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주요자료

[스크랩] 좋은 편을 택한 마리아/눅10:38-42

작은샘 큰물줄기 2019. 1. 12. 20:22

 어느 아버지의 유언
1997년 2월 25일 밤 11시 이후에 SBS에서 황수관 박사(연대 건강진료 센터 교수)를 모시고 “신바람 나는 건강법”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중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간증을 했습니다. 내용인 즉은 자신의 아버지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위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자녀들이 아버지의 수술을 간곡히 부탁을 드렸으나 아버지는 이에 대하여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의사인 본인은 아버지께 '아버님 자식들에게 있어서 행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어머니, 아버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아버님의 의견에는 수술을 원치 않으시더라도 마지막으로 자식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뜻에서라도 수술을 한 번만 받아 보십시요' 라며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고 한다. 결국 허락을 받아낸 황 박사님은 수술날짜를 받아놓고 아버님의 병환이 중하심으로 7남매를 모아놓고 아버님의 수술 전에 보기 위하여 자녀들을 불렀다.

수술실에 아버지를 모시고 들어가려는 순간 아버님이 큰 아들인 본인을 불러 손을 꼭 잡으시고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아무말없이 다른 한 손에 쥐고 계시던 종이 한 장을 아들의 손에 쥐어 주시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아버님의 유언이었다.

종이를 펼쳐보니 그 종이에는 단 두 글자 곧 奉事(봉사)라는 말이었다. 이 유언의 말씀을 받아든 황 박사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는 것이다. 아버님이 진정으로 원하셨던 것은 남을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그 후 우리 가정에는 봉사라는 말이 가훈이 되었다." 라고 말을 하였다. 다행이도 아버님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그분은 현재 8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소원 행복을 위해 정정하게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릅니다. 그저 생존하신지는 모릅니다만 봉사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사신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황 박사님은 그리스도인이다. 그의 아버님도 그리스도인이다. 이 유언의 속에는 먼저 주님을 위한 봉사의 의미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이웃에 대한 봉사의 의미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빛의 역할 그리고 소금의 역할은 곧 봉사의 삶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해야 할 말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자녀에게 남길 수 있는 말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나는 오늘 10월 첫 주를 맞습니다만 “봉사로 하나님을 만나는 달(1)”로 정하고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10월 달은 하나님을 섬기는 달로 정하시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봉사를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생존은 나를 위해 누군가가 봉사해 주었기에 나의 존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봉사는 나의 생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봉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 이들을 위해서 봉사에 앞장 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23명이 봉사하러 갔다가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만 그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하는 계산에 넣고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말씀]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심방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자주 들르셨고, 이곳에서 쉬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듯이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셨다고 예수님을 잘 대접하고 싶어서 열심히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마르다가 열이 났습니다. 자기는 바쁘게 열심히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데 마리아는 한가하게 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40절을 봅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본문 41-42절을 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두 여인이 나옵니다. 이들은 마르다와 마리아입니다. 이들은 한 가족으로서 형제지간입니다. 이들 둘은 모두 봉사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 봉사를 바라보면서 몇 가지의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로 주님을 만나지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Ⅰ.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를 해야 한다.

봉사는 내가 원해서 하는 것도 있겠으나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여야 한다. 봉사를 한다고 할 때 넓은 마음으로 대접하는 심정으로 하는 봉사가 주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봉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을 해놓고도 진정 내가 원해서 하는 봉사이지 주님이 원하는 봉사가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에서도 마르다와 마리아는 서로 다른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는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주님이 원하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봉사를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눅10:40-42)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더 좋은 봉사는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는 봉사가 진정을 주님이 원하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실 일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 집에 가서 대접을 종종 받아 봅니다. 나는 원하는 것은 커피인데 시원한 쥬스를 주면서 “이것을 준비하였습니다. 얼마나 더우십니까? 쭉 마십시오” 하는 것이다.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는 커피 나름대로 진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맛을 원했는데 다른 것을 준다면 내가 원하는 봉사라 할 수 없습니다.

