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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례식 설교들 26편

작은샘 큰물줄기 2016. 3. 5. 19:06
장례식 설교들 26편


    장례식 설교들 26편 ------장례식 설교들 26편 ------- 1. 라헬의 묘비 (창 35: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나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야곱은 그 사랑하는 아내가 해산 후에 세상을 뜬지라 베들레헴 근방에 그를 장례하고 나서 거기 묘비를 세웠다는 기록입니다, 저도 가서 그 묘소를 방문한 바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곳을 찾으며 그를 추모한 바 있습니다, 작년 이 때에 우리는 다 슬픔을 머금고 여기 가신 분을 모신 바 있는데 어연간 일년이란 시간은 흘렀는데 이제 다시 이 묘소를 찾으면서 묘비를 세우면서 내 아버지의 흔적이라는 글귀를 새겼습니다. 육으로는 이 흔적을 여기 남기신 고로 그 육의 흔적임에 틀림없으며 여기 그가 남기시고 가신 흔적이라는 뜻에서 오래 갈 수 있게 돌에 새겨 세우는 것입니다, 실상 여기 작은 돌에 김 장로님의 흔적을 새겨 세우거니와 그의 흔적이 여기에 국한되어질 수 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대학 어느 구석에 그 손길이 안간 곳이 없는 바입니다 정원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폭이 꽃 한 그루가 다 그의 더 큰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더욱 그 생활의 지조 그 근검의 모습이 우리 눈에 새겨져 있고 또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안으로 이 새겨진 묘비를 보면서 우리 마음에 새겨진 그것을 더 깊이 더 똑똑하게 하는데 이 기념비를 세우는 의의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야곱은 자신만이 아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자손 만대에 그 할머니를 기념하게 하였듯이 오늘 이 돌에 새긴 이 기념이 오고 오는 후손에게 또 오고 오는 많은 후배들에게 마음깊이 새겨지는 계기가 되어 만족할 것입니다 2.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벧전 1:24-25)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세상 영광 지나가니 주의 십자가 자랑해 성경 중의 모든 말씀 거기 중심 되었네” 122장 세상의 영광은 지나가고 맙니다 지나지 않는 영공은 없는 것입니다 이를 비하여 풀과 같다고 또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비유하여 말하였습니다, 싱싱한 꽃이 필 때에는 언제 그 싱싱한 것이 변할 것 같지는 아니합니다 그러니 풀은 언제인가는 마르고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 세상을 마치시고 가신 고 조 광섭 선생께서는 거대하신 그 체구, 그 한창 정의를 위하여 일하시던 모습이 가족은 몰론 도든 친구 친지들의 눈에 선할 것입니다. 수고도 물론 많이 하셨으나 영광도 대단하였던 것입니다 나라 일을 위해서 한창의 기백을 발하시던 분인데 풀의 꽃과 같이 인생은 갑니다 인생의 청춘은 가고 마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의 의기로 보나 정신으로 보나 더 씩씩하게 일하실 수 있으시나 이 몇 해 어간 중한 병으로 아프시어 건강도 시들고 하셔서 기력이 없으시게도 출입을 하신 것을 엊그제 보였는데 오늘은 그 길을 다르게 하였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옛날 이사야 선지께서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에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고 하였으니 조 선생께서 비록 큰 체구를 가지시고 게시며 그 정신력이 왕성하신 분이 뉘게 비길 데 없으신지라 풀과 같이 쇠하여졌습니다 그의 영광도 한창 때에야 노동 대중을 움직이는 그런 영광을 가지시기도 하였으나 그 영광도 풀의 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풀도 마르고 꽃은 떨어짐 같이 되었습니다 다만 영원한 것이 여기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사상이나 정신이 떨어지던지는 안 하겠으나 세상의 것은 아 그렇다고도 못합니다 그로되 주님의 말씀을 주님과 관계를 맺은 것은 세세토록 남아 있습니다 조 선생께서 거구를 가지시고 교회를 찾고 하심을 때로 보고하였거니와 병상에 계실 때에도 때로 방문하면 이에 대한 실감 있는 말씀을 하곤 하였습니다 남은 것은 믿는 믿음 뿐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옛날의 자신의 그 활발한 활동이 옛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입니다 가신 분도 이를 절실히 느끼고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과거와 현실을 잘 대조하여 보면서 일시적인 것에 도취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향하여 영원한 것을 위하여 일고 매진하여야 합니다 더욱 여러분은 이를 더욱 명심하셔서 영원한 것을 우선적으로 사모하고 살아야 된다는 이 말씀을 깊이 기억 할 것입니다 3.주의 장막에 (시 61: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다윗 왕의 한평생 소원은 주님과 같이 사는 일이라고 일찍이 시편 27편에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들을 말씀 역시 다윗의 한 말입니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살겠습니다 일시적이 아닙니다 영원히 시간의 제한이 없이 늘 주님의 장막에 살겠다는 말입니다 아니 이 말은 그 소원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장막에 영원히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우리 존경하는 강 권사님을 작별하는 예배와 같이 생각하기도 하나 실상은 우리 강 권사님은 그의 한평생 소원하시는 대로 그만의 소원은 아닙니다 모든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소원이 곧 이것입니다 영원히 주님의 장막에 사는 이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강 권사님은 우리 모든 성도의 소원이오 권사님의 소원이신 주님의 장막에 영원히 사신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한 번 당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들리지는 아니합니다 만나면 기쁘고 떠나면 슬프단 말은 우리 상정의 말이기도 하거니와 한번 만나면 떠나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기도 하나 평생의 소원인 주님의 장막에 사는 그일 주님과 같이 늘 사는 이 일이 다시는 떠나지 않는 그 함께 사시는 일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심이 곧 이 일을 위하여 오심입니다 강 권사님께서는 일찍이 부군인 김상옥 장로님과 같이 아니 벌써 선대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시고 속죄함을 받으시며 주님의 세우신 몸과 교회의 성직을 61년간이나 봉사하시며 그 장막에 영원히 사시는 염원으로 한 평생 사시다가 이 땅에서도 임마누엘 주님과 같이 하셨으매 그 장막에 사시었다고 할 수 있거니와 이제부터는 영원히 그 장막에 사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입으셨던 장막을 벗으신 것입니다 신앙적 안목으로 본다면 곧 이 일입니다 사람은 별세하였느니 유명을 달리하였느니 죽었다느니 여러 말들의 표현이 있거니와 신앙 면에 본다면 영원히 주님과 같이 그 장막에서 그 집에서 같이 사는 이 일입니다 우리 강 권사님은 이런 삶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중 그 아래 보면 내가 주의 날개아래 혹 밑에 피하리이다 그 장막에 살기 전의 상태가 이렇다함을 표합니다 영원히 그 장막에 살기 전에는 그 삶이 어려웠다고 할까 괴로웠다고 할까 풍파가 많았다고 할까 무서웠다고 할까 그래서 그 환난을 주며 날개 아래로 피하였다고 표현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그런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주님의 품에 숨기었습니다 우리 강권사님의 삶은 주님의 날개 밑에 숨기었사오니 이로서 다 같이 이 엄숙한 제단 앞에서 강권사님의 유해를 모시려는 이 찰나에 우리 다같이 한번 더 우리 선생의 삶이 여기 있다는 사실은 다시금 한번 더 다짐할 것입니다 고인께서도 이를 우리에게 역설하여 주실 것입니다 4.이미 얻은 영생 (요 5:24 )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간다 이렇게 흔히들 말합니다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맞는 말도 아닙니다 이 말을 얼른 들으면 영생이란 죽은 다음에야 얻는 듯한 인상입니다 아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죽어봐야 알지 흔히 이런 말들도 합니다 크게 잘못된 말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분명히 가르친 대로 보면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 하였습니다 이미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벌써 얻은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벌써 영생은 얻어진 것입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나니라 심판을 면할 뿐 아니라 이미 죽었던 우리는 생명으로 옮기워졌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식전에 있어 장례를 드리는 시간에 이 말씀을 다 같이 들으면서 신앙의 힘이 어디 있음을 다시 한번 알아야 합니다 영의 사망이란 죄 속에서 사는 그 일입니다 죄를 가지고는 다리를 펴고 자지 못한다는 우리 속담도 있거니와 죄인은 지옥의 삶을 가진 것입니다 고 이 노선생께서는 일찍 그 부모가 믿으신 바라 어릴 때에 벌써 아이 세례를 받게 하였고 그가 장성하여도 좋은 신앙에 산 것입니다 온 집안이 다 믿게된 분이신데 그는 이 땅에 계셨으면서 주님의 생명에 가입한 분입니다 벌써 영생을 얻으신 것입니다 이제는 자리를 완전히 옮기셔서 영원한 고향으로 가셨으니 그의 행복은 이제부터입니다 오늘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시는 서글픔이 없다고 못하오나 거의 교회에 사시였고 다복하셔서 자녀가 그득하시며 손자 손녀들이 슬하에 오롱조롱 자라나는 것을 그 품에서 기르시다가 혼연히 가신 것이 그에게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온 가정이 다 믿으시는 가정이시거니와 이런 아버지를 두신 축복을 깊이 감사하시면서 가신 분의 자취를 다 따라가는 가족이 되실 것입니다 이 일만이 여러 유족들에게 또 오늘 우리같이 조상하는 온 우리들에게 마땅히 할 큰 일이 됩니다 믿으면 죽여서야 판결이 난다는 이런 사고 방식은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믿는 그는 벌써 영생을 얻었고 생명에 가입이 되었고 생명에 가입이 된 그는 무슨 두려움이 있지는 아니합니다 벌써 우리 주님께서 내 대새니 십자가 상에서 삼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심판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은사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의 삶이란 영생에 들어간 생명에 가입된 생이람을 이 엄숙한 식전을 통하여 듣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5. 