큰물줄기 2017. 7. 11. 18:40

미국에 한 중년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의 시력이 너무 나빠서 눈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이 잘못되어 그만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남편은 매일 같이 아내의 직장까지 아내를 출근시켜주고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는 집까지 데려다 주었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아내에게 서로 직장이 너무 머니 앞으론 혼자 출근하라고 말했습니다 . 이 말에 아내는 남편에게 너무나 섭섭해했고 사랑하는 남편이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리곤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그 다음 날부터 혼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집고 버스를 타고 하면서 많이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혼자 다니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 진 2년, 버스운전사가 어느 날 이 부인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

"아줌마는 복도 많소, 매일 남편이 버스에 함께 앉아 있어 주고 부인이 직장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지켜보다가 등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보이지 않는 격려를 해주니까요. "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멀리서 아내를 지켜보는 모습은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을 연상케 합니다.

그것은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인 자세 즉, 느껴지지 않는 보호하심이 아닐까요? 남편이 곁에서 동행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아내는 눈이 멀어 볼 수가 없었던 거지요. 우리도 이와 같이 어쩌면 영적인 맹인이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그분을 느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내가 기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도... 지금 우리가 주님을 느낄 수 없다고 하여 두려워하거나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크고 비밀한 것들이 잠재되어 있고 끊임없이 주님의 섭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극복하지 않고서 어떻게 다른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내가 가진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서 어떻게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 늘 나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을 먼저 생각하세요

성경에 보면 성도 특히 감독과 집사는 믿음의 비밀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3:9)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를 먼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13:11)

2.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3. 하늘의 지혜와 총명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1:8,9)

4.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3:3,4)

5. 사랑으로 연합하여야 합니다.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골2:2)

하나님의 사람들은 특별히 제직(諸職)들은 자신의 직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맡긴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하나님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가르쳐 성직(聖職)이라고 말합니다. 성직은 목사 직분만이 아니라 교사로부터 시작하여 성가대 집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거룩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성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천국의 사업의 확장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의 성직을 맡은 직분 자들이 큰 긍지와 자랑을 가지고 일할 것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습니다. 봉사자에게 있어서 긍지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긍지를 가지고 일할 때에 보람을 얻을 수가 있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긍지에는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개인적인 적성과 그 적성에 따른 일을 은사 적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맡은 이 일은 내 적성에 꼭 맞는 일이요,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만 주신 소중한 은혜의 선물이라고 여겨질 때에 참다운 긍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존재가치에 대한 긍지를 말합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내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저분에게 있어 나는 대단히 소중한 사람이다는 긍지와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다 소중하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자기 기능과 자기 역할을 소중하게 여길 때에 열심히 생기며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만족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만족이 없는 사람이 누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내 얼굴이 썩어 있으면서 누구를 위로하겠습니까? 내 마음이 울적한데 어떻게 남을 위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먼저 기뻐해야 하고, 내가 먼저 충만해 있어야 하고, 내 안에 자신감과 긍지가 넘쳐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긍지가 넘치는 사람은 역경이 와도 잘 대처합니다. 모든 일에 창의력을 발동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을 열고 삽니다. 이런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을 존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입니다.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긍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제직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서신의 서두를 시작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나 사도 바울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은 노예를 말하며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노예임을 긍지와 자랑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 이것이 그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1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기다'는 말은 특수한 말로 '그렇게 알라, 그렇게 알아다오, 그렇게 인정하라'는 명령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로 '휘페레다스'라는 말은 '일군'이란 말인데 그 의미는 '배 밑에서 노를 젓는다'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배는 노를 저어야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배는 2단,3단까지 노를 저을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벤허 영화를 보면 노예들이 배 밑에서 두 줄로 앉아서 노를 젓는 장면이 나옵니다. 열심히 죽을힘을 다하여 노를 젓는 그 사람들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내가 노를 젖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직 선장만이 배의 목적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어라'하면 젓고, '멈추라'하면 멈출 뿐입니다. '왜 젓는 것입니까?,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라고 묻지 않습니다.

물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방향도, 행선지도, 목표도, 목적도, 의미도....전부 선장에게 달려있습니다. 노예는 그저 배 밑에서 열심히 노를 저으며 순종할 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일군입니다. 교회는 배와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 있어서는 키잡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배의 항로를 지시하는 선장이고, 사도 바울은 키잡이로써 선정의 명을 받아 일하는 노예와 같은 것입니다. 노(櫓) 젓는 사람이나, 키잡는 사람이나 다 선장이 아니라 그 배의 일군들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도 노를 젓되 앞에서 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석진 뒤에서 젓는 사람도 있고, 키를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제직들은 이 배의 선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의 신분을 잊지 말고, 종의 자세로 겸손히, 그리고 섬기는 자세로 해야 할 것입니다.