■ 등 긁어 주기
살다가 보면 등이 가려울 때가 있습니다. 손이 닫는 곳이라면 내가 하지만 닫지 않는 곳이 있을 때는 효자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부인이 있어서 가렵다고 효자손 좀 갔다가 달라고 하면 효자손이 여기 있잖아 하면서 내 등을 긁어 주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가려운데를 긁어 주지 않고 엉뚱한대 긁어 줄 때는 벌컥 소리를 지른다. 효자손 가져오라니까 하면서 소리를 친다. 효자손으로 가려운데를 긁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엉뚱하게 봉사를 하되 주님이 기뻐하지 않기 보다는 순위가 낮은 것을 바꾸어 한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 홀트 아동복지단체
어느날, 미국의 오래곤 주 유게네라는 마을의 회관에서 종교영화가 상영된다고 하자 마을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서로 아는 사람들이라 즐겁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영화를 관람하였다. 그 영화는 종교영화라고 하기보다는 한국전쟁이 낳은 전쟁고아들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들을 보살펴 줄 손길을 기다린다는 내용으로 끝이 났다.

영화가 끝나자 그 영화를 본 그저 평범한 농부인 해리 홀트 부부도 그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가난한 농부인데, 우리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런데 그 부부는 그 영화내용을 잊으려고 애를 썼으나 날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결국 그들은 땅을 일부 팔아서 직접 한국에 가서 전쟁혼혈고아 8명을 데리고 돌아와 성심껏 보살펴 주었다.

이 사실이 신문에 나가자 여러 곳에서 그들을 돕겠다고 연락해 왔고 또 혼혈고아를 양자로 삼겠다는 연락이 오자 이 부부는 보람을 느끼며 전적으로 이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 일이 32년 전 한국전쟁이 끝나가던 무렵의 일이였지만 이 일에 계속 맥을 이어 오늘의 홀트 아동복지단체가 생기게 된 것이다.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두 부부가 같은 관심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돌 볼 수 있는 봉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봉사로 주님을 기쁘게 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게 된 것입니다.

Ⅱ.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한다.

주님은 자주 베다니에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 하였습니다. 아침이면 예루살렘으로 나가시고 저녁이면 베다니에 있는 마리아 마르다 집에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자주 찾았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신 것을 알고 분주히 영접하여야 하겠다고 하여 음식을 만들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로 작정하고 자기가 할 줄 아는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자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아래 앉아 말씀 듣는 일에 열정을 쏟으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마르다는 화를 내면서 불평어린 말로 주님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예수님 나의 동생 마리아가 나 혼자 일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명해서 나를 도우라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만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봉사 정신은 불평 원망기 썩인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끝이 나도록 해야 합니다. 짜증스러운 마음이 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힘들고 공연히 시작했다하는 마음이 들기 수월합니다. 그럼으로 끝까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마르다는 처음 시작할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만 과정에서 동생 때문에 원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 호세의 발
추운 겨울날, 캘리포니아의 한 부랑아 수용소인 마린카운티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걸인, 부랑아들로 북적거렸다. 간이침대와 담요가 턱없이 부족하여 흑인, 라틴아메리카인, 백인들이 서로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자원봉사자인 로드니는 난감하기만 했다. 몇몇 부랑인들은 다른 사람의 담요를 빼앗기까지 했고 한 흑인여성은 자신에게 담요가 돌아오지 않자 인종차별이라고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런 혼란 중에 마지막 남은 담요 한 장은 라틴아메리카인인 호세라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호세는 담요를 수용소 한가운데에 펼치더니 금새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 때 어디선가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호세의 발냄새였다.

악취가 온 수용소 안에 가득 차오르자 부랑아들이 발을 씻기려 했지만 91kg이 넘는 거구의 호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냄새를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호세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하자 같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폭발할 것 같은 노한 표정으로 주위를 노려보았다. 실내는 금새 험악해서 싸움이라도 한 판 벌어질 분위기였다.

그때 로드니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 따뜻한 물을 담은 세숫대야와 비누, 수건을 챙겨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호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양말을 벗겼다. 그리고 호세의 발을 대야에 담그고 씻기기 시작했다. 발바닥, 발목, 발등, 발가락까지 로드니는 아주 정성스럽게 발을 닦았다. 어느새 로드니 주위로 부랑아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로드니는 난폭한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할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손가락이 떨리기까지 했다. 얼마 후 로드니가 수건으로 호세의 발을 닦아주고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묵 속에서 모두가 그녀의 아름다운 손길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수용소에는 더 이상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호세의 머리맡에는 부랑아들 중 한 명이 가져다 놓은 새 양말이 얌전히 포개져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봉사한 것이 진정으로 평화의 왕을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게 된 것입니다.