여호와를 만나는 삶 (사 56: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 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여호와를 만나는 삶이 곧 임마누엘의 삶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사람은 본시 하나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던 사람임을 가르침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어 주심은 하나님과 떠났던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같이 살도록 해주신 사실입니다 예수를 믿는담은 곧 이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 이영준 옹을 여기서 유해인망정 작별이랄까 유해를 옮기는 일에 있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이 곧 예수를 맞는 그 사실을 바로 말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됩니까? 죄를 가지고 여호와를 만나지는 못합니다 죄인은 여호와를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죄를 주님께서 처리하여 주신 고로 이제가 여호와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고 이 옹께서도 이 사실에 참가하시어 주님을 믿으시고 사시다가 지금 이 생을 고하고 저 생으로 가시었습니다 이 생에 있어서도 임마누엘에 사시였거니와 이제부터는 더 말할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만나며 사십니다 그를 찾기도 전에 그와 같이 사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계시오니 가까이 가 문제는 아닙니다 이 땅에 계실 때의 말씀입니다 찾으라 부르라 이 땅에서 그를 찾아 만나며 그를 불러 기도 드렸읍니다만은 이제는 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를 찾기 전에 그가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실 그 유해를 보내면서 적히 서운한 감을 금치는 못합니다 마지막이란 말을 흔히들 합니다 육으로 말하면 그러기도 합니다만은 이제는 그 생활이 되어 졌습니다 이제는 그의 실제가 되어졌습니다 이 실제의 삶이 그에게 도달한 사실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분들의 상례와는 그근본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정중한 식전에서 한번 유족들이나 우리 일반 조객들이나 같이 믿는다는 그 일이 이 일이람을 다시 한번 들으면서 오늘의 이 식전을 가지면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을 것입니다 고 이영준 웅은 이제는 여호와를 만나고 계십니다 이제 그를 만날 만한 때란 곧 이런 기회에 여호와를 찾으며 부를 때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고 이옹께서 유족이오 우리에게 하실 말씀을 하시고 가시라면 부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만나시오 찾으시오 부를 때에 부르시오의 말씀입니다 6. 여호와를 아는 날 (겔 20:42-43) 내가 너희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드릴 때에 너희가 여호와인 줄 알고 거기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인하여 스스로 미워하리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고는 못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분 전지하신 무소 부재하신 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바른 신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유일신 관을 가진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기도 합니다 잡다한 신을 많이들 섬기기도 하는데 그렇지요 만은 이런 것 가지고서 하나님을 바로 안다고 할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한 젊은이는 몇일 전 내게 와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요 요약하면 믿기는 믿는데 그렇게 못산다는 마음의 괴로움이나 하나님의 계심을 믿는데 내세가 있는 줄 믿는데 그 믿는 생과 내 생이 너무 동떨어진다는 그 안타까움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고민이라고 위로도 하고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목사가 가르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체험해야 합니다 이 체험을 언제 하느냐 오늘 우리는 이 정중한 식전을 가지면서 가신 김금동집사님이 이를 잘 체험하시었고 지금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되신 것을 우리는 가신 분과 같이는 체험을 못할망정 말씀을 통하여 언제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는가 주신 고로 허락한 땅에 도착하여서 산령한 가나안에 가서야 여호와를 친히 대면하게 되며 그때에야 여호와인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신 김 집사님이야 이제야 여호와 인줄 바로 알게 되었거니와 이번에 사랑하는 이들이나 가족들이 더 여호와를 바로 알게 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믿음의 식구들도 이를 바로 알게 되는 기회입니다 잔칫집 보다 는 상가 집이 더 낫다는 말은 그 말입니다 사람을 생의 문제를 여기서 바로 깨닫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의 문제가 깨닫게 되는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가 여호와이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그 이름으로 모세에게 하나님 자신이 그 이름을 계시하여주신 말씀입니다 그 이름의 어의를 알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여호와인 줄이라 이 가신 어머님이 바로 아시었담은 틀림없거니와 이제 사랑하는 상주 내외분 어린 손자들 다 같이 하나님 앞에 가신 어머님 할머님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홀로 하나님만이 사람의 오고가는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만이 사람의 장래를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좀 괴로운 나날을 보내셨거니와 그때사 하나님을 참으로 사모하는 귀한 사간이었읍니다 그리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리라의 지경에 도달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람됨은 이런 기회에 여호와인 줄 깊이 깨닫고 알게 됨은 귀한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표가 여기 있다고 한 말씀이 여기 귀하게 들려집니다 그때에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내 비천함을 알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위치를 바로 깨달을 때에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7.머물지 아니하는 인간 (욥 14: 1-6)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의 말씀을 듣습니다 인간 70이 고래희 라는 말을 보아도 지금 많이 장수하였다 하되 70이면 얼마며 100인들 그 얼마나 한 시간이겠습니까? 잠깐입니다 우리 이인순 목사께서는 70은 바라도 못보고 60도 외기 전인데 그의 삶이 젊었습니다 그래도 괴로움이 그에게는 가득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이 주신 말씀대로 이 었습니다 그를 아는 우리들의 안광에는 그가 심히 괴로운 생을 가지신 것입니다 “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가 소년시절 또 학업시절 더욱 신학에 입학하는 일을 회고하여 보든지 신학을 졸업하고 목회에 부푼 가슴을 가지고 목사의 안수를 받을 때 교회를 담임할 때에 다 그 가슴에는 꽃이 피었든 것입니다 꽃과 같은 그의 생애도 피었다 쓰러지는 꽃과 같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 머물지 아니한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오늘 들은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이인순 목사님의 생애를 잘 묘사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그는 왔다 갑니다 이제 이미 세상을 떠나신 이 목사님의 유해를 앞에 놓고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사람의 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한번 더 느껴 보면서 고인의 한 평생만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의 생이란 이런 것이라는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적은 날수로 살면서도 괴로움을 가득히 받으며 꽃과 같이 쇠하여지고 지나감이 그림자 같아서 신속히 가는 인생의 일생입니다 이런 인생을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이렇게 말씀이 들려진 것입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눈을 살려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말씀이신지 얼마나 감격의 은사인지 모릅니다 주께서 눈을 들어 살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가셨거니와 하나님의 살피심은 이렇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고 갔다고 봅니다 우리 노회 동인들은 한갖 괴로움을 겪다가 가신 동역자를 슬퍼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이 제단을 통하여주신 말씀은 이렇게 듣기도 합니다 우리 다 같이 이런 생을 가지고 지나는 것뿐인데 이런 자들을 주께서 눈 넘어 보시고 살펴 주십니다 이 한 사실은 우리는 명심하면서 왔다 가는 이 젊은 생을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꽃의 시절을 가장 힘있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 꽃의 생애를 꽃답게 또 그에 해당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생애를 통하여 이런 교훈을 주시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도 주께서 눈을 들어 살려 주시오니 우리는 감격할 뿐입니다 이 목사님께서도 주님의 살펴 주심을 받아 그 병든 몸이 오늘까지 이르기도 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아주 주님 살펴 주시는 그 은사를 받고 계시게 됨을 영으로는 크게 다행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8.