2. 제직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1절)
본문에 나오는 "비밀을 맡은 자"라는 뜻은 원문에 보면 '관리자' '집사' '청지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청지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꿈의 사람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사서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요셉의 총명함을 보고 그를 「가정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 외에는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맡기고 그가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임명하였습니다.(창39:4-6)

이렇듯 청지기의 위에는 주인이 있고, 그 밑에는 노예가 있습니다. 그 중간에 있는 존재가 바로 청지기입니다. 타율적 존재인가 하면 자율적 존재입니다. 그에게는 상당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으로 착각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청지기는 주인이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 긍지와 창의성을 가지고 주인에게 순종하는 자율적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제직은 교회의 리더와 중간역할로 매우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목사는 교회의 중요한 정책을 의논하고 함께 상의하며 문제를 풀어나갈 뿐만 아니라 중요한 비밀들을 함께 나누는 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사모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귀와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뜻을 쫓아 믿음 안에서 교회를 세우고 서로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세워주며 함께 고난의 멍에를 메고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안일(安逸)과 영달(榮達)과 편안함만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자들은 한 달란트를 숨겼다가 그대로 가지고 온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심판을 받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25:26,30)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몇 달란트 이던 간에 달란트는 매우 귀중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너무나도 귀히 여기셔서 맡기신 하늘나라의 거룩한 직분입니다. 더욱이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하늘나라의 귀한 일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 영광의 잔치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은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다운 영광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의 일군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다, 나는 그리스도의 청지기이다'라고 자신의 긍지를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이 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에 긍지를 가지며 열심히 봉사하며 헌신하는 삶에 있습니다.

이솝우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새 무리가운데 유달리 큰 참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깃털도 예쁘고, 소리도 크고, 노래도 잘 불렀습니다. 그 참새는 스스로 너무 잘났다는 생각에 다른 참새들을 무시했습니다.

시시해서 같이 놀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참새들 보다 좀더 큰 메추리한테 가서 같이 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메추리는 '웃기지 말라. 너는 메추리가 아니다.

그러니 참새들한테 가서 놀아라'하고 참새를 쫓아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돌아와서 다시 참새들 틈에 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참새들 역시 '우리를 무시하고 갔던 놈을 어떻게 다시 받아주겠느냐'하며 그를 내 쫓아버렸습니다. 결국 그 참새는 평생을 고독하게 살다 죽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고독한 사람이 있습니까?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독한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한번 낮추어보시오. 인구가 얼만데 고독합니까? 천지에 널린 것이 사람입니다. 지혜가 어두워지면 교만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고,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함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망은 불 신앙에서 생깁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경륜을 발표해야 합니다(시78:2, 엡3: 9-11). 2)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엡6:19, 골4:3).
3)사랑해야 합니다(고전13:2).
4) 충성해야 합니다(고전4:1).

3.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전5:3절에 보면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비밀을 맡은 자는 충성을 합니다. 세상에서 믿을 만한 사람은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충성이란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희생 없이 충성 없고, 충성 없이 희생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여 보았습니까? 내가 먹을 것을 줄이고, 내가 입을 것을 줄이고, 내가 꼭 필요한 것을 쓰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희생제물을 드려보았습니까?

하나님은 희생제물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쓰고 남는 것 가지고 드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희생이 있는 여기에 헌신이 있고 여기에 충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일군은 꾸준해야 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전에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뜻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은 기뻐하시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비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맡은 일을 중단한다면 사람 때문에 일하고, 사람 때문에 그만두는 불충한 일군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3절에서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충성함에 있어서, 내가 긍지를 가지고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잘한다, 못한다, 겸손하다, 교만하다, 성공했다, 실패했다......무슨 소리를 하든지 내게 다른 사람의 판단은 작은 것이다, 개의치 않는다, 내 긍지가 그것들을 다 포용하고도 남는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갈1:10절에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충성하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의 판단과 비난을 너무 의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은 사람의 마음에 맞는 종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마음에 맞는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경건하게 그리고 정결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의롭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 되었다고도 하지말고, 안되었다고도 하지 맙시다. 누구 칭찬 좀 한다고 해서 성공한 것처럼 자만하지 말 것이요, 누가 좀 섭섭히 한다 고해서 또한 섭섭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실패한 것처럼 절망하지도 말 것입니다.

잘 됐는지, 못됐는지는 그리고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는 그 날에 가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 대해서나, 나에 대해서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5절에 보면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다만 오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직원 아치볼드는 어느 호텔에 가서 숙박계를 쓸 때 자기 이름을 쓰지 않고 "한 통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 가격과 이름을 적곤 하였습니다. 말할 기회만 있으면 그는 "한 통 4달러 스탠더드 석유"라고 먼저 앞세우곤 하여 별명이 "한 통 4달러"가 되었습니다.

석유왕인 사장 록펠러가 이 말을 듣고 평사원인 그를 불러 식사를 하면서 대화한 결과 회사에 대한 열심과 충성이 대단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후에 록펠러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된 사람이 다름 아닌 아치볼드였습니다. 그는 가장 유능한 사장으로 회사에 크게 공헌을 하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청지기로서 주인의 집과 재산을 관리하며 일꾼을 감독하며 물건을 지급하고 분배하고 집 전체를 보살피는 일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서 관리하는 복음의 일꾼이며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깨우쳐 주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비밀을 맡겨 주셨으니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일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이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겨 주인에게 드림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주인에게 받은 그대로 드림으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오직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친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판단에 너무 민감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주님의 판단과 평가를 바라면서 충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구할 것은 다만 충성뿐입니다. 그저 주님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충성,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고귀한 직분과 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고, 사도 바울 처럼 높은 긍지를 새롭게 느끼면서, 오늘도 내일도 충성하고 승리하여,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 받는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은 지혜가 부족하고 지식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합니다. 우리의 환경을 바라보고 불안, 초조, 좌절, 절망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하나님으로만 계시지 않고 우리 친아버지가 되심을 감사드립니다. 자식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가 천지에 어디 계십니까?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고 돌보는 것은 아버지가 하는 일인데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항상 깨어진 마음으로 회개하고 부르짖어서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체험하며 나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하나님이 이미 크고 비밀한 방책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안심하고 믿고 나가게 도와주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마땅히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행복충전소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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