Ⅲ. 빼앗기지 않는 좋은 편을 선택해야 한다.

오늘 날에도 보면 말씀을 사모하여 열심히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설교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일하고 봉사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보다 더 봉사가 앞서서는 아니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말씀을 사모하여 설교말씀을 열심히 듣고 은혜를 받은 후에 주님이 원하는 봉사 그리고 즐겁고 기쁜 마음이 예배를 통해서 주실 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 말씀처럼 봉사와 설교 말씀 듣는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좋은 편인 말씀을 듣는 편을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마르다는 참으로 자기 생각에는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잡수시게 한다면 주님이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르다의 봉사보다도 마리아의 봉사를 더 알아주고 좋은 것을 선택하였다고 칭찬하는 앞에서 말없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시작은 좋았는데 원망과 불평으로 이어지는 얼룩진 봉사가 되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말씀 듣는 일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좋은 주님을 위한 봉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봉사하면 힘들이고 이마에 뻘뻘 땀을 흘리고 일을 해야 봉사로 아는 잘못을 범할 때가 많습니다. 말씀 듣는 일도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가운데 중점이 있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정말 설교는 중요한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은혜를 못 받고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성도는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배시간에 은혜 받으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원하시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사모하고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 받으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참으로 설교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목사님과의 좋은 관계를 맺으려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부흥하는 교회는 목사님이 설교 잘 하시기 위해서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중보 기도팀이 별도로 있답니다.

이분들이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니 얼마나 목사님이 설교에 은혜가 되고 힘이 나겠습니까?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실 수 있도록 목사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호감을 가지며 목사님이 소신껏 목회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밀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교회와 목사님을 위한 일입니다만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 자신과 가정과 사업과 자녀를 위한 일임을 명심하십시오.

맺는 말
제가 이렇게 설교하는 것은 제가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 예비해주신 은혜와 복을 받는 비결을 가르쳐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은혜를 받아 이렇게 실천한다면 여러분들은 복 받을 사람이요, 오늘 말씀에 시험이 드는 사람은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물론 저도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처럼 해주신다면 더욱 좋은 것은 물론입니다. 아무튼 담임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기대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자기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나 잘 받들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말씀을 전달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종이 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요즘에 전하는 말씀이 제대로 들어오는지 심히 마음 아픕니다. 아무쪼록 마리아처럼 발 앞에 앉아 말씀 듣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봉사는
1)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여야 합니다.
2) 봉사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3)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도 봉사수준에 도달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서머셋 모옴’이란 영국 작가가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달과 6펜스’란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1848년에 태어나서 1903년에 죽은 유명한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을 다룬 실존 소설입니다.

그런데 <달과 6펜스>란 제목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둘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밤하늘의 달도 둥글고, 6펜스짜리 은화도 둥급니다. 이 둘이 나타내는 이미지는 정반대다. 달은 아름다움과 순수함과 이상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6펜스짜리 돈은 물질에 대한 욕망 속물근성을 상징합니다. 고갱이란 화가는 <달을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6펜스짜리 돈을 따라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달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하늘을 따라 자신의 봉사정신을 말합니다. 6펜스짜리 돈을 따라 산다는 것은 돈과 출세, 세상을 위해 사는 것으로 말합니다. 고갱은 달과 6펜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여 봉사할 것인가? 그는 처음에는 도시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엔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는 고갱이 화려한 유럽의 도시를 버리고 타히티 섬으로 간 것은 6펜스 짜리 돈을 따라 사는 삶을 버리고 달을 따라 사는 삶 즉 하늘을 위해 봉사정신을 선택하여 온 인생을 봉사에 바치기로 선택한 것이다. 하늘을 따라 봉사와 헌신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큰 축복의 기틀을 마련하는 길이다. 마리아처럼 말씀 따라 삶으로 주님을 만나는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

'누가복음 주요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누가복음(Luke)*주요자료  (0) 2017.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