보낸 세월 (창 47:9 )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 존경하는 이영신 할머님의 유해를 교회 동산으로 옮기어 주님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게 하려는 이 제단을 쌓으면서 주시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야곱의 한 평생을 가장 요약해서 표현한 말씀으로 비록 한 구절의 말씀이긴 하지만 그 속에 귀한 진리가 내포된 말씀입니다 내 나그네 길의 이런 말씀 또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도 나그네 세월을 살고 있노라는 말씀 그의 조상들도 나그네 세월을 살고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조상들도 나그네로 살다가 가셨다 나도 나그네 세월을 살고 있는데 조만간에 가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할머님을 보내면서 이 진리를 한번 더 바로 들을 것입니다 야곱의 조상만 나그네로 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들도 이같이 나그네로 살다가 간 것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도 나그네 생이란 것을 잊고 산다면 그 생의 의미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 나그네로 왔다 가지 않을 사람이 잇지는 아니 합니다 오늘 이 할머님의 가심에 있어 우리 다같이 나그네의 일생임을 다시 깊이 되새기면서 나그네니 만치 임시적으로 왔다 갈 사람이라 내 본 고향이오 본 집이 있다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이를 망각하고 사는 것처럼 무의미한 생이 없으련만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의 생을 그만 잊고 사는 때가 많으며 우리도 그만 이 세상에 도취해서인지 나그네로 왔다 간다는 이 생을 그만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은 것을 반성할 만도 합니다 오늘 이 할머님은 사랑하는 유족들에게 또 우리들에게 사람은 다 나그네로 왔다가는 생임을 바로 알고 살으시오 이렇게 말씀하여 주시는 줄 우리는 이 진리를 바로 받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은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만은 아닙니다 이 가신 할머님도 험악한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그 자신의 가정적으로 또 우리 민족적으로 당한 험악한 세월이 이 할머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니 사람이 나서 고생을 당함은 불티가 위로 올라감과 같다신 말씀대로 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낸다는 이 사실은 죄로 말미암아 받는 십자가의 한 그림자로 우리는 성도들을 이해하면 은혜가 됩니다 또 험악한 일을 통하여 십자가를 맛본다 체험한다 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태평무사보다는 험악할 시국이오 험악한 체험을 통하여 십자가를 더 알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할머님은 그 험악한 세월을 누구 못지 않게 당하시면서 더욱 그 신앙의 힘을 얻으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한평생 혹 험난한 생을 가지면서 신앙의 힘을 더 얻는데 한 계기라고 생각하여 힘을 얻는 시간이 되어 만족하다 9.유심할 일 (전도 7:2 ) 초상 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신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유심이란 말은 마음에 둠이란 말입니다 마음에 둘 일들이 적지 않게 있거니와 오늘 이 숭엄한 장면을 우리는 가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유심하여야 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렇게 가르칩니다 또 실상 이보다 더 크게 유심한 일이 없기도 합니다 오늘 성격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의 말씀을 전제로 게시되어 있습니다 잔치 집에 가서 기뻐하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서 엄숙하게 지내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혹 잘못 나가는 일도 더러 봅니다 초상집에 가서도 떠들고 명목은 밤을 세운다고 하면서 마시고 가진 장난을 하면서 지새는 일이 드문히 보입니다만은 밤샘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중하게 상주를 위로하고 시간을 갈아가며 조금씩 자면서 밤을 새는 것이 이에 합당하거니와 안 자기 위해서 술을 마시며 가진 오락을 하므로 유흥장 같이 만드는 것은 나는 상가집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봅니다 우리 교회의 예로는 아예 금하는 일입니다 이런 말은 다 할 필요는 없는지 모릅니다 상가 집에 가서는 정중하게 조상을 하고 또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는 말씀대로 사람의 결국을 생각하자는 것이 제일 나은 일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사람의 생이란 이런 것입니다 사람의 결국이 이렇게 운명을 가지느냐의 절망을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은 왔다 간다는 이 사실을 통하여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한 번 생각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인생철학입니다 사람이람은 사람의 근본을 한 번 알고 사는 일이 사람입니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가는가 금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금수입니다 사람은 이런 사고를 할 수 있음이 사람입니다 상가 집에 가서 이런 생각을 가진다 그런 말입니다 오늘 상사를 당한 여러 자손들 생각할 것입니다 초상집에 조객도 이런 생각을 함이 유익하다고 한 말이거니와 당사자 되신 분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하늘에서 오셨다가 하나님께 가셨다는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 분은 오래 간절히 주님을 의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로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이 일을 유심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여기 같이 이 제단을 쌓는 우리들 다같이 이 일을 유심할 것입니다 산자가 이 일에 유심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시 분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신 분은 마음에 준비하여 가지고 계시다고 가신 줄 믿습니다 가신 분의 명복을 빈다든지 하는 말은 다 무용한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 말씀한대로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할 것입니다 오늘 이 분이 여기서 이러한 말씀하고 가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자손들아 사람의 결국이 어떠함을 유심하고 살아라고 단단한 부탁을 하실 것입니다 이 제단을 쌓으면서 오늘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상주 여러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조객 여러분 다같이 잘 들으시면서 초상집에 같이 참석한 다행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그 기한에 (욥 5:26)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곡식단이 그 기한에 운반되어 올리움 같으니라 천하만사가 그 기한이 있다고 전도서에 하신 말씀을 우리는 들을 때마다 또한 당하는 일에서 그 진지함을 또한 그 실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80여 평생 주님을 섬기시다가 많은 자녀 손을 3대 4대로 남기시고 더욱 많은 교회 일군들을 남기시고 가신 이 할머님의 남기고 가신 유해를 잠간 동안 쉬실 동산으로 옮기려 하면서 이 할머님의 하나님의 정하신 그 기한이 이에 그치셨다 함을 한번 새겨 보면서 이 할머님의 생애만이 아니라 그 누구나 다 한결같이 그 정하여 주신 기한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그 기한이 다 있다 하되 곡식단이 운반됨과 같은 사실을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가을철에 보면 이삭이 결실하도록 무거워지면서 마지막에는 잎이나 줄기는 마르고 이삭만 남아 있게 되는 것을 우리는 늘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곡식단은 거두어 곡간으로 운반되어 집니다 이 사실을 오늘 우리는 여기서 보는 것입니다 이 할머님은 80여 성상 이 땅에 손노릇 하면서 그 청청하셨던 시대에는 씩씩하고 활발하게 아들 딸 낳아 기르시면서 교회를 힘있게 섬기셨읍니다만은 벌써 노 장노님은 가신지 오래고 자신도 쇠하시어 근년에는 자유로히 활동도 못하시였거니와 그 청청하던 잎이 마르신 것 같이 그는 많은 알곡을 큰 이삭을 굵게 무겁게 남기시고 줄기마저 마르셔서 가셨거니와 그 알곡은 곡간에 운반되어 가신 것입니다 장수하다가 70은 고회라는 말에서는 훨씬 더 장수하셨사오나 이는 교회의 유는 아입니다 참으로 장수하셨읍니다 더욱 알차게 여문 곡식단입니다 두 면으로 알찬 곡식단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오래 계시면서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하시고 잘 준비하시다가 가시는 것처럼 알곡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가만히 오랜 교회 생활에서 지나보면 알차게 알곡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여러 면으로 준비 기간을 주시는 것을 많이 지내본 바입니다 그 동안 여러모로 잘 준비하여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 할머님도 그 동안 많은 준비가 계신 줄을 믿습니다 그의 욕망이 계셨다면 더 오래 사심을 욕망으로 하지는 아니하셨습니다 오로지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다는 말씀대로 그 속 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기 위해서 그 동안의 준비기한이 그만한 시간이 걸렸다고 보아 타당한 사실이 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많은 자녀 손 중에 교회 중진들이 많이 배출되어질 것을 목도하시고 계시다가 가셨거니와 그것만으로 만족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 할머님의 후손 중에 많은 알곡들이 더욱 더 생기는 것이 한 면의 의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을 위해서 일하시거니와 더욱 더 알찬 교회의 역사자, 계승하여 이 가문에서 배출할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알찬 곡식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이를 보시고 만족하시어 가셨으려니와 허다한 구름 같은 간증자들 속에서 앞으로 더욱 만족을 누리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 유족들 또 우리 같이 제단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던 모든 믿음의 식구들 다같이 그 허다한 간증자 중에서 지금은 우리를 서원하시는 반열에 참여했사오니 그 기대에 어김없는 생애를 가지자는 다짐이 오늘 이 제단에 우리의 가질 각오요 또 기원이 되어야 할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11. 세상이 가는 길로 (수 23:14-16)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하나님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진 도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14절) 이 말씀은 이스라엘 승전장군이오 모세의 후계자로 선민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드리신 여호수아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주신 말씀의 한 토막입니다 그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고 하신 말씀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나는 간다 간 후에 이렇게 살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오늘 상주 여러분이나 우리 역시 같이 자리를 한 우리들은 다같이 들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그 길을 여호수아 상승장군이지만 안 갈 수 는 없는 것입니다 한데 세계 정계에서 이름을 날리니 우리 6.25사변 떼에 큰 역할을 했던 전 미국대통령 트루만 대통령도 세상 사람들의 가는 길로 종당에는 갔다는 소식이 전하여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는 그 길을 안갈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노히일 집사님도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금년 성탄도 잘 지키시고 가신 것입니다 이제 그의 유해를 선영으로 모시려 하면서 오늘 우리는 이렇게 말씀을 들어 보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가는 그 길로 가려니와 이제 나의 납기고 가는 이 말을 명심하여 들어 달라는 부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황 집사님은 지금 우리에게 그 자신이 하시는 말씀은 없읍니다만은 그는 항상 주 안에서 사신 분이니 만치 그의 가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따님이 자녀들에게 주시려는 그 말씀을 오늘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간다 너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자 아니 하고 이룰 것이니 그대로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간단히 말한다면 나는 간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다 응하여 그대로 착착 진행되느니 만치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말씀 중에 제일 귀한 말씀이오 핵심의 말씀은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말씀이 근본입니다 세상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으니 만큼 징계를 받아야 하며 벌을 받아야 하며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 징계를 이 벌을 이 심판을 우리 주님께서 다 받아 주신 것입니다 이 일을 믿는 것이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 황집사님은 일찍이 죄를 깨달으시고 예수를 믿으시어 한평생 하나님의 딸로서 살으신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징계나 벌이 있을 수 없이 되어졌습니다 이제 이 어머님은 이 할머님은 여러 사랑하는 아들 딸이오 손자 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니 다 믿고 그 징계를 그 벌을 그 심판을 면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가시는 줄 알면 이 어머님을 고별하는 이 마당에 있어 참으로 다행한 일이요 저 나라에 가신 어머님께서 무한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될 것이오니 오늘 그가 원하시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신 줄 믿고 이 말씀을 바로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12. 잊혀지지 아니하여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 할 것이다 오늘의 모든 유족들의 슬픔은 사랑하는 이를 잊혀지지 아니 하여서입니다 생각하두세, 잊을 수 없는 가장 심오한 살틀한 안타까운 표현이 울음인 것입니다 애달프게 우는 그 모습에는 어느 누구나 같이 울어주게도 되는 것입니다 관을 두드리며 우는 그 모습은 애처롭기도 합니다 다 그리운 정의 한 발로입니다 이는 오늘 성경이 주시는 말씀대로 어머니는 그 자식을 잊지 못하는데서 온 것입니다 그에게서 받은 그 사랑이 더욱 더 생각 하두세 더욱 더 간절한 것입니다 참으로 나릿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속 태운 생각도 나고 말 안 듣는 것도 생각이 나고 후회도 하고 살아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함을 안타까워도 하게 됩니다 이는 그 나릿 사랑이 내게 행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그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태어난 자손들의 애달픔은 이런데 기인한 것입니다 어머님의 그 잊을 수 없었던 그 사랑의 줄이 얽매인 까닭입니다 이렇듯이 우리는 가정에서 이런 천자의 사랑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적을 통하여 비로소 사랑이 무엇임을 알게끔 되어집니다 어머님은 나를 사랑하였기로서 였습니다 사랑하여 오늘까지 잊지 아니하셨읍니다 먼데 간 자식을 눈에 보지 못하면서도 그 눈에 언제나 놓지를 못합니다 멀리가 있다하되 항상 그 어떤 줄을 묶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줄이 묶이여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숭엄한 시간 그렇듯 나를 사랑하여 못 잊고 있던 어머님을 할머님을 유해인 망정 아주 집에서 떠나시게 한다고 생각할 때에 더욱더 슬픔이 앞을 가리우지 아니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근본은 가신 분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먼저 나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나릿 사랑이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이런 나릿 사랑이 끊기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는 다 육에 대한 말이고 영으로는 다른 것입니다 어머님은 사랑하는 자식을 이렇게 두고 가게되면 가시고 맙니다 부르고 불러도 대답도 없이 가시고 말았습니다 애달프게 불러보아도 아무 소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영원히 잊지 아니하시고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를 사랑하여 주신다는 말씀을 오늘 바로 듣자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나를 두고 가실지로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오늘 어머님을 여기서 보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여 주신다는 이 귀한 교훈을 받자는데 그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온 유족들을 이번 이 상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람을 바로 터득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오늘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예배로 이 숭엄한 식전을 가지는 것입니다 13. 돌아가실 때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새는 죽을 때에 소리가 처량하고 사람은 임종에 마음씨가 착하여 진다는 말이 있거니와 주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때는 이는 사람을 잊지 아니 합니다 주님만은 가실 길을 아시고 하실 일을 다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날을 안다고는 못합니다만 은 갈 길을 잘 준비하고 태연히 가는 것은 믿음직한 일입니다만은 갈 길을 잘 준비하고 태연히 가는 것은 믿음직한 일입니다 오늘 가신 양광희 선생께서는 이 몇 해 어간 가족들은 물론 우리 그를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거니와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자유롭지 않음 몸을 가다듬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애를 쓰셨다면 그렇게 애를 쓰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일만하여도 그렇게 수고를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강행하여 여럿의 부축을 받으시면서 라고 교회에 오신 것을 볼 때마다 감격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교회 출석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의 눕고 이는 것 어느 하나가 누구의 부축이 아니고는 어찌 할 수 없었던 그 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신력은 아주 강하시여 모든 범백을 잘 판단하시고 그 예를 갖추면서 말씀하시고 하시던 모습이며 그 자세를 눈에 훤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지나심의 그 뜻이 어디 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가 믿지 않는 기간으로 하나님께서 주시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잘 하시고 계시다가 가신 것입니다 준비 기간이 사람에게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준비가 완료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부르십니다 이만치 잘 준비하시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모든 생활이 이를 준비 기간이였담을 부인 못하리라고 봅니다 준비를 다 마치고 가는 길이 가뿐하여 집니다 준비를 못하고 간다면 이는 참으로 가이없는 일입니다 잘 준비하고 가신다면 가는 순간이 유족에게는 매우 안되었으나 가시는 분은 매우 가볍게 즐겁게 갈 것입니다만은 준비가 안된 채 가는 사람은 그 가는 순간이 말로 정말 그 엄마나 어려울 것을 상상 못할 것입니다 이제 잘 준비하여 가지고 가시는 고인을 생각할 때에 어딘지 흐뭇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로서 그는 가시면서 우리에게 이 교훈을 주시고 가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잘 준비하고 오라고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사셨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이 가신 분의 잘 준비하시고 가심을 우리는 보면서 여러 유족들이며 일반 오늘 이 제단에 참여하신 우리들 다 같이 잘 준비하고 기다릴 것입니다 그 준비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길이오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구주 예수를 바로 믿고 사는 그 일입니다 이 준비를 완료하고 산다면 언제나 문제는 없습니다 오라고 명이 나릴 때에 언제 가도 됩니다 그러나 이 준비가 완료되지 못하였다면 오라는 그 명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 준비할 것입니다 14. 자건만은 (사 14:18 ) 열방의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만은 주님께서 사람들의 죽었다는 사실을 잠으로 보신 것은 또 그렇게 가르치심은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보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큰 충동을 주는 말씀이었고 또한 이 말씀은 바른 생을 차지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큰 소망이 되신 것입니다 물론 바른 생을 가진담은 죄를 바로 깨닫고 속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가르친 말인 것입니다 자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 같이 주 안에서 자는 사람들은 그 밝은 아침에 일어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양입니다 오늘 우리 항상 관심으로 그의 아픔을 염려하던 우리들로서 더욱 사랑하는 자녀들 또 친지들 다같이 그를 앞서 보냄이 매우 서운한 감이야 안 가질 수 없지오 만은 오늘 성경에 말씀을 들어본다면 영광 중에 잔다는 말씀이 이 정 집사님께 해당한다고 생각할 때에 그렇지 못하게 자는 사람 혹 죽은 사람은 가이없기도 하고 크게 불행하다고 느끼어 집니다 정 집사님은 그의 가심이 영광의 가심이랄 수 있는 점에서 매우 다행함을 느낍니다 여기 자기 집에서란 말에서 객사가 아니오 자택에서라고 해서가 아니라 여기 자기 집이란 우리는 주 안에서로 볼 것입니다 주안에서 자는 자의 그 행복을 말합니다 옛날 지금도 혹 그렇기도 합니다 만은 허다한 많은 군왕들이 무덤에도 못 들어가게 되는 그 형태도 적지 않게 있었는데 그도 불행한 일이 갔다면 이 얼마나 불행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정 집사님이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잤다는 말은 그가 일찍이 주안에서 구원받은 자매요 주안에서 살다가 가신 그 일입니다 이는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살면서 자기 전에 다 잘 준비하기 위해서 시간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약간의 시간의 기한과 또 육체적으로 가셔야 할 기회를 가졌다고 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연상하는 일보다 더 큰 자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몸에 큰 수술을 단행한 경험도 가진 바 있습니다 육으로 견디기 어려운 경험을 하는 것도 친히 묵도하였습니다 그런 사실들이 육으로 볼 때에 심히 애처롭기도 하였으나 영으로 본다면 다한 십자가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수술 후에 약간의 회복이 있을 뿐 줄 곧 그 아픔을 참으면서 지나신 것인데 그 참으심은 십자가를 항상 연상하였던 좋은 기회로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인데 인간적으로는 매우 보기 딱한 점도 없지는 아니하였으나 이는 꿈 같은 일이오 이 모든 일들이 십자가를 더 붙잡는데 큰 힘이 되었을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가심이 영광의 가심이며 그는 자기 집에 영광의 잠을 자게 되었다고 할만한 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정 집사님으로 가심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영광의 잠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15.빨리 달려라 (아 8:14) 나의 사랑하는 자여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복음 강령은 주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또 재림인 것은 우리의 신앙의 진수이니 만치 우리가 믿고 있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로서 죄 문제를 해결하였고 부활을 믿음으로 그 생명을 얻었으며 그의 승천으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확보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출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신앙 면으로 남은 일이 있는데 이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가 오심으로 모든 문제가 완전하게 되어지겠습니다 아직 이 몸을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신앙의 든든하다 할지라도 육과 영의 충돌을 우리는 때로 보는 바요 또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도 너무 괴로워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원하는 선을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도로 행하였구나의 탄식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가서는 신랑인 주님과 신부인 교회 관계가 아주 잘 서술된 말씀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최후 결론으로 되어진 말씀에 나의 사랑하는 자야 이는 주님을 가르침입니다 빨리 달리라 빨리 와 주셔요 그 말입니다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말입니다 우리 절정의 소망 실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신랑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시마 하셨고 또 우리의 희망이 아닐 수 없사오니 그가 오시는 날은 이미 세상을 먼저 떠나셔서 가신 분도 다시 영광의 몸으로 오신다 우리 남은 사람들도 변화한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이 신앙이 그대로 날로 가깝다고 보거니와 오늘 성경에는 빨리 와 달라는 간원인 것입니다 오늘 오래 계섰고 또 연만하셔서 오래 수고하신 어머님을 그처럼 가신 것을 애타게 생각하는 여러 유족들은 오늘 이 주신 말씀대로 기원하여 마땅합니다 주님 오시는 날 어머님을 다시 만납니다 이를 다 믿고 있으니 이를 믿으라 말보다 믿자는 말은 너무 유치한 말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다 그렇거니와 어디서 만나자는 그 말이 더욱 중요한 말씀으로 들으셔야 합니다 향기로운 산에서 산들이라고 오늘 이 영애 집사님의 후손이 많이 있읍니다 한 두분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되니만큼 이 말씀 대로 여러분이 다 각기 향기로운 산이 되셔야 된다고 들은 것입니다 유족 뿐만은 아닙니다 우리 모든 조객들 다 같이 향기로운 산들이 되어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실제 문제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심령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열매는 향기롭다 이 향기를 토하는 동산은 우리의 신앙생황을 가르침이니 잘 믿다가 주님을 맞는다 주님께 향기를 드린다 이런 준비가 우리 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16. 나의 가는 길 (욥 23:10)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사람은 가는 사람입니다 매일 같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시시 분분 초초마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와서는 줄곧 계속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는 사람인데 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처럼 가련한 사람은 다시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 갈 곳을 아는 사람은 더욱 쉽지는 아니합니다 실상 갈 곳을 바로 사람으로서는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격에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르침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갈 길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사람으로 알 도리는 있지 아니합니다 가는 줄고 모르는 인간이니 갈 곳을 알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자신으로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갈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신 바입니다 사람이 갈 곳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가진 범죄를 다 치르고 하나님을 배반하기도 한바인데 하나님께서 이를 알게 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과 같이 오셔서 살으시면서 그 갈 곳을 알게 하여 주심이 우리 믿는 신앙입니다 고 이 천명 옹께서는 일찍이 이 진리를 받으셔서 예수를 믿으시고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하시며 사시드니 고희가 넘으시고 쇠약하여 병을 침료하여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나시었습니다 사람이 한번 왔다가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안갈 사람은 없는데 가신 옹께서는 그 가실 곳을 아시고 계시다가 말씀이 분명치 않으신 중에도 요단강을 건느시느니 거기가서 차근차근히 이야기 하자느니의 말씀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렇듯 참으시기에 어렵지만 주여를 연발하시 군함을 가족은 몰론 문병하려 오신 이 까지 분명하게 들을 정도였읍니다 갈 곳을 분명히 아시니 주님을 찾는 길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는 사람임을 아는 것이 현인입니다 가면서도 가는 줄을 모르면 이는 인간으로서는 제일 가이 없는 인간입니다 가는 줄을 알면서 갈 곳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읍니다 갈 곳을 잘 못가는 인간들도 많아서 온갖 미신들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대속하신 주님을 통하여 우리의 근본이 되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은 사람의 가장 바른 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길이 되신다는 말은 그를 통하여서만 갈 곳을 간다는 말입니다 그로 말미암지 않아 가지고는 갈 곳에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길이 되심은 그가 우리 죄 문제를 다 갚아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길을 가지를 못합니다 그 곳을 가지를 못힙니다 그가 친히 나 위하여 죽으심으로 내 죄를 완전히게 해결하여주신 것이 그가 내 길이 되 어진 소이입니다 고 옹께서는 이 주님을 바로 믿으신 것입니다 기력이 웬만하시면 새벽집회도 빠시지 않으시고 도시군 하시었 는데 근 여러 개월여간은 일로 쇠퇴하여서 이를 실행할 여력이 없으신 고로 매우 답답하여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그 신앙심은 항상 간직하여 두시며 주님의 앞으로 가신 것입니다 오늘 그 유해를 우리 동산으로 옮기시는 이 시간에 우리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신다는 이 신앙을 다시 한번 다짐할 것입니다 고인이 우리 따라가는 자들에게 하실 말씀이 계시다면 부디 잘 준비하고 있다가 와서 만나자는 간곡한 말씀이 계실 것입니다 17.정하여 진 일 (히 9: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우주 안에는 모든 자연사물이며 일체 행에 있어 다 일정한 원칙이 있어 그대로 되어집니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옵니다 얼마 전까지도 더위 비지 땀을 흘렸는데 오늘은 그렇지도 아니합니다 지금은 한로가 지난 때입니다 한로라면 이슬이 나리되 찬 이슬이 나린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는 한육옥 할머님께서는 오래 기다리시드니 좋은 절기를 골라 돌아가셨군 하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다 정하여진 일들입니다 아침에 해가 뜬다 저녁에 달이 뜬다 이런 것이 다 우연히 되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다 조물주께서 이미 정하여 주신대고 되어지는 것뿐입니다 오늘 성경에 가르친 말씀대로 사람은 한번 죽는데 이는 사람에게 정하여 주신 일이라고 말씀이 되었습니다 오셨다가 아니가신 분이 참으로 없기도 합니다 왔다가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못 얻는다는 말씀도 성경에 있거니와 이 몸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가지를 못합니다 반드시 이몸을 벗고 서야 간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와서 자기 수를 다한다 또 자기 할 일이 있어 왔는데 그 일을 다한 후에 사람은 가게 마련입니다 고 한육옥 노인께서도 이한 일의 실제입니다 더욱 고령으로 계신 중 말년에 좀 고생하시어 자녀들도 수고를 많이 하신 것은 사실이거니와 한 큰 교훈을 주시고 가신 줄 믿습니다 성격이 보통이 아니신 분으로 연만하시면서도 기력만 건강하시면 남의 신세를 지시려고 하시지 않는 분이시나 원낙 연만하시매 몸을 자유롭게 계시다가 가시었읍니다 사람이 정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한번 가는 길이 있고 간 후에는 그에게 심판이 따른다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신대로 잘 하였으면 잘 한대로 잘 못한 일이면 잘 못한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공번된 일이라고 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의 생이 다 하나님 앞에 들어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이 생각할수록 옳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으당 그래야지 꼭 공평되게 심판을 받아 상선벌악의 보응이 있어야지 옳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면 그 앞에 설 사람이 그리 쉽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공의 심판대 앞에 선다면 다 떨릴 뿐이겠읍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한 윤옥 할머님을 보내는 이 마당에 있어 이 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반드시 심판을 죽은 후에 받을 것인데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의 성경 말씀을 생각하니 참으로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믿는 사람은 심판을 면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한 육옥할머님은 예수를 벌써 받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신자는 정한 이치대로 가거니와 가서 심판을 받지 아니합니다 이 일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오늘 유족 여러분 이 한 사실을 분명히 하시면서 할머님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18 백발이 되기까지 (사 46:4)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는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내리라 오늘 노년에 이르기까지 백발이 되기까지 주님의 품에 품기워 사시던 우리 홍순기 어머님을 육으로는 장례를 한다 보낸다는 이 제단을 쌓으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 사실은 본인이 깊이 아신 바이오 또 때로 신앙 면에서 같이 접촉하여 한 제단에서 주를 경배한 사람들만이 아는 일일 것입니다 그가 넉넉치못한 살림살이에 매일같이 집을 지키는 일이 그의 일이었거니와 그가 주님의 품안에 안기어 사시였담은 그의 삶의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족이라도 이 신앙의 힘을 잘 이해 못하였을런지도 모릅니다 무슨 생의 힘을 그가 가지시고 살았을까요 한번 생각하여 보셨는지요 세상에서 좀 향락을 바라고 살으셨을까요. 세상의 무슨 지위 명예를 그가 하려고 사셨을까요? 이는 명확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 그에게 있을 수가 없었다고는 못하나 그가 교회서 방문할 때마다 몰라보든지 다른 것이 그에게 있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는 남이 모르는 그 어떤 위로가 그 힘이 있구나 한 것입니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백발이 되시기까지 육적으로도 그런 삶이 그에게 힘이 되셨거니와 오늘에 와서는 그런 유는 아닙니다 완전하게 하나님의 택하신 야곱 집에 이스라엘 집의 일원으로 하늘의 가족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내게 안겼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오는 우리는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생전에 내 어머님이 내 할머님이 고생하셨다는 그 일만 생각 마시고 지금 이 어머님이 이 할머님이 어디 계시냐를 분명히 하실 것입니다 그는 조물주 되신 하나님의 품에 안기시었습니다 노년이 되셔서 기운이 진하여 지시고 백발이 되셔서 약하여 지신 때에도 그는 믿음으로 사신 것이 그의 품에 사신 것입니다마는 보다 오늘이 되어진 이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안에 사신다는 이 한 사실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그가 창조하신 바라 그가 품을 것이오 그가 구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19지나간 처음일 (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은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지나간 처음 일이란 현세의 모든 것들을 가르친다 또 육에 관한 모든 일들을 가르친다 육의 회로애락 들 대내 대외적으로 장차 새 히늘 새 땅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그것들이다 내 개인적으로 이 하늘 이 땅에서의 모든 것들이니 오늘 성경에 가르친 대로는 사망이오 애통이오 곡하는 것이요 아픈 것들이 이 하늘 이 땅에서는 있었으나 저하는 저 땅에는 없다는 말이다 처음이란 이 땅에서의 눈물이라 새 하늘에 가서는 그 눈물이 다 씻겨진다 이 땅에서 살면서 실상 눈물 없이 사는 사람이 그 누구이겠는가 그 양이 많고 적은 것은 있을 수 있겠으나 실상 눈물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픈 것이 이 땅에 살면서 마음의 아픔 , 육의 아픔이 없지는 아니하다 오늘 이 가신 분에게 눈물이 없었던가 아픔이 없었던가 없지 아니 하였다 가족들이 그 눈물을 얼마나 보았는지 모르나 내가 본 눈물도 그에게는 누구보다 많이 흘린 것으로 보았다 아픔도 심적으로 육 적으로 많은 것이었다 이런 모든 아픔과 눈물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 점에서 그는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고 생각하면 크게 다행한 일이다 혹 자녀들이 가족들이 좀 계셨다면 락이 날 터인데 내가 좀 편하게 하여 드릴 수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또 효의 한 토막이 될 수도 있으나 실은 이 땅에서는 효로서 그의 아픔을 그의 눈물을 씻어드리지는 못한다 이제 그의 가심에 나로 말미암아 그가 눈물이 흘려졌다면 또 그렇지 않았다고 단연할 수는 없으리라고 본다 그럼에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려니와 내가 그의 눈물을 썻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는 그의 처음의 이 모든 눈물이오 아픔을 완전히 제거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에게 더욱 오늘여기 유해를 남기고 가신 경호순 자매에게 임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님이 되셨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서서 자기의 백성이 되신 자들의 눈물을 다 씻어 주신다는 말씀이시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하여 눈물과 아픔이 없는 생활 곧 저 나라의 생활은 곧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일 것이다 이 장 막에 살면서도 이렇게 살기만 하면 눈물과 아픔이 살아 진다는 말씀으로도 받을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 가신 고 경호순 자매의 추모를 통하여 이런 신앙의 다짐이오 또 실천을 할 수 있음이 상가 집에서 받는 한 큰 교훈이기도 한 것이다 무릇 누구나 유족이나 우리 한 제단에서 주님을 모시든 식구들이나 같이 이렇게 살기만 하면 자나간 처음 사건에 다시 말해서 눈물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인 것이다 20. 돌아가는 인생 (시 90;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새는 죽을 때에 그 소리가 처량하고 사람은 그 임종에 있어 마음이 착하여 진다는 말은 우리 흔히 듣기도 하고 스스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 공식이기는 어려울지는 몰라도 그런가 합니다 사람이 임종시에 거의 마음가짐이 어디 딴 세계로 전환하는 그 심성을 가지는 것만이 거의 가지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더운 생시에 신앙에 사시는 분이 그렇게 생각함은 너무나 지당한 사고이겠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오늘 이 정중한 제단에서 듣게된 것이 의의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조물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와 말씀을 우리는 지금 들은 것입니다 조물주께서 인생들은 한번은 돌아가게 내신 정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왔다가 안간 사람이 없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한 정리라 안 갈 수도 없고 안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억지로 가게 하시니 안갈 수 없다는 말보다 이 고해요 문문이며 고통이며 어려움이 많은 세상인지라 안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가게 된 것이 안간을 위함입니다 눈물과 아픔과 고통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서입니다 고인께서는 일찍이 예수를 구주로 믿으셨고 교회봉사의 직분도 감당하시던 분으로 듣고 있습니다 중도에 약간 길을 다르게 되어진 것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 임종에 있어서 그 귀한 간증을 남기고 가심은 듣기에 매우 흐뭇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에 같이 제단을 쌓고 예배하였던 일을 크게 회고하시면서 사랑하는 옛 신앙의 벗을 그다지도 찾으셨다 하오며 친히 기도를 하시다가 가셨다는 보고를 듣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같이 못 박혔던 죄수에게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놀라운 허락이 계시듯 교인에게도 마찬가지의 큰 허락이 계셨으리라고 믿는 바입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이렇게 주님을 찾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또 성령을 통하여 이렇게 일하고 계십니다 분명하게 고인께서도 주의 신이 그에게 역사하심을 의심하지는 못합니다 오늘 말씀에 들은 대로 인생들을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의 말씀, 돌아간다는 말이 여기 분명합니다 돌아간다는 말은 어감이 매우 흐뭇하게 됩니다 사람이 이렇게 간다는 말은 좀 문자 적으로 별세니 영면이니 죽음이니 사망이니 무엇을 달하였다느니 등의 구구한 표현으로 가장 좋은 표현으로 하여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돌아간다는 아주 쉽고 다 알아듣기 좋은 말이면서 너무나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돌아갈 고향이 있어 그리고 간 것입니다 사람은 온 것이 있어 또 갈 곳이 있기도 합니다 21. 지혜의 마음 (시 90:10-12) 우리의 연수가 70이오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 슬프고 또 엄숙한 제단을 쌓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고인을 보내게 됨은 믿는 사람들로서 지당한 일입니다 아쉽게 가심은 할 말이 없습니다 가시면서 한 말씀은 이 어머니께서 가심을 계시로 주신 말씀이라 그 어머니의 말씀은 아니지만 이 시간에 주시는 말씀이니만치 또한 이 기회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이신지라 뜻있게 들려지는 말씀이오며 또한 오늘 어머님께서 가시면서 할 말씀이 계시다면 다른 말씀보다 인생의 일행이 이러하다 부디 지혜의 마음을 얻어 이 세상의 있을 날을 계수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말씀이 유족에게 드림 말씀이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이 생에 있어서 가장 바른 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70이오 80은 장수하신 생을 가르치는데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며 신속히 간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이 장면에서 더욱 더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속히 가기를 날아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쳐 달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 날이 그 얼마일까요 여기 누구 알 분은 계시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땅에 누구든지 이를 알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알고 사는 것이 생의 무슨 의의가 있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나는 아무 날은 갈 것이라고 알고 사는 그 맛이 어떠할 것입니까 그러기에 그 날을 알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알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한번은 내게 이 생을 청산 할 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갈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안간 사람이 이 땅에는 없는 것입니다 나라고 안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하면서 그 날수가 70이라면 옛날부터 고희라고 하기도 한 것입니다 70 가기도 드물다고 한 말입니다 건강하면 80이라도 오늘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분명히 가는 생이나 이같이 일생을 날아가는 날이오 신속하다고 지정된 말입니다 여기 누우신 이 댁의 어머니도 신속히 가심을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어머니께서 지금 한 말씀 주시고 가신다면 생이 신속하니라 빠르니라 이렇게 날 계수함을 가르치고 가신 것입니다 빠릅니다 얼른 지나갑니다 날아가는 것과 같은 생입니다 이런 지혜의 마음을 분명하게 얻게 하여 달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님을 여의고 한없이 슬퍼하시는 상주 여러분 이제 어머님이 날더러 무슨 말씀 무슨 유언이라도 주신다면 그 무슨 말씀일까요 부디 돈 많이 모으라. 부디 권세를 잡으라 이런 말씀일까요. 한 생이 날아가는 셈이기도 한즉 그 날을 계수하여 보면서 언제나 이런 지혜로운 마음을 얻으라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오늘 이 장엄한 사간에 이 주시는 말씀이 크게 마음 깊이 간직할 말씀으로 받을 것입니다 22. 온전히 알 때가 있다 (고전 13;12 )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 유한 인간은 모를 일이 너무 많이도 있습니다 한 원인에서 나오는 결과도 우리는 다 모릅니다 원인 결과를 찾고 아는 것이 과학이지만 어느 정도에 국한된 것뿐입니다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알지 못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거저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당하는 이 일도 우리는 모르는 일 중에 하나요 자칫 잘못하면 원망으로 일관하기도 쉬우나 우리는 무지한 인간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살아야 되는데 그를 원망하지는 못합니다 오늘 성경이 가르친대로 한가지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희미하나 똑똑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온전히 모르나 그 때에는 온전히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그 때까지 기다리기가 지리도 하고 기다리기 전에 이 안타까운 심정을 달랠 길이 있지 못한 것이 또한 급한 일입니다 여기서 신앙인과 비 신앙인과의 구별이 챙겨집니다 소망 면으로 나를 달래며 신앙면으로 침착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일에 대하여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할머님이나 할아버지 또 아버지 어머님을 위로하시고 이 신앙을 소유하는 시간이 되셔야 할 줄 믿습니다 이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실제입니다 어제도 들은 말씀이거니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어린 때묻지 않는 순결한 그 심정을 가르침입니다 그는 벌써 한 생의 교체를 한 것을 우리는 신앙으로만 알 것입니다 이 엄숙한 시간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부모님 또 조부님들은 가족들에게 영으로 주시는 은사를 빌 뿐입니다 지금 모르는 일이 그날에 지금 온전치 못한 일이 그때에 꼭 온전하게 되어질 것을 분명히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의 은사를 주실 줄을 믿는 바입니다 23. 우거진 삶 (대상 29; 15) 주안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거란 말은 붙어산다는 발입니다 남해안에 가보면 해산물 양식하는 곳곳을 볼 수 있습니다 곳곳에 무슨 물건을 벌려놓았기에 물었더니 어떤 것은 조개류가 와 붙는 곳이라 하며 어떤 곳은 굴이 와서 부착하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그 씨가 떠다니다가 부착하기 좋은 여건이 되면 부착하여 생식하게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제가 처음 중국에 거서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은 집마다 부쳐진 문패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다 같다는데 이상한 감을 가진바 있습니다 성은 다르되 이름이 다 같다는데 이상한 감을 가진바 있습니다 후에 이를 알고 제 스스로 웃고 지난 일입니다만은 성만 쓰고는 모모 성씨가 여기 붙어산다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성격에도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건한 자라 하였습니다 우거자 람은 붙어산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실로 붙어살다가 고향으로 간다는 사실을 말하여 줍니다 조와 다름이 없다는 말은 열조도 다 같이 우거하다가 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도 예외가 없이 다 우거한 삶을 가진 것입니다 이 삶은 나그네의 삶이라도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존경하는 권사님을 우거하시던 나그네의 삶에서 가신 사실을 상기하면서 그의 유해를 인간의 예법대로 옮기려는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이 엄숙한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인간을 삶의 의의를 바로 가지게 하신다고 봅니다 생각컨데 한 평생 고와 락을 같이하며 목사님을 그렇듯 잘 도우셔서 함께 성역을 감당하시던 권사님이 좀더 계셨다면 하는 심정이야 어찌 없으리오만은 그의 우거한 삶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뜻에 의한 끝이 되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늠늠한 아들님이요 따님에게 있어서는 다 성숙한 사람들입니다만은 어머님을 여윈 그 심정을 생각하면 비감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나 그의 나그네생은 이렇게 끝이 되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세상이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다고 이렇게 성경이 이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 어머님께서 지금 관속에서 하실 말씀이 계시다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여러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이 말씀을 주시고 가실 것입니다 나는 열조와 함께 또 열조의 간 길로 그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의 생을 우거의 생을 끝였으니 세상의 삶은 이렇게 그림자 같은 삶임을 잊지 말고 머무름이 없이 가는 삶이람을 기억하고 잘 준비하여 살다가 때가 될 때에 같이 와서 만나게 되어질 것이라는 말씀이 있을 줄로 믿는 것입니다 오늘 그의 가심에 있어 이 말씀을 이렇게 주시는 말씀이다 열조보다 나는 나을 수도 없고 나을 필요를 느끼지도 못합니다 다만 나의 삶이란 나그네의 삶이라 우거한 삶이라 그림자 같은 삶이람을 깊이 느낄 것입니다 이를 못 생각하는 이 없겠습니다. 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를 망각하고 사는 때도 없지는 아니 합니다 오늘 권사님의 생을 회고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우리 다같이 거지거니와 사람의 삶이란 이런 나그네의 생, 우거한 그림자 같은 삶을 분명히 하면서 살 것을 다짐하면 크게 다행함이 되어질 것입니다 24. 풀 같은 인생 (시 103 ;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연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바른 인생관을 가진다 이는 우리의 삶을 바로 하는데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초로인생이라 이렇게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이 젊다고 막 살려는 그런 심정을 가진 것은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은 인생이 젊은것을 바로 알면서 더 바로 살 기틀을 가질 것입니다 오늘 고 김종환 형제는 실로 젊은 생을 생이라 할런지 좀더 머물게 되어야 하는 그 심정이 간절한 뿐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오늘의 말씀을 들어 보기로 합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더욱 우리는 이 겨울날에 풀과 같다는 이 말씀, 지금 우리는 풀을 보면 알만합니다 말랐고 보이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 여름날 녹음을 생각하면 오늘을 생각 할 수 없지만 오늘의 현실입니다 키가 6척이 넘듯 그 큰 체구에 건장하기 짝이 없으시던 분이나 병마라 둘대 같이 넘어지셨군요 인생은 풀과 같다는 이 말이나 병마라 둘대 같이 넘어지셨군요 인생은 풀과 같다는 이 말씀을 그래서 다시 실감 있게 들어봅니다 아니 실감있게 당하여 봅니다 이 인생의 길이란 이 분만이 아닙니다 좀 일러 보신담은 우리의 관청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날을 천날같이 보시기도 하시며 우리의 천년이 한 날같이 보시기도 하신다 하셨사오니 하나님 앞에 무슨 젊은 생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 같을 뿐이거니와 인생문제를 우리께 가르치고 가신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는 다 풀과 같은 인생임을 다시 한번 깊이 상기하면서 이런 초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한번 더 다짐하는데 오늘 이 슬픔을 당하면서 받는 은혜로 바꿔야 합니다 그가 와석에 있어 그 마음가지심이 인생의 일생이 이렇다함을 처절하게 느끼신 것을 잠깐 왔다 가면서 보거니와 가족들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그가 내가 좀더 일찍이 인생을 풀과 같다는 이교훈에 살았음을 저는 감사히 생각한 바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참회를 역력하게 하신 점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면서 우리에게 끼치고 가신 좋은 점입니다 우리는 풀 같은 인생이람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이 잠깐 왔다가는 것 뿐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여야 합니다 다만 세세토록 있을 그 말씀만이 의존하여 살 것입니다 가신 분이 가실 때에 가지셨던 그 심정을 우리는 언제나 가지고 삶이 풀 같은 생에 있어 바람직한 일입니다 누구나 다같이 갈 인간이요 누구나 이런 맛을 보지 않을 이는 없는 것입니다 미리미리 풀 같은 인간임을 분명히 하면서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세세토록 있을 그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25. 돌아가라 (시 90;3 )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의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사람의 몸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심이 오늘 성경말씀에 교시한 바입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 12;7) 절 말씀대로 흙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명언이 있으며 신은 하나님께로 돌아간 다는 명언도 겸하여 말씀되십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분명한 것은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이 살면서 각각 그 말이 있고 그 풍속이 있어 그 말들이 사람의 삶의 의미를 말하여 주는 일이 많기도 합니다 그런 중 우리 민족의 말이 주는 교훈 중에 다른데서 그 예를 볼 수 없는 말이 곧 사람이 생을 바꾸어 가는 일을 가르쳐 돌아간다는 말로 표합니다 한문으로는 사망이라, 별세라, 기타 다른 나라에 있어서도 다 거의 죽음이란 절망이란 말들로 표시됩니다 그러기에 이런 식전을 가리켜서 영결이라는 말로도 표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에 돌아간단 말이야 참으로 그 의미가 큰바 있는 것입니다 죽어서 없어진다는 사망이란 말이 아닙니다 영원히 가는 일이 아닙니다 왔던 곳에 있으니 만큼 그리고 돌아간다는 말이 분명합니다 과연 성경에 가르친 대로 사람은 나그네로 행인 으로서 지나가는 일생입니다 나그네니 언제인가는 돌아갈 것은 틀림없으며 또 이미 우리들이 알고 보는대로 안 돌아간 사람이 있지는 아니합니다 다 돌아간 것입니다 실상 돌아가는 것이 행복이요 원칙이기도 합니다 다만 가는 길에 있어 좀 이르게 좀 늦게 이런 분간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도 사람의 계산에 의한 분간 뿐이요 하나님 보시기에야 하루가 천년 같게 천년을 하루 같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 차이가 별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아직 좀더 계실 분인데 그런 아쉬움이 우리에게 없지는 아니합니다 오늘 가신 분도 그렇게 우리는 사료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호의 관계를 우리는 다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쉬운 심정은 안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정하여진 일인 고로 오늘 사람의 예를 갖추어 그 유해를 흙으로 돌아가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리로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영은 그리로 벌써 가신 바라고 봅니다 사람은 이렇게 영이요 몸으로 되어진 터이라 이번에 돌아감은 영과 육이 갈리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세상의 끝남이요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은 그 영이 다시 육과 합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육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견지에서 다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데 하는 상징적 판단으로 의심을 가질 수도 있으나 이는 천지를 창조하신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능력으로 영과 분해하였던 원소들의 결합을 시켜 놓는 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람을 내신 이가 이를 하신 것입니다 이제 할 일은 우리는 주님 오시는 날이요 그 영과 그 육이 다시 재결합하는 날을 기다립니다 이 일이 신앙인이 신앙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에게 잇는 것입니다 옛사람들도 이 소망에 있기에 삶의 힘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의 생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이제 여러 유족들이나 우리 일반 조객들은 사람의 생의 의의를 굳게 하여서 남은 생을 언제인가는 갈 길이 이분과 같이 있을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는 못 가는 것입니다 사죄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인 것입니다 사죄함은 어떻게 받는가? 이는 인간의 방법에 있지는 아니합니다 다만 우리를 속죄하여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죄는 사하여지는 것입니다 그가 내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으시고 죽으신 까닭입니다 이 사실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믿으므로 완전 사죄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가까이 의지하고 서서 게서 천당 가도록 항상 머물겠네 의 찬송도 있는 것입니다 유족 여러분들 우리 일반 조객 여러분 언제인가는 다 같이 갈 길인데 우리는 진리요 길이 되신 생명이신 주 예수를 믿음으로 사죄함을 받았다면 언제 가도 좋은 것입니다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가는 날은 큰 일입니다 고인께서도 이 신앙을 가진 말씀을 들어 안심하는 바입니다 26. 환희의 귀향 (사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함을 향수에 젖었다 향수에 잡혔다 영어로는 홈식이라고 해서 집을 사모하여 병이 낫다는 말로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도 다른 면으로 타향에 나가서 학업을 닦고 돌아오는 사람을 환영할 때에 금의환향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말이겠읍니다 오늘 우리는 차 장로님을 이렇게 작별이라고 할까 잠깐이긴 하지만 조석으로 우리는 만나고 하시든 어른인데 다시 만나지 못하는 작별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라도 보내는 이 아쉬움을 가지면서 오늘의 말씀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유대인들이 애급에 임시로 나려가서 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가나안 복지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도 저들은 다시 범과 때문에 부득하게 다시 포로라는 신세로 외국에 포로생활을 한 적이 그 몇 번이기도 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들이 바로 살려고 애도 쓰고 어지간한 경건한 생을 가져보다가도 그만이야 다시 떨어져 나려가 곤함이 우리들의 주변에 때로 있군 함은 두말할 것 없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국에 유랑 생활을 하다가 속량이 되어 돌아오는 모습의 한 토막을 표한 말씀입니다 생소한 데로 가는 것을 돌아온다는 말로는 하지를 못합니다 왔던 곳이기에 돌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향으로 다시 가기에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 주시기 위한 것이 속량이기도 합니다 차인선장로님은 속량함을 구속함을 받으신 하나님의 사람이시었습니다 그는 확실히 인생을 초연하게 사신 것입니다 그를 오래 보신 분들은 다 이 점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집념이 그렇게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오셔서 하실 일이 계시기에 그 일에 충실한 것으로 자기의 생의 락을 가지신 것을 우리는 역력히 볼수 있었습니다 어느 일은 충실하시면서 어떤 공을 생각하여 사신 분은 아닙니다 과연 그는 왔다 가는 젊은 생애를 값있게 보내신 분입니다 사리 판단의 정확성을 가지면서 달관하신 생애를 가지신 것입니다 이렇게 오셔서 하실 일을 다하시고 금의 환향하신 어른입니다 돌아가시면서 노래하며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에게는 비관이 있지는 아니하신 것입니다 낙천주의자라고 할만하시거니와 그렇다고 뼈대 없는 낙천이 아니십니다 달관하신 낙천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낙천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비애라는 술어가 거의 없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음악을 잘 하시어 노래하며 가신 분이 아니라 영으로의 환희에 넘쳐서 가셨다는 말이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가나안입니다 영적으로 그는 판단하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결코 비애를 가지시진 않으신 까닭에 그는 심정으로 노래하며 가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 계신 동안도 희락을 띠고 살으셨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에게 떠나지는 아니한 것입니다 그에게 슬픔, 탄식은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생의 생도 그리하였지만 이는 이생에서의 의의를 말한 것을 아래를 클릭 하시면... → 인터넷로고스선교회..또 다른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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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레드 컴퍼스 Red Compass
글쓴이 : lemalogo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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